•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 ▶ 오 세브리로의 푸른 대문 앞에서


  •                               오 세브리로 O' Cebeiro의 푸른 대문 앞에서




    신정민(시인)

     




    오 세브리로 O' Cebeiro의 푸른 대문 앞에서

    수도사들이 직접 와인을 생산하는 산 프란시스꼬 수도원을 지났다. 고풍스런 전통 저택들이 늘어선 구시가지의 반대편으로 체리농장을 키우는 강이 흘렀다. 이어서 산으로 난 꾸불거리는 길을 따라 고원지대, 오 세브리로로 향했다.

    오 세브리로에서는 성배가 소장된 성당을 방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곳은 약 1300년 경 와인과 빵이 피와 성체로 바뀐 기적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겨울철에 동쪽에서 안개 속을 뚫고 오는 순례자들을 위하여 울렸다는 성당의 종소리는 듣지 못했다.

    100년 정도 운영중단이 있었지만 11세기부터 운영되어 온 ‘산 히랄도 데 아우리야끄’ 숙박시설이 지금도 운영되고 있어서 놀라웠다. 풍만한 여체의 허리선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짐을 풀고 골목들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솜씨 좋은 드럼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리듬을 따라가 보니 파란 대문을 가진 흙집이 나왔다. 젖은 오후의 피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최근에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나는 심벌즈 업 다운하며 둥당거리는 실력. 신나게 두들기는 누군가의 드럼소리에서 준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푸른 대문집 앞에 놓인 황토빛 화분의 꽃들. 그 옆에 앉아 함께 드럼 리듬을 즐겼다. 집에 돌아가면 드럼에 열중해보리라. 마치 문 앞에 서있는 나를 위해 두들겨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만을 위한 연주. 난방이 시원치 않아 최악이었던 그날 밤, 뜻밖의 연주회 때문에 행복했는지 꿈속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 사랑한다는 말은 한 조각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그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이해인 수녀의 시노래

     

    1839년에 지어진 다리를 건넌다. 강 건너 저쪽에 중세의 마을이 있을 것만 같다.

    오래된 흙벽 건물이 많이 보인다. 발렌씨아 지방의 특색은 비옥한 토지를 가진 강변마을이 많다는 것.

    스페인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이 아니라 검소함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주는 검소함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곳곳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 보면 고딕 양식의 납골당에서부터 르네상스 양식의 조각품들 그리고 서고트 양식의 요소들까지 다양한 문화를 함께 볼 수 있다.

     

    오 세브리로의 아침. 축, 성탄.

    오 세브리로는 1300년 경에 생긴 작은 기적을 가지고 있는 도시였다.

    ‘미사참례를 위해 교회로 가는 가파른 언덕길을 한 신자가 어렵게 오르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본 신앙심이 깊지 못한 사제가 “빵 한 조각과 한 모금의 포도주를 보기 위해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했단다. 그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가 시작되었고, 성 변화의 순간이 되자 빵은 살이 되었고, 포도주는 피가 되었다’ 는데, 오 세브리로 성당에 그 살과 피가 현재까지 보관중이다. 작은 유리병에 담겨 보관중인 이 피와 살을 보고 사람들은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특히, 이 오 세브리로의 Elias Valiana라는 사제는 근대 성 야고보의 길과 노란 화살표의 개척자였다고 한다. 60년대 중반에 그는 이 성 야고보의 길을 썼고, 까미노의 중요성을 전유럽에 제의 했다고 한다. 1984년 처음으로 노란화살표로 프랑스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루트를 표시했다고 하니 우리가 걷는 프랑스 루트가 바로 이 곳의 사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성탄의 의미와 걷고 있는 노란 화살표의 길이 하나가 된 놀라운 날이었다.

     

    까미노 데 베들레햄. 우린 또 하나의 순례를 생각했다. 별빛을 따라 동방박사들이 걸어왔던 것처럼 우리도 황금과 몰약과 유황을 들고 아기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예수님께 어떤 선물을 드릴 것인가. 믿음이란 무언가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울뜨레아는 스페인어로 ‘힘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외친다. 울뜨레아!

     

    성경에 예수님의 조상을 거론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산티아고 길은 이 길을 앞서 걸은 수많은 사람과 내가 연결되어있고,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뒤에도 올 수 있는 사람과도 내가 연결되어 있었다.

     

    외국의 까미노들까지 한 식탁에 둘러앉아 성탄을 축하했다. 숙소 지킴이 수사님께서 주신 꼬냑. 달콤해서 홀짝홀짝 마셨다가 취하고 말았다.

    가족들에게 성탄 축하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옆에 있는 듯 가까웠다. 가족들은 그저 내가 건강한가만 물었다. 가족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했다. 수신자 부담전화여서 길게 할 수가 없었다. 폰 피싱이 한참 극성을 부리고 있던 때라서 아예, 국제전화라는 안내만 듣고 끊어버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날 밤 순례 첫날부터 코를 곯던 글로리아 언니가 또 내 자리다. 웬만하면 시끄러워도 잘 자는 편인데 글로리아 언니는 정말 대단했다. 이것도 나를 위한 누군가의 계획인가? 화장지를 작게 말아서 꽂고 잤다.

    다음날, 간밤에 마신 달콤한 꼬냑도 문제였지만 모처럼 야채샐러드와 맛있는 하몬 등을 평소보다 좀 많이 먹었더니 탈이 났다.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더니........

     

    크리마스 날, 사모스Samos로 가는 길은 지루한 고속도로 옆길이었다. 순례자를 위한 길이 차도 옆으로 나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았다. 운행하는 차들도 거의 없었지만 주로 대형 박스차량이었다. 가는 길 도중에 순례자가 쉴 수 있는 의자가 몇 군데 있었지만, 그늘 없는 길을 여름에 걸어야 한다면 무척 힘들겠구나 싶었다. 걷다말고 옷을 하나씩 벗었다.

    안경도 무거운 길. 욕심도 미움도, 가진 것이 많아 힘들었다.

    20세기 후반에 화재에 의해 전소되었다 다시 재건된 거대한 수도원이 있다는 사모스. 사모스로 가는 한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가야할 길이 지도상으로는 이정표가 없는 쪽인데 그 길 쪽에 산티아고 가는 길 이정표가 서있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하나? 길 잃은 눈치를 챘는지 바람이 나를 다그쳤다. 사는 동안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 길이 달라지곤 했다.

    지금 걷고 있는 내 삶의 목적지는 분명한가. 지난 밤 숙소에서 보았던 에스파뇰 형제가 온다. 얼마나 다행인지. 사람이 그렇게 반가운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가려고 하는 다음 마을이 같아서 어느 길로 가야할지 망설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동생은 의족을 해서 걸음이 불편했다. 동생의 걸음에 맞춰 걷는 형의 모습.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둘 다 대학생이었는데 방학을 맞아 걷고 있다고 했다.

     

    농경지의 흙들이 불그스레한 고원지대를 지나는데 그야말로 단순하기 그지없는 자연이다. 단순하고 지루한 길은 자기 내면의 풍경을 들여다보며 걸을 수 있어 좋다.

    “진리는 단순하고 평범하다” 진리는 현란한 말장난이나 매끄러운 수사가 아니다. 불교의 어느 선사가 “선禪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라고 대답했다지 않는가. 유교 경전 <중용 中庸>에서 ‘용 庸’도 먹는 것, 자는 것 등과 같은 ‘평범한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흘이나 신은 양말과 땀에 젖은 옷을 빨아 널고 있는데 숙소 뒤편 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여학생이 나를 부른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지, 날 더러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물었다. 눈도 예쁘고 주근깨도 예쁜 소녀, ‘아우라’. 까미노와 얘기를 나누는 걸 보고 아이들이 다가왔다. 동생과 친구들의 이름을 일일이 소개해줬다. 아이들의 순수함 때문에 그날은 또 그렇게 피로를 잊었다. 헤어질 때 알려준 ‘안녕’이란 말을 아우라는 기억하고 있을까.

     

    은퇴한 이탈리아 영화배우가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숙소.

    생의 은퇴자. 한 때 이름을 날리며 살았던 사람. 퇴임 후 아들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낸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식당 겸 가게인 거실의 천장에는 곰팡이가 핀 하몬과 훈제 가금류들이 걸려있었다.

    으깬 감자와 야채를 걸쭉하게 끓인 스프, 매콤하고 부드러운 닭다리 요리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탁에 둘러앉은 순례객들이 다 같이 손을 잡고 드린 식사 전 기도는 그날 밤 몰아친 추위를 견디게 한 뜨거운 축복이었다.

    나무로 된 숙소 천장에는 달과 별의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머리맡에 달과 별이 내려와 있었다. 심한 감기몸살로 끙끙 앓던 큰 벨라에게 맑은 죽을 끓여다주고 비상약을 침낭 옆에 두고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병이어는 가진 것을 내놓은 것이 이룬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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