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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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병 속의 편지




    신정민(시인)



    물병 속의 편지

    넓은 들판을 지나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로 향하는 길. 가로수에 묶여 있는 500밀리리터 물병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 쪽지가 있는데 한글이다. ‘부르고 라네로스에서 자고 10월8일 라바날, 9일 폰페라다, 만시아 가려 합니다. 힘내시오, 힘냅시다. 아직 고추장 남았음. 베네딕다, 안드레아 학사님, 속도를 늦춥니다.’ 이 편지는 이 길을 걷는 순례자 모두에게 주는 편지가 되었다. 부엔 까미노, 힘냅시다!!

    물병속의 편지
                                                                                         <물병 속의 편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마상 창 시합을 했다는 오스비딸 데 오르비고를 지나, 아름다운 아스토르가Astorga에 도착했다. 가우디 호텔 식당이 가우디 성당 건너편에 있다. 가우디가 설계한 에피스코팔이 있고, 성당 옆에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2유로였다.

    초코렛 박물관이 유명하고, 초코라떼가 맛있다는 아스토르가. 로마시대 유적지가 곳곳에 있고, 시청 건물에서는 30분마다 인형이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고 했다. 스페인 전통복장을 입은 인형, 마리가또가 나와서 한 바퀴 도는 거였다.

     

    아스토르가 알베르게에서 다음 일정을 위해 하루를 더 쉬기로 했다.

    이 숙소는 침실까지 들어가는 문을 네 번이나 통과해야했다. 옛 건물을 개조한 숙소여서 그랬던 것 같다. ‘마리오’라는 숙소지기는 청소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저녁 먹기 전에 청소를 해야겠으니 모두들 나가달라고 해서 세 시간 정도 시내 구경을 했다.

    해옥씨의 목에 벌레에 물린 듯한 발진이 생겨서 벼룩인가 했더니 마리오가 펄쩍 뛰었다. 알베르게 안내책자에는 벼룩 많은 알베르게가 소개된 곳도 있다.

    저녁 식사 준비하면서 전기레인지의 불조절 단계를 높였더니 숙소 전체의 불이 꺼지는 일이 벌어졌다. 모처럼 쉬면서 영양보충음식을 할까, 했다가 마리오에게 주의만 들었다. 전력이 약해서 그랬다. 조심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그런 일이 벌어졌다.

    식사 때마다 음식장만이 시끌벅적한 우리를 보고, 순례자가 아니라 여행객 같다고 했다. 뜨끔했다.

     

    아스토르가는 가우디가 설계했으나 지어진 성당의 규모도 작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주교가 입주하지 않은 성당, 파라시오 에피스코팔이 있다. 화가 난 가우디는 “아스토르가는 열기구를 타고도 지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도시였다.

    그 성당 옆에는 새로 지은 주교좌 대성당이 있었다. 까미노 박물관도 있고, 편의시설과 기념품 가게, 그리고 역사적인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원래 이곳은 몇 개의 주요한 길을 잇는 중요한 위치 때문에 오스트리아인들의 지역사회 중심이었으며, 로마도시와 대등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아스토르가의 명물, 쵸콜릿. 단맛과 쓴맛의 조화가 쵸콜릿의 매력이듯, 우리 삶에서도 기쁨과 슬픔이 조화로울 때 매력있지 않을까. 기쁘기만 한 삶도 없고, 슬프기만 한 삶도 없을테니까.

     

    무료로 도시 가이드를 해주는 친절한 할아버지. 포르투칼에서 온 알프레도 영감님을 만났다.. 진초록 스카프와 산타 장식 넥타이. 긴 수염, 깃털 달린 중절모자가 한 눈에 띄었다. 행색만 보고도 우리가 순례객이란 걸 알고 다가오셨다. 짧은 영어와 손짓으로 아스토르가 지하에는 로마의 건물터가 많은데 아주 놀라운 곳을 소개해주겠다 하시며 한 슈퍼마켓으로 우릴 데리고 가셨다. 슈퍼마켓 바닥이 투명강화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발밑에 사라진 로마가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고, 관광상품 자원으로 개발해놓은 아이디어가 기가 막혔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북적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보려고 들렸다 가는 순례객들로 인해 마켓의 매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그 곳 뿐만이 아니라 골목 골목마다 여기저기 옛 도시를 발굴 중인 현장들이 많이 있었다.

    5대 째 내려오는 약국이 있는데 지금도 전통적인 로만양식의 장식장을 쓰고 있는 곳도 구경했다. 상가건물의 외벽에는 300년 전에 붙인 아트타일이 지금도 붙어있어 벽 하나까지도 예술로 승화시킨 그들의 생활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다음날 그곳을 떠날 때 뵌 영감님 패션은 모자에서 신발까지 화이트 칼라의 로데오 패션이었다. 아스토르가가 좋아서 몇 년 째 자원봉사로 순례객들에게 안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산티아고 길에서 힘든 코스 중의 하나인 ‘아이라고’ 산을 지난다. 1300m 정도의 산등성이를 오르내렸다. 거대한 돌무더기 위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 기둥 철 십자가로 유명한 곳이었다.  순례객들은 고향에서 가져온 돌이나 편지를 그곳에 놓고 소원을 빈다. 자신의 소원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소망까지도 받아와서 대신 전하기도 하는데, 나무 기둥의 벌어진 틈새에 소원을 적은 종이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태양과 비와 바람이 읽고 갔을 색 바랜 소원들. 욕심 사나운 소원보다는 가족의 건강과 안녕과 같은 소박한 소원들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모습은 로마시대 이전의 켈트인에게서 내려온 풍습이 지금껏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내리막길을 천천히 걷는데 만하린Manjarin에서 세계 각국 도시까지의 거리를 표시해 놓은 한 까페의 나무 팻말이 보였다. 독일 청년들이 운영하고 있는 까페 안 분위기는 마치 히틀러 친위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히피들의 휴식처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나라의 이름에서 한국을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한국으로 가는 방향과 거리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내 자신이 한국으로 가는 방향이고 표시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까미노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향하는 노란 화살표였다. 푯말을 찍고 있는데 5학년 2반 소녀, 벨라 언니의 걸음이 너무 늦어서, 조장이셨던 뿔뽀 아저씨가 뒤에서 걸음을 채근하며 오고 있었다. 벨라 언니는 구속 받는게 싫어서 입이 나오고, 뿔뽀 아저씨는 벨라의 느린 걸음 때문에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혼자서 걷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너무 늦는 벨라를 먼저 가는 사람들이 자꾸 챙겨야만 했고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염려가 되어서, 그 일을 해결해보자하고 자청해서 나섰던 것인데 둘 다 못할 노릇이었다. 아이라고 산을 내려오면서 이 풍경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생각했다.
     

    우주의 소리를 듣고 있는 까미노
                 <우주의 소리를 듣고 있는 까미노>


    둥근 자연의 원점에 내가 서 있다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진 오래된 광산 마을 폰페라다 Ponferrada. 폰페라다는 성 야고보의 묘지 발견 당시부터 순례의 길 통과 지점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11세기에는 주교 아스토르가의 명에 의해 순례자들을 위한 다리도 놓았다. 이 도시가 가장 발전한 것은 철도가 놓이고 석탄 채굴로 발전을 이룬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에 걸쳐서 이다. 이 도시에 남아있는 성은 1178년에 성당 기사단이 건축한 것으로 카스티야 북서부 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도시에 들어오면서 포장된 길을 좀 걸었다. 옛날 고대 켈트족의 마을이 있었던 오래된 도시. 철로 보강한 최초의 다리에서부터 템플 기사단의 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물들이 방어요새였던 과거를 회상케 해줬다. 잘 보존된 성의 외부는 이제 더 이상 어떠한 비밀(삼중벽, 12개의 감시탑 등)도 감추지 않았다.

     

    여명을 뒤로 하고 바로크 양식의 타워가 있는 엔씨나 대성당을 지나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를 향해 걸었다. 비에르소는 병이 생긴 순례자나 혹은 다른 확실한 이유로 꼼보스뗄라로 가는 여행을 완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순례를 마친 것과 똑 같은 사면을 받고, 나머지 여행길을 제외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몸살감기로 밤새 끙끙 앓던 재원씨가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떠났다. 근육통으로 다리가 부어오른 정순 언니와 편두통으로 고생하던 영숙 언니는 기어이 걸어보겠다고 앞장섰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니까 몸에 이상이 온 순례자들이 하나 둘 생겼다. 귀차니즘에 다들 적응하고 있었고, 걷는데 이력도 붙었지만 목적지에 가까이 오는 동안 쌓인 피로가 몸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에르소는 프랑스인 순례자들이 건설한 도시다. 이 도시의 산티아고 성당은 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인데 여기에도 ‘용서의 문’이 있었다. 이 문은 성당 북쪽의 정면 장식을 지나는 도중에 있었는데 여행을 계속할 수 없는 순례자에게 산타아고 데 꼼포스뗄라까지 순례한 자와 똑같은 은혜를 입은 것으로 인정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을 굳이 찾지 않았다.

     

    순록의 뿔을 닮은 떡갈나무잎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 숲길.


    떡갈나무숲의 세 그림자
                                                                   <떡갈나무 숲의 세 그림자>



    앞서 걷는 순례자의 뒷모습이 미지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미풍에 묻어있는 나무들의 숨소리가 이 길을 걸어간 수많은 순례자들의 숨소리로 들렸다.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 동안 보았던 폐가들. 허물어지고, 부서지고 깨지고, 결국 비어있었다.

    흉물스럽기보다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접선지처럼 보였다. 오랜 세월이 그려놓은 돌담의 이끼들이 아름답다. 자전거 순례자의 무덤도 지나고, 문 없는 농가의 창고도 들여다보며 걷는 길. 집에 돌아가면 이 길들이 얼마나 그리워질까, 걷다말고 서서 둘러보곤 했다. 둥근 자연의 원점에 내가 서있었다.

    풀섶에 놓인 돌맹이에 이곳을 지나던 순례자가 그려놓은 알록달록 색칠된 돌맹이들이 꽃처럼 길가에 피어있었다. 자국의 국기를 그려놓은 것도 있고, 변신과 파워를 상징하는 닌자, 조가비와 조롱박, 까미노 상징들이 그려져 있었다.

     

    푸른 하늘에 그어진 밑줄. 하늘에 비행운이 그어져 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하늘.

    그러나 내가 읽지 못하는 활자가 거기 있으리라. 만남과 떠남 사이에는 항상 헤어짐이 있었다.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앙켈ANGEL을 다시 만났다. 쉬면서 담배 한 대 피우는 중이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위해서 걷는다는 말이 다시 생각났다. 보이지 않는 마음, 보이지 않는 갈등 밑에 줄을 긋는 사람들. 그들이 까미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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