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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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민(시인)



     

    레미지오에게서 온 편지

    평소 바람과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하고, 미지의 세상을 동경하고, 신앙의 발자취를 따르는데 관심이 많았던 내가 어느 날 산티아고 도보순례를 한다는 공고를 본 순간 얼마나 마음이 설레였던지요.

    추위를 많이 타던 내게 한 달 간, 그것도 겨울에 순례를 한다는 것에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내 순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시작된 본격적인 순례준비로 우선 심신 단련에 들어갔지요. 도보순례초기에 발에 물집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먼저 오랫동안 신발장에 방치해 둔 등산화를 신고 동네 인근의 산을 다니며 신발과 친밀감을 쌓아 갔습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고 순례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와 함께 혹한기를 대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특수 소재로 만들어 발열기능이 있다는 기능성 내복과 따스한 오리털 침낭도 준비하였습니다.

    순례 준비단에서 사전에 필독서로 정해준 ‘느긋하게 걸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은 이미 ‘조급하게’ 그 책의 저자와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무사 귀환을 위한 강복과 함께 드디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순례의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은 지금 생각해도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합니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아침미사를 통해 하루를 주님께 봉헌하며, 지도 신부님이 준비해 주신 성경말씀을 암송하면서 걸었던 여정은 갑작스런 기상악화와 예기치 못했던 일들로 힘들긴 했지만 매순간 설레임과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온 종일 비가 와서 우의를 입었더니 비가 아닌 우의로 인한 땀으로 온 몸이 흠뻑 젖었던 일, 앞이 안보일 정도로 함박눈이 와서 이정표조차 흰 눈에 묻혀 버렸던, 백설기처럼 하얀 세상 가운데를 순례했던 일, 순례 가운데 맞이했던 크리스마스와 새해, 특히 아기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 구유를 만들던 일, 마니또 게임을 통해 서로가 힘든 가운데에서도 보이지 않게 기도해 주고, 친구가 되어 주었던 일등은 지금도 나를 미소 짓게 합니다.

     

    바쁜 일정 중에 왜 구유를 만들라고 하시는지 지도신부님의 깊은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투덜거리기도 했는데, 막상 모든 순례자들의 힘을 모아 즉시 ‘구유준비 위원회’가 결성되고 번뜩이는 재치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구유 안치식을 하고 마니또를 공개하는데 얼마나 뿌듯한 시간이었는지요. 우둔하기 짝이 없었던 나는 이제서야 그때 왜 그러한 미션을 지도신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의 도보순례 일정 중 신부님은 특별배려로 3박 4일간의 개별순례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지요. 기상이변도 잦았고 무엇보다 일행과 따로 순례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그렇게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결정이 함께 했던 순례자들이 보기에는 좀 걱정이 되었던 듯싶습니다. 내 나름대로는 체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걷는 것도 시원찮아 보이고, 무엇보다 내가 준비해온 일회용 우의가 쏟아지는 장대비를 막기에 역부족으로 보였던지 감사하게도 제노비아님과 도미니코님께서 어떠한 악천후에도 보호막이 되어 줄 우의를 기부해 주셨습니다. 모니카님은 그 탁월한 미적재능으로 순례동안 주님의 보호하심을 기원하는 십자가를 예쁜 조가비에 손수 그려주기도 하였지요. 그밖에 다른 분들은 기도로 함께 하겠다고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야 41,10)는 말씀에 의지하여 떠난 개별순례 일정동안 길을 잃기도 하고 숙소가 닫혀 있는 등, 예기치 못했던 일들로 당황하기도 했었지만 보이지 않는 이끄심에 따라 순례단과 합류하기로 되어있던 레온(Leon)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합류하기로 한날 아침 일찍 만남의 장소인 레온 대성당 광장으로 갔습니다. 마침 순례단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성당 문지기 아저씨께서 웅장한 성당 문을 열고 계셨지요. 이른 아침 아직 잠들어 있는 도심 가운데 드높이 서 있는 성당에 첫 번째 순례자로 발을 들여 놓은 순간 대성당 전체에 흐르는 고요함과 평온함.

    가만히 앉아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야곱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를 향해 걸으면서 지향했던 성가정, 나아갈 방향, 그리고 신앙심까지 기도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3일 만에 만난 순례단은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너무나 반가웠지요. 이후 도보순례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드디어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입성하던 날 예수님이 십자가 위해서 했던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미리 도착해 우리를 환송해 주시던 신부님을 보니 마치 예수님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오 11,28)하시며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아 또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산티아고 순례는 끝났지만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나는 여전히 순례자입니다. 늦었지만 산티아고 순례동안 어린 양떼들을 이끄시느라 노심초사 애쓰셨던 요한신부님, 장발(長髮)머리셨던 다니엘신부님, 외모와 언어 모두 현지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던(?) 안드레아 신부님. 함께 했던 순례객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부족한 성품으로 혹여 불편을 끼쳐 드린 분께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내 자신을 내려놓고 그 길 위에 다시 서고 싶습니다.

    -나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나는 너와 짝말이다. ‘나’자체란 없으며 ‘너’ 혹은 ‘그것’에 닿음으로써만 존재한다

     

    나이가 쉰 둘인데도 소녀처럼 착한 신벨라, 혜옥씨에게는 ‘5학년 2반 소녀’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늘이 실컷 보고 싶어서 산티아고에 왔단다. 툭 터진, 넓은 하늘을 걷는 내내 실컷 보고 싶다고 했다. 하늘은 생명체가 아니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바로 자신의 유일한 조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작은 체구에 조용한 말투. 느릿느릿 걷는 통에 숙소에 항상 꼴찌로 들어왔다. 사진 찍는다고 항상 늦게 숙소에 들어오는 모니카와 나, 그리고 벨라는 우리를 ‘미운오리새끼들’이라고 불렀다.

    눈총은 좀 받았지만 가장 늦게 걸었던 혜옥씨가 누린 풍경은 그 누구보다 풍성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걸으면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많았다. 그 때마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화살표를 놓쳤을 뿐이라고. 찾으면 된다고. 그렇게 찾아 헤매는 동안 만나게 된 길도 아름다웠다. 만나야만 했던, 만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기다렸던 길이었다. 몸도 마음도 서두르는 법이 없었던 나의 까미노 스승. 상대방의 좋은 점을 들추어 칭찬하는 습관도 가지고 있는 사랑스런 사람이었다.(사진 5)

     

    혼타나스에서 보디야로 가는 길. 그 길을 걷는 도중에 가스트로제리츠라는 마을이 있다.

    성 야고보가 사과나무에서 성모 마리아 모습을 보았다는 파울로 코엘료가 유난히 사랑했다는 황토빛 마을이었다. 9,10세기에 이슬람 세력과 전투를 벌였고, 11세기에는 왕들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아홉 개의 교회와 일곱 개의 순례자 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착한 캐리언 데 라스 꼰데스. 정말 물도 없고 그늘도 없는 길이었다.

    마을도 바도 슈퍼도 없이 드넓은 밀밭 사이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졌다. 그렇게 템플라리오스로 향해 걸어갔다.

     

    까미노 동기 얘기를 좀 더 해보자.

    67세이신 도미니코 형제님은 호주머니며 가방에서 끊임없이 먹을 것과 필요한 것들이 나와서 ‘맥가이버 슈퍼마켓’이란 별명을 붙여드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여쭸더니 가게가 보이면 언제든 미리 준비를 해두셨다고 했다. 생활의 노하우가 애들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짱! 인 분이셨다. 까미노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신데다가,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잘 걸으실 수 있구나 싶었다. 건강관리를 잘 하면 그 나이에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길이 바로 산티아고 길이었다.

    이번 여정 전에 40일 동안 국토순례를 했다는 놀라운 아줌마 세 분, 제노비아, 글로리아, 요셉피나 언니들. 지친 기색도 없이 어찌나 잘 걷는지, 숙소에 일착. 씻는 것도 제일 먼저, 잠자리 확보도 제일 빨리? 하는 정말 대단한, 씩씩한 50 중반의 아줌마들이다. 이 세 언니들에게는 ‘울랄라 씨스터즈’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평소에도 빵은 먹어도 밥은 안 먹는다는 ‘거침없이 하이킥’ 언니. 잘 웃는 아네스는 호호 아줌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다녀온 지 한 달도 안되어 산티아고에 온 바오로 아저씨도 너무 잘 걸어서 쎈볼. 이마가 넓은 비안네 아저씨는 뿔뽀(스페인어로 문어라는 뜻).

    63세 뿔뽀 아저씨는 신앙인으로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아무리 걸어도 노란화살표 표시가 없어서 이 길이 맞나, 안 맞나 걱정스럽고 두려운데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길. 그 때 본 노란화살표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날 구원하시려고 늘 함께 계시고, 내가 믿음을 잃지 않으면 내가 길을 잃지 않고 걷고 있으면, 걷는 그 길 중에 날 구원해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겨울 포도밭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포도를 따먹는 내게, ‘그만, 갑시다.’ 라고 외쳐주신 분.

    깡마른 서 신부님은 게쉬타포라고 했다가 눈을 흘기셔서 카리스마롤 별명이 바뀌었다. 에스파니아어를 잘하셔서 모든 소통의 대변인이셨던 안드레아 신부님은 사오정. 아, 그러고 보니 다니엘 신부님과 모니카는 별명이 없네. 자신들에게 그런 별명이 있다는 걸 알기나 했을까.

     

    큰 도시, 엘 부르고 라네로스 EL Burgo Raneros에서도 화살표 때문에 길을 잃지 않았다. 까미노 여정의 절반 정도를 걸어 도착한 곳이었다. 고원에서 내려오는 길. 잘 걷지 못하는 심벨라 언니는 단장님과 수건 끝을 잡고 걸었다. 앞에서 끌어주는 힘 때문에 걷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부르고스를 지나 도착한 만시아 데 라스 무라스 Mansilla de Las Mulas 는 큰 도시였다.

    레온을 앞두고 머무는 사람이 많아서 침대 확보가 꽤 치열하다는데 겨울철이어서 까미노들이 많지 않았다. 숙소에 함께 머무는 외국인들은 10명 내외였다.

     

    자갈길이 계속되었다. 길가에는 짚시들이 살았다는 땅굴집이 많았다. 가게가 없는 마을에는 식사 시간에 맞춰 빵차가 빵을 배달하고 있었다. 빵, 빵, 하고 경적을 울리면 사람들이 빵을 사러 나왔다. 가게 없는 마을이 대부분이었다. 탑차 비슷한 작은 트럭에 온갖 물건을 싣고 마을 어귀에서 열리는 차량슈퍼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생활필수품에서 생선, 과일 등을 팔았다. 값도 저렴해서 싱싱한 과일이나 간식을 살 수 있어 좋았다.

    만시아에서 하룻밤 자고 레온에 들어가기로 한 계획이 변경됐다. 만시아에 있는 숙소들이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겨울순례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차량으로 미리 그곳에 가서 확인을 해본 뒤에서야 알았다. 성수기 때에도 그래야하지만 비수기인 때에는 자원봉사로 이뤄지는 알베르게가 닫혀있는 경우가 많다. 전화번호를 남기고 문이 잠겨있는 경우도 있지만 열릴지 확신할 수도 없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열려도 묵을 수 없으니까 다음 목적지에 있는 알베르게를 반드시 확인하고 길을 떠나는 것은 순례의 기본이었다.

     

    레온 Leon, 까미노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산 마르틴 광장을 지나 물어 물어 찾아간 레온 공립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성당 뒷길에 있었는데 순례자를 위한 최상의 시설이었다. 자전거를 수리하는 순례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난방시설이 잘 되어있어 모처럼 밀린 빨래도 하고 깨끗한 침대 덕에 침낭도 펴지 않았다. 레온에는 130장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운 대성당이 있었다.

     

    가우디가 1891년에 설계한 집과 성당이 있는 도시. 성스러움과 고풍스런 분위기가 흐르는 마요르 광장과 산 마르틴 광장 사이에는 화려한 옛 시청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레온은 까미노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다. 어느 루트를 걷든 간에 순례자들이 꼭 들리는 곳이고, 레온에서 까미노를 시작하는 순례자들도 많았다.

    광장이나 사람 많은 곳에서 맥주와 긴 삐스똘라 빵, 그리고 모르시야를 함께 먹어보자. 꼬시도는 돼지의 머릿살, 귀, 초리소, 살치자 등 여러 재료에다 감자 등의 채소를 넣어 푹 삶은 음식이다. 한국의 보쌈처럼 오랫동안 여러 가지를 삶았다가 내놓으면 소금 등 양념을 쳐서 먹는 음식이다. 질릴 수도 있으나 먹으면 계속 당기는 매력있는 음식이다.

     

    그곳에서 일본 청년, 가쯔이(一志)를 만났다. 알베르게 복도를 걸어오는 동양인이어서 한국에서 오셨나고 물었더니 일본사람이란다. 산티아고 성지 순례를 마치고, 피니스테레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란다. 자유인이로군.

    부엌 식탁에서 가쯔이를 다시 만났다. 산티아고에 대한 한 마디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so nice' 였다. 긴 말이 필요 없는 그 무엇이 내게 전해졌다.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위스를 여행하려고 하는데 버스표가 매진되어서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주겠다 했더니 입가에 빵가루가 묻지 않았느냐며 활짝 웃었다. 저녁으로 먹고 있는 빵이 산티아고에서 사온 것이라고 했다. 조금 먹어보겠느냐고 했는데, 사양한 것이 마음에 좀 걸렸다. 유럽의 많은 순례객들이 이 레온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작하는 사람,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이 만나는 곳이 또한 레온이기도 하다. 아무튼 가쯔이와 헤어지고 객실로 돌아오면서 산티아고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에서 자주 만났던 우루과이 청년, 미쉘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군가 왜 걷느냐는 말에 ‘나는 걸음이 필요하다’ 라고 했던가. 우린 모두 걸음이 필요해서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직립보행의 동물이 아니던가. 걸음에 어떤 의미를 거창하게 두지 않고 그저 걷는 것이 좋은 사람들. 걸으면서 자신에게 충실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기르는 것이 좋은 사람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뭐 그런......

    아무튼 미쉘은 다음 휴가 때에는 레온부터 산티아고까지 걸을 거라고 했다. MP3를 귀에 꽂고 음악을 듣던 잘 생긴 청년. MUNICIPAL이 시립이라는 것, 순례자를 불어로 필리그램이라고 알려준 것도 미쉘이었다. 타인과의 헤어짐도 섭섭했다.

     

    무거운 배낭에 느린 걸음. 부루고스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는 마트랜은 지금 어디쯤 걷고 있을까. 프랑스에서 제약회사에 다닌다는 그녀에게 나는 이해인 수녀의 시노래 ‘사랑한다는 말은’을 불러주었다. 마트랜을 만나기 전까지 혼자서 걷는 동안 계속 불렀던 노래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확인하는 듯 노래가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말로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의 응어리가 술술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슨 용기라 할 것도 없이 처음 본 그녀에게 보자마자 ‘당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겠다’ 하고 불러주었다. 처음 듣는 리듬이었지만 그녀는 내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같이 흥얼거려주었다. 음의 높낮이가 다른 것,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허허벌판을 걷는 두 여자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것 역시 사랑이 아니던가. 짐이 무거웠던 마트렌은 천천히 걷겠다며 조금씩 뒤쳐졌다. 그녀는 휴가 기간 때마다 구간별로 걷고 있었다.

    체격도 큰데다가 배낭의 크기도 어찌나 크던지 많이 걷지 못하고 자주 쉬곤했다. 하지만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얼굴 가득 피어있던 순진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이번 일주일 여정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들녘을 무리지어 나는 새떼를 본 것이라고 , 아주 신비로운 것을 목격한 것처럼 말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순수했다. 도회지의 물질문명 속에서 살면서 사라지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이 그녀의 여행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늦은 오후, 베란다에 걸려있는 빨래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잘 마른 빨래를 걷고 개어 서랍에 넣는 일도 행복한 일이었다.

    산 마르틴San Martin의 한적한 길. 황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갔다. 말로만 들었는데 머리 위로 날고 있는 것이다. 근처 성당 종탑을 살피며 걸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사과 1개, 오렌지 1개, 자두 1개, 포도1송이가 3유로 70주고 트럭슈퍼에서 샀다.

     

    빌라당고스 Villadangos까지 가야할 시간이 빠듯해서 빛이 들어온 성당 안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레온 시내는 아주 복잡했다. 하지만 도심 여기저기 있는 옛 레온 왕국의 건물들이 한 시간 정도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특히 메르까도 광장에 있는 뿌에르따 델 빼르돈(용서의 문)이라고 불리는 성벽의 남쪽 문. 이 문을 통과하면 지금까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는다고 했다.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원하는 것처럼 혹여 내가 누군가를 용서해야할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님, 저의 고독과 두려움을 봉헌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스페인의 영웅 엘시드 장군의 다리를 지나 우체국 가는 길. 가족과 친구들에게 엽서편지를 썼는데 부치지 못하고 가지고 다녔었다.

    퇴근하는 많은 사람들과 차들을 바라보는데,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번잡한 도시의 모습을 보아서였는지 착각을 한 것이었다.

    성당 앞 긴 의자에는 걸인과 다를 바 없는 순례자의 동상이 있었다. 어깨를 걸치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는 내가 왠지 부끄러웠다.

     

    빌라당고스로 가는 길에 ‘앙켈(Angel)’이라는 순례자를 만났다. 영어식 발음으로 엔젤,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까미노였다. 그는 평생 짊어져야할 고독과, 공동체에서 만나게 된 싫은 인연들을 위해 걷는다고 했다. 광주교구의 김신부님도 똑 같은 말을 했었다. 미운 사람을 위해 길을 걷다니. 등짐이 많아 힘드는 것보다,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신의 고독이 더 힘든 것. 미운 사람에 대한 내면의 짐이 더 힘든 것이었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할 때,

    그 탓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믿으면 영원히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원인이 내게 있다고 마음 먹으면 영원히 거기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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