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신정민(시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하늘이 눈이 되어 내린다. 종소리도 눈이 되어 내리고, 바람도 눈이 되어 내린다.

    눈이 오늘의 축복이다. 오늘 나의 화살표는 눈 위에 찍힌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이다.

    오르테가의 겨울 숲  


    오르테가가 하얗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여행기 중에서 겨울의 풍경은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그 첫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숫눈!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걷는 느낌, 마치 선택 받은 듯한 느낌은 눈보라보다 강했다. 감사했다. 오래 전엔 이곳에 산적이 많았다고 하는데 겨울엔 추워서 지나가는 순례자를 기다리는 강도가 있었을까 싶다. 그보다는 아예 겨울에는 순례객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화살표 같은 표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길을 잃기 십상이었을 테니 말이다. 요즘은 방한복이나 비상식량 등 겨울장비들이 좋아서 험한 겨울을 그나마 걸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옛날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강도가 있다고 현재형을 써야하나. 누가 이 깊은 곳까지 와서 그런 짓을 할까. 지금이사 순례객들이 많아서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울창한 숲 속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적막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가난한 자에게서도 빼앗을 것은 있다하였으니 가진 것이 뻔한 순례자들에게서도 빼앗을 것이 있었나보다. 흰 눈을 모포처럼 둘러쓴 나무들의 세계. 그 사이로 산길이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짧은 현세 살면서 천상 것에 맛들게 하시고 영원한 것에 뜻을 두게 하소서.’ 아침 미사 때 들려주신 신부님 말씀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부르고스까지 가는 길은 줄곧 내리막길이었다. 산길이 그렇듯 인생길도 오르는 일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조심스러웠다.

     

    까미노의 아침은 천 년의 새벽을 지나온다.

    그 새벽안개 속에서 양떼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길은 온통 양들의 똥이었다. 체했을 때 먹는 환약처럼 생겨, 어쩜 저렇게 동글동글할까 웃음이 나왔다. 좀처럼 걷히지 않는 안개 속을 걸어 Burgos로 가는 길. 그 길을 한 참 걷다보니 세계 3대 선사유적지가 있는 아따뿌에르까 Atapuerca 마을에 닿았다. 넓은 평원에 있는 작은 마을이 천년 동안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 신기했다. 인류의 시원, 호모 사피엔스가 지평선을 넘어오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저 들녘 어딘가에 방금 꺼진 원시인의 모닥불 흔적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이 넓은 평원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가던 벌거숭이 인간들이 있었다는 역사. 그 속으로 돌연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그들처럼 최소한의 식량을 위한 사냥 외에는 근심이나 걱정 따위 없는 자유로움을 누리고 싶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집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차들이 다니는 길가에는 까페 정도였다. 까페에 들러 크리덴시알에 도장을 찍고, 따듯한 우유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선사유적지 가까이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는 당시를 재현해놓은 장식품들이 독특했다. 사냥하는 모습과 같이 자연을 그려놓은 입 좁은 항아리들. 알타미라 벽화에 나오는 동물들이 그려진 장신구들도 이곳이 바로 인류가 시작된 곳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듯 다가왔다. 입장료가 5유로였던 근처의 박물관은 문이 닫혀있어 둘러볼 수 없었다. 언제 다시 와 보겠는가. 아쉬웠다.

     

    부르고스에서 혼타나스 가는 길은 그늘이 없었다. 여름이었다면 최악의 코스. 지루한 평원이 계속 되었다. 갈래 길 하나 없는 길이 계속되었다. 길 옆으로는 해바라기 씨앗을 기다리는 들녘. 옥수수 파종을 기다리는 들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풍경 속에서 나만이 걷고 있었다. 새들도 없었다. 앉을 곳이 없는 새들은 지금 어느 곳, 어느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고 있을까.

     

    수많은 비행운들이 하늘에 그어져 있다. 하늘에도 길이 있구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며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길은 달라질 것이다.

    사람 다니는 곳에 길이 생기 듯 비어있는 마음에 길을 내는 사람도 바로 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선택하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건강한 삶을 걷고 싶었다. 그 길이 바로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닮았으리라.

    지난 밤, 별이나 볼까하고 숙소에서 혼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내 눈 앞까지 내려와 꿈틀거리던 커다란 짐승. 혹시 저 비행운 구름이 내려온 것 아니었을까.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려는 나를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릴 것 같은 검붉은 어둠에 어찌나 놀랐던지. 그 무서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늘을 바라보며 내내 생각하며 걸었다.

     

    울랄라 시스터즈, 맏언니 제노비아가 탈이 났다. 오른쪽 종아리가 왼쪽의 두 배가 될 정도로 부어올랐다. 근육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을 걸을 때 바지 뒤쪽에 흙탕물이 유독 많이 묻었던 이유였다. 동행들이 알게 되면 차량이동이라든가 진행에 차질이 생길까봐 진통제까지 몰래 먹으면서 걸었다고 한다. 병원에 다녀왔는데, 말이 잘 통하질 않아서 응급처치만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늦게 진료를 했던 의사가 우리가 묵고 있는 알베르게에 찾아왔다. 숙소에는 에스파니어를 잘 하는 분이 계셨기 때문에 왜 왔는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환자가 무리를 할까봐 다음 목적지의 병원에 연락을 해주겠다는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길 위에서 헤르메스를 만나다

    눈이 지우는 풍경. 캐리언Carrion de los Condes을 지날 때였다. 

    눈 속의 까미노, 명화씨

    혼자였다. 일행과 함께 걸을 때도 있었지만 혼자 걷게 될 때가 더 많았다. 혼자라는 생각을 했던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걷기만 하였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고개를 들어보니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내 앞에 떡, 버티고 섰다. 언제 온 걸까. 앞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멀리서 가끔 개가 짖어대는 소리는 들었지만 개의 습격?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길을 걷는 동안 만났던 개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멀뚱히 바라보거나 한가하게 잠을 자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덩치만 컸지 순했다. 양 목장을 지날 때 만난 송아지만한 개들도 이방인을 향해 짖지 않았다. 주인에게 복종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를 본 척도 안하는 녀석들에게 ‘착하네’ 말도 걸고 그랬는데 아뿔싸. 이 개는 내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지팡이를 움직이면 공격하는 줄 알까 봐 지팡이를 잡지 않은 손으로 방한 마스크만 슬그머니 벗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는 개의 입에서 입김이 하얗게 빠져나왔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물릴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죽을 수 있겠구나’ 그렇게 숨도 못 쉬고, 꼼짝 없이 버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짧았던 시간도 두려움 때문에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눈을 마주볼 용기가 어디서 생겼는지 개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로 바라보았다.

    ‘난 너를 해치지 않아, 그냥 지나갈게. 나는 지나가는 까미노란다. 그래 착하지.’ 속으로 얼마나 중얼거렸던지....... 덩치 큰 검은 개가 천천히 언덕 쪽으로 걸어갈 때에도 나는 그 자리에 한 참 서있었다. 가던 개가 뒤돌아 나를 한 번 더 바라보고 다시 슬금슬금 걸어갔다.

    날개 달린 모자와 신을 신고 있진 않았지만, 뱀이 감긴 단장을 짚진 않았지만 나는 그 개가 헤르메스로 보였다. ‘건너서 넘어감’을 관장하는 신령. 여행자와 목동과 심지어 도둑을 주관하는 신. 신들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전령으로 개가 내 앞에 나타났던 건 아닐까. 개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도 잠시 멈춰 섰다. 내가 멈추어 서 있자 풍경들이 먼저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거기 한참을 더 서있었다.

    눈

    모든 움직임에는 어떤 종류든 건너감이 있다. 나의 산티아고 길도 내가 무엇인가를 건너서 넘어가고 있음을, 검은 개, 아니 헤르메스가 내게 전하려는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엇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라고 나타났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눈보라가 하루 종일 불었다

    사라진 예수의 무덤에 남아있는 아마포

    지상은 미사 중이었고, 나는 혼자서 걷고 있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갈림길이 나올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바람이 불고 있으니

    곧 베드로가 달려올 것이다

    어제 온종일 걸어 올라온 산

    올라왔으니 내려간다

    다리를 절며 걷던 마드리드의 청년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길, 언덕배미 밑에 오줌을 눈지도 한참이 지났다

    지칠 줄 모르는 설경 발끝 보며 걷는데

    검은 개 한 마리

    짖어대는 소리 멀리 두고 내 앞에 서 있다

    붉은 잇몸 끝 날카로운 송곳니

    개는 물기만 하면 되었고

    나는 죽기만 하면 되었다

    성난 개의 입김은 눈 내린 들녘을 지우고

    눈보라 멈춘 언덕 위에는

    예수의 얼굴을 쌌던 수건,

    작은 농가 한 채 개켜져 있다

    나는 아직도 거기

    내리지도 않는 눈을 하염없이 맞고 서있다

     

    캐리온 숙소의 새벽. 미쉘이 2층 침대에서 떨어졌다. 피곤한 몸 뒤척이다 생긴 일이었다. 그 날밤 뿔뽀(‘낙지’라는 스페인어. 대머리여서 붙여진 별명) 아저씨도 침대에서 떨어졌다.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올모스Olmos de Atapuerca의 알베르게에 들어서니 장작불이 지펴져있는 벽난로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헤밍웨이를 닮은 숙소 주인 62세 ‘롤랜드’ 영감이 추위에 언 순례자들에게 따끈하게 데운 레드와인을 건넸다. 얼었던 몸이 금새 후르르 풀렸다. 잉크가 떨어졌다면서 순례자 증명서에 네모를 그린 다음 그 안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그렇구나.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직접 그려준 간단한, 단순한 것이 오히려 더 신선했다. 하나 뿐인 도장이 모두의 가슴에 찍혔다.

    그날 저녁 산책길에서 벨라가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며 성체 같다고 했다. 밤하늘의 성체라.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함께 받아 모시는 성체였다.

     
    장작 타는 벽난로의 연기 때문에 쿨룩거리긴 했지만, 롤랜드 영감님의 웃음이 집안에 가득해서 견딜만 했다. 숙소에는 주로 2층 침대가 많은데 다들 힘드니까 2층보다 1층 침대를 원한다. 그러나 이곳의 좁은 방, 2층 침대 옆 창문 밖으로 보이는, 눈 내린 마을의 붉은 지붕들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수고 대신에 얻은 전망은 누구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출출한 저녁에 먹는 라면의 행복. 설익은 밥 한공기와 구운 김, 그리고 김치 서너 조각이 저녁 만찬의 전부였다. 세수만 겨우 끝내고 침대에 들어간 그날 밤도 코고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갓 배운 휘파람 소리부터 엔진 불량차 시동 거는 소리까지. 귀마개를 쓰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동고동락이란 말이 있거늘.

    -화는 모든 불행의 원인.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아기다.

     

    저만큼 앞서 걷던 명화씨가 걷다말고 길 위에 드러누웠다.

    지쳐서 쓰러진 줄 알고 남은 힘을 다해 뛰었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운전자와 함께 있던 사람도 순례자가 걷다가 힘들어서 쓰러진 줄 알고 차에서 내려 황급히 달려온 것이다. 눈 내리는 하늘이 좋아서, 눕고 싶었다고 했다. 달려온 현지인들이 다행이라며 돌아갔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키도 했던 해프닝.

    그들이 떠나고 나서 명화씨와 나는 다시 하늘을 향해 누웠다. 하늘이 마음을 비우는구나, 마음 비우는 일이 이렇듯 가볍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

    지나온 길에서 보았던 하늘과 들녘이 그리고 수많은 길들이 비어있었다. 이제 남은 건 내 마음을 비우는 일. 부르고스를 향해 걷는 동안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겨울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 어제는 눈과 바람으로 우릴 축복하셨네,

    오늘은 어떤 축복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부르고스는 11세기 때 레온 왕국의 수도였다. 1492년 그라나다 함락 후 바야돌리드로 수도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 지방의 중심 도시다. 스페인 제 3의 카테드랄이 있는 곳. 고딕양식으로 통일된 성당 내부에는 수많은 걸작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었다. 마치 성당이 미술관처럼 느껴졌다.

     

    나의 까미노 예수님. 30대 초반의 새댁, 레미지오가 동행들에게 별명을 붙였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고 사진도 많이 찍는다고 날 더러 넘버원이란다. 그래서 자기는 넘버 투를 해야겠다나. 레미지오는 산티아고에 온 이유가 요셉 성인이 불러서, 라고 했다.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고통 받고 수고하는 자의 수호성인이시다. 레미지오는 순례가 끝나는 마지막 날, 미사 때 왜 주님께서 산티아고 가는 길에 자신을 부르셨는지 답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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