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 ▶ 까미노에서 만난 나의 스승들

  • 까미노에서 만난 나의 스승들


     


    신정민(시인)



    붉은 여명의 환송
    을 받고 출발. 하늘이 꾸물꾸물했다. 변덕스런 날씨. 한 방울씩 내리던 비가 금방 거세어졌다. 이내 그쳤다 쏟아지길 반복했다. 3키로를 걸은 뒤 이라체 Irache 수도원 벽에 달려 있는 수도꼭지를 보았다. 물과 포도주가 무료로 제공된다는 곳. 물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와인꼭지를 틀어 붉은 포도주 맛을 보았다.(무료라고 많이 마시면 취해서 걷기 힘듬). 인적 없는 시골길을 마냥 걸었다. 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파는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아스퀘타Azqueta를 지나 로스 아르고스Los Arcos를 향해 꿈틀거리는 평지를 끝없이 걸었다. 농한기인 스페인 들녘은 텅 비어 있었다.




    은 질퍽거리고, 신발과 스팻츠는 진흙 범벅이고, 입었다 벗었다 하는 비옷 속에서 몸은 젖을대로 다 젖었다. 그러나 텅 빈 들녘이 우리에게 내어준 길이 있었다. 불편한 모든 것을 불식시켜버린 풍경. 길이 펼쳐놓은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방금 정리된 듯한 넓고, 검붉은 황토 구릉들. 6월이면 수확될 밀의 씨앗들이 꿈틀거리는 곳. 연두빛 구릉들이 카펫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초여름의 밀밭이 보이는 듯 했다. 그렇게 오르막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리 휘고, 저리 돌며 이어지는 평원 위의 길.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갔다. 길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고, 바람은 우릴 이리저리 시험해보는 눈치였다. 그렇게 길을 걷는데 추수 끝난 포도밭이 나온다. 시든 포도알이 드문드문 달려 있다. 아이스 와인을 만드는 종류였다. 단맛만 남은 씨앗. 기계가 미처 수확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순례객을 위해 포도밭 주인이 남겨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나무에 남겨둔 까치밥처럼 말이다. 달콤한 포도알이 힘이 되었다. 나눠먹은 귤 한 개, 사과 한 쪽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든 ‘순례자의 힘’이 되어주길 바라며 나누었다. 천국과 지옥의 사람들은 구부릴 수 없는 팔을 가졌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천국의 손, 제 입으로만 먹을 것을 넣으려고 하는 지옥의 손 얘기가 있다. 나눔이 천국이었다.

     

    멀리 소읍의 종탑이 보인 뒤로 4Km를 더 걸었다. 마을 간의 거리가 4-5Km정도 되는 듯 했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멀리 간다더니, 홀로 길을 걷는 순례자의 외로움을 아는 듯 그렇게 종소리가 함께 걸어주었다. 듣는다는 것. 귀를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두어야 들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넓은 벌판에 부는 비바람 소리를 나는 들었던가. 길 위에서 나는 어떤 음성을 듣게 될 것인가. 로스 아르고스를 떠날 때 오래된 건물 벽에서 녹슨 ∞ 모양의 고리를 보았다. 떠나기 전 보았던 2008 부산비엔날레의 한 전시실이 생각났다. 작은 나사못 세 개. +나사와 ―나사, 그리고 ∞ 문양의 나사. 뫼비우스의 띠. 영원한 길. 끝나지 않는 길 위에 나는 서 있었다.



     

    내가 나에게 보낸 엽서. 'Change & Stop'.

    팜플로나 Pamplona 처럼 엔시에로 축제가 있는 비아나Viana에서 엽서를 샀다. 이번 순례를 통해 내가 변해야 할 것과 멈춰야할 것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을 때 받게 될 엽서. 이 길이 내게 준 의미들을 적어보리라. 하나, 둘, 셋, 숫자만 써서 노란 우체통에 넣었다. 길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스승이라 믿었다. 침묵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리라.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보다 걷는 동안 주고받은 소소한 얘기들 속에서 그것들이 분명해지길거라 믿었다. 그에 대한 감사로 작은 희생 하나를 이 길에 봉헌해보기로 했다. 넓은 밀밭과 포도밭에서 생산된,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맥주맛과 와인 맛을 보는 순례 중의 작은 기쁨을 바치기로 했다.

     

    비아나의 산또 세뿔끄로 성당을 지났다. 성당 탑 꼭대기에 수많은 등을 달아 까미노의 등대역할을 했다는 유명한 성당이다. 고딕양식 성당에 바로크 양식의 지붕을 얹은 독특한 산따 마리아 성당도 볼 수 있었다. 끝없는 소나무 숲이 장관이던 리오하Lioha. 나무가 밀집해있어서 햇빛이 들지 못한 곳의 나뭇잎들이 누렇게 떠있었다. 한낮에도 캄캄한 숲을 보면서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있어야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묵상을 하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더 큰 법. 악연은 ‘내가 널 좋아하니까 너도 날 좋아해야 한다’는 식의 사랑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

                                              -인간의 가슴은 돌과 같아서

                                              다른 돌에 의해서만 깨질 수 있다.

                                              나에 대한 그의 미움은 끝이 날카로운 돌

                                              내가 느낀 고통은

                                              내 안의 모서리가 깨지는 것

     

    리오하는 드넓은 채소농장과 과수원이 많다. 헌데 보이는 건 그저 비어있는 겨울평원뿐.

    풍경의 반이 하늘이었다. 싱싱한 채소들과 열매들을 보진 못했지만 비어있음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바퀴살이 한 군데로 모여 바퀴통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수레의 쓸모가 생겨나고,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그릇의 쓸모가 생겨나고,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방의 쓸모가 생겨난다.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이란 노자의 말씀이 생각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생산지이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운 양고기 요리. 파프리카와 함께 가공된 햄이 유명한 곳. 날씨가 수상하다 싶었는데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리며 걷다보니 갈림길에서 화살표를 놓쳤다. 뒤에 오고 있을 순례자를 기다리며, 근처 무덤 담에 기대어 점심을 먹었다. 빵을 들고 있는 손끝이 시렸다. 입김을 불어가며 먹는 차가운 식사도 감사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마을 가까이에 있는 묘지들. 우리는 사람 사는 먼 곳에 묘지를 두려고 하는데, 그들은 삶의 중심에 죽음이 있다는 듯, 햇볕과 바람 잘 드는, 가장 좋은 곳에 교회와 묘지를 두었다. 우리에게 죽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라고 했던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이 정말 은총일까. 그 후로 나바르떼까지 십 키로가 넘는 길을 눈보라와 함께 걸었다. 바람에 날리는 수많은 눈송이들이 대지 어딘가에 있을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순례자에겐 발이 왕
    이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나면 쉬어주는 게 좋다. 양말을 벗어서 바람도 쐬고, 바세린을 발라서 마찰이 심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집은 2도 화상이니까.

    쉬는 시간이면 양말을 자주 벗었던 바오로씨가 로그로노Logrono의 한 레스토랑에서 놀부마누라를 만났다. 깔끔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까페 콘 레체(커피와 우유를 섞은 음료)를 시켜놓고 식탁의자에 앉으려는데 여자점원이 지팡이를 밖에 두고 바에 앉으라고 했다. 기분이 슬 나빴지만 할 수 없이 Bar 쪽에 앉아 신발을 벗으려는데 기겁을 하면서 벗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화가 나서 마시지도 않은 음료 값을 내고 나왔다면서 ‘그놈의 놀부 마누라,.....’ 하고 속상해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땀을 흘리고, 잘 씻지 못하는 순례자들에게서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가게 주인의 반응이 그럴 만 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매일 낮 12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있다. 높은 천정에 매달린 분향기구, 보타 후메이로가 이동하면서 순례자 모두에게 분향하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대단한 감동을 준다고 한다. 그것이 실은 순례자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면적은 한국의 5배. 17개 지방이 있다. 지방헌법이 분리된 국가. 경제적인 부분만 통일되고, 나머지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바스크 지방과 까딸로니아 두 지방이 독립을 원하고 있지만, 이 두 지방은 경제, 관광이 큰 곳이어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예술, 문화, 역사, 기후, 지중해 등 풍성한 자연의 보고인 스페인은 북유럽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세상의 온갖 여행을 다 다닌 사람도 한 번 더 가고 싶은 나라를 꼽으라면 스페인을 추천한다고 한다. 길을 걸으면서 본 초라한 창문을 가진 집들. 강렬한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용 셔터가 내려와 있다. 그러나 열려 있는 창문이 가끔 있어 슬쩍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정갈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다. 집의 겉모습은 낡고 초라하고 볼품없는데 생활공간은 잠시 들러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나헤라Najera와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de la Calzada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는 곳이다. 사냥꾼에게 쫓기던 비둘기가 비밀동굴로 사라지자 동굴에 들어선 사냥꾼이 오일램프로 비춰본 곳에 성녀의 조각상이 있었다는 나헤라. 순례자를 성스러운 곳으로 인도해준다는 믿음에서일까, 많은 까미노 루트가 있지만 나헤라는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러가는 곳이다. 멀리 돌아서 간다 해도 전설과 훌륭한 회랑이 많은 나헤라는 ‘우회’에 대해 생각하며 걸을 수 있는 곳이었다. 지름길만을 택해 걷다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는 것.

    에스테야에서 약 100Km 떨어진 산토 도밍고는 순례를 위해 돌길과 숙박시설, 구호시설 등을 맨 처음 세운 ‘산토 도밍고’를 기념하는 마을이었다. 스페인의 마을 이름들은 그 지역의 성인이나 모범이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산토 도밍고의 사후에 그를 존경하는 마을 사람들이 예배당을 지었는데 그 성당이 칼사다 대성당의 시초였다. 도착했을 때 짐을 풀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산 살바도르 대성당이었다. 성전에 살아있는 암탉과 수탉 두 마리가 있다 해서 우리는 그 성당을 ‘닭 두 마리 성당’이라고 불렀다.

    이 대성당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순례 중에 있던 한 청년이 이 마을에서 살인누명을 쓰게 된 일이 있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청년의 가족이 재심을 요구하자, 재판관이 식탁을 가리키며 ‘저 닭고기가 울면 생각해보겠다’ 고 말하는 순간 닭이 일어나 울어 무죄가 되었다는 전설이었다. 믿음이 산을 옮기고, 바다를 옮기고, 죽은 생명을 살린다는 이야기. 여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도 야고보가 행한 최고의 기적이었다. 그 전설이 내려온 지 올해로 900년이 되었다. 거리는 온통 900주년 기념행사 준비 중이었다. 가문을 상징하는 휘장들이 골목마다 걸려있었다. 성탄 시즌이어서 집들 베란다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산타인형들이 익살스러웠다. 모두들 원하는 선물을 받게 되길. 스페인은 트리장식보다는 구유장식이 더 보편화되어 있었다.

     

    독일에서 온 스무 살 청년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집에서 산티아고까지 2400 키로 인데 샌들 하나 신고 집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걸어서 다시 집까지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왔다고. 무모한 저 생각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집 나온 지 5개월 되었다는 청년이 들려준 말은, ‘가지지 않은 것이 그렇게 행복한 것인 줄 몰랐다’. ‘걷는 동안 사람들에게서 받은 작은 도움들이 가장 큰 힘이었다’ 고 한다.

    자신이 받은 것을,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을 때의 행복이 지금껏 알지 못했던 큰 선물이라는 청년의 말을 되새겨봤다. 나도 입는 것, 먹는 것,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욕심이나 후회처럼 내면의 것들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가지고도 얼마나 행복했는가. 가진 것이 많은데도 모으고만 싶은 가난한 마음, 부족하지만 나누려는 부자마음. 나는 어느 쪽일까.

    -내가 가난한 것은 부자와 비교했기 때문이다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의 한 휴식처에서 순례자가 손짓을 한다. 점심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온 서른여덟, 이혼 후 혼자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바찌. 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를 위해 산티아고 성당에 간다고 했다. 돼지 순대 말린 ‘쌀라미’ 와 돼지훈제 하몬, 그리고 구멍 숭숭 뚫린 치즈, 토마토 즙과 올리브 오일을 듬뿍 바른 빵을 와인과 함께 건네주었다. 길 위의 식사가 낯선 까미노의 친절 때문에 풍성해졌다. 그의 지팡이에는 어린 딸이 달아주었다는 초록 개구리 인형이 있었다. 그는 혼자 걷고 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짧은 영어와 바디 랭귀지로 얘기를 나눴다. 소통이 언어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었다.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는 동안에 두 명의 순례자가 지나다가 합석했다. 다리가 불편한 여자 친구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오는 까미노의 모습. 접시만한 바게뜨 빵, 반 정도 먹은 빵을 가슴에 품고 오는 모습에 한바탕 웃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처럼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동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음 본 사람이 마치 오래 된 친구가 되는 길. 얘길 나누다보니 그들은 각자 걷다가 만난 사이였다.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 손 잡아주는 이가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남편의 손을 잡고 걸었던 대구 신천 도보행이 생각났다.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