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 ▶ 스페인의 12월은 붉은 올리브가 익어가는 때
  •  스페인의 12월은 붉은 올리브가 익어가는 때






    신정민(시인)


     

    스페인의 북동쪽, 까딸루냐 지방에서의 첫 알베르게(Alberge, 순례자를 위한 숙소)로 가는 길. 벌판에 뒹구는 감자알만한 돌멩이들. 처음엔 심기 위해 미리 던져둔 씨감자인줄 알았다.  피레네 산맥에 내리는 눈 때문에 사라고사 지방은 늘 쌀쌀한 기후라고 했다. 끝없이 펼쳐진 자갈밭. 기온차가 심한 날씨 때문에 사과와 배가 맛있기로 유명하고, 특히 세계 최초로 성모님이 발현했다는 이 사라고사 지방을 지나 에스테야 Estella에 도착했다.

    에스테야는 ‘별’이란 뜻이다. 11세기 초 별빛에 의해 성모상을 발견했다는 양치기들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으로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들이 묵는 중요한 숙박지이다. 대부분 폐허가 되었지만 작은 도시에 남아있는 9개의 성당과 수도원이 ‘북쪽의 톨레도’ 라 불리던 과거 번영의 시대를 오늘날에도 경험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에스테야다.

     

    에스테야의 버스정류장에서 마드리드에서 온 호세와 파리에서 온 파스칼을 만났다. 커다란 배낭과 진흙투성이 바지만 보고도 그들이 순례자란 걸 알 수 있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마치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친구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모습도 곧 저렇게 되겠구나 싶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길을 떠나는 그들에게 ‘부엔 까미노!’ 하고 소리쳐 주었다. 부엔 까미노는 ‘좋은 순례길 되세요’란 뜻이다. 뒤돌아보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준 호세와 파스칼을 보니 우리가 마치 하나라는 벅찬 느낌이 들었다. 멀리 산 미구엘 성당이 보이는 에스테야의 첫 숙소에 들어섰다.

     

                                                    < 에스테야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순례자 호세>



    첫 알베르게는 첫 사랑처럼 기억되지 않을까 .

    알베르게는 공립과 시립이 있다. 숙박비용은 4유로에서 9유로 안팎. 까미노 여정을 마음 껏 느긋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숙소문제다. 성수기에는 하루에 600명 이상의 순례객이 있어서 자칫 늦으면 숙소가 차서 곤란을 겪게 된다. 큰 도시는 알베르게가 많지만 작은 마을에는 두어곳 정도. 게다가 비수기에는 순례객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연락처만 남겨놓은 곳이 많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운영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있다. 그래서 미리 머물 곳의 알베르게 정보를 챙겨서 움직여야 한다. 거리에는 알베르게를 안내하는 표지들이 있어 숙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외에도 숙식이 가능한 곳이 ‘까사 루랄 CASA RURAL' 즉 민박이 있는데 스페인의 가정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좋다. 하루 저녁 자고, 다음날 간단한 아침식사까지 35유로 정도다.

     

    19세기에 지어진 벽돌집들이 좁은 골목을 끼고 휘어지는 곳에 우리의 첫 숙소가 있었다. 고풍스런 나무대문과 크고 작은 창문들. 교통 수단이었던 말의 고삐인 손잡이처럼 생긴 고리들이 오래된 벽 여기저기 박혀있었다. 건물 벽 한쪽에는 노란 부챗살 모양의 까미노 상징 타일이 붙어 있다. 부챗살 모양의 이 표시는 세계 각지에서 빛의 고향, 산티아고로 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숙소 옆 2층 건물의 창문이 열리면서 한 노파가 고개를 내밀었다.

    ‘올라!’(Hola! 안녕하세요).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중후한 노신사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현관에 놓인 책상에서 우리는 순례자증명서, 크레덴시알(Credential)을 발급 받았다. 그리고 그 증명서에 에스테야 지역을 상징하는 첫 도장을 찍었다. 이 확인 도장은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온 도시와 그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완보증명서를 받을 때 얼만큼 걸었는지의 여정을 확인해주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 도장은 숙소 뿐 아니라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의 Bar나 관공서 등에도 준비가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쳤다는 표시로 찍어두면 좋은데,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이 도장이 예쁘다는 소개가 되어있는 마을도 있어 일부러 그곳을 들러보는 경우도 많다. ‘Sello' 는 도장이란 뜻인데 이 표시가 붙어있는 곳이면 어디서고 찍을 수 있다.


                                            <에스테야의 첫 알베르게>

    집안 곳곳에는 순례객을 상징하는 지팡이와 조롱박, 가리비 껍질이 장식되어 있었다. 부엌집기가 많지 않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주방과 화장실도 있었다. 작동이 될까 싶은 낡은 컴퓨터도 있고, 음료자판기도 있었다. 무엇보다 도미토리식 침대방이 신기했다. 삐걱거리는 2층 나무침대와 낡은 담요들. 한 방에서 모두들 함께 자야한다는 것. 많은 얘기가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오래 전에 이 길을 걸어간 순례자 기념상도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세계 각지에서 다녀간 순례객들이 써놓은 방명록 노트였다. 현관문 옆에 펼쳐져 있는 이 노트에서 한국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9월11일 아침. 6시40분. 자, 일어나 가자!- 라고 씌어 있다. 누군가 여길 다녀갔구나. 먼저 이 길을 걸어간 그는 누구일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침실에 배낭을 놓고 내려와 보니 부지런한 일행들도 한 마디씩 써두었다.  

    “이 순례를 위해 제 영혼이 가볍고 부드러워지게 하소서” 바오로 형제님이었다. 나도 한 마디 적으려는데 마음이 숙연해졌다. 낯선 곳에 와 있는 나 자신과 두고온 가족들이 떠올랐다. 여행에 ‘왜’는 없다. 세상이 나를 초대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세상이 내게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돌아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썼다. ‘여기 왜 왔는지 그만 묻자.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자.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너무 소홀했습니다. 나를 버리고 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처음으로 짐을 풀고 씻는데 샤워물이 미지근했다. 몇 사람 씻지 않았는데 탱크에 있던 더운물이 금방 동이 난 것이다. 당연히 따듯할 것이라 생각했던 물. 늦게 씻은 사람은 찬물세례를 받았다. 좁은 샤워실도 세 개 뿐이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근처에 있을 식당을 찾아갔다. 7시가 다 된 시간이었고, 피곤을 씻은 뒤에 찾아온 배고픔도 설레었는데 찾아간 식당의 종업원이 저녁 식사 시간이 8시 부터라고 음식주문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8시가 되어야 주문을 받는다는 것. 식당 안에서 기다리면 될텐데 그것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할 수 없이 식사가 되는 식당을 찾았는데 중국식 식당이었다. 10유로나 주고 먹게 된 저녁. 그런데 음식이 너무 짰다. 서빙하는 점원을 불러 주방장에게 음식을 싱겁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스페인 음식들이 대부분 짜다. 소금이 귀했던 시절에 부자들만 먹었다는 소금이 서민들에게까지 부의 상징으로 전해져 음식이 짜졌다는 것이다. 아주 유명한 한 스페인 식당의 음식은 너무나 짜서 한국사람들은 입에 대지도 못할 정도라고 했다.

     

                                                      <순례자를 상징하는 지팡이와 가리비, 그리고 노란 화살표>

    모든 알베르게에는 기본 규칙이 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소등. 우리 일행처럼 겨울에 일찍 길을 떠나려면 손전등 아래서 짐을 챙겨야 한다. 잠든 까미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지켜야할 에티켓은 기본. 아무리 피곤해도 낯선 곳에서 잠이 쉽게 올 리가 없었다. 새벽 3시 반. 잠을 청할 수록 생각이 멀뚱해졌다. 내 몸은 8시간 뒤의 한국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순례의 첫 걸음을 걷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폭설로 걷지 못한 생장 피드포르에서의 출발, 피레네 산맥에 대한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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