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 ▶ 가우디의 평생 소원은 가족을 갖는 것

  • 신정민 산티아고를 걷다 




    신정민(시인)




    가우디의 평생 소원은 가족을 갖는 것


    바르셀로나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람블라스 거리.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품 중에 ‘똥 싸는 인형’이 눈에 띄었다. 바르셀로나에만 있다는 크리스마스 인형. 중세 가톨릭의 부정부패를 한 농부가 똥 싸는 것으로 풍자한 것이 유래가 되어 최근에는 화제의 인물들이 그릇된 행동을 할 때 그 인물을 대신하기도 한단다. 사람 크기의 똥 싸는 인형이 기념촬영용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구멍이 뚫려 있는 얼굴 부분에 얼굴을 대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모양새가 그래서 웃어댔지만 부끄러운 과거를, 역사를 감추지 않고 드러낸 것에 대해 생각할 게 많은 일이었다.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성 가족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은 공사 중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짓기 시작한 이 성당은 처음엔 지금처럼 큰 규모가 아니었다.
    1935년 스페인 내전으로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공사가 재개되었는데 가우디의 예술과 박애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규모가 늘게 되었다. 철저히 성금으로만 짓기 때문에 1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성되지 않아 공사가 한창 중이었다.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라는데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궁금했다. 설계도도 없고, 제자도 없고, 강의도 없이 성당을 짓던 가우디의 평생소원은 가족을 갖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의 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성당 맞은편.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창문 밖으로 빨래가 널려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며 마르고 있는 빨래를 보는데 갑자기 집이 생각났다. 가족들이 생각났다. 가족의 옷을 빨아서 빨랫줄에 널고, 햇볕에 고실고실 마르면 걷어 개켜서 서랍에 넣는 것. 내가 늘 하는 일이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살림은 살리다, 의 명사라고 했던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가끔 투덜거렸었다. 가족을 살리는 일을 하는 거였는데 말이다.
    카메라의 줌렌즈로 아무리 잡아당겨도 잘 잡히지 않는 성당 탑 끝의 구멍은 나눌 줄 모르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상징한다. 높은 기둥 위에는 사계절의 과일들이 풍성하게 조각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가우디가 주는 선물이었다.
    베풀지 않는 것이 죄, 란 말이 있다. 지갑을 잃어버려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필요했던 사람에게 돈을 기꺼이 준 사람은 반신불수의 걸인이었다고 하는 일화가 생각났다.
    가우디의 또 하나의 걸작품은 구엘공원이었다. 구엘은 스페인의 거부(巨富)로 세계 만국 박람회에서 가우디가 출품한 책장을 본 후, 가우디의 예술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구엘공원은 부자들을 위한 60여 채의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결국 한 채도 짓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깨진 타일 조각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천정이며 외벽들이 아름다웠다. 물 흐르듯 굽이치는 벽면들. 휘어진 창문들. 기울어진 기둥들. 아름답다는 말, 말고 또 다른 말이 뭐 없을까.                                  
    하느님께서는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히브리 격언이 있다. 단단한 곡식은 부서져야 빵이 되고, 포도주도 향수도 잘게 부서짐을 통하여 만들어진다. 단단하고 질긴 음식도 우리의 입 안에서 고르고 잘게 부서져야 소화되어 영양분이 되듯, 사람도 원숙한 인격을 갖추려면 반드시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부서짐의 사이즈가 성숙의 사이즈라는 말을 구엘공원의 부서진 타일조각들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야외로 스케치를 나와 있었다. 미술교실이 된 구엘공원. 그 아이들의 스승은 햇빛이었다.
    가우디의 작품들은 자연을 닮아 있다. 세상에 자연적인 것 치고 직선적인 것, 직각적인 것이 어디 있는가. 물방울도, 능선도, 꽃잎도 모두 둥글거나 곡선적이다. 몬세라토 산악지방을 지날 때 보았던 자연의 모습은 가우디 작품이 자연에서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우디 자신도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세계가 자연에서 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페인 들녘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물결을 닮은 구릉들. 돌출된 바위. 고즈넉한 농가의 모습들이 가우디의 작품 모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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