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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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민(시인)





    우보천리牛步千里 시작하다

    #12월3일. 인천공항 오후 2시45분 출발.
    운항속도 831Km/h. 운항고도 9610m. 외부 온도 영하 60‘C.
    서울에서 베이징을 지나 울란바토르 상공을 지날 때 기내 앞좌석에 부착된 개인용 모니터에서 영화, 맘마미아를 보았다. 뮤지션 아바ABBA의 흥겨운 음악과 춤과 노래가 그리스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내가 향하고 있는 지중해. 극중 도나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의 원숙하고 당당한 모습,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캐릭터는 무엇보다 매혹적이었다. 나는 그렇게 초고속의 속도로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지중해의 끝,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를 향해 가고 있었다. 기내가 건조해서 목도 좀 따가워지고, 눈도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잠깐 붙였는데 잠이 들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연결편 항공기로 갈아탔다. 2시간 비행 후인 밤 11시.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야경이 보였다. 멀리 있는 도시의 불빛이 마치 흘러내리고 있는 용암 같았다. 비행기 날개 끝에서 빨간 점호등이 깜빡거렸다. 내 마음에도 점호등이 깜박거렸다. 한국과 시차가 8시간이니까 다시 3일인가?
    지중해 날씨는 변덕스럽다. 아침 저녁 기온차가 심해서 얇은 옷을 겹쳐 있는 것이 좋다. 첫날 밤은 바르셀로나에서 14키로 떨어진 발레스의 유로스타스 바레라 호텔에 투숙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도착한 거리는 한산했다. 세계 불황의 여파로 차량운행이 준 것도 이유였지만 한산한 거리의 더 큰 이유는 ‘씨에스타’ 때문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두 번 산다는 말이 있다. 하루에 잠을 두 번 자기 때문인데 바로 밤잠과 낮잠이다. 점심 식사 후인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지중해의 태양이 폭발하는 시간. 그 시간에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잔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씨에스타(Siesta. 낮잠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16세기 스페인 지배계층의 휴식시간에서 유래되었다는데, 다수의 가게나 관공서가 이 시간에 문을 닫는다. 잠은 아무데서나 자도 밥은 집에서 먹으라는 말이 있다는 스페인.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 뒤에 일터로 돌아가 오후 일을 마친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시간대에 공식적으로 그것도 범국민적으로 식사 후 휴식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남들 놀 때 일해야 하고, 남들 잘 때 공부해야 하는 우리와 비교가 되었다. 속도에 생존이 달려있고 풍요도 거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우리. 고래나 거북이처럼 오래 사는 동물들은 한결같이 느리다는데, 빨리 빨리를 외치며 동분서주하는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모든 도시에 있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바르셀로나도 한가했던 것이다.
    일주일에 3일 정도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낮잠을 자는 사람은 심장병 사망 위험이 무려 37%나 줄게 되고, 10분 정도의 짧은 낮잠으로도 업무수행 능력 개선에 크게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던데, ‘잠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유일한 치료제’ 라는 것을 스페인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에서 여유와 웃음을 자주 보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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