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산티아고를 걷다_신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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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정민 산티아고를 걷다





    신정민(시인)






    길을 걸으며 우주의 소리를 듣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하다. 직립보행의 기본적인 움직임. 그러나 한 걸음 떼는 순간, 우리 몸속에 있는 200여 개의 뼈와 600개 이상의 근육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든 장기들도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다. 단순하지만 신비롭고 과학적인 움직임이 바로 걷기다. 걷는 동안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곤 했다. 집요한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 살면서 생긴 문제들을 느긋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걷는 동안이었다.

    몸이 걸으면 생각도 걸었다. 생각 없이 걸을 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반성과 회개. 미련과 후회였다. 길을 걸으면 삶의 의미들이 단순해졌다. 익숙한 일상에서 놓친 소중한 것들이 분명해졌다.



                                         <내 그림자>


    살면서 생긴 문제들의 원인만을 따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Why형 인간이 아니라,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방법을 찾아가는 How형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느긋하게 걸어라’의 저자, 조이스 럽의 말처럼, 무엇을 했는가 보다 어떻게 살았는가를 살피게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몸으로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걷기였다.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 탈출구를 만들던 주인공이 벽에서 나온 흙을 발걸음 사이로 조금씩 버리던 장면. 나의 욕심과 허영, 분노와 증오 같은 것들도 걷는 동안 그렇게, 조금씩 버려지는 것 같았다.
    인생은 사람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
    작은 노트를 한 권 샀다. 순례 중에 메모도 하고, 일기를 쓸 목적이었다. 한 손에 잡기 좋은 두께와 크기였다. 첫 장에 썼다. 인생은 사람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 나는 그 기회를 잘 쓰고 있는가.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만 온다는데…….

    메모를 시작했다.

    -나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림자가 나보다 앞서 걸을 것이다. 나의 그림자들과 함께 걷게 될 것이다.

    -식구들이 늦잠을 잔다. 가족의 늦잠이 주는 평화를 처음으로 느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감사.

    -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설치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전시가 인상적이다. 흰색 벽의 커다란 방에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작은 나사 세 개. 일자 나사, 십자 나사, 그리고 무한대 기호처럼 생긴 고리 나사였다. 내 삶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것인가. 내게 무한한 것은 무엇인가. 길을 걸으며 생각해봐야겠다.

    -진통제를 샀다. 먹는 진통제, 바르는 진통제. 몸의 통증을 위한 약은 샀는데, 마음의 통증은?


    -나의 걱정은 지금 당장의 것이 아니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내일에서 가져온 것.

    -천년 동안 변하지 않은 길, 수많은 순례객의 참회와 눈물, 감사와 희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나는 또 낯선 곳으로 떠난다. 무자비한 삶의 질주 속에서 살아온, 살아갈 나를 가 만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몬주익 언덕에 있는 올림픽의 영웅 황영조 기념비>


    걷는 동안 길 위에서 온몸으로 우주의 속삭임을 듣게 되길 희망한다. 낯선 이국땅의 겨울 바람과 대지를 적시는 빗줄기, 따스한 지중해의 태양과 피곤한 저녁들, 뜬눈으로 보낼 많은 밤들과 만나고 싶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내게 남은 사랑을 걸지 않겠다는 멋있는 말과 함께.
    뭐, 이런 식의 끄적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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