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기억과 풍경_조풍호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응답이 없어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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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일 사진  <흑백이 된 컬러>
                                     


    응답이 없어도 2

     

      조 풍 호(시인)

    오래된 암실

    우주는 사람의 바깥에 있는 집이기도 하고 사람 안에 있는 집이기도 합니다. ‘우(宇)’는 공간의 집이고 ‘주(宙)’는 시간의 집입니다. 섞이지 않지만(不相雜), 떨어질 수도 없는(不相離) 집이지요. ‘널 만나지 말 걸 그랬어. 널 안으면 네가 없어.’ 어느 여자 대학교 화장실의 낙서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함께 달아난 뒤의 추억을 추억하며 쓴 낙서입니다. 19세기 말, 시간에서 공간을 분리하는 실험이 성공합니다. 사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롤랑 바르트는 사형당하기 직전의 사형수를 찍은 알렉산더 가드너의 ‘루이스 패인의 초상’이라는 작품 밑에 단 두 줄의 슬픈 낙서를 합니다. ‘그는 죽었다. 그리고 그는 죽을 것이다.’ 사진첩을 뒤져보면 압니다. 치즈든 김치든 사진 속의 웃음은 사진을 찍은 시점과 멀어지면서 푼크툼*이 됩니다.

    사별과 이별 뒤의 개별자의 웃음은 그것이 환하면 환할수록 처연해지는 것이지요. 개별자의 역사에서 어제의 행복은 실상 행복도 불행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니지요.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습니다. ‘지나가 버린 것들은 정말 지나가 버린다. 지나간 일은 일도 아니다.’ 아무 관계도 아니었던 어제의 행복과 오늘의 불행을, 사진은 단단한 인과(因果)로 얽어맵니다.

     

    * 뾰족한 물체에 찔려 발생한 부상이나 상흔을 뜻하는 라틴어.

     

     

    시간 속의 플래시

    ‘재건, 건설’담배이름에서조차 이념 냄새가 나던 시절이‘88 ’담배로 정점을 찍을 무렵, 우리들은 중학생이었습니다. 버스 토큰도 짤짤이에 끼워주던 시절이지요.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이기동이나 ‘안녕하십니까뿜빠뿜빠 서영춘임다.’서영춘의 성대모사를 그럴싸하게 하던 녀석.‘유쾌한 청백전’의 변웅전 아나운서처럼 잘 생긴 녀석. 장딴지가 딴딴했고 통뼈여서 팔씨름의 왕좌를 내려온 적이 없던 녀석. 외국 권투 선수들의 전적과 출신지, 장점과 단점을 빼곡히 적은 노트가 보물1호였던 녀석. 졸업 사진 속의 동무들은 여전히 80년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크와 단추 몇 개는 풀어 주고 모자와 신발은 푸욱 꺾어줘야 머스마인 줄 알던 시절이지요.

     

    아이들은 풍문으로 국가 기밀에 접근하기도 했습니다. 점심 끼니를 때우고 책상에 걸터앉아 나누던 어느 날 오후의, 동무들의 대화는 이상하게 아직도 선명하지요.

     

    -청와대에서는 밑을 휴지로 닦지 않고 양변기에 달린 물총에서 쏘아대는 물로 닦는다 카더라. 야, 새꺄. 뻥치지 마라. 내는 치질 걸린 사람들이 뜨거운 물에 궁둥이 담가서 밑 씻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똥 닦는 물총 기계가 있다는 말은 몬 들어 봤다. 하, 새끼. 니가 몬 들어 봤으면 다 쌩으로 공갈이단 말이가. 니가 정보가 짧은 기제. 청와대는 임마야, 그 뭐냐, 탱크 캐터필러 같은 기계가 쫙 깔려 있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저절로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기라. 지하에는 쇳덩이로 벽하고 문을 만든 벙커도 있는데 전쟁 나면 전두환 대통령도 이순자 여사도 그곳으로 가서 전쟁을 지휘한다 아이가.

     

    지금은 수세식 화장실로 바뀌면서 사라졌지만 예전 학교 화장실에는 소변 추출물로 유로키나제라는 급성 구급약을 만들기 위해 ‘녹십자’에서 가져다 놓은 소변 수거통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오줌통’으로 불렀던 통에 김치 국물을 섞거나 물감을 부으면서 ‘칼라약’이 될 거라며 킬킬대었지요. 교복은 단벌이어서 교복의 다림질 자국은 번질거렸는데 옆단이 터져서 옷핀으로 질러 하교하는 애도 있었습니다. 걸음을 뗄 때마다 허벅지와 종아리의 맨살이 비쳤지요.

     

    선생님들은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미친개’처럼 흔한 별명도 있었지만 서른의 나이에 벌써 머리가 벗겨져서 별명이 ‘요강대가리’였던 상업 선생, 매일 원 비디와 바카스를 학생들을 지명해서 사가지고 오게 해서 성씨를 합쳐 ‘박비디’로 불렀던 기술 선생님도 있었고 옥니박이여서 ‘부서진 하모니카’로 부르다가 그냥‘하모니카’로 부르던 영어 선생님도 있지요. 수학 선생은 칠판 가득 이 마이너스 삼 엑스는… 이꼬르… 공식을 가득 채울 때까지 칠판만 들여다보았고, 질문도 설명도 없이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다가 종이 울리면 나간 기억밖에 없어서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뒤통수의 긴 제비꼬리만 떠오르지요. 국어 선생님은 이상이 썼다는 숫자로 된 시를 칠판에 정성들여 썼습니다. 제가 ‘시인’을 꿈꾸기 시작한 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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