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기억과 풍경_조풍호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 연애의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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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일 사진 < 하트>



                                                        연애의 포즈

                                                                                     





    조 풍 호 (시인)




                                             月沈沈夜三更    달도 기운 삼경 깊은 밤에

                                             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겠지.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의 화제(畵題) 

      

     




    그림 속의 연애

      녹음이 우거진 것으로 보아 초여름쯤, 야삼경. 두 연인이 만나고 있습니다. 달빛이 푸른 밤안개를 뚫지 못하는 그믐날, 돌아선 담 모퉁이는 은밀함을 고조시킵니다. 사내는 초롱을 든 자세로 보아 함께 가자고 유혹하는 것 같고 장옷을 쥐고 선 여인은 몸을 돌린 채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표정만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의 이물처럼 날렵한 여인의 꽃신 코는 상체와 구십도 각도를 이루며 사내 쪽을 향해 있지요. 여인들은, 속마음을 불가능한 각도와도 같은 곳에 숨겨 놓는 것입니다. 스물의 골목, 주먹으로 벽을 내려치는 사내들은 사랑을 잃은 것이거나 사랑을 얻는 것이지요. 

     

     

     

     

                                                           산버들 골라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 홍랑

     

          

     

     

    이파리에 쓴 시

     이별하는 임을 뒤늦게 따라가 버들가지를 주며 불렀다고 전해지는 시가입니다. 버들 이파리에 의탁하여, 가꾸고 보살펴야 하는 사랑의 식물성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옛사람들에게 시가는 편지글이기도 합니다. 홍랑은 고죽 최경창을 흠모한 관기(官妓)입니다. 관할구역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나랏법을 어기고 칠 주야를 달려 몸이 아픈 임에게 달려갈 정도로 뜨거운 여인입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상봉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둘의 사랑이 조정에 알려져 고죽은 파직을 당합니다. 이후 고죽은 변방의 한직으로 떠돌다 마흔다섯의 나이에 객사하지요. 홍랑도 먼 훗날 고죽의 묘 아래에 묻힙니다. 여인의 몸으로 3년의 시묘살이를 한 홍랑의 사랑을 문중도 인정한 것입니다. 함관령은 둘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곳입니다. 호수에 비친 버들가지 사이로 원앙새 수컷이 물끄러미 떠내려가고 붉은 말방울 소리가 서산 쪽으로 멀어지던, 봄 어느 날이었지요. 답시는 고죽의 그늘진 눈빛과도 닮아 있습니다. 

     

    말없이 바라보며 유란을 주었네.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마라.

    지금까지도 청산에 어둡나니.

     

     

     

                                               


     

    만두 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었습니다.

                                                이 말씀이 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조그마한 어릿광대 네가 퍼뜨린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겠다.

                                                         -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부분

     

    소문
     

     고려의 여인들은 자유분방합니다. 어릿광대에게 돈푼을 쥐어주더라도 욕망에 충실합니다. 선남선녀들의 탑돌이는 영험해서, 짝을 찾는 기구(祈求)는 탑을 다 돌기도 전에 이루어지죠. 조선조 초기 집권 세력이었던 훈구세력들은 관학파의 학풍을 계승해 유교 논리에 치우치기보다는 문물제도의 정비에 더 힘을 씁니다. 조선조 초기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그렇게 당당하지요. 그러나 여성들에겐 동짓날의 빨리 드리운 산 그림자 같은, 암울한 가부장 사회가 시작됩니다. 유교를 정치논리로만 생각하지 않고 도덕과 의리를 중시했던, 사림파가 집권하면서 유가사상을 백성들의 생활에 침투시키는 것이지요. 조선조 양잠養蠶은 비단 생산, 곧 국부와 관련되는 하이테크 산업입니다. 사령잠의 누에치기는 눈코 뜰 새 없지요. 누에치기는 여성들의 일이었고 여성들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가부장들은 여인네들의 장옷을 벗기고 누에에게 먹일 뽕나무밭으로 외출을 허가하지요. 여기가 교조적 엄숙주의가 패배하는 지점입니다. 조선의 여인네들이 ‘뽕도 따고 임도 보느라’ 분주해지는 것이지요. 

     

    턱을 괴면, 손목을 쥐어줄 이는 없더라도 나며 들며 소문을 퍼뜨려줄 애기 중이나 어릿광대라도 있었으면 하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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