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기억과 풍경_조풍호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여로 속의 영구
  •  


    여로 속의 영구 




    조 풍 호(시인)


    영화를 잃다

     읍내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문이 통문 돌듯이 돌아서, 저녁을 먹은 사람들은 날이 이슥해질 때쯤 읍내를 향했습니다. 막내 누나와 나는 그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요. 동구에서 삼 마장 정도 지났을 무렵, 호롱불을 켜 놓은 게 생각난 어머니가 아이쿠 하는 바람에,  왕복 이십 여리를 달린 덕분에, 숨을 할딱대느라 이야기를 따라 갈 수 없었지요. 그래서 지금은 읍내 야외, 어둠을 영화관 삼아서 유일하게 본, 그 영화의 줄거리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80년대 중반, 정윤희가 주연한 일일연속극 ‘야! 곰례야’처럼 상경극복기였는지, 토요일 서너 시쯤 방영되던 ‘전우’류의 반공 영화였는지, 70년대 말, ‘여로’형 상봉기인지 도대체 생각이 나질 않지요. 도시의 극장처럼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애국가를 불렀는지, 약도를 화살표가 따라가며 아늑한 공간간간간- 성우의 울림이 낭랑해서, 그 레스토랑이 정말 ‘아늑한 공간’일 것 같던 광고가 흘러나왔는지도 알 수 없지요.



                                          김영일 사진 <흘러가다>



    안테나 아이들

     텔레비전 안테나는 낮은 안산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은 바람 때문에 안테나가 흔들려,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화면이 치지직 사라지기도 했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산꼭대기에 올라간 일재 아재의 안테나를 돌리는 손놀림에 따라, 산꼭대기에서 집 근처까지 줄을 서서, 안 나온다! 안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조바심치며 소리를 바통처럼 넘겼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정작 화면이 안정되었을 땐, 권투나 레슬링은 어이없이 끝나 있었지요. 삶의 허망함의 깊이를 그때 안 것일까요? 만화 영화는 금니쟁이 아들에게 십 원을 주어야 볼 수 있었습니다. ‘서부소년 차돌이’는 나무 권총을 만들게 하고 ‘황금박쥐’는 어머니께서 해주신 이발이 끝난 뒤의 나일론 보자기를 망토로 만들었지요.


    또 하나의 가족

     칠십 년대의 산업화를 거치면서 인구의 도시 집중이 진행됩니다. ‘대중사회’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대중大衆’의 사전적 말뜻은 ‘수많은 사람의 무리’이지만 산업 사회의 대중은 ‘수많은 톱니바퀴’나 ‘수많은 모래알’이 더 어울립니다. 그들이 고달픈 하루를 끝내고 돌아온 방안에는, 라디오도 있지만 텔레비전도 갖추기 시작하지요. ‘즐거운 우리 집’ ‘김삿갓 방랑기’ ‘십오야’ ‘유쾌한 청백전’ ‘웃으면 복이 와요’ 안녕하십니까뿜빠뿜빠서영춘임다. 닭다리잡고삐약삐약. 엄마나챔피언먹었어. (한길에 두 사람이 같이 갈 순 없지마는-) 코미디언들과 배우와 성우와 가수들이 마실을 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틈틈이 삼강제과 하드, 쮸쮸바, 바밤바를 권하기도 하고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훈계하기도 하지요.      


     라디오의 ‘전설 따라 삼천리’가 시시해질 무렵, 100억불 달성 수출탑이 세워지던 77년도의 도시의 여름밤은 장미희가 주연한 ‘천년호千年狐’로 숨죽였습니다.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던 음기로 오줌을 질금거리게 했던 드라마였죠. 그 텔레비전이 칼라로 바뀌자 뉴스 속의 먼발치 광주의 시민들은 정말 폭도처럼 보였고, 전두환 대통령이 고정 출연하기 시작했고, ‘국풍 81’은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음을 오방색의 무대 위에서 선언했지요. 

       

    영화가 시작하기 전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부분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