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기억과 풍경_조풍호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아궁이의 장작
  •  


    아궁이의 장작

    조 풍 호 (시인)

     


    시골의 부엌을 추억함

     어른들은 초상집에 다녀오면 부엌에 먼저 들렀습니다. 부정한 것을 씻어내기 위해서이지요. 궁둥이를 지지는 데는 부뚜막만한 것이 없었지만 어머니에게 들키면 부지깽이 쇠꼬챙이가 떨어져 나가도록 맞아야 했습니다. 부엌은 조왕신의 방이지요. 어머니께서 부엌의 시렁 위 종지 물을 늘 갈아 주고 기도를 올린 신 이유이기도 하고 할머니 욕도 산밭에나 가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궁이의 불은 조왕신의 눈매입니다. 부정 탈 귀신도 단숨에 쫓아내는 힘 있는 신의 부릅뜬 눈이지요.

     대들보와 문지방에 번갈아 계시던 성주신이건 장독대에 터주가리 볏짚을 쓰고 계시던 터주신이건 시골의 신들은 모두 집안의 안녕을 위해 계셨습니다. 터주신은 햇살 따스해지는 봄부터는 구렁이로 화하시기도 하셔서 그을음과 거미줄이 가득한 부엌의 들보에는 구렁이가 휘감고 있기도 했지요. 집을 지켜주는 분이시니 아이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예를 올립니다. 구렁이의 방패 이마가 끄덕일 때까지 하지요.

     시골의 겨울은 추웠습니다. 동짓날이 다가오면 그릇들은 부엌에서 방으로 오는 사이 밥상에 쩍쩍 달라붙고 문고리에 손도 달라붙지요. 상을 들여오는 사이, 동치미 국물에 살얼음이 얼기도 합니다. 그 동지쯤이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읍내 말고는 교회가 없어서 교회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탄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도시에 와서야 알았지요. 시골의 선물은 부엌에서 받았습니다. 왕누룽지는 선물 중의 선물이었죠.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은 서양의 조왕신인 산타크로스가 댈 게 아니었지요.



                                김영일 사진 <불이 살던 곳> 


    도시로 오다

     도시에 오면 다들 가난해집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온 도시에서 더 가난해지지요. 가난하면 의지가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형제들은 결혼식도 없는 이른 살림을 차려 창원, 마산으로 뿔뿔이 흩어졌지요. 흩어지기 전의 집은 셋방입니다. 부엌 하나 방 둘에 일곱이 살아서 다락방에 하숙을 치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부엌은 아궁이가 있던 곳엔 연탄이 놓이고 곤로는 연탄의 단짝입니다. 밤에 일어나 부엌의 수채 구멍에 오줌도 눴지요. 아궁이의 불이 없는 곳엔 조왕신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 연탄 위, 양은 통에서 밤새 덥혀진 물은 식구 수대로 찬물을 타서 세수를 하느라 아침이면 시끌벅적, 야단도 아니었지요.



    신들이 놀던 곳

     우리 민족은 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서양의 그것과 사뭇 다릅니다. 서양인들이 역사를 유일 절대자의 자기 전개로 보는 헤겔풍의 시선이나 재앙과 은총의 번개를 손에 쥔 숭배의 대상으로 본다면 우리들에겐 단지 집안 어른 같은 공경의 대상입니다. 터를 이루고 집을 이룰 뿐이고 있는 듯 없으니 해코지도 없지요. 따로 존재하며 지배하지 않으니 그저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삶의 일부입니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제물齊物(사물을 가지런히 하다)’하기 위하여 신과 함께 해야 하는데,


    자신의 배腹를 신으로 섬기는 이들이 너무 많은 날들입니다.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