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기억과 풍경_조풍호
  • ▶ <조풍호의기억과풍경>유리창 속 풍경
  •  


    유리창 속 풍경

     



    조 풍 호(시인)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김용택 ‘섬진강1’ 부분

     


    한나경 그림 <시대의 시대>




    교실 대 교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지던 해에 발표됩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초헌법적 유신 정권이 출범하던 1972년 발표되지요. 두 작품 모두 학교를 알레고리 삼아 권력의 문제를 짚어보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엄석대와 이영래로 상징되는 권력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무척이나 상이합니다. 엄석대가 6학년 담임이라는 더 큰 권력의 개입에 의하여 무너진다면 영래는 급우들 전체의 힘에 압도당하며 무너지지요.

     

    ‘어른들 식으로 표현하면, 한쪽은 너무도 민주주의 대의에 충실해 우왕좌왕했고, 또 한쪽은 석대의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채 은근히 작은 석대를 꿈꾸었다.’

     

    이문열이 소설 속 주인공 한병태의 입을 빌려 급우들의 학급회의를 평가하는 대목입니다. 다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드러나지요. 황석영은 다릅니다. 선생님에 대한 성적 모욕이 담긴 쪽지를 돌린 영래패의 몰락을, 급우들의 연대의 힘을 통해 실감나게 그리죠. 다수에 대한 긍정입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겁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중략)… “사과해, 너는 선생을 욕보인 나쁜 놈이다.” “그래, 병아리 선생님은 좋은 분이야.” 하고 석환이가 잇달아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중략)… 아이들이 뒤로 한꺼번에 몰려와 제각기 떠들었다. “너희들이 잘못이다.” “우리는 병아리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분은 훌륭한 사람이야.” 기가 죽어지내던 장판석이도 종하를 내게서 떼어 밀치며 말했다. “애들 때리면 재미적다.”

     

    위험한 철인(哲人)

    다수는 백성(百姓)으로, 시민으로, 국민으로 불립니다. 어떻게 불리던, 무리이니 민중(民衆)입니다.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에서 민중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의 세 부류로 나눕니다. 그러고는 순종적인 항민이나 원한이 있는 원민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지만 호민은 ‘몹시 두려워해야할 존재’라고 말합니다. 진나라 말기 기의(起義)했던 진승과 오광의 농민군은 물론이고 근대 조선의 동학 농민들도 대표적 호민입니다. 이문열의 교실은 호민의 후예가 일어선 4.19가 나던 1960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합니다. 4.19로 독재가 무너집니다. 독재가 무너진 곳에 소란이 찾아옵니다. 이 ‘우왕좌왕’을 막기 위해 이듬해 6학년 담임이 매를 들고 등장합니다. ‘박정희’라는 담임이지요. 학급회의 의장을 겸하는 담임입니다. 우왕좌왕의 고갱이는 자유입니다. 자유의 차전놀이가 금지되는 것입니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서 플라톤이 ‘국가’에서 구상한 ‘철인(哲人) 통치’가 실제로 시행된 걸 알고 부러워합니다. 조선의 제왕수업은 플라톤이 꿈꾼 ‘완전한 수호자’의 그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윤리학적 의지가 정치학의 핵심인 것은 동일합니다. 문제는 플라톤의 ‘철인’이 그리스 신화(神話) 속 ‘영웅’의 세련된 철학적 변주로 읽힌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영웅이라 믿는 지도자가 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스스로 영웅이라 믿는 것이 ‘소영웅주의’입니다. 그것의 통치적 표현은 독재이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그 길을 갑니다. 자기 신념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학자 군주 정조대왕마저 문체반정이라는 반동의 길을 가게 하듯, 박정희 대통령은 은밀한 술자리에서 총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한국적 민주주의’와 ‘근대화’를 확신에 차서 끌고 갑니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김명수 ‘하급반 교과서’ 부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를 작게 하고 백성을 적게 하라(小國寡民). 노자의 말입니다. 촌락집주(村落集住:시노이키스모스) 형태의 폴리스polis를 말합니다. 이웃 나라가 ‘닭과 개가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고 하더라도’ ‘서로 왕래’ 하지 않습니다. 물레를 돌리던 간디도 자급자족의 소농촌 공동체를 꿈꿉니다. 대한민국의 근대는 민족은 있는데 국가를 빼앗기면서 시작됩니다.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설이 없어도, 국가와 민족이 지고의 선(善)이 되는 이유입니다. 민중이 국민으로만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군대는 명령과 복종 말고는 없습니다. 군사정권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강요된 하나이지요. 민중을 우중(愚衆)으로 만드는 정책을, 스크린(Screen), 섹스(Sex), 스포츠(Sports)의 머리글자를 따서 3S정책이라고 합니다. 민중을 이용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제 5공화국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써 먹습니다. 컬러 TV를 보급하고 야간 통행금지를 풀고 타이거즈와 베어스, 이글스 등 포식동물들을 경기장 여기저기에 풀어 놓지요.

    실존적 개인이 가끔은, 국민으로 불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집총은 불교적 신념과 위배된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한 오태양 군 같은 개인도 필요하고 호국불교론을 외치며 자원입대하는 스님도 필요하지요.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