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기억과 풍경_조풍호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노래라는 풍경


  • 노래라는 풍경

     

    조 풍 호




                                                                                                         김영일 사진 <노래를 찍다>

    오다 오다

    서럽다 우리네여

    공덕 닦으러 오다

    -향가, 풍요(風謠)

     

    하바나* 쇼셜 클럽

    남북전쟁은 흑인을 노예에서 해방시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농노(農奴)에서 도시 빈민으로 바꾸어 주지요. 말하는 가축이던 흑인들은 슬픔과 절망감을 솔직하게 뱉어냅니다. 육자배기로 뱉어내지요. 블루스는 노래로 하는 신음입니다. 뉴올리언스는 흑인들이 매매되던 곳입니다. 미시시피강 상류에 있던 도시였지요. 흑인들의 모든 음악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흑인 영가는 가혹한 현세를 탄식하며 신에게 의지하는 흑인들의 풍요(風謠)입니다. 당겨서 울리고 떨어서 퍼뜨리는 노래이지요. 신의 발등에 입 맞추는 합창입니다. 노예선의 뱃사람들은 백인입니다. 햄이나 베어 먹어 잇몸이 괴사하던 백인이지요. 뱃사람의 음악이 흑인의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서글픔과 흥겨움이 비벼지면서 들어가지요. 20세기 초 우리는 그 음악을 재즈라고 부릅니다. 아프리카 초원의 북소리가 배경처럼 깔리는 노래이지요.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도시에서 흘러들어간 모든 플라스틱 물통은 북이 됩니다. 손 안에 꼭 쥘 수 있는 가볍고도 맑은 북이지요. 조선의 서민들은 사설시조를 읊조립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것이지요. 랩은 흑인들의 사설시조입니다. 판소리는 알앤비입니다. 끊어서 멈추었다 펼치면서 달려가고 접어서 뿌리는, 끈적이는 알앤빕니다.

     

    * 흑인 재즈의 정수인 쿠바 재즈의 요람, 쿠바 바닷가의 도시 이름.

     


    만흥(漫興)

    정히 앉아 눈두덩을 문지르고 건포 세수를 하고 자리끼로 입을 헹구고 헛기침을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 증조부의 아침이지요. 증조부의 시조창은 높은 장대로 받쳐 놓은 빨랫줄에 여러 가지 크기의 괴불주머니가 흔들리듯 흔들립니다. 청홍황흑백으로 흔들립니다. 예(禮)가 만물을 고르게 한다면 악(樂)은 천지간의 사물이 화(和)하도록 하죠. 그래서 선비들의 노래는 이랑이 고랑이 되고 고랑이 이랑이 되는 물결을 닮습니다. 파임은 암키와 같고 돋움은 수키와 같죠. 유시(酉時)의 그림자처럼 아득히 사라지는 소리입니다. 탁족(濯足)의 물소리와 부드럽게 섞이며 흘러가는 소리이지요. 공자는 시경(詩經)을 엮습니다. 시경은 주나라 때부터 춘추(春秋)까지의 민요 모음집입니다. 백성들의 민요는 백성들의 민심입니다. 백성의 삶이 편안하면 민요는 물떼새의 종종걸음이 되고 백성의 삶이 고단하면 휘어져 꺾어 쓰러집니다.



                                                                           한나경 그림 <노래, 번지다>


    ‘아리랑’은 ‘내 마음을 아리게 하는 임’ 곧 낭군(郎君)과 낭자(娘子)를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전국에 퍼져 있는 아리랑은 각자 내용은 달라도 마음을 아리게 하고 쓰리게 하는 슬픈 사연을 경쾌한 후렴구에 담아냅니다. 슬플수록 흥겹게 담아내지요. 선비의 흥(興)이든 민초의 흥이든 들어가는 지점은 같습니다. 새소리와 물소리 사이든, 이파리들이 몸 뒤집고 춤을 추는 나무 그늘 속이든 흥은, 쥘부채가 타악- 접히거나 손이 무릎을 치는 지점에 있지요. 무릎을 칠 일이 많은 시대를 태평성대라고 합니다. 무릎을 칠 손이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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