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기억과 풍경_조풍호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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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풍호 (시인)










                                        사진 < 해우소가 있는 이승>                        


    근심을 풀다

     불가에서의 명상은 청수로 헹궈 마신 발우처럼 자신을 비우는 수행입니다. 우리 집 개 ‘도꾸’나 ‘강피’의 식사는 혓바닥으로 싹싹, 밥 한 톨 남김없이 비우는 발우공양입니다. 먹으면 배설해야 합니다. 유정물의 배설물은 ‘똥’입니다. 새는 날아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괄약근의 억압을 벗어나서 ‘자유’입니다. 소화에 애를 태우는 몸집 큰 짐승과는 애초에 다른 것이지요. 해우소解憂所는 사찰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해우소의 고요는 홀로 풍장을 준비하는 이의 토굴 속 고요를 닮았습니다. 

     


     

       

                                        깨어진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이 가장 볼만하더이다.

                                                                            -박지원 ‘열하일기’ 부분



    四寸의 논

      짚 등을 부숙시킨 두엄도 거름으로는 제격이지만 무엇보다 상급은 돼지우리의 똥들과 사람의 똥입니다. 고향의 뒷간엔 잿간이 있었습니다. 똥과 재는 거름의 가시버시입니다. 씨앗을 뿌리기 전의 밑거름이든 씨앗을 뿌린 뒤의 웃거름이든 거름은 씨앗의 이밥입니다. 잔칫날 비빔밥 같은 알카리성 유기물이지요. 먹고 살기 위해 먹고 푼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똥 한 사발이 밥 한 사발이다.'는 속담은 그래서 생겨나지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물욕적 질투가 아닙니다. 사촌에게 거름의 양을 늘려주려는 상부상조의 위트이지요. 1960년대부터 질소질, 인산질, 칼리질, 복합비료 등 화학비료가 대량 사용됩니다.

     토양은 산성으로 변하고 인심에선 구수한 냄새가 사라지고 돼지하고도 사이좋게 나눠 먹던 똥이, 똥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지요.



     


     

      엄행수는 아침에 밥 한 그릇만 먹고도 의기양양하고, 저녁에도 밥 한 그릇뿐이지. 누가 고기를 좀 먹으라고 권하면 고기반찬이나 나물 반찬이나 목구멍 아래로 내려가서 배부르기는 마찬가지인데 입맛에 당기는 것을 찾아 먹어서는 무얼하느냐고 하네.         - 박지원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부분


     


     

     

     사찰에서는 말린 버섯이 고기보다 고기 같습니다. 된장을 푼 무청 시래기는 속세의 고기입니다. 말린 것들은 신기하게도 육질 좋은 고기처럼 부드럽고도 부드럽습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100억 마리의 닭과 8000만 마리의 소, 1억 4900만 마리의 돼지가 5억 톤의 배설물을 배출합니다. 여기에 더해 5500만 톤의 화학 비료가 사용되지요. 배설물과 비료 가운데 많은 부분이 씻겨 내려가 바다로 흘러갑니다. 바다가 죽어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냄새는 정직합니다. 마늘을 먹으면 마늘 냄새가 나고 고기를 먹으면 누린네가 나고 풀을 먹으면 풀 냄새가 나고 벽곡辟穀의 신선은 속세를 등집니다. 누린네가 넘치는 도시의 저녁, 사람 냄새 사라진 사람들이 거래와 거래의 거래를 위하여 식당가로 몰려듭니다. 돼지우리의 짚 냄새가 그리운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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