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주정이 잡설 _쪽지 비행기
  • ▶ 꿈을 깎는 목공소
  • 꿈을 깎는 목공소




                                         주정이(판화가)



                                                               

    갑자기 바다냄새가 맡고 싶어졌습니다. 예전에 해운대 살 적에는 바다 냄새가 좋기는커녕 해풍에 전 방바닥이 쩍쩍 들러붙어 바닷가는 사람 살 곳이 못된다며 불평을 해댔는데 염치없이 바다 생각을 하다니, 산이 좋다며 산골로 들어와 한 십 년 살다 보니 변덕이 난 모양입니다. 바다냄새도 맡아보고 연화리 바닷가에 있는 후배작가 김정호의 작업장도 들러 볼 요량을 하고 나섰습니다.

    김정호의 작업장 가는 길이 바닷가 길이라 바다냄새는 가는 내내 실컷 맡고서 김정호의 작업장에 들어서니 가설선반에 수많은 작품이 빼곡하게 재어져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인기작가가 안 돼서 작품이 안 팔려 나가면 좋겠다. 그래야 작품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니까.” 나의 이런 말에 김정호는 머리를 긁으며  “허 허 참! 나는 굶어죽으란 말입니까?” 라고 타박해서 멋쩍어 하였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다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을 해도 작품 소장처를 일일이 찾아다닌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마침 그가 블로그를 개설했다는 말을 듣곤 그에게 한번 열어보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블로그엔 그의 초기 작품부터 근작까지가 잘 정리돼 올려져 있었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한 점 한 점 넘겨보았습니다.

     

        

    김정호 作 / 숲에서


    김정호의 초기 작품에는 잘린 나무토막이 우중충한 잿빛 하늘에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의 작품에는 나무토막이 계속 나오고 근작에서도 나무가 여전히 주요한 모티브이긴 하지만 최근작에서는 나무토막이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그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고 잘린 부위의 날카로움이 둔화되고 토막도 듬성해졌습니다.

    대신에 전에는 없던 기표(記標) 같은 집이 나오고 연인이 나오고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있고 미물이 꼬물거리고 대지에 누운 나무토막에서는 움트는 생명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작품「숲에서」는 땅에 뿌리를 내린 온전한 나무둥치들로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지붕에서는 무성한 나뭇잎이 아예 지붕을 넘어서기도 하고.「방랑자」에서는 용선처럼 자란 나뭇잎이 선(扇)바람을 일으키고 그 선바람이 방랑자의 영혼을 안식케 하려는가? 화면은 허공을 가르는 선바람의 음률로 충만하였습니다.

    또한 초기의 간략하고 일면 거칠기도 하던 화면이 다양하고 온화해 지기도 하거니와 주조색 또한 초기의 잿빛에서 점차 모유색과 흙색의 공존으로 변화한 것에서 시사하는 바가 그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여전하고 화면의 변화과정이 시대적 변천의 동선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김정호는 화포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자면 붓으로 나무를 깎고 붓으로 인간을 깎고, 집을 깎고 새를 깎고 사랑을 깎고 그렇게 깎아진 목각들이 화포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김정호의 작품은 우선, 유쾌한 상상력의 재미에 풍덩 빠지게 합니다. 칼 아닌 붓으로의 나무 깎기 방식도 그렇고 이러한 행위가 목공소가 아닌 화포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재미를 더합니다. 그러나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유쾌한 유혹의 덫을 젖히면 무릇 넋을 놓고 살아온 회한이 왈칵 밀려오고,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사유의 늪으로 빨려 들게 하는 아우라가 있습니다.

    그의 작품 「나무소리」에서는 손목의 문신 새겨 넣기와 같은 장치로 보는 상상력의 확장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의 유쾌한 선입감은 위장이며 위장의 뒤로는 태초 이래 편한 날 없는 시대마다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며 그의 시대성에의 접근 방식이 자연의 순환 같은 근원적 문제에 경사되는가? 하더라도 표피적인 왁자지껄 보단 낫고 보기에 따라선 삼계육도(三界六道)를 돌며 생사를 거듭하는 윤회선(輪廻船)의 승선권을 덤으로 얹어주어 좋습니다.



    김정호 作 / 가을바람에



    김정호는 말이 적습니다. 그가 굳이 말을 할라치면 서두를 ‘일테면’ 으로 시작합니다.  ‘일테면’은 ‘이를테면’ 의 동의어로서 ‘가령 말하자면’ 의  뜻으로 쓰이는 접속 부사입니다. 그의 이런 일상의 말의 습관에서 짐작컨대 그는 항상 안에서 생각의 마무리를 하고 나서 자신의 뜻은 덤덤하게 내비치듯 그는 작품에서도 자신의 생각은 내재시키고 밖으로는 솔바람 스치듯입니다.

    김정호는 이 세상에 목공소 하나 차려놓고 쉴 새 없이 나무를 깎고 있었습니다. 그가 깎아서 세상에 내보내는 모든 것들에 영혼을 넣어주려는 욕심까지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깎아 내놓은 인물은 피노키오의 범주는 진적에 넘어 의인화의 한계를 지나 기어이 그 이상의 어떤 경계조차도 안중에 없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대체, 상상력은 자유의 무한유영이며 미래를 여는 원력이라 여겨서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계륵도 안 되는 것을 금낭(錦囊)인 양 그에 목매는 군상들이 있습니다. 가열찬 오랜 성찰 끝에 비로소 실낱 같은 화두 하나 붙들어 평생의 업보 삼아 멀고 긴 인고의 시간을 감내할 작정을 하고서도 깨치지 못할런가? 다다르지 못할런가? 해서 애초에 무념의 정진을 할진대 왁자지껄한 무리의 뒷발치에서 튕겨나온 사석(沙石) 한 개 주워서 큰 바위로 섬기는 어리석은 군상들이 있습니다. 식자가 서고에서 꺼내어 흔드는 깃발 하나에 우르르 몰려다니고 그들 식자의 공허한 언어유희에 맹목하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김정호는 그 어떤 무리나  부류로도 분류될 수 없는 그만의 영역을 굳건히 지켜 나가고 있었습니다.

    김정호는 진화의 역사가 꿈에 의해 이루어진 듯이ㅡ 자신을 비롯한 세상의, 우주의 진화를 도모하듯 꿈꿀 권리를 가히 없이 누리는가 하면 또 다른 미지의 공간을 향한 발진모션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자연과 생명에 천착해 왔습니다.

    늘 같은 것에 매몰되어 왔으나 상투적 늪에 빠지는 우와 무관한 것은 그의 사유하기와 나무깎기가 숙성을 거듭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작업장은 항상 불이 켜져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그의 작업장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릅니다. 김정호는 그런 그의 목공소에서 숙련된 재간으로 나무를 깎고 있었습니다. 김정호는 그의 그런 작업장에서 성찰의 결과를 나무로 깎아내고 있었습니다.

    김정호는 그런 작업장에서 날마다 창자로부터 재간과 성찰의 나무깎기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김정호의 작업장은 꿈을 깎는 목공소입니다.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