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주정이 잡설 _쪽지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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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지붕 이을 때면

     



    주정이(판화가)


     

       




    이른 아침부터 마을이 벼베기 하는 콤바인 소리로 요란합니다. 아침밥을 먹고 마을 어귀의 다랑이논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나가 보니 그새 앞집 김 씨 논은 다 베고 콤바인은 다른 논배미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낫으로 벼베기 할 적에는 논 한 배미 베는데 장정 두셋이 달려들어도 하루해가 짧다 하였으나 기계라는 놈은 눈 깜짝할 새 다 해치웠습니다.

    젊은 사람 다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남아 있는 요즘의 농촌에서는 일손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용케 일꾼을 구한다 해도 옛날처럼 품앗이가 아니라서 품삯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다 품삯이나 기계 삯이나 별반 차이 없이 그 돈이 그 돈인지라  힘이 부치는 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째 남아 있는 중년이고 청년이고 간에 낫 들고 논에 들어가는 일은 드뭅니다. 베고 탈곡하고 선별하기를 한꺼번에 후딱 해결하는 기계를 부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을바람에 황금물결로 출렁이든 논바닥이 볏짚을 덮고 누운 광경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와 작업채비를 하고 있는데 마당의 강아지가 짖었습니다. 마당에 누가 얼씬거렸습니다. 후배작가 K가 왔습니다. 내가 이곳 산골로 들어온 초기엔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내 집에 자주 다녀갔는데 K도 그 중 한 사람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렸지만 근자에는 좀 뜸했습니다. 내가 도시에 살 때는 K와 나는 하릴없이도 그냥 만나 소주 한 잔 하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나 내가 산골로 들어오고는 그렇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산골에서 도시까지 1시간 남짓한 거리에 불과하지만 딱히 용무 없이는 내가 나가는 거고 누가 들어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도시와 산골간의 실제 거리상의 간격보다 도시와 산골간의 마음의 간격이 더해서 그런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K는 오랜만의 방문이라 그동안 뭐 변한 거라도 있냐? 하곤 마당을 휘 둘러보다가 대뜸 “초가지붕 어디로 갔어요?” 라고는 “이맘때면 새로 이은 황금색 초가지붕을 보겠구나 기대했는데 뭡니까!” 라며 투덜거렸습니다. 내 집에는 작은 움막 한 채가 있습니다. 이 움막의 지붕이 전에는 초가지붕이었는데 지금은 너와지붕으로 바꿨습니다. 이를 두고 하는 불만이었습니다. 초가지붕 없앤 것에 대한 아쉬움이야 나도 마찬가집니다. 새로 이어 황금색으로 단장한 초가지붕은 말끔한 모양새가 좋고 겨울채비를 다한 것 같아 든든한가 하면, 해묵어 짚이 삭아 재색으로 바랜 초가지붕은 또 그대로 향수를 느끼게 하고 우리의 옛정취가 물씬 풍겨 좋습니다. 초가지붕은 박넝쿨 뻗히기가 좋습니다. 달빛 아래 순백의 자태를 드러내는 박꽃은 산골 여름밤의 정취를 한껏 돋우기도 합니다.

     

    원래 초가지붕은 농우 여물로 줄 것 재 놓고 남는 볏짚에 품앗이라 재료비고 품삯이고 안 들었습니다. 요즘은 다릅니다. 초가지붕 이으려 하면 신경이 많이 쓰이고 경비도 수월찮게 들어갑니다. 초가지붕을 이면 짚으로 이엉과 용마름을 엮어야 하는데 기계로 벤 길이가 짧은 짚단은 안 좋고 낫으로 벼 밑둥까지 바짝 벤 길이가 긴 짚단이 적합합니다. 요샌 기계로 벼베기를 다하기 때문에 그런 긴 짚단 구하기가 쉽질 않습니다. 이엉과 용마름을 엮는 일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엮는 방법이 간단한 이엉은 아무 일손이나 구하면 되지만 엮는 방법이 한층 복잡한 용마름은 엮을 줄 아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동네방네 수소문해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저런 준비가 다 되어도 묵은 지붕을 걷어내고 새로 이는 일도 간단치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움막이라도 지붕 위에 한 사람 올라가고 양쪽 처마 밑에 한 사람씩 붙고 또 이엉과 밑단 깔 볏짚 던져주는 사람까지 합하면 4,5명이 들어야 하므로 그 품삯 역시 적잖게 듭니다.


    또한, 초가지붕은 한 번 시공하면 그만인 일반지붕과 달리 매년 새로 이어야 합니다. 술 소반을 앞에 두고 초가지붕 없앤 나의 장광설을 듣고 있던 K가 “에이! 내가 경비 댈게요. 다시 초가 합시다!” 라고 호기를 부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초가지붕을 너와지붕으로 바꾼 것이, 품도 품삯도 많이 들어가는 초가지붕이 단지, 향수를 느끼고 정취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낭비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가지붕은 이는데 드는 경비와 번거로움만큼의 실용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나는 초가를 새로 잇는 이맘때가 되면 초가지붕이다가 너와지붕으로 바뀐 우리 집 움막지붕을 바라보면서 문득! 문득! 일상의 얼추를 이해득실로 재단하는데 익숙해진 내 정서에 뜨악해집니다. 실리 말고 기분 따위에도 애 좀 쓰고 품삯 좀 들이며 살면 어떠리? 라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기도 합니다. 에이! 아무래도 내년에는 K의 큰소리에 못이기는 체 하며 초가지붕 다시 이을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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