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주정이 잡설 _쪽지 비행기
  • ▶ 새벽이슬에 붓 적시어
  •  

    성묘일기
             
    -새벽이슬에 붓 적시어



     


    주정이(판화가) 

     

     






     

     

    마당의 배나무에서 배 한 개를 땁니다.
    장독가에 있는 포도나무에서 포도 한 송이도 땁니다.
    아래 마당으로 내려가 대추나무의 대추 댓 알을 따고 집 뒤 감나무의 단감도 한 개도 땁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와 따온 과실을 깨끗이 씻어 종이에 싸 배낭에 넣습니다.
    엇그제 마트에서 사 와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 한 병과 막걸리와 사이다와 상투과자와 쎈베이와 롤케익도 챙겨 넣습니다. 헐지 않은 담배 한 갑과 붓 한 자루도 챙겨 넣었습니다.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좀 전에 부른 콜택시가 마을회관에 앞에 곧 도착한다는 전화입니다.
    마을회관까지 가자면 2,3분은 걸립니다. 집앞으로 오라면 좋지만 우회전하고 다시 좌회전해서 한 30미터 들어오면 마당에 나무 많은 집이 있어요. 이런 식으로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러면 복잡하다고 기사가 싫어합니다.
    그래서 내가 좀 걸어 나가더라도 그냥 찾기 쉬운 마을회관 앞으로 오라하고 마는 것이 속편합니다. 그래도 늦으면 안 됩니다. 좀 늦으면 대번에 미리 나와서 기다리지 않았다는 택시기사의 핀잔을 듣게 됩니다. 돈 주고 차 타는데도 눈치를 보는 격입니다. 부당합니다. 그러나 일일이 따지자면 시비로 번지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요금은 넉넉하게 주겠다는 말부터 서둘러 해야만 합니다. 택시요금이 시외지역은 할증요금이라 더 받는데도 시외에서 시외로 이동하는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콜택시회사로 전화를 하면 어김없이 시내로 오실 거지요? 라고 묻습니다. 그렇게 물을 때 시외지역으로 간다고 하면 십중팔구 빈차가 없어 배차를 못한다는 문자메시지가 옵니다. 시외지역은 빈차로 돌아가게 되니까 싫은 것입니다.
    내가 알기론 택시요금 산정기준이 왕복을 감안한 걸로 아는데 그딴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정해 논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는 세상에 택시기사의 그런 투정 따위야 뭔 대수이겠습니까?
    공원묘지에 도착해 차를 내리며 택시기사더러 한 시간 후에 다시 이곳으로 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습니다. 내릴 때 미터기에 찍힌 요금보다 후하게 준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산소자리는 좀 높은 곳에 있습니다. 배낭을 메고 산소를 향해 계단을 오르는데 금새 숨이 찼습니다. 계단에 앉아 잠시 쉽니다. 쉬면서 담배를 한 대 입에 물며 요놈의 담배 때문에 그 새 숨이 차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에이! 에이! 하면서 그냥 담배 불을 붙입니다.
    허공으로 담배연기를 훅ㅡ 뿜으며 좀 전 택시를 내린 아래쪽을 바라보니 성묘객들이 타고 온 차들이 엄청 많습니다.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진출입로에 차들이 줄을 이어 있습니다. 마치 이승과 저승의 인연 줄인가? 보였습니다.
    내가 제일 늦은가? 산소에는 다른 형제들이 다녀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봉분 주위 여기저기로 과일조각이니 부침개니 떡 조각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형제는 성묘를 모두 모여서 오지 않습니다. 각자 편리한 시간대에 다녀갑니다. 언젠가 형제 중 누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지 않은데 애써 한곳에 모이고자시고 할 것 있나?’ 라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딱 합의를 보지는 안했지만 그 후로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제일 먼저 담배 한 개비 불 붙여 묘석 받침돌에 올려놓습니다.
    그다음 과일을 올립니다. 내 집 마당에서 농약 안 치고 거름 안 주고 키운 것들입니다.
    상투과자와 쎈베이와 롤케익도 올립니다. 생전에 부친이 출타했다 돌아오실 때 어김없이 들고 오시던 종이봉지 속에 담겨 있던 과자들입니다.
    맥주도 올립니다. 막걸리에 사이다 탄 막사주도 올립니다. 맥주는 부친이, 막사주는 모친이 즐기시던 주종입니다.
    맨 나중에 붓 한 자루도 올립니다. 부친께서는 평생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붓글씨를 쓰셨습니다. 먹물과 종이는 안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 절을 올리며 ‘새벽이슬에 붓 적시어 허공에 대고 쓰십시오.’라고 말씀올렸습니다.
    저 아래 택시가 뒤엉킨 길을 용케도 비집고 들어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핀잔 듣기 전에 서둘러 계단을 내려갑니다. (우리 산소는 합장묘입니다. 원래 부친은 화장을 하였는데 뒤에 모친을 매장할 때 의식을 갖추어 위패를 같이 묻고 봉분을 좀 크게 하고 묘비에도 신안 주씨와 밀양 박씨를 나란히 새겨놓았습니다.)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