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주정이 잡설 _쪽지 비행기
  • ▶ 노래하는 화가
  • 노래하는 화가

     



     주정이(판화가)

          


    밤늦은 시간에 세 사내가 단골주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눈여겨보면 그들 중 두 사내는 대화에 열중하느라 술은 뒷전이고 나머지 한 사내만 홀짝홀짝 술잔을 비우고 있는데 일행 한 명이 더 있는지 탁자 위에는 술잔 하나가 더 놓여 있습니다. 술자리에 사람은 세 명이 앉아 있고 탁자 위의 술잔은 네 개가 놓여 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홀짝홀짝 술잔을 비우고 있던 사내가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좌석에 남은 두 사내가 잠시 대화를 멈추고 사내가 나간 쪽으로 눈길을 돌려 살펴봅니다. 방금 밖으로 나간 사내가 길가에 서서 전화를 걸고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옵니다. 좌석에 남아 있던 두 사내가 창밖의 실루엣사내를 확인하곤 다시 대화를 계속합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밖으로 나갔던 사내가 들어와 탁자 위에 놓인 주인 없는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술잔을 집어들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두 사내에게 뭐라 말을 하지만 주점 안의 왁자지껄한 소음에 묻혀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두 사내가 대화를 멈추고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듭니다. 쨍그랑! 세 사내가 술잔을 부딪치고 함께 술을 마십니다.

    그러나 세 사내의 술잔 말고 나머지 한 개의 술잔은 여전히 주인 없이 탁자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세 사내 중 조금 전 밖으로 나갔다 온 사내가 주인 없는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술잔을 비우고 새로 술을 채워 놓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여전히 홀짝홀짝 술잔 비우기를 계속하던 사내가 이번에는 앉은자리에서 전화를 겁니다. 대화에 열중하던 두 사내가 대화를 멈추고 전화 거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노래하는 화가 / 정진윤 作>

    그새 주점 안은 술꾼들이 썰물처럼 지나간 뒤끝이라 아까와는 달리 전화기의 신호음 이 들릴 정도로 조용합니다. 전화기에서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뚝!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잘못 거신 것이므로 확인하시고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응답이 흘러나옵니다. 사내가 다시 한 번 전화걸기를 시도 해보지만 같은 응답 일뿐입니다. 딸깍! 사내가 전화기의 스크린을 닫자 사내 중 한 명이 퉁명하게 툭ㅡ 한마디 던집니다. 아까, 나도 전화 몇 번 해봤다. 안 받더라.

    밤늦은 시간에 세 사내가 오래된 단골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사내들은 평소에 종종 이 술집에 앉아서 주위에 사는 동료들을 불러내었습니다. 세 사내는 낮에 어떤 나무 한 그루를 만나고 왔습니다. 한줌의 재를 작은 보리수나무 밑 둘레에 뿌리며 씨팔! 뭐가 그리 급했노! 라고 통한을 내뱉은 적이 엊그제 같은데 무심한 세월 하ㅡ 빨리도 흘렀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세 사내가 단골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세 사내가 주인 없는 술잔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세 사내가 이젠 흙냄새를 맡아 잎이 제법 짙푸른 보리수나무 한 그루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네 영혼이 단골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작품 「노래하는 화가」는 고 정진윤이 동료화가를 모델로 제작한 15호 크기의 작품이며 이 작품을 하고 나서 200호 크기의 같은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그 중 15호짜리 작품은 생전에 필자에게 “이 작품 괜찮게 나왔어요. 제 작품 한 점 갖고 계세요.” 라며 건넸고 200호짜리는 현재 경남 도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