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주정이 잡설 _쪽지 비행기
  • ▶ 시골 인심 아직 괜찮습니다



  • 시골 인심 아직 괜찮습니다


    주정이(판화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마을로 이사올 당시만 해도 내 집 마당에서 바라보는 앞산 경관이 좋았습니다. 상록수들 사이로 간간이 섞여 있는 활엽수의 나뭇잎이 다 져도 앞산의 늘 푸른 사철에 별 영향이 없었고 다만 겨울철 감나무 밭의 컨테이너 관리사가 티눈 박힌 것처럼 눈에 거슬려 아쉬웠지만 도시 인근에 이만한 산골이 웬 떡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앞산 기슭에 공장이 많이 들어서고 군데군데 산을 허물고 닥아 놓은 공장 터가 맨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0년 남짓한 세월의 변화가 무섭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앞산 기슭이 그렇게 공장지대로 둔갑하기까지 마을사람들은 마치 산 너머 불구경하듯 하였습니다.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좋아할 리 만무한데 마을 사람들이 아무 소리 안하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성한 숲이 잘려나가고 굴착기의 굉음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이 마구 파헤쳐지고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마을길을 쌩쌩 무섭게 달려도 웬일인지 마을에선 아무른 토를 달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속 모르는 나로선 의아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 주민 중에 누군가가 굴착기 업자로 한 다리 끼이고 그를 연결고리로 공사업체로부터 마을기금이라는 명목의 제법 두터운 뭉칫돈이 건네졌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냥 넘어간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을에 들어온 돈은 마을 공공의 일에 쓰이기보다는 대개 노인회에 얼마, 청년회에 얼마 식으로 나누어 철따라 관광버스 대절해 놀러가는 여행경비나 회식비로 충당된다고 합니다. 도시에 인접한 반촌마을에서는 대동소이한, 흔히 있는 사례라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 마을회관 스피커가 울렸습니다. 예의 그 공장 터 중 한 곳에 김밥공장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데모하러 가야 한다며 주민들은 마을회관으로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을 동산 너머에는 골프장이 있습니다. 골프장은 환경오염의 대명사처럼 치부됩니다. 그 골프장은 몇 해 전에 18홀 두개를 증설하였습니다. 그 땐 마을에서 데모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설마 골프장이 김밥공장보다 환경오염을 덜 시킨다는 것은 아닐 텐데도 말입니다. 골프장에선 명절마다 꼬박꼬박 식용유세트라도 돌리니까 그런 건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마을에는 콩나물 키우는 비닐하우스도 있습니다. 그 콩나물하우스는 가타부타 말이 없습니다. 콩나물공장은 되고 김밥공장은 왜 안 되는지? 내 소견으로는 김밥공장이 콩나물공장보다 나쁜 물을 많이 흘려보낸다는 근거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성장촉진제를 쓴다는 콩나물공장이 있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김밥공장에서 방부제 쓴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마을 기금을 건네고 안 건네고의 차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이렇듯 요새 시골마을에는 웃기는 행태가 한둘이 아닙니다. 시골사람 순박하고 시골인심 좋다는 말은 옛말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장에 내다 팔 푸성귀에는 농약을 퍼붓다시피하면서 밭 한 귀퉁이에다 따로 키우는 저들 입에 넣을 푸성귀는 농약이 조금만 튀어도 펄쩍뛰며 물 호스를 끌어다가 씻어내느라 수선을 떱니다. 시장에 내다 팔려면 입성이 좋아야 금을 제대로 쳐준다곤 하지만 암만 양보해 생각을 해 봐도 도리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밭두렁에서 일꾼들이 따내는 산딸기를 박스에 담고 있던 평촌댁이 맛이나 보라며 산딸기 한 움큼을 내밀었습니다. 애써 재배하고 품삯 들여 딴 것을 받기가 뭣해서 손사래를 쳤지만 ‘누구 입에 들어가도 들어갈 거 먹어 보라’ 는 성화에 한손 받았습니다. 산책을 끝내고 집에 당도해 마당의 평상에 걸터앉아 잘 익어 검붉은 산딸기 몇 알을 입안에 넣었습니다. 금방 딴 싱싱한 산딸기라 맛이 좋았습니다. 금새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 입에 들어가도 들어갈 거 맛이나 보라’ 던 평촌댁의 성화가 상기되었습니다. 평상 한쪽에 푸성귀 한 소쿠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봉림할매가 물 호스로 약 튄 거 씻어내느라 수선을 피던 그 밭 볼떼기서 솎은 것 같았습니다. 어? 내 쓸개가 곰지락거리는가 싶더니 내 참! 이제껏 시골인심 예전 같잖다고 구시렁거리던 내 심사가 ‘아직 시골인심 괜찮네! ’ 로 홀까닥 바뀌었습니다. 내 참! 일흔이 다 되고서도 겨우 산딸기 한 움큼과 푸성귀 한 소쿠리에 왔다갔다하는 내 성정머리가 멋쩍은지? 입가에 실소가 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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