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 ▶ <강신익의 인문의학 오딧세이>소리의 과학과 문화

  • 최종회


    소리의 과학과 문화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나의 어린 시절 과학은 어떤 꿈이라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였다. 거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만화영화는 인간을 해방시켜 줄 미래과학을 소재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과학입국(科學立國)이 국가정책의 기조였다. 과학은 국가와 개인이 모두 ‘잘 살기’위한 수단이었고 많은 아이들이 과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떤 과학을 하는 어떤 과학자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과학의 길을 가기위해 필요한 호기심과 탐구욕을 북돋아줄 체계적 방편도 마땅치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학교와 동네와 들판을 돌아다니며 놀이의 소재를 찾았다. 땅바닥을 긁어 줄을 그어놓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작대기를 받쳐놓고 큰 막대기로 쳐내는 자치기가 주요 놀이거리였다. 놀이의 도구라고는 유리구슬과 종이로 만든 딱지 그리고 여자아이의 경우 고무줄이 전부였다. 조금 더 짓궂은 아이들은 개구리를 잡아서 그야말로 생체실험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잔인한 장난이었지 자연현상에 대한 체계적 탐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는 주로 만화방에 있었다. 거기서 만화를 빌려보고 당시로서는 무척 드물던 흑백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프로레슬링과 만화영화에 심취했다. 주위 환경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철길이나 공사장 같은 위험한 곳이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철로에 대못을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가고 난 다음 뜨겁고 납작하게 변해버린 대못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기도 했고, 철로에 귀를 대고 멀리서 다가오는 기차의 소리를 듣는 위험천만한 장난을 하기도 했다.
    다소 위험하기는 했어도 이런 놀이들은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철길을 통해 전해오는 기차의 소리가 가장 신기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서 다가오는 기차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라디오라는 조그만 상자 속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만큼이나 신기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일하시는 들판에 심부름을 가면서 등 뒤로 학교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그 소리가 마치 물결치듯 커졌다 작아졌다 했던 기억도 또렷하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그런 신기한 현상과 물건을 통해 아들의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개명한 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라디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속에 아주 작은 사람이 들어있다고 둘러대셨으니 말이다. 순진한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실 때 그 상자를 열어 정말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물론 아무 성과도 없이 심한 꾸중을 듣는 것이었지만, 소리가 철로와 같이 딱딱한 물질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텅 빈 공간을 통해서도 전해질 수 있다는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보급되기 시작했던 유선 전화기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손잡이를 돌려 교환원을 불러서 접속하는 방식이었고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아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내야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지만, 동네에 한두 대밖에 없던 전화기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소리는 전깃줄을 통해서도 전달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종이컵에 실을 연결해 귀와 입에 대고 통화하는 놀이를 하곤 했는데 실이 느슨할 때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팽팽하게 잡아당겼을 때는 그토록 선명하게 들린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 소리는 딱딱한 철로를 통해서도, 가느다란 실을 통해서도, 전깃줄을 통해서도,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통해서도 전달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소리의 현상들은 나중에 배운 과학이론이 말끔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고 모든 사람이 엄청나게 다양한 소리기계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지금도 어떻게 소리가 그렇게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문득문득 경이감이 느껴지곤 한다.
    소리를 전달해 주는 물건 중에서도 가장 엄숙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동네 의원의 원장님이 우리 할머니를 왕진 오실 때 가방에서 꺼내시던 청진기였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소리장치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도구일 뿐이지만, 그것을 귀에 꽂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의사선생님과 할머니의 병환이라는 상황이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의미의 장(場) 속에 위치한 청진기는 충분히 엄숙할 수 있었다. 방사선, 자기공명, 또는 초음파가 만들어내는 정확한 신체 영상이 질병진단의 주요 수단이 된 지금까지도 청진기가 의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의학에서 소리가 중요한 진단의 수단이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물론 한의학에서는 사진(四診)이라고 해서 보고(望診), 듣거나 냄새를 맡고(聞診), 묻고(問診), 만져보는(切診) 감각적 수단을 진단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지만 그 감각들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과학적 방법을 발달시키지는 못했다. 듣는 소리의 대상도 대체로 숨소리와 목소리에 한정되어 있었고 몸의 다른 부위에서 나는 소리에 주목하지는 않았다. 한의학은 몸의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기계적 사건이 아닌 몸 전체와 자연의 관계에 주목하는 체계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의학이 듣는다는 숨소리와 목소리도 그것의 물리적 성질이기보다는 환자가 처해있는 몸 전체의 상황과 관련된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는 인간적 소리에 가깝다. 
    서양의학에서도 몸에서 나는 소리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몸을 두드려서 거기서 나는 소리로 몸 상태를 진단하는 타진법(打診法)을 발명한 사람은 식당과 여관을 경영하는 부모를 둔 레오폴드 아우엔부르거(1722-1809)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하실에 저장된 포도주 통들을 두드려보고 그 안의 상태를 예측하던 경험에서 몸을 두드려 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리컵에 담긴 물의 양에 따라 그것을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가 다르다는 평범한 사실로부터 유리컵을 악기로 개발한 사람들과 비슷한 추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의학사에 나오는 거의 모든 발견들이 그렇듯이 당시의 의사들은 이 새로운 진단법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이 진단법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나폴레옹의 주치의였던 꼬르비자르가 자신의 임상에 이 방법을 적극 활용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반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사람의 몸을 포도주 통처럼 두드려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당시로서는 무척 낯선 것이었고 사람의 몸은 단순한 소리통 이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진법이 정착되는 시기는 대체로 사람의 몸에 부여되었던 종교적 또는 신비적 요소가 점차 빛을 잃어가는 때와 일치한다.
    몸은 두드렸을 때도 소리를 내지만 호흡과 순환 등 여러 기능을 하면서 스스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 중 신체의 기능과 관련된 정보를 주는 소리로는 심장의 박동, 기관과 허파를 통해 공기가 드나들면서 내는 소리, 위장이 운동을 하면서 내는 소리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심장에서 나는 소리는 심장병 진단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진은 심전도나 초음파와 같은 첨단 장비가 보급되기 전에는 심장병 진단의 거의 유일한 수단일 정도였다.
    그러나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질병을 진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신체기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했고 그 소리를 모아서 들을 수 있는 도구도 필요했다. 한의학에서처럼 몸을 기(氣)가 드나드는 통로로 생각하거나 근대 이전의 서양의학에서처럼 네 가지 체액이 담긴 용기로 보았다면 몸에서 나는 다양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몸에서 나는 소리로 질병을 진단하는 청진은 해부학과 생리학의 발달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진단법이다. 이제 목소리나 숨소리처럼 삶의 맥락과 의미를 포함한 소리가 아닌 몸의 기관이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내는 단순한 기계적 소리가 진단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정해진 구조 하에서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적 몸이 청진과 과학적 의학의 전제조건이다. 지금 거의 모든 의사들이 목에 걸거나 흰 가운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청진기는 진단의 실제적 도구이기도 하지만 ‘과학적’ 의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청진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프랑스의 의사였던 르네 라에네크(1781-1826)는 1816년 비대한 몸을 가진 환자를 진찰하던 중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막대 전화기를 떠올리고는 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환자의 가슴에 대고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후 이 최초의 종이 청진기는 나무로 만들어진 원통형으로 개량되었고 지금처럼 두 귀에 대고 듣는 형태로 발전했다. 라에네크는 최초의 청진이 있은 이후 3년 동안 환자를 청진하여 여러 가지 소리를 기록하고 환자가 죽은 후의 부검 소견과 대조하여 이러한 소리가 어떠한 병에서 나오는가를 알아냈고 그 결과를 《간접 청진법에 대하여》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청진은 과학적 의학의 상징이었지만 사람이 아닌 복잡한 기계장치에 둘러싸인 지금의 병원 환경에서는 그나마 의사가 환자의 몸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인간적 방편이기도 하다. 청진을 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대화가 이루어지고 몸과 몸의 접촉을 통해 어느 정도의 교감이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과학의 상징이었던 청진이 이제는 오히려 따뜻한 인간적 의학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추운 겨울에 환자를 진찰하면서 차가운 금속성 청진기를 자신의 체온으로 잠시 덥혀 환자의 몸에 대는 의사를 만난다면, 그리고 진정으로 환자를 걱정하는 냉철하지만 따뜻한 눈길과 마주친다면 환자의 병은 훨씬 쉽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진기가 과학과 인간의 만남을 상징하는 귀중한 도구로 남기를 희망한다.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소리를 저장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축음기, 녹음기, 확성기, 그리고 MP3와 같은 디지털 기록장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소리를 저장할 뿐 아니라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의 파동을 이용해 몸 내부를 관찰하는 초음파 영상과 역시 초음파를 이용해 결석을 제거하는 체외충격파쇄석기가 개발되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이제 소리는 단순한 경험과 정보의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소리를 저장하거나 변형시키는 기술의 발전은 엄청나게 다양한 음악의 장르를 탄생시켰고 우리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소비한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 중 절반은 이어폰을 꽂고 있다. 이제는 눈으로 읽는 책보다 목소리로 읽어주는 책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소리의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만든 것은 소리를 이용해 몸과 자연의 사태를 파악하고 소리의 성질을 분석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고 응용한 과학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를 수동적으로 소비만 하기보다는 그 속에 녹아있을 삶의 맥락과 패턴을 찾아내어 향유하려는 인문학적 노력 또한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과학은 변형된 심장판막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정확히 판별해 낼 수 있지만 아직 한의학이 듣고자 했던 삶의 맥락과 패턴이 살아있는 숨소리와 목소리를 듣지는 못한다.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허망한 것이라 치부하기보다는 그 속에 담겨있을 삶의 숨소리를 듣는 심미안을 개발할 필요 또한 있지 않을까 싶다. 소리는 과학으로 분석하고 변형시킬 수 있는 물리적 대상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신선한 자극제이기도 하다.
    과학은 건전한 회의주의와 자유로운 상상력의 산물이다. 면역학자이고 내과의사이며 철학자인 알프레드 토버는 과학을 “사실과 가치의 관계가 진화하는 양상”이라고 했다.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소리에도 사실과 가치가 함께 담겨 있다. 그 둘이 함께 진화하는 건전한 소리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 시대 과학의 사명이다. 각종 첨단 기기가 지배하는 의료의 현장에서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청진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소리 속에 담긴 과학적 사실과 진찰 과정 중에 전해지는 다양한 삶의 패턴과 맥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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