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 ▶ <강신익의 인문의학오딧세이>의학, 과학과 인문학의 변주곡



  • 의학, 과학과 인문학의 변주곡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서양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집에서 유래한다는 사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예술이 애초에는 의술을 가리키는 말(techne)이었다는 사실, 더구나 이 책의 일부 영어 번역본에서는 예술이 과학(science)으로 둔갑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은 의학(醫學), 의술(醫術), 의덕(醫德)으로 분화된 한자어 의()는 화살에 맞고() 창에 찔려() 신음하는 사람을 약의 대명사였던 술()을 이용해 치유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이 글자와 같은 음과 뜻을 갖는 의()에는 술() 대신 무당()이 들어간다. 이처럼 오늘날 의(, medicine)라고 불리는 학문과 실천의 체계에 대해서는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이해와 해석의 방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전통에서 의학과 의술은 예술 또는 기술로 이해되기도 하고 과학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애초에는 의학이라는 학문의 체계와 의술이라는 실천의 체계가 분화되지도 않았고 치유의 행위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여겼지만, 지금은 몸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적용하여 몸에 생긴 이상을 바로잡는 거의 기계적인 행위의 체계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잠언을 인생은 짧고 과학은 길다로 바꾸는 것은 25백 년 전 의사에게 오늘날 사용되는 수술 가운을 입힌 것처럼 어색하다. 현대의학은 이론과 실천이 하나인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인 동시에 앎의 주체와 대상을 뚜렷이 구별하는 17세기 이후 서양에서 발생한 근대과학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키메라인 셈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여기에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한 전통의학의 오랜 역사가 더해진다.

    서양의 전통의학은 질병과 상해에 따르는 고통의 실존적 측면과 사람의 몸과 자연의 관계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과학적 생물의학(biomedicine)보다는 동아시아 전통의학과 더 가깝다. 물론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 치료법들은 전혀 쓸모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지만 앎과 삶의 일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아직도 때로는 비과학으로 치부되는 한의학에 의지하는 것, 그리고 서양의 산모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찬 물로 샤워를 해도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뜨끈한 온돌방에서 몸을 지지지 않으면 두고두고 고생을 한다고 믿는 것은 우리의 몸이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문화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에 대한 지식의 체계인 의학도, 자연과 역사와 문화 속을 살아가는 우리의 몸도, 그리고 자연과 역사와 문화마저도, 다른 체계들의 상황에 따라 스스로를 변화시켜 적응해 가는 진화의 체계들이다. 의학을 때에 따라 예술로 또는 과학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치유(治癒)를 때로는 창조적 행위로 때로는 과학적 사실을 그대로 몸에 적용하는 기계적 행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의학은 과학과 인문학과 예술의 요소가 골고루 섞인 종합 학문이며 실천의 체계이다. 유명한 의철학자 펠레그리노의 말처럼 의학은 가장 인간적인 과학이고, 가장 경험적인 예술이며, 가장 과학적인 인문학이다.”

    하지만 이렇게 멋진 말로 포장을 했다고 해서 과학과 인문학으로 대별되는 앎과 삶, 자연과 인간, 사실과 가치의 균열이 극복되지는 않는다. 현대의학은 여전히 가치와 실천과 인간이 배제된 자연의 객관적 사실과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과학적 의학이 발생시키는 인간적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력하다.

    이런 현상은 학문 전체의 위기 상황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 몇 해 전부터 학계의 화두로 떠오른 인문학과 이공계의 위기담론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학문의 파편화된 당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자신이 속한 학문의 위기를 말하면서 정부와 사회의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지만 정작 배우고() 묻는() 학문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로서의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은 인문학과 이공계의 위기라기보다는 인문학자와 이공계 전공자의 위기일 뿐이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학문의 위기는 점차 파편화되고 전문화되어 서로 대화하지 못하는 지식체계, 묻고 배우는 학문의 즐거움보다는 쉽고 빠르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만 매달리는 천박한 교육풍토가 그 원인이다. 그래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열쇄는 학문 상호간의 소통,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 사이의 전인적 교류다. 그리고 여기서 의학은 그러한 소통과 교류의 본보기가 된다. 의학은 과학인 동시에 인문학이고 환자와의 교류와 소통 없이는 어떤 치유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방법론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의학이 이런 깨달음에 이른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몸에 대한 기계적 접근법에 익숙하지만 변화의 큰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다. 의학과 치유의 행위를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의료인류학, 과학적 의학의 성과가 야기한 규범과 가치의 혼란을 바로잡으려는 의료윤리학, 과학적 방법론에 치우친 의학에 인간적 가치를 재충전하려는 의료인문학 또는 인문의학, 의학의 방법론과 궁극적 목적에 대한 철학적 반성인 의철학 또는 메타의학 등이 그런 흐름의 지류를 형성한다.

    이러한 변화는 의학의 새로운 연구영역들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의학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크게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초반기에 몸에 대한 기초지식을 습득(기초의학)하고 후반기엔 이 지식들을 실제 임상에 적용하는 법(임상의학)을 배웠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환자가 해결하기를 원하는 삶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하는 문제바탕학습(Problem Based Learning)이 대세다. 과거의 의학에서는 질병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삶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질병을 제거하는 것이 의학의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환자가 고통스런 삶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학의 역할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학적 의학에 인문학의 요소가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의학과 관련된 첨단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가 인문학의 새로운 통찰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크게 발전한 뇌 과학 또는 인지과학의 연구 중에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지금까지의 통념을 뒤엎을 만한 위력을 지닌 것이 많다. 인지과학에서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것을 표상으로 받아들여 우리의 몸속에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그 대상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창발하는 새로움이라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연결주의(connectionism) 또는 맥락주의(contextualism)에서 자유의지를 지닌 절대적 자아는 설 자리가 없다.

    아직 논란중이기는 하지만 면역학의 최근 연구 결과 중에도 면역이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배타적 체계가 아니라 나와 나 아닌 것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진화의 체계라는 통찰을 주는 것이 많다. 따라서 면역력이 강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의 조직에 대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자가 면역 질환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 중 하나다. 면역은 내 속에 나 아닌 것을 품어서 세상에 적응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들은 인식의 대상과 주체를 가르는 절대적 경계선은 없으며 인생은 투쟁과 화해를 통해 세상과 친해지는 과정이라는 주장을 가능케 한다. 합리적 이성 중심의 서양 철학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 통찰 또한 분리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시사점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상호 되먹임과 조화의 관계는 의학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의학은 과학과 인문학의 변주곡이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서 이 음악은 조화로운 화음이 될 수도 있고 듣기 거북한 불협화음이 될 수도 있다. 의술은 단기간에 승패가 결정되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가는 과정이어야 하며 그 과정은 무척 길고 지루할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은 이런 통찰을 담은 것으로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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