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 ▶ <강신익의 인문의학 오딧세이>플라시보, 진정성의 힘

  • 플라시보, 진정성의 힘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아직 우리나라에 무의촌이 남아있던 70년대에는 의대생들이 무료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많은 분들을 진료하다보면 준비한 약이 다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경험 많은 선배의사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곤 했는데, 그것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밀가루와 설탕을 정성스럽게 약봉지에 싸서 나눠드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구라마이신’이라 불렀는데 그 효과는 진짜 약 못지않았다. 지금 같으면 비윤리적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한 짓이다. 그나마 무료진료였으니 망정이지 정상적으로 진료비를 낸 환자에게 이런 엉터리 약을 준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의사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도 어떤 약이 어떤 병에 효과가 있는지 증명하려면 치료약을 복용한 환자를 아무런 약도 먹지 않은 환자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70년대 무의촌에서처럼 아무 치료효과가 없는 가짜 약을 복용한 환자와 비교한다. 무의촌의 치료자는 그것이 가짜인 줄 알았지만 지금의 임상시험에서는 치료자와 환자 모두 자기가 어떤 약을 주고 먹는지 몰라야 한다. 이것이 이중맹검에 의한 임의통제시험(double blind 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라는 임상시험의 황금률이다. 가짜 약이라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진짜 약은 적어도 가짜 약보다 효과가 좋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환자와 치료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지 않음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을 바탕으로 한 전인적 교류의 가능성을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야 약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다. 현대의학이 마지못해서이긴 해도 가짜 약의 효과를 인정한다는 것, 그렇지만 약의 효능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효과의 원천인 환자와 치료자 사이의 인간적 교류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현대의학의 설명은 간단하다. 플라시보는 심리적 현상일 뿐 생리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의학이 근거한 철학적 전제가 분명해지는데 심리적 효과(마음)와 생리적 효과(몸)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심신이원론이다. 심리적 현상과 생리적 현상은 서로 인과적 관계를 맺을 수 없고 다만 우연히 부수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음 사례를 보면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천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어떤 실험 결과다. 환자에게 소금과 수증기가 포함된 무해한 공기를 흡입시키면서 그 속에 자극적인 화학물질이 들어있다고 말하면, 절반 이상이 즉시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심한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다시 기계를 조작한 다음 이번에는 그 속에 기관지 확장제가 들어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즉시 안정을 되찾는다고 한다. 말 한마디로 환자에게 해를 가한 첫 번째 반응을 노시보(nocebo) 효과라 하고 다시 말로 증상을 완화시킨 두 번째 반응은 전형적인 플라시보다.

    이 실험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몸과 마음은 부수적 현상이 아닌 하나의 존재 또는 사태라고 해야 한다. 피실험자의 몸-마음은 실험자의 말에 담긴 의도 또는 기대와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나의 것이 된 실험자의 의도와 기대는 다시 나의 몸-마음과 하나가 되며 그 결과가 발작과 회복이다. 자극적 화학물질과 기관지 확장제라는 암시는 피실험자의 몸이라는 컴퓨터에 입력되는 단순한 정보나 물질이 아니라 실험자가 나의 몸-마음에 의도 또는 기대하고 있는 어떤 사태이다.

    플라시보와 노시보 효과는 나와 교류하고 있는 상대방의 기대와 의도를 나의 것으로 할 때 생긴다. 그래서 플라시보는 공감이다. 그리고 그 공감의 전제는 진정성이다. 진정으로 믿지 않는데 공감이 생길 리 없다. 남을 믿지 않고 의심이 많은 사람은 최면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플라시보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의료현장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라면 플라시보가 통제가 아닌 활용의 대상이어야 한다. 진정성 있는 기대와 의도를 보냄으로써 서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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