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 ▶ <강신익의 인문의학 오딧세이>DNA는 세포공화국의 독재자인가


  • DNA는 세포 공화국의 독재자인가?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우리 몸이, 상호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독립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는 수십조 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현대의학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그 세포들이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었다. 무질서하게 혼합되어 있던 물질에서 저절로 생긴다는 자연발생설과 반드시 이전에 존재하던 다른 세포로부터 생성된다는 설이 대립하고 있었다.

    이 대립을 극복하고 모든 세포는 다른 세포로부터만 유래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이 유명한 프랑스의 파스퇴르다. 그는 소독된 고기즙이 들어있는 유리용기의 끝을 가늘게 늘여 외부에서 다른 세포(미생물)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고기즙이 부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미생물 세포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프러시아의 개혁가이며 의학자였던 루돌프 비르쇼는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역시 다른 세포로부터만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는데 지금 이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모두 정자와 난자라는 세포가 융합한 뒤 수없이 많은 분열을 거쳐 생성된 수십조 세포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상식에 만족치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부모자식간의 유사성은 세포의 어디 또는 무엇에서 오는가?’라고 묻는다. 여기서 그들이 던진 최초의 질문이 ‘어떻게’나 ‘왜’가 아닌 ‘어디’ 또는 ‘무엇’이었음에 주목하자. 먼저 그들은 세포의 핵에 주목했다. 거기에 있는 어떤 물질이 부모의 형질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핵 속 염색체에 있는 핵산(DNA)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구조가 이중나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나선이 풀리면서 단백질을 만드는 메커니즘이 규명되었다.

    결국 부모자식 간에 전달되어 유사성을 낳는 ‘무엇’은 DNA,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단백질이다. 이로써 DNA는 지령을 내리는 두뇌 또는 지도자이고 단백질은 그 명령을 수행하는 손발과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이후 DNA의 사슬 속에 들어있을 생명의 지령인 유전자들에 대한 사냥이 시작되었고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그 초벌 청사진이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완성된 이른바 생명의 지도는 그 발표현장의 열기와는 달리 애초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 사업이 시작될 무렵의 책임자이고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장본인인 제임스 왓슨은, 이 사업이 끝나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CD 한 장에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사업의 결과를 발표할 때의 책임자였던 벤터 크레이그는 이제 유전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유전자결정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같은 사업의 책임자가 이렇게 정반대의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이후 과학자들은 비로소 DNA 이외에 유전에 기여하는 물질이나 방식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제기된 것이 후성설(後成設, epigenesis)이다. 온통 DNA에만 집중되어 있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DNA의 결과물이지만 DNA가 일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뿐더러 세포의 안과 밖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받아들여 특정 유전자가 일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신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DNA는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모든 지령을 담고 있는 명령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DNA가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독불장군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세포에서 DNA가 들어있는 핵을 제거해도 새로운 세포를 만들지 못할 뿐 자체적으로 생존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실험 결과도 DNA가 독재자나 독불장군이 아니라는 증거다. 문제는 무엇이 지배하고 결정하는지가 아니라 세포의 각 단위들이 어떻게 소통하는가이다.

    세포 내외에서 주어지는 신호에 유연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DNA는 내외의 여론과 소통하지 못하는 정부와도 같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음에 대해 뼈를 깎는 반성을 했다는 정부가 그 소통의 대상인 촛불을 철창에 가두고 그들이 소통하는 마당이었던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는 현상은 분명 대한민국이라는 세포의 건강에 불길한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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