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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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스테리와 떠도는 자궁

     



    강신익(인제의대 인문의학연구소장)

    서양 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2세기 로마의 의사 갈레노스, 16세기의 해부학자 베살리우스, 그리고 플레밍과 플로리를 꼽는다. 갈레노스는 서양의학의 토대를 쌓아 천년 이상 지속시켰고, 베살리우스는 의학을 근대 해부학이라는 새로운 토대위에 올려놓았으며, 플레밍과 플로리는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감염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중에서도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데, 사람의 죽은 몸을 해체하여 그 구조와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해골의 정확한 모습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생각에 잠긴 자세로 표현함으로써 과학인 동시에 예술인 르네상스 학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가 그린 해부도 중에 여성의 생식기를 그린 것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거기서 여성의 생식기를 떠올리지 못한다. 시험 삼아 학생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이것이 무엇을 그린 것이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얼굴을 붉히며 남성의 생식기라고 대답한다.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은 갈레노스 이래로 잘못 전해진 거의 모든 해부학적 오류를 바로잡았지만 여성의 생식기만은 예외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여성의 생식기를 남성의 그것과 똑같이 그렸을까?

    그 답은 그가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공부한 지식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속에 숨어있다. 르네상스의 지식인으로서 그는 틀림없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었을 터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과 여성의 해부학적 구조가 근본적으로 같다고 보았다. 다만, 자궁의 환경이 좀 더 뜨거우면 태아의 성기가 더 발달되어 몸 밖으로 돌출되지만 자궁이 차가우면 안쪽으로 접혀진다고 했다. 뜨거움과 차가움, 안과 밖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구조는 동일하다고 본 것이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언어에는 여성의 난소를 지칭하는 말이 따로 없었으며, 음경(penis)과 질(vagina)을 함께 지칭하는 말과 고환과 난소를 함께 지칭하는 말을 썼다고 한다. 여성에게도 음경과 고환이 있었던 것이다. 베살리우스의 여성생식기 그림에 보이는 난소와 질의 모습이 고환과 음경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생식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일컫는 말이 같다고 양성을 평등하게 바라본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여성은 원형(原型)인 남성의 부족을 뜻했다. 이렇게 부족한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열등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취약한 존재로 이해되었다. 기독교 창세설화에 따르더라도 남성과 여성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하나님은 남성인 아담을 먼저 창조했으며 그가 적적할 것을 염려해 갈비뼈를 하나 뽑아 여성인 이브를 창조했으니 말이다. 이 설화는 은근히 여성은 남성의 일부일 뿐이라는 암시를 준다. 게다가 이브는 아담을 꾀어 선악과를 먹게 했으니 인간의 원죄는 여성의 사악함에 있는 것이 된다.

    서양의 역사에서 여성은 이렇게 육체적ㆍ도덕적으로 취약한 존재로 나타난다. 그들은 이 취약함의 근거를 남성에게는 없는 자궁에서 찾았는데, 이것은 한 장소에 있지 않고 온 몸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신경증에 자궁을 뜻하는 히스테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여성에게만 있는 자궁을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 중세에 성행한 마녀사냥도 이러한 잘못된 믿음과 무관하지 않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음(여성)과 양(남성)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이상으로 삼을지언정 한 성의 우위를 당연히 여기지는 않는다. 양성평등의 이념을 서양이 아닌 동아시아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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