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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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의 가장자리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우리 몸은 수백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포들은 모두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수정란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모두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진다. 하지만, 발생과정에서 어떤 것은 해독작용을 하는 간세포가 되고 어떤 것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되며 또 다른 것은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된다.

    현대 생물학은 조상의 형질이 후손에 전달되는 유전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쾌거를 이루어냈고 인간의 모든 유전정보를 담은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세포로 분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우리가 몸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몸을 잘 설계된 기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고장 난 자동차의 부품을 갈아 끼우듯 신체 부위를 교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그런대로 큰 성과를 거두어, 지금은 병든 고관절을 인공관절로 대체할 수도 있고 망가진 치아의 기능을 임플란트로 대신할 수도 있다. 인공장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신장이나 간장 또는 골수를 이식해 건강을 되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망가진 장기를 다시 자라나게 하지는 못한다. 줄기세포가 큰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그것을 특정 기능을 하는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물론 머지않아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인체를 유전체라는 설계도에 따라 제작된 기계로 바라보는 한 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설계도라는 관점에서는 구성요소들 사이의 연결망에 의해 새로이 발현되는 질서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성요소들이 서로 결합해서 수행하는 기계적 기능이 아니라 그것들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내는 자기조직화의 창발적 과정이다. 기계의 부품들은 서로 맞물려 힘을 전달하기도 하고 각 부위의 기능을 조정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생각을 하거나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기계는 특정기능을 수행하도록 부여된 인위적 질서의 체계다. 따라서 인간이 부여한 질서의 범위를 벗어나면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명은 질서와 무질서를 오가며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과정이다. 기계의 부품이 스스로를 조직하여 완성된 기계가 될 수는 없지만 수정란은 다양한 성질의 세포로 분화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갖는 유기체로 성장한다. 기계는 인간이 창조한 설계도에 따라 제작되지만 생명은 스스로 발육하고 진화한다. 유전정보는 생명의 설계도가 아니라 발육하는 생명이 끊임없이 참조해야 할 기준일 뿐이다.

    기계의 질서는 상명하달로 유지되며 그 명령계통이 망가지면 파멸하고 말지만, 생명의 질서는 세포 속 분자들의 연결망, 세포들의 연결망, 조직들의 연결망, 장기들의 연결망, 그리고 개체들의 연결망 속에서 자연스럽게 창발되어 상위 질서로 편입된다. 따라서 생명은 기계에 비해 다양한 스트레스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건강한 젊은이의 맥박 수는 일정 범위에서 수시로 변한다. 그래야 갑자기 운동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적절히 반응하여 생체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위 단위의 무질서를 통해 상위의 질서를 보장받는 것이다. 반면에 심장병을 앓는 사람의 맥박은 거의 변화가 없어서 스트레스에 탄력 있게 반응하지 못한다. 하위 단위의 질서가 오히려 상위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다. 건강한 노인의 경우는 심장병 환자만큼은 아니지만 젊은 사람에 비해 맥박의 변화 정도가 훨씬 적다. 생명의 질서는 다양한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구성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발현한다.

    복잡계 과학에서는 이를 ‘자유를 위한 질서’라고 한다. 우리가 질서라 부르는 것도 결국은 구성요소들의 자유를 위한 것이며 그 자유를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질서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새로운 질서는 하위 단위 또는 과거의 안정된 질서와 예측이 불가능한 혼돈의 경계면에서 발생한다.

    아직 우리는 기계적 질서에 취해 혼돈의 가장자리로 다가가기를 꺼린다. 하지만 혼돈에 다가가려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새로운 질서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강요된 질서가 아닌 창의적 혼돈이 미래의 희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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