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 ▶ <강신익의 인문의학오디세이>진화에 대한 오해


  • 진화에 대한 오해: 지배하거나 친해지거나

     



    강신익(인제의대 인문의학연구소장)

    내년은 진화론의 고전 <종의 기원>이 발간된 지 15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책에서 다윈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공통 조상에서 유래해 지금처럼 복잡ㆍ다양해졌으며, 그 과정인 진화는 변이, 유전, 선택의 원리에 따르는 필연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간단한 원리는 5년간의 탐험과 관찰 그리고 28년간의 사색을 통해 숙성해낸 것인 만큼 논리적 허점이 거의 없고 풍부한 경험적 증거로 뒷받침된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에서 다윈의 진화론만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론도 드문데,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그 논쟁의 상당 부분은 진화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첫 번째 오해는, 진화는 진보이며 인간은 그 진보의 최정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언어와 의식을 발달시킨 뇌의 진화를 든다. 하지만 자연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화의 핵심이다. 자연은 가장 많은 자손을 남긴 형질을 선택할 뿐, 인간의식의 고귀함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자연의 입장에서 의식과 언어는 생존에 유리해서 살아남은 여러 형질 중 하나일 뿐이다.

    진화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고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 자연계의 일반 원리이고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해석은 진화를 제국주의적 침탈을 일삼던 당시 열강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 사회진화론자들의 것이다. 그들에게도 진화는 역시 진보다. 자본주의를 발달시킨 서구인은 진화의 정점에 서 있지만 미개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인은 진화가 덜된 종족이다.

    그들은 다윈이 소극적으로만 인정했던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논리를 약소민족을 지배할 이데올로기로 발전시킨다. 그리고 교묘하게도 적자(適者)를 강자(强者)로, 생존을 독식(獨食)으로 바꿔놓는다. 이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일본인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자연도태(自然淘汰)로 오역하여 조선을 포함한 약소국들은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우리말로 번역된 몇몇 서적들이 아직도 그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것은 대부분 강하거나 영리한 자가 약하거나 멍청한 자를 잡아먹거나 이용하고 지배하는 장면들이다. 뻐꾸기는 개개비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어미 개개비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열심히 그 알을 품어 부화시킬 뿐 아니라 먹이를 먹여 부양까지 한다. 이렇게 자란 새끼 뻐꾸기는 아직 부화하지 않은 개개비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자연은 가장 영리한 사기꾼에게 가장 큰 상을 준다. 바로 이것이 사회진화론자와 제국주의자,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이 믿고 싶은 진화의 논리다.

    그러나 자연은 경쟁과 함께 다양한 종간ㆍ종내 협력을 진화시켰다. 우리의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는 애초에 우리 세포와 경쟁하던 세균이었지만 오랜 기간 공존하면서 아예 우리 세포 속에 입주하여 서로 득을 보는 관계로 진화했고, 우리의 창자 속에 사는 장내세균들은 서식처를 얻는 대신 우리의 소화를 돕는다.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 사이에도 다양한 경쟁과 협력의 관계가 선택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들에게 개체들 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대응하는 방식은 동물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체로 지배와 친화 두 가지 중 하나다. 지배의 전략은 격렬한 싸움을 통해 우열을 가리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침팬지의 세계에서는 격렬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가장 강한 수컷이 여러 암컷을 독차지한다.

    아프리카 콩고 지역에 사는 보노보는 두발로 서는 자세가 인간과 흡사하고 발정기가 따로 없이 아무 때나 성행위를 하며 그 자세도 사람처럼 정배위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인간과 가장 닮은 동물로 꼽힌다. 특이한 것은 그들이 성(性)을 화해와 협력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들은 서로 물어뜯고 때리는 대신 바로 성행위에 돌입하며, 동족을 죽이는 일은 단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다고 한다.

    자연은 자비롭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자연을 자비롭거나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그 속을 살아가는 뭇 생명들이다. 생명은 침팬지처럼 지배와 복종의 전략을 택할 수도 있고 보노보처럼 친화의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택했을 때 더 살맛나는 세상이 될지 판단하는 것은 자연이 아닌 우리 인간들이다. 진화는 법칙이지만 또한 선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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