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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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의 이빨, 자본의 발톱

     

     

     


    강신익(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소장)

    우리 인간의 조상이 지구상에 나타난 약 12만 년 전부터 밭을 갈고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한 약 1만 년 전까지 사람들은 주로 나무의 열매와 자연적으로 자란 곡식을 채취하거나 만만한 동물을 사냥하면서 살았다. 인구는 별로 늘지 않았고 풍족하지도 않았지만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는 있었다. 가끔 맹수들이 아이들을 물어가기도 했고 열매를 따러 올라간 나무에서 떨어져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전염병은 별로 없었다.

    농경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경작이 가능한 식물은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주로 한두 가지 곡식에서 영양을 취했다. 먹을 것의 양은 많아지고 인구도 늘었지만 필수영양소가 부족해 영양실조가 많았다.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쓰레기가 쌓였고 이것은 자연의 정화능력을 초과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1/4을 죽음으로 내몬 페스트가 이 시대 질병을 대표한다.

    이후 산업혁명과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가 축적되었지만, 쥐꼬리만 한 봉급에 불결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노동자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고 많은 사람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렇게 폐결핵은 산업시대의 대표적 전염병이 되었다. 페스트나 폐결핵과 같은 세균성 질병들은 부의 분배를 통해 대중의 영양상태가 개선되고 도로와 하수도가 정비되어 위생과 주거의 조건이 좋아지면서 크게 줄었고, 20세기 중반 항생제가 발명되면서 완벽한 박멸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도 대규모 전염병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전 세계에서 4천만 명을 죽인 인플루엔자가 이 시대의 대표 전염병이다. 이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항생제나 소독과 같은 표준 처치 법에도 반응하지 않고 자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인간의 공격을 피한다. 20세기 후반에는 유행성 출혈열, 에볼라, 사스, 에이즈와 같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아직 많은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소독이나 검역을 통해 병원균의 진입을 차단하고 침입한 세균은 항생제로 다스리며 유행하는 바이러스 성 전염병에 대한 예방백신을 투여하면 많은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이러한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신종 전염병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균도 바이러스도 아닌 새로운 병원체가 출현한 것인데 이것은 자연이 아닌 인간이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전염병과는 많이 다르다.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이 신종 전염병은 동족의 살을 먹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뉴기니 동부 고지대 포레 마을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쿠루라는 병은 죽은 자의 시신을 먹는 풍습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고, 1990년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그리고 지금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뜨거운 쟁점인 광우병은 소들에게 동족의 살과 뼈로 만든 사료를 억지로 먹게 한 때문이라고 한다.

    포레마을의 여인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위해 죽은 자의 살을 먹었지만, 대규모로 쇠고기를 생산하는 목축업자들은 싼 값에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소들에게 억지로 죽은 동료의 시신을 먹였다.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므로 당장은 문제가 안 되겠지만 우리가 이 고기를 먹었을 때 인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적지 않다.

    과거 페스트와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때 우리 조상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연의 이빨이었다. 하지만 광우병의 위험이 있는 고기를 먹도록 강요하는 것은 자연이 아닌 거대자본의 발톱이다. 이제 그 발톱을 길들이는 방법을 찾아야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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