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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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염병과 의학의 공진화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 소장)


     

    생명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줄곧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려왔다. 중세 유럽 인구의 1/3을 죽인 페스트와 불과 몇 달 사이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 4천만 명을 희생시킨 스페인 독감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례일 뿐이다. 그런 대규모 역병이 발생했을 경우 인간은 대체로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1854년에 이르면 우리가 이런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백의의 천사로 알려진 나이팅게일은 38명의 훈련된 간호사를 이끌고 전쟁터에 차려진 야전병원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천사들은 병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침대의 시트와 의복을 세탁하며 자주 환기를 해 주었다. 등불을 들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그들의 고통에 귀기울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 그 병원의 사망률은 42%였지만 6개월 뒤 2.2%로 격감했다.

    같은 해 콜레라가 극성을 부리던 런던에서는 존 스노라는 의사가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당시에는 세균과 질병의 관계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 병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조사해 그 원인을 찾아내려고 했다. 콜레라 환자들의 집을 방문해 그들의 생활방식을 조사하고 환자들의 분포를 지도에 표시했다. 그 결과 콜레라 환자의 대부분이 브로드가의 수도펌프에서 길은 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근처에 있던 오물구덩이에서 배어나온 배설물이 식수를 오염시켰다고 결론지었다. 그 수도펌프의 꼭지를 제거한 결과 이후 환자 수는 크게 줄었다.

    당시에는 전염병의 원인이 공기 중 나쁜 공기라는 미아즈마 학설과 환자와의 직접 접촉에 의해 전달되는 미세한 무엇이라는 접촉설이 대립하고 있었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접촉설이 진실이지만, 나이팅게일과 스노의 성공은 각각 미아즈마 학설과 접촉설을 강화하는 증거였다. 두 학설의 승부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같은 해 이탈리아에서는 이후 의학을 과학의 단단한 토대위에 올려놓을 중대한 발견이 있었다. 필리포 파치니라는 사람이 환자의 가검물에서 콜레라균을 분리해낸 것이다. 하지만 30년 뒤 독일의 유명한 세균학자 코흐가 이 세균을 재발견할 때까지 그 사실을 알거나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학적 사실의 발견은 사회와 문화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때에라야 그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데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1854년은 전염병 예방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된 해이면서 전염병의 실체적 원인이 발견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학이 깨끗한 침구와 의복, 신선한 공기와 햇빛, 따스한 위로의 눈길과 정성, 그리고 위생적 식수와 도로 대신 실험실에서 분리된 세균에만 매달리게 된 것은 그만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이후에도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콜레라균을 재발견하고 그것이 콜레라의 원인임을 증명한 코흐에게도 강력한 학문적 적이 있었는데 페텐코퍼라는 위생학자였다. 그는 스스로 코흐의 실험실에서 배양된 콜레라균이 담긴 음료를 단숨에 마시고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코흐의 명제를 스스로의 몸으로 반증한 셈이다. 하지만 30년 전 파치니의 발견이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제 콜레라는 예전처럼 심각한 전염병이 아니다. 대신 광우병과 같은 신종 전염병이 문제다. 불행히도 아직 우리는 그 병의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에게 익숙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원인이 아니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동물성 사료가 주요 요인일 것이라는 점에도 대체로 동의한다. 문제는 병을 일으키는 구체적 물질이기보다는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면서 이익만을 추구한 인간의 욕망이다.

    나이팅게일과 스노가 전염병의 물질적 원인이 밝혀지기도 훨씬 전에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질병의 객관적 원인보다는 그 질병으로 죽어가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광우병은 인간과 소를 포함한 자연의 병이며 의학은 아직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의학이 그 원인을 둘러싼 논쟁을 벌일 동안에도 우리는 자연의 고통에 주목하여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의학은 자연의 정복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질병과 함께 진화하는 인간 활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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