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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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사의 뒷골목



    강 신 익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연구소 소장)






       보통 의학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위대한 도전의 역사로 기록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리스천 바나드가 세계최초로 심장이식을 성공시킨 지 40년이 지난 지금 간, 신장, 췌장, 각막 등의 이식은 거의 일상적 치료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정상 부부관계가 아닌 인공수정에 의해 만들어진 배아를 임신한  어머니가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를 출산한 1978년 이후 전 세계에는 100만 명이나 되는 시험관아기가 태어나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 세계최초의 시험관아기인 루이스 브라운이 벌써  28살이 되어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해 임신을 하고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제 의학에서 불가능이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논문을 심각하게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최고과학자에서 하루아침에 과학 사기꾼이 되기는 했지만, 황우석 전교수의 배아줄기세포는 생체조직의 재생이라는 최후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쯤 되면 의학의 역사는 끊임없는 성공의 연속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처절한 실패의 아픔도 함께 있었음을 의학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이제 그러한 실패로 얼룩진 의학사의 뒷골목을 잠시 거닐어보자.

    과학적 의학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란 기대가 점차 고조되던 20세기 초 인류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재앙을 경험한다. 스페인 독감으로 이름 붙여진 이 병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부터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중 절반인 2500만이 25주라는 짧은 기간에 사망했다. AIDS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25년 동안 같은 숫자였으니 그야말로 끔찍한 재앙이었던 것이다.

    인류를 질병에서 구원해줄 것으로 믿었던 의학은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항생제가 발견되기 전이었지만, 이 병은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항생제가 있었더라도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유행하고 있는 조류독감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 원인균이 바로 이 바이러스의 변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조류독감으로 죽은 닭과 오리를 땅에 파묻고 감염지역의 출입을 통제하는 외에 뾰족한 의학적 치료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1907년부터 1930년까지 미국 뉴저지 주 트렌턴 주립병원의 원장이었던 정신과 의사 헨리 코튼은, 정신병이 신체 어떤 부위에 생긴 감염 때문에 생긴다는 이상한 이론으로 무장한 채 수천 명의 정신병 환자를 수술실로 끌고 가 그들의 치아, 편도선, 담낭, 췌장, 심지어는 결장의 대부분을 도려내는 수술을 감행했다. 그는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학회에 발표했고 명망 있는 정신과 의사들이 그의 치료법에 경탄했다. 30%에서 45%에 이르는 사망률이 문제가 되어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이미 확보한 명망과 지위에 가려져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사장되었다. 그는 병원장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개인 병원을 열어 수많은 사람들의 신체를 훼손했고 이런 일은 1950년대 말까지도 계속되었다.

    이상이 뒷골목에서 바라본 의학사의 단면들이다. 지금 이렇게 정신병 환자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거의 범죄행위다. 하지만 멀지않은 과거에 그런 행위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해졌음을 기억하자. 지금의 의학은 스페인 독감과 같은 치명적 전염병의 원인과 감염 경로를 밝힐 수는 있지만, 그 바이러스들은 우리가 백신을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1년 전 우리는 줄기세포가 인류를 모든 질병에서 구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었다는 사실, 그리고 줄기세포는 신체에 이식되었을 때 대부분 암으로 자란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하자. 그래도 코튼처럼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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