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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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윤리, 그 스캔들의 역사



    강신익(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소장)




    줄기세포를 둘러싼 윤리적ㆍ과학적 논란의 광풍이 전국을 훑고 지나간 지도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이따금은 줄기세포의 환상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있긴 하지만, 이제 줄기세포가 모든 병을 치료해줄 것이고 한국경제의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뜨거운 논란 속에서도 믿고 싶은 것과 믿을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터득한 까닭이다. 그리고 이제는 윤리가 과학과 경제의 발목이나 잡는 훼방꾼이기보다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균형추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 엄청난 스캔들이 생명윤리의 어머니 역할을 해 낸 셈이다.

    우리는 흔히 의학의 역사가 의학자들의 영웅적인 성공담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학사를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성공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와 스캔들로 얼룩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의학사의 스캔들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나치 독일 의사들에 의해 자행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이다. 그들은 마취도 하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을 극한의 조건에 방치한 채 죽기 전까지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를 관찰하는 등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각종 생체실험을 했다. 현대 생명윤리의 효시가 된 뉘른베르크 강령(1947)은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독인인 의사들을 단죄하기 위해 열린 전범 재판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의학적 목적을 위한 인체 실험의 경우 반드시 실험대상자의 자발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천명된다.

    하지만 생명윤리가 추상적 선언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1960년대 초 전 세계 46개 나라에서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가 1만 명 가까이 태어났는데 이는 임산부들의 입덧 방지를 위해 처방된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의 부작용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의학계를 충격에 빠트린다. 우리가 헬싱키 선언으로 알고 있는 세계의사협회의 선언문(1964)은 이 스캔들의 충격 속에서 탄생된 것이다. 이 문서는 뉘른베르크 강령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는데,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반드시 독립적 심의위원회에서 연구의 과학적ㆍ윤리적 타당성에 관한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추가되었다. 이로써 현대 생명윤리의 양대 원칙이 세워졌는데 피험자의 자발적 동의와 연구계획에 대한 독립적 심사절차가 그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과학적 성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 부풀어 이러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생긴 사건이다. 이후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들이 연구윤리와 관련된 규정을 제정했고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교육인적자원부 등 관련부처도 연구계획의 사전심의와 그 결과의 사후 관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원칙이 세워진 지 40년도 더 지난 다음의 일이다.

    나치 의사를 단죄한 미국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 원칙에 충실했던 것도 아니다. 미국은 전후 처리과정에서 철저하게 이중적 잣대를 적용했다. 나치 독일의 생체실험은 철저히 응징했지만 일본 731부대의 만행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그 실험의 결과를 미국에 넘겨주는 대가였다. 생명윤리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미국 정부가 1932년부터 40년 동안이나 터스키기라는 흑인 거주 지역에서 행한 매독 연구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미국 보건부는  매독의 자연경과를 관찰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병을 무료로 치료해 준다는 거짓말로 매독에 걸린 400명의 흑인 남성을 모집한다. 이들은 채혈과 뇌척수액 채취 등 위험이 따르는 검사를 받으면서 자신들이 최첨단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질병의 경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도중 페니실린이 발명되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주어졌지만 이와 관련된 정보를 주지도 않았고 치료를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28명이 죽고 100여명이 상해를 입었으며 19명의 선천성 매독 환자가 태어났다.

    우리가 겪은 스캔들이 이 같은 희생이 있기 직전에 마무리된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 스캔들로부터 진정한 과학이 무엇이고 윤리적 논의가 과학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배우지 않는다면 언젠가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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