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인문의학 오딧세이_강신익
  • ▶ 생명과학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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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학에 대한 오해



    강신익(인제의대 인문의학연구소 소장)



    영국에 유학중이던 10년 전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한 유명 방송인의 이야기였는데, 그녀는 어머니와 친언니를 유방암으로 잃었으며 자신 또한 그들과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했다. 병원을 찾아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결과 BRCA1이라는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방암 유전자로 알려진 이 변이를 가진 사람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통상적 진단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 이후 그 환자는 남편과 함께 유방암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유방 절제수술을 해 줄 것을 요구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양쪽 유방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과 함께 재건성형수술로 절제된 유방을 복원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끝이 난다. 그런데 해설자의 마지막 멘트가 무척 인상적이다. “절제된 유방에 대한 정밀한 해부병리학적 검사 결과 그녀의 유방조직에서는 어떤 암세포도 발견되지 않았다!” 

    뭔가 둔하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정말 유방암 환자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유방암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어떤 암세포도 발견되지 않은 유방에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BRCA1이라는 유전자 변이가 그 유방암의 실체일까? 만약 유전자가 어떤 기계의 설계도와 같은 ‘생명의 지도’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현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해도 되는 것일까? 유전자라는 것은 30억 개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염기 배열 순서에 아주 작은 변화를 일으킨 것에 불과한데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질병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은 생명과학과 의학을 철학적으로 반성한 책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모든 암이 그렇듯이 유방암의 발병기전 또한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모든 병을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믿는 과학자들은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 나선다. 그 결과 BRCA1이라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밝혀냈는데 이 유전자에서 발견되는 100여종의 변이 중 몇 가지가 암의 증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런 변이를 가졌다고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무조건 높아지지는 않는다. 유방암 환자의 95%는 알려진 유전자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통계도 있다. 종양증식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정말로 증식을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유방암과 난소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다. 그래서 가족력과 BRCA1의 변이를 함께 가졌을 경우 그 발병확률이 85%로 높아진다. 결국 이 환자는 85%의 확률 때문에 이 엄청난 수술을 자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례는 전체 유방암의 5%에서 뽑아낸 것이며 그 중에서도 발병 전에 수술을 감행한 특별한 경우라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리고 유방암이 유전자에 의해 생긴다는 강력한 인상만이 남는다.
    현재 유방암 중 5%만이 유전자로 설명된다면 나머지 95%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유전자와 관계없이 유방암에 걸린 환자들의 이야기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지는 않지만 유방암의 실상에는 더 가까울 수 있다. 가족력과의 상관성이 높은 것으로 보아 이 중 상당 부분이 추가로 발견될 유전자로 설명될 가능성은 무척 높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 또한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1년 전에 겪었던 줄기세포 파동 또한 5%의 성과로 100%의 가능성을 예단한 우리들의 조급성과, 생명을 마치 부품들을 조립해서 만든 기계로 생각하는 과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 온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지만, 그 유산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 또한 아프게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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