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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 진짜 가난, 진짜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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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가난, 진짜 부자



    조 풍 호(시인)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모른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햐암*의 뜻에는 내 분인가 하노라.

                                                                    - 윤선도, ‘만흥(漫興)’ 제1 수



    주먹밥과 표주박 물

    ‘띠집’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상징합니다. 안빈낙도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킨다.’는 뜻입니다. 농경 사회에서의 ‘가난’은 굶주림을 의미합니다. 안빈낙도를 노래한 조선 선비 중에 주려 죽은 이가 없으니 여기서의 가난은 주려 죽는 백성들의 가난과는 무관합니다. 고산(孤山)이 국부(國富)로까지 불렸던 해남 윤 씨의 종손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사대부들에게 가난은 그저 선비가 지향할 은일(隱逸) 세계의 성리학적 수사(修辭)입니다. 정치적 부침(浮沈)에 대한 그들만의 위안이지요.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이다.

     

     서정주 시인의 시 ‘무등(無等)을 보며’의 결미입니다. 계(溪)로 퇴(退)한 성리학적 은일지사의 냄새가 난다는 의미에서 조선 선비들의 그것과 일맥(一脈)입니다. 가시덤불 같은 수탈의 근대를 헤쳐 온 민중들의 기아(飢餓)나 가난과는 무관하지요.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의 결미입니다. 가난에 대한 소박하고 정직한 고백입니다. 가난은 외로움도 사랑도 그리움도 버릴 수밖에 없는 실제적이고 즉각적인 고통입니다. 시닉학파의 조소와 풍자를 위한 종교적 수행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요.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직후 아시아의 최빈국이었습니다. 그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빠는 전쟁터로 가고 삼촌은 중동의 사막으로 가고 누나는 독일로 갑니다. 한 해에 한 번이나 먹을까 말까 했던 삼겹살이 돈 없는 서민의 음식이 되었으니 이제 굶주림은 아프리카 초원의 소똥으로 만든 움막안의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리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대부분은 어린이들이지요.


    *시골뜨기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

     계영기원(戒盈祈願) 여이동사(與爾同死)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조선시대 홍삼 무역으로 거상(巨商)이 된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는 계영배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계영배는(戒盈杯)‘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입니다. 물이나 술을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쏟아져 버리는 사이펀 원리를 이용한 잔입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과욕을 경계한 잔이기도 하지요. 말년의 임상옥은 백성들을 위해 평생 벌어들인 재산을 내어 놓습니다. 그리고는 시골 마을에서 채소를 가꾸고 시(詩)를 쓰며 여생을 보내지요.

     제주도 설화 중에 가믄장 아기 설화가 있습니다. 거지 부부의 셋째 딸로 태어나 부자로 만들어 준 아기 이야기입니다. 검은 나무 그릇으로 먹여 살린 딸이지요. 누구 덕에 살았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부모 덕’이라고 말하지 않고 ‘배꼽 아래 자궁 덕’이라고 말하는 당찬 아기입니다. 쫓겨나서도 원망하지 않고 땅을 일구고 볍씨를 뿌려 풍년을 만드는 아기이지요. 부모와 다시 화해하고 땅에 감사제를 지내는 예쁘디예쁜 아기입니다. 땅은 곡식의 자궁입니다. 가믄장 아기가 환생한 것이 김만덕입니다. 기녀였으나 거상(巨商)이 된 여인입니다. 제주민이 없는데, 재산이 무슨 소용이냐며 전 재산을 풀어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들을 구원하는 여인이지요. 선행이 알려져 소원을 묻자 남자들의 영역인 금강산 유람을 소원으로 말하는 당찬 여인입니다. 가득 채우자마자 사라지는 계영배는 세월입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술잔이지요. 바위는 천년을 늙어도 거기 있으나 사람은 베옷입고 꽃신신고 산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손은 빈손이 빈손을 잡고 가슴에 포개어질 뿐이지요.


    * 재산은 고르기가 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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