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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아랫목의 온기


  •                                               아랫목의 온기

     

     



    조 풍 호(시인)




       
    김영일 사진 <곤한 날들>          


    키를 쓰다

    예전엔 늦봄도 겨울 같았습니다. 문고리가 봄에도 손에 쩍쩍 달라붙었죠. 밥그릇들과 찬그릇들과 종지는 부엌에서 방으로 상을 내오는 사이 밥상에 들러붙었습니다. 바람난 것들 붙어먹듯 떼어내기가 힘들었지요. 자다가 오줌 싸는 일은 흔했습니다. 큰형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 오줌을 쌌지요. 이불의 솜은 목화솜입니다. 오줌을 쌌다고 빨 수 있는 솜이 아니었지요. 호청은 뜯어 빨고 솜은 말렸다가 나중에 솜을 타는 기계로 다시 타야 했습니다. 지린내와 구린내가 은근하게 남아 있던 이불이 그래서 그리운 것이지요.

    밖에서 다녀온 사람들은 아랫목 이불 속에서 곱은 손을 녹였습니다. 손님이든 식구든 어머니는 아랫목 이불 속에 먼저 손을 녹이게 했지요. 요 밑엔 밥그릇이 덥혀 있어 요는 보온 밥통이기도 했습니다. 방바닥은 불기운에 검게 타 있기도 했지요. 아픈 이들은 아랫목에서 아프고 젊은 것들은 윗목에서 견디며 밤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산미테’라는 곳은 정말 산 밑에 있었습니다. 이야기꾼 할머니가 있던 곳이지요. 이불 하나에 아이들은 발을 집어넣고 이야기를 듣다 무서운 대목에서 삐져나온 발목을 이불 속에 집어넣느라 한바탕 이불 뺏기 싸움에 경악과 킬킬거림이 넘쳐나기도 했습니다.

    벽장에는 원기소라는 영양제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알만 먹어야 되던 영양제이지요. 고기 굽는 곁에 있는 애완용 개처럼 끙끙거리게 하던 약입니다. 이불과 베개를 쌓아서 기어코 훔쳐 먹고 어머니께 혼이 나던 시절이지요.

     

     

    호랑이와 함께

    카시밀론(캐시밀론) 이불은 도시인으로 편입된 것을 상징합니다. 합성수지를 원료로 한 실로 만들었지만 부피성과 보온성이 풍부해서, 인도의 카슈미르 지방의 캐시미어 염소로 만든 이불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지요. 밍크 이불도 있었습니다. 이름은 족제비과의 동물이지만 무늬는 호피에 더 가까워 보였지요. 새끼에게 함함 하는 고슴도치보다 더 부드러운 이불입니다. 그러니 침대는 아직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윗부분을 덥히는 난로 문화가 있던 유럽에서야 침대가 어울리지만 아래쪽을 따뜻하게 하는 온돌 문화의 우리나라에선 이질적인 가구이지요. 그러니 돌침대처럼 침대를 온돌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전기장판이라도 깔아야 침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불은 매트에 가까워서 사촌들이 놀러 오면 레슬링과 덤블링의 쿠션이었습니다.

     

    이젠 사촌도 연락처가 끊기고 먼지 난다고 호통치던 부모님도 없고 덩그렇게 옥 매트가 놓여 있으니 이불이 두꺼울수록 추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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