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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편지글의 향기 2





  • 편지글의 향기2


                                                                                                      조 풍 호(시인)

     

     




    밥 냄새

    19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됩니다. 농촌의 노동력이 도시로 몰려들지요. 지하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수출에 목을 맵니다. 가격 경쟁을 위해선 생산비용을 줄여야합니다. 만만한 게 노동자의 임금이지요. 도시빈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편지를 씁니다. 편지 봉투엔 서울 학생이 써 준‘본가입납(本家入納)’잉크 자국이 천천히 마릅니다. 우표는 침으로 바르고 봉투는 밥풀로 바릅니다. 편지에서 고향의 가마솥 밥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기체후 일향 만강하옵시고 가내 두루 평안하온지요로 시작되는 부모님 전상서는 이제 막 세 살로 접어든 막내 ‘깐돌이’의 안부까지 물어야 끝이 나지요. 그리고 묻는 쪽이 건 답을 하는 쪽이 건 염려하여 주는 덕분이나 덕택으로‘잘 지내고 있다.’를 강조합니다. 기실 염려한다는 것은, 잘 지낼 수 없다는 걸 안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말이지요.

     

    197-80년대엔 크리스마스나 국군의 날이 다가오면 군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의무적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검은 양복을 빼입고 신발만 흙 묻은 등산화인 어설픈 공비들이 출몰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이들은 간첩이어야 하던 시절입니다. 우리들은 열심히 편지를 썼습니다. 못생겨서 뒤죽이 박죽이로 불렀던 막내 누나를 푸른 눈동자만 빼고는 수술 칼 한군데도 건드리지 않고 ‘비비안 리’로 만들었지요. 당연히 국군 아저씨들은 매형과 자형이 되어 줄을 섰습니다. 여학생들 중엔 펜팔 끝에 결혼에 골인까지 했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대개는 더블 백을 메고 빵집에 들어가는 가무잡잡한 군바리를 멀리서 지켜보다 줄행랑을 치는 것으로 2년여에 걸친 판타스틱 드라마는 종영을 맞습니다. 편지글은 방송을 타기도 합니다. 엽서에 꽃잎을 풀로 발라가며 사연을 적어 보냈죠. 하지만 떠난 연인은 성우의 애절한 목소리와 송창식의 세레나데에도 무소식이었습니다. 헤어진 이유 중엔 방 한 칸 구하기 힘든, 가난이 있었던 것이지요.


    김영일 사진 <편지글의 색깔>

     

     



    편지지를 찾습니다

    화가 이중섭은 그림이 곧 편지였습니다. 화려할수록 서글픈 사연이었죠.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읽는 이들은 누구나 수신인이 되는 동화로 쓴 편지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읽어야 하는 편지이지요. 조선의 기녀들은 시를 편지로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젠 편지글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편지는 있지만 인문학적 먹향이 그윽하던 벗들의 편지글이 없고 애틋하던 연인들의 잉크 번진 편지글이 없는 것이지요. 편지지는 사라지고 쪽지는 남습니다. 쪽지가 숨은 곳은 휴대폰입니다. 금붕어가 입 한 번 뻐금거릴 사이에 당도할 쪽지입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데이트 약속을 정할 땐 ‘마리포사 커피숍’이든 ‘태화백화점’이든 ‘입구’였습니다. 들어가서 기다리기엔 커피값이 아깝던 때였죠.‘입구’에 서서 지하도에서 쏘옥 얼굴이 올라올 때마다 하마 조바심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의 구 할은 되던 그 ‘기다림’이 사라졌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어디쯤이야?’라는 쪽지를 날리면 그만이니까.

     

    요즘 들어 많이 아픈 날엔, 이슬을 털며 떠날 임을 향해 속치마를 편지지로 내놓는 기녀의 어수선한 눈빛을 잠결에 만납니다. 책을 정리하다가 느닷없이 스무 해 전, 책갈피에 꽂아둔 단풍잎을 만나듯이, 세월이 아슬아슬해진 탓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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