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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편지글의 향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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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글의 향기1



    조 풍 호(시인)



    한나경 그림 <편지는 늘 비가 내린다>

     


                             내가 강진 귀양지에 있을 때,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부쳐왔다.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색 활옷이었다. 붉은 빛은 이미 씻겨나갔고, 노란

                             빛도 엷어져서 글씨를 쓰기에 마침 맞았다

                                                          -‘하피첩(霞帔帖)에 제함’ 부분,  정약용

                 

    사내의 옆얼굴

     조선 선비들의 편지글을 보면 먹먹해집니다. 소금쟁이처럼 날렵한 글씨로 중앙을 채운 다음 사방 여백을, 새끼 거미처럼 오글거리는 글씨로 빽빽하게 메운 편지글은 사연을 뜯어내지 않아도 이미 절절한 것이지요.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아들, 형, 제자에게 60여 편이 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 중 마흔 편에 가까운 편지를 아들들에게 보내지요.

     

     세상에서 입고 먹는 데에 필요한 것이나 재화들은 모두 부질없는 허공의 꽃과 같은 것이다. 옷이란 입으면 닳고 음식은 먹으면 썩고 만다. 자손에게 전해준다 해도 끝내는 탕진되거나 흩어지고 말 것이다.

     

     물려줄 건 근(勤) 검(儉) 글자뿐인데, 잘 간수하라는 엄한 당부는 아비이기 이전에 선비가 선비에게 하는 충고입니다.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안부도 없고 인사말도 없고 당부만 있는 이유이지요. 폐족이 되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해도 학문은 선비의 길입니다. 나라의 ‘이익’을 묻던 양혜왕이 맹자에게 혼쭐이 나듯이 이(利)를 탐하는 소인배의 길을 거부한 선비들에겐 ‘옳음’이 죽음의 길이어도 그쪽으로 비질을 하고 단정히 북쪽을 향해 절하는 것이지요.

    다산(茶山)은 유배 생활 내내 수원 화성보다 더 정교한 조선의 설계도를 완성합니다. 그러나 다산이 늘 눈빛 형형한 학자인 것만은 아니지요. 때론 병든 형을 걱정하며, 개고기 요리법을 편지에 담아 보내는 다정다감한 동생이며 ‘이 악문찬 물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욱이 깎고 가는 바람 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라고 토로하던 버림받은 정치가이며 무엇보다, 노을 같은 치마폭을 펼쳐놓고 가늠되어지지 않는 지어미의 늙어가는 살 냄새를 가늠하는 아득한 눈빛의 지아비입니다. 그래서 그의 편지엔 유배지의 섣달 바람 소리를 어쩔 수 없이 홀로 맞닥뜨린 사궁지수(四窮之首)의 기침 소리가 묻어있는 것이고, ‘목포, 해남, 광주 더 멀리 나’가기도 했던, 지친 마음의 ‘봉두난발’이 눈에 뵈는 것입니다. 불빛에 일렁이는 한 사내의 옆얼굴을 비추던 촛불을 훅- 꺼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 정일근,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부분

                               

                                             철교의 무덤에 풀이 이미 두 달을 묵었구료.

                                             매양 깊었던 우정을 생각하면 벽을 돌며 기(氣)가 꺾이고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반정균에게 보낸 편지’ 부분, 홍대용

    멀리서 오는 벗

     담헌(湛軒) 홍대용과 청나라 학자 철교 엄성은 꼭 한 번 만나고 영원히 이별하였지만 항주에서 조선까지 1년이 넘게 걸리는 편지를 죽을 때까지 주고받습니다. ‘간밤에 꿈을 꾸니 요동 들판를 날아 건너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담헌의 시입니다. 장자의 소요유에 비견할 만큼 스케일이 큰 짧고 우렁찬 사자후입니다. 그는 연경에 자제군관으로 따라갑니다. 우기(雨氣)의 무소처럼 달려오는 근대의 소리를 땅의 울림으로 알고 있던 선비였지요. 연행 길을 위해 역관에게까지 읍(揖)하며 한어를 배우는 열정적 선비입니다. 그러나 정작 간정동에서 우연히 만난 세 벗 ‘엄성’‘육비’‘반정균’과는 역사와 지리 천문 등을 몇 날에 걸쳐 토론하면서도 필담(筆談)만을 고집합니다. 기록의 ‘정확성’에 집착했던 실학자였고 과학자였던 담헌다운 행동입니다.  담헌은 이들 중 동갑인 엄성과 특히 뜻이 잘 맞습니다. 엄성은 안타깝게도 몇 해 뒤 홍대용이 선물했던 조선의 먹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납니다. 부고를 받아든 담헌이 제문을 지어 중국으로 보냈는데, 마침 이것이 엄성의 집에 도착한 날이 죽은 지 꼭 2년이 되는 대상(大祥)이지요. 그러나 이들의  결교(結交)가 지고한 우정으로만 감탄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옛 학자들에게 편지글이란 사사로운 근황의 저편에 있는, 사상의 칼날이 교차하는 학자들의 포럼이며 심포지움이기 때문이지요.

      고봉 기대승과 퇴계 이황도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스승과 제자였지만 편지를 통해선 서로를 스승으로 섬긴 선비들입니다. ‘삼가 절하고 적은’선비들의 편지. 수국이 질 때 떠나 이듬해 백일홍이 흠뻑 지고 나서야 당도한 답장을 손에 쥔 이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우부(愚夫)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말린 꿩고기와 건강에 대한 지극한 염려와 살벌한 사상적 치열함을 함께 담은 보따리를 주고받던 그들의 편지글 향기가 청매화의 그것인지 황국화의 그것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지요. 단지 편지글에 담긴 글의 엄중함을 통해 열린 문틈으로 자신에게 엄격한 이들의 옷매무새가 슬쩍 드러나는 것이고 그래서 이순을 앞둔 스승이 스무 해도 더 어린 제자에게 한 말이 오래 맴돌 뿐입니다.


    “그대의 논박을 듣고 나서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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