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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풍호의 기억과 풍경> 마이크로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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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풍 호(시인)


                                     
    한나경 그림 <작품-1>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박용래 ‘월훈月暈’ 부분

     

    조그만 악기 혹은 시인

    여름은 그늘이 바둑판같은 느티나무 밑으로 낮이 지나가고 별들의 이야기 같은 마당 멍석 위로 밤이 지나갑니다. 참매미의 울음은 건조해서 장마의 흔적을 걷어내고 쓰르라미는 이슬을 불러와서 곡식을 익게 하죠. 아무튼 밤에 울건 낮에 울건, 매미의 몸뚱이는 진동이 알림음인 휴대폰 벨소리입니다. 파리나 모기처럼 졸음기를 헤집고 다니는 악동들과 함께 하는 곤충이지요. 울지 않는 반딧불이는 하늘을 끌어당겨야 보이는 숲의 별들입니다.

    북극의 별이 더욱 반짝여 보이면 이내 가을입니다. 메뚜기 날개 소리는 벼이삭 소리처럼 목덜미를 가슬가슬 지나가며 중천에서 서녘으로 몰려가고 귀뚜라미는 날개 위에 날개를 포개고 비벼서 저녁에서 새벽으로 울며 가지요. 낮에 울어서 신접살림을 나던 여치도 밤에 울어서, 종족 보존의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던 베짱이도, 가을의 전령입니다. 찌르르 쓰르르들이 서리처럼 하얗게 땅바닥에 쌓이던 늦가을의 새벽. 삶의 저쪽에 있는 고요를 생각하게 하던 전령이지요. 푸르스름한 고요가, 햇살 속 이승의 불행이 행복한 이유에 대한 세세한 각주라는 걸, 모르면서 알게 하는 울음입니다.

    지렁이나 쏘가리 빠가사리 물고기 내장은 암탉의 산후조리용 보양식입니다. 땅강아지는 닭처럼 개처럼 흙을 파며 놀던 우리들의 애완용이지요. 개미 똥구멍도 빨아먹던 시절. 물방개의 다리는 등뼈 안쪽까지 간지러워서 스물의 첫사랑 때까지 잊히지 않았습니다.

    장마 끝의 웅덩이나 옹당이의 우아한 스케이터 소금쟁이! 낡은 두루마기 차림의 선비의 소요음영逍遙吟詠이지요. 신독愼獨하는 이들이 마음에 친 윤리적 둘레를 생각하게 하는 곤충입니다.

     

     

    노나(나누어) 먹다

    루쉰은 병사한 아버지에 대한 중의 처방을 비웃으며 신학문에 뛰어듭니다. 특히 처방 중에 귀뚜라미 한 쌍 곧 처음에 짝을 지은 것이 포함된 것에 대해 “곤충도 정조를 지켜야 하는지 재취를 하거나 재가를 해서는 약재로 쓰일 자격조차 없는 것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지요. ‘아큐정전’에서 모멸과 패배를 정신승리법으로 왜곡하는 아큐를 통해 대국의식에 사로잡힌 중국인들의 자기기만을 희화화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박완서 선생님도 남편을 병사하게 만든 전근대적 샤머니즘에 반발해 딸을 억척같이 신여성으로 키워내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소설을 엮어 가지요.

     

    곤충들은 한 세상에서 삼세三世를 삽니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때로는 옹잘거리는 듯 한스런 훌쩍임인 듯 왁자하게, 호젓하게, 떠들다가 생을 마감하지요. 풍뎅이의 등짝이나 사슴벌레의 몸뚱이나 똥파리 똥구멍은 영롱한 보석보다 더 보석이어서 삼세의 끄트머리에서 무량수불이 모는 극락행 버스라도 탈 수 있는 곤충입니다. 우리들은 그들과 노나 먹었습니다. 나비애벌레들은 주로 푸성귀를 노나 먹고 반딧불이 애벌레하고는 올갱이(민물 다슬기)를 노나 먹고 메뚜기 하고는 곡식을 노나 먹습니다. 벌레들을 새들이 먹고 새들이 먹는 열매들을 인간도 먹었지요. 까치발은 감기가 들었을 때 먹고 고염꼭지는 딸꾹질에 먹습니다. 곤충과 벌레들을 새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지렁이는 말려서 가루로 먹고 메뚜기는 소화제로 튀겨 먹고 베짱이는 ‘저계’라 부르던 비아그라였지요. 어른들은 쉬쉬하며 먹었지만 아이들은 그 쉬쉬까지 흉내내며 킥킥대었습니다. 그렇게 아프고 낄낄대면서, 몸집 큰 짐승들의 교접과 물잠자리의 공중을 너울대는 교미에 대해서 생각에 잠기면서, 세월은 가서-

     

    스물의 초입에서 루쉰의 중의학에 대한 포폄에, 사원私怨이 개입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손님께서도 역시 물과 달을 아시오? 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나 끝내 줄고 늘지 않으니 무릇 변하는 것에서 보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것에서 보면 사물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소식 ‘적벽부’ 부분

     

    나비의 꿈

    꿈에 나비가 되었다는 장자의 꿈 이야기는 장주와 나비의 다름을 이야기하면서 장주와 나비가 다르지 않다는 걸 들려주지요. 다르니 다행이고 같으니 다행입니다. 배추흰나비는 배추와 다르고 배추와 함께 하는 일생이 같지요. 초승달과 그믐달과 보름달이 다르고 초승달과 보름달이 같다는 것이겠죠. 꽃이 꼭 곤충을 위해 태어난 듯하고 곤충들이 꼭 꽃들의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태어난 듯 보이는 이치입니다. 보이는 것(현상)은 달라도 같은 것이니, 아직도 메뚜기가 날던 가을 들판과 배추 잎이 너덜너덜하던 산밭 어디쯤을 걷습니다.

    고추잠자리든 강가의 날씬한 물잠자리든 잡는 방법은 같았습니다.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서 둥글게 테를 만들어 대나무 대에 꽂고, 처마 밑의 거미줄을 걷어 발라서 소위 내추럴하게 만든 잠자리채로 잡고 다녔죠. 벌거숭아 벌거숭아 이리 오면 사느니라 저리가면 죽느니라 노래 부르며, 속이는 거 배우고 속는 거 배우면서 잡고 다녔지요.

     

    실을 달고 날아오르던 왕잠자리 겹눈 굴리듯 세상을 어서어서 보고 싶던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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