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관계(16)_조풍호
  • 장편소설연재16

     

     

                           관  계

     

                                          조 풍 호

     

     

    장순이의 하루

    아휴, 강아지가 이쁘기두 혀라. 이게 종류가 어떻게 돼유? 요크셔테리어의 털은 기름지고 길었다. 너무 작은 강아지들의 배는 사람의 손보다 따스해서 장순이는 애처로웠다. 장순이는 뻐드렁니를 교정하고 얼굴을 갸름하게 깎아내고 콧날을 세우고 눈 트임 수술을 하느라 오랜 세월을 힘들었다. 장순이는 이름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라며 수경이로 바꾸어 부르게 했다. 장순이는 남편을 만나던 날, 앨범 속의 사진들을 모두 가위로 오려 쓰레기통에 버렸다. 포플리움과 장미와 석죽과 안개로 꽃다발은 만들어졌다. 꽃다발은 색깔이 강렬한 것을 먼저 둥글게 모은 다음에 색깔이 연한 것들을 꽂아서 만들었다. 꽃들은 색 한지로 싸고 opp지를 바깥에 두르고 리본을 달았다. 꽃다발은 처음에 받을 땐 예쁘고 싱그러웠으나 시들고 나면 쓰레기에 가까웠다. 장순이는 남편이 받은 지 얼마 안 된 꽃처럼, 자기를 대해주기만을 바랐다. 장순이에겐 과거로 가는 통로가 보여, 과거로 가면 쓰레기가 된 꽃다발처럼 남편의 사랑이 시들 거 같아 통로라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시멘트를 발라 막듯 막아내었다. 그 통로 중에 가장 선명한 통로는 친구들이었다. 장순이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이민을 간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두 손을 맞쥐고 울어 주었다. 장순이는 마지막 친구와 만나고 온 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울었다. 장순이에겐 술이 눈물을 끌어오는 힘이 있는 마약 같아서 울음은 길었다. 장순이가 전도를 받고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처음엔,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절박감이었다. 들러리도 없는 여자를 좋아할 남자는 없을 것이었다. 장순이는 스트레이트파마로 고수머리의 흔적까지 지웠다. 요크셔테리어의 비단 같은 머릿결과 장순이의 머릿결은 같아서 사람들은 칭찬했다. 고향에선 옥니박이와 고수머리는 상종할 상대가 아니라고 말했다. 장순이는 어릴 적 거울 앞에서, 백설 공주를 괴롭히던 마녀가 자신으로 환생한 거 같았다. 거울은 말을 거는 상대도 요술도 부릴 수도 없는, 장순이를 괴롭히는 악마에 불과했다.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되었어요. 저번에 키우던 천국이가 죽어서 다시 한 마리 분양 받았어요. 이 아이 이름도 천국이에요. 주님께서는 동물들을 일찍 데려가시지만 그래도 사람들 마음속에 부활시키는 힘을 주셨으니감사할 뿐이지요. 주여-아멘. 아휴, 김 권사님은 주님한테 상 받을 소리만 한다니까. 주여- 같은 교회의 성도가 하는 미용실엔 역시 같은 교회의 교인들만 모였다. 간혹 뜨내기손님이 오기도 했지만 그들 중엔 원탁에 둘러 앉아 주님만 들먹이는 분위기에, 한 번 왔다가 그길로 발을 끊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순이는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느꼈다. 남편은 술을 할 줄 몰랐고 여자도 몰랐다. 암코양이가 구슬프게 우는 것은 교미의 아픔 때문이라고 했다. 여전도사는 부부간의 섹스는 주님의 축복이라고 했다. 장순이는 신음소리를 만들었고 다리로 감았다. 당신 진짜 최고다. 남편은 깊게 잠들었다. 장순이는 남편이 사랑스럽고 껴안을 때가 행복했지만 신음 소리가 없으면 남편이 멀어질 거 같아 조바심을 칠 때가 잦았다. 양악 수술은 미용 목적이 아니라 치료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엄마들이 아기를 낳을 때가 이렇게 아팠을까? 장순이는 수술을 하고 열흘을 꼬박 앉아서 잤었다.

     

     

    정미 딸 이슬이

    엄마 왜 내 이름을 이슬이라고 지었어? ! 애들끼리 있을 때 지들이 나 부르는 별명이 뭔 줄 알아? 풍선이슬이야, 풍선이슬. 이슬은 이슬인데 뚱뚱한 이슬이라고, 그렇게 불러. 그리고 오늘 국어 선생님이 뭐라고 한 줄 알아? 이슬과 노을은 요절을 상징한대, 여울이나 바람은 시련을 상징하고! 중학교 때 같은 반에 여울이도 있었어. - 이름처럼 진짜 힘들어 하더라, 집이 가난해서. 엄만 내가 일찍 죽었으면 좋겠지? 그지? 그런 거지? 하긴 여울이만 여울이겠냐.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다 여울이고 바람이야. 거기다 나는 이슬이잖아! 엄마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찌들도록 가난한 집에 애를 낳았겠어? 나 같으면 절대 안 놔. 힘들면 나만 힘들지 왜 다른 생명을 길러서 힘들게 해? 다른 애들은 야자 마치면 학원도 가는데, 나는 야자만 해. 어떤 애들은 집에 과목별로 과외 선생 불러서 공부하기도 해. 생각해봐, 엄마. 내가 어떻게 걔네들을 이길 수 있겠어. 개천에서 용 난다고? 용은 돈 있는 집안에서 나고 개천에는 쓰레기뿐이야. 내가 좋은 대학을 가겠어, 얼굴이 잘 나서 좋은 남자를 만나서 팔자를 피겠어. 그냥 쓰레기처럼 살다가 가는 거야. 알아! 엄마 아느냐구? 나를 낳았을 땐, 이런 소리 들을 각오한 거 아니었어? 내 장딴지가 여울이 넓적다리 두 배야 두 배. 어떻게 엄마는 엄마 몸매 닮을 걸 알면서 나를 낳았냐? ? 못 생긴 애가 술까지 먹고 주정부리니까 죽도록 밉지? 얼굴 예쁘고 몸매 예쁜 애는 술주정도 예뻐 보일 걸? 나아- 공부 때려치우고 간호학원가고 싶어. 되지도 않는 공부하느니 그게 낳아. 나 쫌 학교 그만두면 안 돼? 병원 같은 데라도 취직해야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 잘 보살피면 중매라도 서 주지. 그런 것도 없으면 나 평생 혼자 살아야 될 거야. 엄마- 나 너무 아퍼, 여기가.

     

     

     

    사랑합니다

    114 안내 인사말은 인간이 듣기에 가장 편한 음높이인 음정에 맞춰 발음한다고 했다. 지갑을 잊어버린 날, 경탁이는 신용 카드 분실신고와 재발급 신청, 운전면허증 분실 신고 등에 여념이 없다가 문득 사랑합니다.’란 말을 너무 오랫동안 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걸 알았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전화기 너머의 안내원의 사랑은 어떤 종류의 사랑일까? 목소리가 예쁠수록 얼굴은 믿을 게 못된다고 폰섹스를 가끔 하는 친구 녀석이 말한 적이 있었다. “네에-소중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난 늙었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주민등록번호나 달세가 밀려가는 주소지 정보가 소중하지 않고 지긋지긋하오.’ 경탁이는 선비의 말투를 흉내 내려다 번호를 꾹꾹 눌러 말했었다. 경탁이에게는 주민등록번호가 대한민국 소속임을 강제하는 숫자로 된 밧줄 같았다. 사람들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국가를 만들었다고 했다. 국가는 가입도 탈퇴도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는 자의로 가입과 탈퇴가 가능했으나 학번과 반 번호는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군대를 자의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고 불렸다. 경탁이는 부처의 제자로서 집총을 거부하는 불자든 호국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입대하는 스님이든 그들의 선택의 자유가 우리나라에서 존중받을 수 있을지 알아지지 않았다. 주민등록말소가 된 사람들은, 있어도 없는 사람이었다. 경탁이는 자기 집 젓가락 수보다 옆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가 더 훤하던 고향 산천의 칠십 년대를 떠올렸다. 이젠 다른 이의 정보는 소중해지고 있었다. 다른 이의 신상 정보가 돈으로 바꾸어지는 루트는 알아지지 않았지만 경탁이는 엄마 무릎을 베고 까무룩 잠이 들려고 했을 때, 정춘이 엄마가 엄마에게 하던 농이 떠올랐다. 아휴- 말두 마유. 정교 아부지는 사내구실은 이제 끝이에유. 글씨 어제는 내 배 우 올라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니까유.

     

    산악회 기웃거리기 시작하면서부턴 그냥 끝이라고 보면 되는기라. 연말에 산악회 연말 결산 겸 새 집행부 선출 및 송년회이런데 가보면 안다. 카네이션 꽂은 회장 부회장 얼굴 보면 아! 나도 이젠 노인들 속에 있구나, 저절로 알아진다 아이가. 여자? 그래 지인들도 참가비만 내면 데려오라고 안 하나, 여자 한 번 꼬시볼끼라고 따라 왔던 친구들한테 딱 맞아죽기 십상이다. 친구는 울듯이 말했었다. 산악회는 번성했다. 산을 정말 좋아했던 또 다른 친구가 등반대장을 한 적이 있었다. 새로 선출된 회장의 첫 공약은 일본 동경에서 가장 가깝다는 하코네라는 곳을 놀러 가는 것이었다. 경비의 1/2은 회장이 부담한다고 했다. 신주쿠에서 로망스카를 타고 전망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뭐꼬? 딱 효도 관광 온 할배 아이가. 그래서 내가 벌떡 일어나서 발언 한 마디 하겠습니다. 우리는 산을 등반하는 산악회 모임이지 관광 모임은 아이다 아입니까? 했더니 회장이 뭐라 하는 줄 아나? 등반대장님, 말씀이사 참 좋은 말인 건 아는데, 산은 꼭 타야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산이 거기 있어 좋을 때가 산에 대한 경지라는 것도 아셔야제요. 노천온천에서 몸 좀 풀고, 후지산 만년설 보면서 하이쿠 한 수씩 읊는 것도 선비가 산을 사랑하는 방법일 터, 그런다 아이가 그래서 확 탈퇴했삐맀다- 경탁이는 사람들의 관계가 가입과 탈퇴 사이에서 갈라지는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따지다 말았다. 포도주 동호회에 가입했다가 번개 모임에 갔을 때, 2차부터는 소주였다. 카페 방장은 술에 취해 소주병으로 신입 회원의 머리를 가격했다. 닉네임이 켈리포니아였던가?

     

    관계

    은정이가 보기엔 비극은 온전히 산 사람의 몫이었다. 시신은 그림자가 없었다. 은정이는 각자의 그림자를 떼어놓고 잠든 시신들의 몸을 열고 닫으면서 해부실 바닥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가 애처로웠다. 내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예수는 돌문을 열어서 나사로에게 비극의 그림자를 다시 달아 주었다. 환자들은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은정이는 환자들이 병을 이겨내고 일어나서 비극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울 때, 의사로서 고통스러웠다.

    사랑한다는 말은 미워한다는 말과 동어였다. 멀어진 사람들은 한때 아주 가까이 왔던 사람이었다. 친밀하지 않았던 사이가 상처를 줄 순 없었다. 상처는 서로의 몸이나 마음을 조금 들여다 본 사람끼리 주고받는 가시 상자로 된 선물 같은 것이었다. 본 적이 없어 멀었던 사람 중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했다. 은정이는 그런 여인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한 사내가 방과 후에 교문을 터덜터덜 나서는 어린 은정이에게 다가온 적이 있었다. 중년의 사내는 은정이를 말끔히 들여다보기만 하고 말이 없었는데, 눈이 흔들려서 은정이는 사내의 눈 속, 눈부처가 잘 보이지 않았었다. 은정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의 통장을 몰래 훔쳐 본 적이 있었다. 생활비로는 부족하지 않은 액수의 돈이 동일한 날짜에 입금되고 있었다. 은정이는 입금자의 성함을 눈에 담았지만 할머니에겐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살갑지 않았다. 할머니에게선 새색시 시절에 남정네와 멀어진 몸들이 가지고 있는 몸의 냄새가 났다. 은정이는 할머니만의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그 거리를 가늠했다. 할머니는 은정이와 멀어져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할머니는 스스로가 생물학적으로 멀어질 때, 은정이가 버틸 수 있는 거리에서만 오래 서성거리는 여자였다. 은정이는 경수를 만나면서 자신도 할머니의 거리를 이미 몸속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닮는 것이 식구인가? 가족력은 어김없어서 삼대가 내리 간암으로 죽은 집안도 있다고 했다. 쪼매 억울하겠제. 약주도 않고 담배도 피지 않은 독실한 기독교인이 간암 말기인데 와 원망하는 맘이 없겠노? 인턴 시절 난리를 피우던 환자를 진정시키고 온 선배는 지나가듯이 말했었다. 은정이에게 병원은 병들이 오순도순 가족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은정이는 그 오순도순이 멀어서 은정이는 스스로의 몸에게 오순도순해지기 위해 술과 남자를 찾았다.

     

    은정이는 남편과 경수와 셋이서 식사를 하는 환영을 떠올리곤 했다. 사회학자들 중엔 사람들을 점으로 만들고 점들을 선으로 이어 선분을 만드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연구는 고작해야 성병의 감염 경로나 파악하거나 이어진 점이 없어 살았던 그가 그때처럼 여기에 누워 있다.’ 라는 비문을 만들어줄 사람들이나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은정이는 자신이 점이 아니라 선을 실처럼 뿜어내는 거미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거미 중엔 교미를 하면서 수컷 거미의 등을 뜯어먹는 암컷 거미가 있었다. 은정이는 그런 섹스가 딱 한 번, 가까워지려다 멀어졌었다. 은정이의 선은 계속 뻗어만 가서 어떤 점에도 머물지 못했다. 프랙털이란 눈송이의 결정체처럼 부분이 전체를 닮는 것이라고 했다. 나뭇가지와 혈관과 해안선과 강줄기는 모양이 같았다. 프랙털은 다른 것 속에 있던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은정이는 남편과 경수와 자신 사이의 삼각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시어핀스키 삼각형처럼 삼각형 탑을 쌓을 수 있을 것인지 다가오지 않았다. 이 세상은 거대한 삼각형 탑일까? 선들은 뻗어가다 헝클어져서 알아볼 수 없었다. 은정이는 자신의 백일잔치 사진을 떠올렸다. 은정이에겐 백일상에 아이가 집으라고 올려 있는 실타래는 장수長壽의 상징이 아니었다. 실타래는 이 세상의 인간들이 믿고 싶은 인간들의 관계였다. 세상의 실타래는 아이가 손으로 실타래를 집기 전처럼 가지런히 서려있지 않았다. 아이는 실타래를 휘저어 헝클어뜨렸고 양손으로 잡아당겨 실을 끊기도 했다.

     

    경수는 은정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경수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워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가까이 왔다 멀어지는 사람보다 멀리서 오래 있는 사람, 경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은정이는 술이 급했고 빨리 취했다. 술은 몸에 달린 그림자를 잊는데 가장 좋은 음료였다. 경수는 자신의 몸을 빌려주듯이 몸을 섞었다. 은정이는 푸른 달빛 아래서 시간屍姦하는 남자의 기분을 조금 알 거 같았는데, 내 목을 조여 줘. 더 세게. 경수에게 보챘다. 남편에게선 다른 여자와 잔 날은 대중목욕탕의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났다. 은정이는 남편이 지우는 여자들의 포즈를 떠올리려다 말았다. 섹스도 유행을 한다고 했다. 키스방에서 고안한 키스의 어떤 형태들이 차림표처럼 가격이 매겨지는지 알 수 없었다. 신도시에는 단란주점과 사우나가 같은 건물에 깃들어 있었다. 은정이는 경수와 잔 날도 경수의 침 냄새를 없애지 않고 집에 들어갔다. 경수의 침 냄새와 남편의 침 냄새는 달랐고 신음의 높낮이도 달랐고 낭떠러지의 깊이도 달랐다. 은정이는 남편의 몸에서 사라진 여자들의 침 냄새와 가격표를 킁킁거렸으나 맡아지지 않았다. 남편은 경수를 오래 전에 알았을 수도 있었다. 사각사각 은정이는 여섯 살에 외롭다는 것이 가슴에 새겨지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람 아부지는? 왜 아부지는 나를 찾지 않는 겨? 아부지두 엄마 죽구 나서 칵 따라 죽은 겨? 나한테 허락두 읎이. 할무니 말 좀 해봐봐.

     

     

    철길

    경탁이는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는 세 번째 만에 불을 올려서 발갛고 파랗게 떨었다. 경탁이는 간이역의 꽃밭을 볼 때마다 아담한 여인 같다고 느꼈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군. 경탁이는 도락구라 부르고, 검정고무신 코를 뒤집어 놀이로도 익숙하던 트럭을 처음 볼 때나 도시로 와서 삼륜차나 포니 택시를 처음 볼 때보다 기차를 처음 볼 때가 잊히지 않았다. 사상역은 무연탄 집하장이어서 처음 대한 열차는 화물 열차였다. 무연탄을 실은 화물 열차를 처음 보고 경탁이는 검은 고봉밥을 담은 네모난 밥그릇이라고 생각했었다. 경탁이는 열차보다 정작 흥미롭고 눈이 가는 것은 그 거인들의 네모 난 양철 밥그릇들보다 철길이었다. 철길은 철로 된 뱀 같았는데, 뱀은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이 몸통만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물뱀이 만들어 놓는 고향의 강 위의 물자국은 은빛이었다. 철길은 열차가 남긴 자국인양 반짝였는데 검고 희게 반짝였다. 고봉밥을 버리듯 쏟아놓고 덜컹 덜컹 돌아가는 열차는 헐거워 보였다. 경탁이는 네모난 빈 그릇에 실릴 무연탄을 광산에서 캐어내는 사람들의 검은 얼굴과 밤에 보는 삵이나 고양이의 눈빛처럼 반짝일 눈들이 멀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검은 고봉밥은 어딘가에 쏟아져 전기를 만들고 방을 지피고 기계를 돌릴 것이었다. 경탁이는 나중에 최초의 철도망이 맨체스터 리버풀 구간이라는 걸 알았을 때 철도의 쇠를 긁어대던 화물차를 떠올렸다. 유나이티드는 union에 앞서 노동조합을 이르는 말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축구팀은 최대의 라이벌이었다. 경탁이는 런던의 노동자들이 골대를 사이에 두고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는 소리들이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들의 노동 시간은 16시간이었고 70년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도 16시간이었다.

     

    , 왜 자꾸 전화해. 금방 도착한다고 했잖아. 두 시간이면 돼. 오빠. 집이라며, 조금만 기다려. 여자는 웨딩드레스에나 어울리는 흰색 드레스 치마에, 어울리지 않게 주황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얇은 비단 스카프는 그녀의 늙어가는 목주름을 숨기고 있을까? 여인은 화장이 짙었다. 경탁이는 원래부터 화장을 진하게 하는 여인들의 얼굴과 처음 해보듯이, 하다보니까 진해진 화장을 한 얼굴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것이었지만 후자의 경우는 안하는 게 더 나을 뻔 했다는 평가가 저절로 입으로 내려졌다. 원래 짙게 하는 여인들은 걸을 때 엉덩이가 실룩이거나 또각또각 지나갔고 껌을 얄밉게 씹었고 남자들을 쳐다보며 지나갔는데, 도도해보이기 위해 머리를 약간 뒤로 젖혀서 도도하지 않고 헤프게 느껴졌다. 후자의 여자들은 다른 남자에게 시선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았고 전자의 여자처럼 향수를 뿌리지도 않았다. 입술은 지나치게 빨갛거나 볼 터치는 나이에 맞지 않게 분홍으로 돌았다. 후자의 여자들의 화장은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잠을 자지 못한 피부에 덧칠해져 화장은 먹히지 않고 따로 놀았고 그것이 그녀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경탁이는 전화기 저 너머에 있는 남정네가 여자의 남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결말은 섹스일까? 섹스는 고등어 내장을 훑어 낼 때처럼 가엾고 애처로운 것이었는데, 사람들의 섹스는 늘 번성했다. 경탁이는 벚꽃이 거의 지고 이파리가 돋아나기 시작한 벚나무에 눈길을 주었다. 벚꽃보다 연두빛 이파리들이 더욱 예뻐 보였다. 저 여자의 나이는 저 이파리 같은 것일까? 경탁이는 경탁이가 태어날 때쯤 놓인 시간의 철길 위에 서 있던 은자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손을 흔들어 주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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