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 관계(13)_조풍호
  • 장편소설 연재 13

     

    관   계


     

    조 풍 호
     

    야매
     눈썹이 그기 뭐꼬? 니 죽어서 얼굴은 삭아 없어져도 눈썹은 퍼렇게 남을 기다. 인규는 오십도 안돼서 눈살이 처진 아내가 불쌍하다가도 눈썹만 보면 화가 났다. 아내는 마흔이 넘어서면서 눈 그늘이 짙어지더니 급기야는 먹딸기만한 반점들이 광대뼈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 자기야 쫌. 이런 몸을 품을 맘이나 생기나? 아내는 기미가 반점으로 번지자 잠자리도 피하려 했다. 아내는 갱년기도 되기 전에 이미 늙은 것처럼 한숨을 자주 쉬었다. 여보, 난 머리가 세는 건 견딜 만한데… 거웃이 세니까 아- 이제 정말 늙는구나, 싶드라. 아내는 미용실에서 반영구적이라는 눈썹문신을 하였다. 나다가 만 것 같은 눈썹이긴 하지만 콕 찍어 놓은 눈망울이 예뻤는데, 눈썹이 길어지니까 아내는 늘 울상인 것처럼 보였다. 아내는 태식이 초등학교 학부모회 때 알게 된 엄마들과 꾸준히 모임을 갖고 있었다. 다들 늙어가는 처지에 여자들은 늙음을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한 것 같았다. 실력이 왔다 라네요. 노름으로 돈을 날려서 병원을 낼 수 없을 뿐이랍니다. 일반 병원에 들어가 월급쟁이 생활 하느니, 맘 편하게 돈 벌자고 다닌다 안하는교. 이거, 비밀이다, 은지 엄마야. 소개만 받아서 하는 분이니까네, 나한테 한 턱 쏴라. 정식 집도의 출신이라는 의사들 중엔 간호조무사도 있었고 병원 행정직 출신도 있었다. 인규는 의술이 어떻게 어깨 너머로 배워지는지 알 수 없었고, 그런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여자들의 마음이 알아지지 않았다. 아내는 눈썹 문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쌍꺼풀 수술은 꼭 해야 한다고 결심한 것 같았다. 아내의 쌍꺼풀 수술은 아내의 눈을 치뜬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다행히 곪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렇진 않았지만 옛날의 순박함은 지워져서 아내는 암상스러워 보였다. 인규는 수퇘지 불알처럼 쳐지게 될 아내의 젖가슴이 떠올라서 오죽하면 그러겠나 싶어 그 일을 가지고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툴 일이 생기면 아내가 포달스러워 보이는 게 쌍꺼풀 때문인 것 같았으나 쌍꺼풀을 걸고넘어지면 상처가 클 거 같아, 예의 눈썹문신 타령으로 화를 돌렸다. 앙당한 젖을 키우는 수술을 했다는 은지 엄마는 어미 염소젖처럼 한쪽은 너무 크고 한쪽은 너무 작아져서 짝짝이가 되어 재수술을 받았다고 했고 형석이 엄마는 공업용 실리콘을 넣은 이마가 울퉁불퉁해지고 울긋불긋해져서 이마를 머리카락으로 가려야지만 외출한다고 했다. 여자들은 고민이 깊어져 더 빨리 늙은 듯 늙어서 남편들의 술자리가 늦어져도 타박이 적어졌다.

     인규는 만화가의 꿈을 접은 대신 도장 가게를 내었다. 인장에는 역리인장이라고 해서 사주와 이름을 풀어 재료와 서체를 정해 만든다는 인장이 있었다. 인규를 가르치던 스승은 사주를 풀어 자만옥, 홍묘안석 등 인재를 정해주었고 서체를 정했다. 어떤 이는 벽조목이라 해서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고인체의 글씨를 넣어서 성공을 가늠해주기도 했다. 인규는 인장이 운을 바꿀 수 있는지 알아지지 않았지만 도장을 조각칼로 파는 일은 내심 즐겁고 재미있어 좋았다. 전각은 사방 한 치안에 운치 있는 서체를 그려서 파서 ‘방촌의 예술’이라고 했다. 종이돈에 있는 한국은행총재의인인지 하는 것은 일본식 막도장 아이가. 우리나라 인전 양식은 관공서 문서에는 방형을 써야 되는 기라.  배나무 회양목은 재질이 부드러워 인장이 그 사람의 심성까지 그려내는 것이었고 옥은 맑은 정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도장을 기계로 파내면서 사무용 고무도장이든 인감도장이든 시세가 떨어졌다. 기계보다 내가 빨라도, 나도 이젠 그런 도장들은 귀찮은기라. 인규는 가끔 들어오는 낙관용 전각이나 팔까, 일반 도장은 아내에게 맡기고 도장포를 닫은 듯이 열고 있었다. 자신이 판 도장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판 인감을 주인 아닌 누군가 훔쳐내서 집을 거덜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었다. 인주도 필요 없는 만년도장 시대에 무신. 아직도 어디에선가 인주를 만들고 있는 공장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인규는 오래 전의 꿈을 떠올렸다. 하긴, 만화를 그려서 낙관을 찍을 수는 읎었을 거 아이가, 스탬프나 찍으면 모를까.


    산미테 할머니 제자
     아이들 둘, 학교 정문을 나서는 모습. 길가로 코스모스 환하게. 멀리서 산의 등뼈를 밟으며 걷는 모습. 억새가 하얗게. 한 아이는 책보를 어깨에 질렀고 한 아이는 황금박쥐가 그려진 네모난 가방을 메었다. 가방을 멘 아이는 멜빵에 하얀 스타킹을 받친 까만 반바지 차림이 해사해보이지만 어딘지 놀림을 당할까봐 단단히 준비시켜 보낸 것 같은, 어수룩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상. 책보 아이는 부스럼 한 두 개의 빡빡이에 옷은 낡은 면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 중간에 책보 아이가 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두 손으로 훔쳐 떠먹으면서 아, 물 달다, 라는 대사, 입 모양으로만. 서로의 옷에 도깨비 풀을 던지는 장면을 넣어도 괜찮을 듯. 

     백제라는 나라가 우리 마실까지 지배할 때 얘기여. 늑대가 순해져서 개가 되던 무렵이쟈. 백성들이 많아져서 백제의 왕들은 백성들 속에 섞인 간사한 무리들을 두려워했댜. 그래서 생겨난 무사가 인자라는 무사여. 참을 인. 놈 자. 각다귀나 될 거렁뱅이 아들딸을 데려다 어릴 적부텀 훈련을 시키는디, 그 훈련이란기 너무 고되서 참을성이 있어야 무사가 된다 혀서 인자라고 한디야. 인자들은 수박치기며 성벽 뛰어 오르기며 쌍절권이며 못하는 게 읎는디, 지가 섬기는 왕 말고는 신분을 모르게 해야 혀서 흑두건을 쓰고 눈만 빼꼼히 내 놓고 숨어서 왕을 보호혔다. 그런디 백제를 신라가 먹어서 왕들이 다 죽고 나니께, 인자들이 갈 디가 없어진겨. 그려서 인자들은 산으루 들어가 숨어버렸디야. 그려두 나라에 우환이 들믄 땅으로 내려와 도술로 나라를 위해 싸웠다는디, 인자들은 … 그렇지, 인자들은 인자들끼리두 신분을 숨겨야 혀서 씨꽁을 할 때두 두건을 쓰구서 혔댜. 자식은 나야하니께… 아니, 자식이 제자구 제자가 자식인거지 … 근디 요즘엔 그 인자들이 도술을 어따가 부렸나 하믄 삼양 라면 알쟈? 응, 그 삼양라면 봉지 중에 도술을 부려놔서… 몰러? 요즘 백제 땅이었던 우리 마실 근처 백성들에게 예전 왕의 은전을 대신 베풀기루 혀서 … 산솟골 홍 대감댁에, 홍 대감 식구들 전쟁 때 죄다 죽구 대신 살구 있는 홍 영감한테 와서 몰래 말하구 갔댜, 인자들이…. 그러니까 정한아. 우리 삼양라면 한븐 안 사 볼텨? 니 호주머니에 돈도 딱 맞게 삼양라면 살 수 있는 삼십 원두 있는디… 응, 참말이여. 너 진실이 아닌데 이건 진실이다아 이렇게 강조하는 사람 봤냐? 그려, 이건 영락없는 진실이여. 라면 봉지 중에 라면을 스프에 발라서 침까정 골고루 발라서 먹구 나서… 금방 말했잖여. 실타래를 넣어두 라면이 되구, 똬리를 넣어두 라면이 되는 요술 봉지가 우리 마실 근방 가게에 하나쯤은 있댜. 대신, 그 하나가 오늘 우리에게 걸릴지 내일 철재에게 걸릴진 알 수 읎지…한븐 생각해 봐라. 안 하구 그때 할 걸 평생 후회하는게 옳겄냐, 아님 신령스런 기운을 믿구 즉각 사보는게 옳겄냐? 아닐 말루 그 봉지가 요술 봉지 아니어두 너하구 나하구 뱃속에 라면을 넣는 건디, 손해 볼 게 뭐 있어, 안 그려?


    부서진 돌

     십계명은 이집트를 탈출하던 모세에게 내려진 것이었다. 반석이는 십계명 중 일곱 번째 계명에서 열 번째 계명까지는 하나의 계명처럼 느껴졌다. 간통하는 것도 도둑질 하는 것도 거짓으로 증언하는 것도 다 열 번째 계명처럼 남의 것을 탐내기 때문인 거라고 생각했다. 간통은 돌로 처 죽여야 한다고 했다. 반석이는 자신이 집사로 불리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미정이는 반석이 집에 새로 세 들어 온 여자였다. 미정이는 아내의 전도를 잘 받아드렸다. 고마워예. 박 집사님 아니었으면 예수님 은혜 충만을 지 같은 죄인이 어떻게 알았겠어예. 미정이는 새벽 기도에 열심이었고 통성 기도가 길었다. 주일이면 미정이는 새벽부터 꽃단장을 하듯 단장했고 아들 경수의 옷을 새로 빤 옷으로 갈아입혔다. 목사님이 미정이네 집으로 심방을 오던 날. 반석이는 미정이 옆에 앉았다. 첫 심방이라 전도사와 신도들이 제법 와서 미정이의 작은 방에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반석이의 양반다리가 미정이의 허벅지에 닿았다. 반석이는 미정이의 화장품 냄새가 오랫동안 품은 냄새처럼 아찔하게 다가왔다. 반석이는 사탄 마귀의 짓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 집사님이 요즘 예수님 은혜에 충만하시다는데… 오늘은 경수 어머니네 첫 심방이니 은혜 많이 받으시게…. 심방을 끝내는 감사 기도를 반석이는 이 집사에게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반석이가 집을 보러 온 미정이를 처음 보았을 때, 미정이의 볼우물은 좁장하고 깊었다.

     미정이는 교회의 신도들이 오는 것을 성가셔 하는 듯 바쁜 일을 핑계대기 시작했다. 미정이 아들 경수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다. 이럴 때 일수록 예수님께 간절히 매달려야 돼요. 사탄 마귀가 이럴 땔 노려서 예수님과 떨어지게 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아내는 진심으로 미정이를 걱정했다. 알아예, 하지만 한동안만 지 혼자 있게 해주이소.

     어! 정 집사님 이시네예 … 저 술 한 잔만 사주실래예. 안 그러면 여기가 아파서 죽을 거 같애서 그래예. 마음으로 간음한 자는 이미 간음한 것이니라. 반석이는 며칠 뒤, 퇴근길에 미정이 휴대폰 번호를 누르다, 십계명을 받는 출애굽기의 내용이 떠올랐다.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온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이 금송아지 주변에서 질탕하게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신이 손가락으로 직접 써준 원래의 석판은 분노한 모세에 의해서 곧 부서졌다.



    병원에서 돈 벌기
     당신, 참 나쁘다. 어떻게 다친 사람 돈을 훔쳐 가냐? 그것도 사기 치듯 사람을 속여 가면서.
     
     인수가 입원한 병원은 새로 개원한 곳이었다. 사무장은 다른 병원에 있을 때, 알고 있던 장기 입원 환자들에게 전화를 돌리느라 바빴다. 인수는 진단이 많이 나오길 빌었다. 아직도 원룸을 지을 때는 질통이 필요했다. 좀 더 큰 공사현장에선 벽돌 파렛트 사다리차로 벽돌을 날랐다. 인수는 합의금을 먼저 제시하지 않아야 한다든가 보험사가 지정하는 병원에 가지 않아야 한다든가, 하는 것은 가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인수는 인력을 나가지 못하는 날수만큼 얼마나 받아야 되는 지보다 인수를 친 차의 차종이 고급이었다는 것이 좋았다. 아내는 국밥집 야간 일을 나가느라 오래 있지 못하고 병실을 나섰다. 지금쯤 깍두기를 버무리고 있겠군. 아내의 일은 설거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밥에 들어가는 내장이며 순대며 고기를 썰어야 했고 부추겉절이를 만들어야 했다. 마늘을 썰 때와 양파를 썰 때는 아내는 정말 슬픈 듯이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인수는 한 건 올린 것 같아 뿌듯했다. 인수의 척추는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나가던 날부터 안 좋아졌으나 병원에 일부러 가지 않았다. 인수는 허리가 아파서 침대를 들어 올려 밥을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인수의 병실로 밤 열한 시쯤 넘어서 환자 하나가 들어왔다. 환자는 팔과 다리에 핏자국이 있었고 다리를 절었다. 그 환자는 인수에게 너무 덥다고 에어컨 온도를 낮추자고 말했다. 인수는 밤새 추위에 떨었으나 움직일 수도 없고 다른 환자를 깨우기도 뭐 해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아침을 먹고 인수는 물리치료실로 향했다.

     참 세상에나. 그러니까- 그 뭣이냐, 새로 개원한 병원만 노리는 도둑놈이라는 거야! 으응, 새로 개원한 병원에선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무장이 신경을 엄청 쓴대. 도둑놈이 밤에 와서 친구하고 싸워서 다쳤다고 그러면서 우리 마누라가 국밥집을 다녀서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와서 입원비를 내러 올거다 그러니까, 꼼짝 없이 속은 거지. 햐,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서인순가 그 환자분 수납장 바지에 지갑이 들어 있다는 걸. 그러니까 도둑놈이 사람들이 밥 먹고 나서 물리치료실 갈 때 바지를 뒤진 거네. 응, 서인수 환자 분이 그러는데, 물리치료실에서 찜질하고 있는데 옆에 둔 휴대폰이 울리더래. 근데 문자메시지에 이 마트에서 카메라 두 대 구입했다고 나오더란다. 야, 찜질하는 교통사고 환자가 어떻게 같은 시간에 이 마트에 가서 카메라를 살 수 있냐.   


    문국이 아들 용식이

     “몇 명이나 자는지 몰라요. 저는 늘 잠만 자기 때문에 누가 자는지 누가 공부하는지 알지 못해요.” 야간자율학습은 자율 학습이 아니었다. 예술고가 아니면 미대 지망생들도 자율학습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미대 지망생인 친구 누리는 주말에만 겨우 허락을 받아 토요일,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미술 학원에서 살았다. 자는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찌질이라고 불렀다. 교실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찌질이였다. 우리 오늘부터 추석 날 딱 하루 노는 날까지 노는 날 없대. 고3이 되면 열 한 시까지 교실에 남았다. 주말에도 토요일 날 여섯 시에 내보내는 것 이외에는 일요일도 열한 시까지였다. 성적이 뒤쪽인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도 자고 자습 시간에도 자서 열한 시 통학 버스를 타서야 아침을 맞이한 듯 생기가 돌았다. 성적이 중간인 아이들은 미술 시간, 음악 시간에 자고 열한 시 야자를 마치고 학원에 가서야 생기가 돈다고 했다. 성적이 앞쪽인 애들은 음악 시간이나 미술 시간 보충 수업 학원 수업 가리지 않고 자지 않아서 얼굴은 부어 있고 눈은 붉었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니. 씨발새끼야.” “이 병신새끼들,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학교로 보내든가.” 선생이 욕을 하기도 했고 “ 아, 존나 짜증나.” 아이들이 욕을 하기도 했다.

     욕을 주고 받다 여선생과 여학생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싸우기도 했다. 기절한 여선생을 다른 여학생이 발길로 찼다. 여자애들은 생리통을 칼질이라고 불렀다. 배의 창자는 순대 썰 듯이 아파서 욕은 뱉어지듯 나왔다. 욕을 게임의 캐릭터가 죽었을 때인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아이도 있었고 유치원 때부터 시작한 아이도 있었다. 삼겹살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 한 여자가 다른 여자하고 애들 둘하고 삼겹살을 먹으러 왔어. 근데, 애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욕을 당연한 듯이 하더라고. 아마 텔레비전 시사 프로나 이런데 나왔으면 아마도, 엄마 삐리리리 나 그거 삐리리리 삐리리리 삐리리리 아마 그렇게 방송이 나갔을 거야. 엄마가 사람들 많은 데서 애들이 그러니까 쫌 부끄러웠나봐. 애들보고 이러더라고. 방송이라 치고 말할게. 야, 사람들 있는 데서 내가 뭐라 그랬어. 그런 말 하지마라 그랬지. 그랬어, 안 그랬어? 응! 이 삐리리들아. 부모는 최초의 교사라는데…. 엄마가 그러니 자식들이 안 그러겠냐? 아빠 친구가 와서 아빠와 술을 마시면서 말했다. 승아는 아빠가 학교에 힘을 써서 골프학과 지망생으로 둔갑하였다. 승아는 야자를 면제 받았다. 승아는 학원을 가는 날이 아니면 독서실로 가다가 용식이가 배틀을 하는 놀이 공원을 늘 들렀다. 비보이들 중엔 여자 꼬붕들을 데려와서 무릎에 포개고 앉혀 놓고 키스를 하는 애들도 있었다. 용식이는 승아와 손을 잡는 것도 어려워했다. 승아는 용식이의 행운의 숫자 7모양의 발끝에서 골프공을 치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았다. 실업계 아이들은 야간자율학습이 없었다. 그들은 방과 후엔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승아는 공부를 못해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공부를 잘해서 갇혀 있는 아이들이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까지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건 더 말이 되지 않았다. 승아가 보기엔 자유의 나라에서 자유가 없는 곳은 감옥과 군대와 학교였다. 승아는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용식이는 처음 물구나무 배울 때가 떠올랐다. 벽을 마주 본 상태에서 엎드려뻗쳐를 했다가 다리를 힘껏 차서 벽에 댄 뒤에 발뒤꿈치로 벽을 살짝살짝 치면서 중심을 잡았다. 반대로 벽을 등지고 서서 땅을 손으로 짚고 발로 벽을 기어오르며 물구나무를 선 뒤 버티기를 하는 것도 물구나무 연습 방법이었다. 손을 발의 모양과 같은 아치모양으로 만들고 손가락과 손끝부분으로 균형을 잡을 때가 조금 힘들긴 했다. 그러나 몸이 뒤로 넘어가려 할 땐, 손바닥으로 땅을 밀면 다시 돌아왔고 몸이 땅으로 내려가려 할 땐 손가락으로 땅을 내 몸 쪽으로 당겨주면 다시 올라섰다. 비보이는 세상을 바로 보지 않고 거꾸로 봐야 한다고 선배들은 말했다. 비보이들은 비보이들끼리 모여 중수와 고수를 결정했다. 45도 각도에서 몸 전체를 돌리는 에어트랙 기술은 고수를 가리는 고난이도 기술이었다. 카포에라는 노예들이 주인들 모르게 무술을 춤 안에 숨겨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춤 속에 칼과 모반의 기운을 숨겨서 갈던 노예들이 떠올라 용식이는 카포에라를 보면 비장해지곤 했다. 비보이들에겐, 발 모양을 나이키 상표 모양으로 만드는 물구나무 서기 기술은 가장 쉬운 것이었다. 용식이는 승아 앞에서 나이키를 숫자 7로 예쁘게 만들어 보여 주었다. 스텝을 밟으며 다가오는 비보이 하나가 다가왔다. 근육과 관절이 리듬을 타고 있었다. 용식이는 관절과 근육으로 세상을 향해 외칠 것이었다.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감옥을 봐! 그 감옥에서 탈출한 우리들도 봐! 너희들의 쇠창살을 몸으로 통과한 우리들의 부드러운 근육을 봐! 우리들이 공부를 못한다고? 우리는 몸으로 세상을 공부해! 비보이들이 들고 일어서는 날. 우리들은 감옥의 담장을 넘을 거야! 너희들이 만든 감옥의 아이들을 탈출시킬 거야! 모조리 탈출하는 청춘들을 보게 될 거야! 자, 흥분되지 않아? 야, 감옥의 경비나 서면서 야한 것밖에 모르는 어른들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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