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 관계(12)_조풍호

  • 장편소설 연재 12

                                                   관  계

                 

                                                                                                조 풍 호


     술
     불가에서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 독약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 불렀다. 정우의 술은 대학에 와서 깊어졌다. 후배들은 막걸리를 박스째 들고 자취방을 찾아오기도 해서 이불 빨래하는 고무 대야에 술을 붓고 술잔을 띄워 돌리며 포석정 흉내를 내기도 했다. 군대에 복무할 때는 ‘사발주’라는 것을 마셨다. 커다란 양은 사발에 소주 두 병을 붓고 고참들은 침을 뱉고, 고린내 나는 양말을 적시고, 김치 국물을 섞어서 술을 단숨에 들이켜게 했다. 그 전에 술 위에는 손가락으로 애인의 이름을 쓰고 마셔야 하기도 해서 ‘애인주’라고도 부른 술이었다. 후배들은 필름을 쉽게 끊었다. 천으로 만든 조립식 미니 옷장의 지퍼를 열고 오줌을 누는 놈들도 있었고 방벽에 지리는 놈도 있었다. 한번은 연극 서클 후배 남녀 네 명이 놀러 왔다가 술을 마시고 방 이곳저곳에 처박혀 자고 간 적이 있었다. 으응,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문을 열고 나가더라고. 그러더니 다시 문을 열고 금방 들어와. 쟤가 왜 저러나 그러는데, 옷을 내리고 앉더니 오줌을 누는 거야, 방에다. 문고리를 꼭 잡고 있었지. 가로등 불이 살짝 비쳤는데, 얼마나 세게 문고릴 쥐고 있는지 힘줄이 파랗게 섰더라고. 그 여자 후배에겐 영락없는 화장실이었으니, 누가 열어 볼까 봐 그런 거지. 담날 누가 물을 쏟았느냐고 뭐라 하는데, 그 후배에게 어젯밤에 방에도 오줌을 누고 옷도 올리는 둥 마는 둥 벌렁 그 자리에 드러눕더라,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걸 겨우겨우 참았지. 아무튼 난 그 때 이후로 여자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어. 술이 아무리 취해도 보호 본능은 대단하다고. 정우는 가끔 삼독을 능가하는 독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연민이었다. 연민이 타인을 향하면 이타심으로, 측은지심으로 향할 것이었으나 자신에게로 향하면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는 칼 같은 것이었다. 정우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동네의 늙은이들 몇을 슈퍼마켓에서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들은 소주병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했는데, 그들의 방은 메아리도 없는 주절거림으로 가득할 거 같아 아득했다. 정우에게도 그런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필름이 끊어진다는 건 많이 미안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정우는 미란이와 헤어진 뒤에 동네의 늙은이들처럼 술이 깊었었다. 정우는 미란이가 떠나고 나서 신림동으로 이사했다. 신림동은 자투리땅에도 집들이 들어서 집들 중에는 이등변삼각형의 모양을 한 집들도 있었다. 집은 꼭지각의 각을 허물어 구멍가게 입구로 만들었고 두 밑각에도 방이 들어서 있었다. 신림동은 고시촌으로도 유명했다. 고시생들은 고시원 건물을 지렁이집이라고 불렀다. 고시생들은 복도를 따라 다닥다닥 연결된 한 평 남짓한 방에 깃들듯이 깃들어, 시각 청각이 없는 지렁이처럼 공부에 매달렸다. 그들은 맑은 날은 땅속에 처박힌 지렁이처럼 방에 처박혀 공부하다 날이 흐려지면 겨우 나왔다. 그들은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자웅동체인 지렁이처럼 자신의 몸에서 여자의 몸을 찾아내듯 수음을 하는 것으로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그들은 세면대에서나 하숙집 식당에서 다른 고시생을 마주쳐도 데면데면하다고 했다. 순댓집들은 여수며 순천이며 전라도 지명을 간판에 달고 있었다. 정우는 고향을 떠나 서울 변두리 시장에서 순대볶음으로 집안을 꾸려갔을 전라도 아낙들의 골 깊은 손들이 애처로웠다. 정우는 고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고시생처럼 지렁이 생활을 해서, 날이 밝은 날엔 어두운 곳에 숨어서 잠들었고 밤이 되면 슬금슬금 나왔다.

     그날은 하늘이 끄먹하다가 저녁이 되자 기어이 비를 뿌렸다. 비는 세수를 끝낸 물을 지열을 식히기 위해 세숫대야로 마당에 뿌리듯이 내렸다. 정우는 빗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대원 여인숙 담벼락에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는 어린애처럼 붙어 있던 가건물의 작은 막걸리 집에서였다. 비가 흩뿌리면 영사막으로 변하기도 해서, 미닫이 창문 밖 빗속에서 미란이의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 해야 내가 처녀가 되느냐고! 정우는, 남자는 지난날의 여자에게 한 일을, 반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성은 행동이 뒤따라야 되는 것이어서 대통령 같은 인위적 인간들이나 겨우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되돌릴 수 없는 남녀의 지난날은 그냥 ‘후회’라고 해야 옳았다. 정우는 오래 후회해서 술병을 주탁에 진열하듯 넘겼다. 정우의 방은 일층 현관문과는 별도로 집의 옆구리에 있어서 차임벨을 누르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 정우는 새벽에 목이 말라 눈을 떴다. 천장의 형광등이 쌍으로 달려 있었다. 어? 내 방은 형광등이 하난데…. 옆으로 고갤 돌렸을 때, 정우와 아낙네의 눈이 마주쳤다. 이상한 기분에 눈을 뜬 아낙은 낯선 남자를 바로 받아 드리지 않다가 곧이어 비명을 질렀다. 이불 속의 아이도 깨서 울었다.

     그 전날, 정우가 들어가 누웠던 집의 아저씨도 술을 마셨다고 했다. 아저씨는 마루의 싱크대 밑을 방으로 여기고 다릴 집어넣고 잠들었고 정우는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 방에 잠들었다. 신림동 주택 중엔 70년대의 문화주택처럼 붕어빵처럼 닮은 집들이 있었는데, 정우의 집은 그 집에서 두 집 건너였다. 아저씨는 자초지종을 듣고 자기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니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지만 정우는 머리가 쭈뼛했었다. 미란이를 끌어안듯 아낙을 끌어안았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정우는 신림동에 이사 온 첫 날, 술을 잔뜩 마시고 잤었다. 삼월 중순이었으나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날이었다. 정우는 밤새 미란이가 추울까 봐 솜이불을 하나 더 이불장에서 꺼내서 미란이를 덮어 주고, 덮어 주고 했었다. 술은 있지도 않는 미란이와 자게 했다. 정우는 미란이가 자신과 만나기 전 한때 살던 신림동을 두 달 뒤에 떠나야 했다.   
     
     은총이가 정우에게 들려준 이야기
     은총이는 정호 형을 자취방에 머물게 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정호 형은 은총이의 결벽증을 못 견뎌했고 은총이는 은총이대로 정호 형의 무지막지한 지저분함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발 고린내가 장난이 아니야. 근데도 그 양말을 그 담날 또 신는 거야. 정호 형네 집은 정호 형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길 가에 나앉은 처지가 되었다. 은총이는 자신도 그런 경험을 사춘기 내내 겪은 적이 있어서 정호 형이 애틋했다. 정호 형은 대학을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거처할 곳이 더 급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휴학을 하면서 인력이라도 나가야 하는 처지에서 정호 형은 은총이를 정말 고마워해야 했다. 완전 빈대야. 자기 처지가 그러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라면이라도 끓여주는 센스도 없어요. 지가 뭐라고 얹혀사는 주제에 선배, 아, 아니지, 그래 왕이야. 떠받들어야 하는. 망했으면 처지를 알아야지, 처지를. 은총이는 아낙들이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남편들을 흉보듯이 경탁이에게 정호 형 흉을 보았다.

     정호 형을 어떻게 하면 떠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집에 전화할 일이 있다고 나갔던 형이 헐레벌떡 뛰어 들었다. 야, 은총아. 여기… 여기… 여기 뭐요? 은총이는 정호 형이 마님을 찾아 이리저리 쏘다니며 숨을 헐떡이는 비디오의 머슴처럼 천해 보여서, 쏘아대듯 물었다. 야, 여기 비닐봉지 안에 뭐가 들어 있을 거 같으냐? 롯데 껌 한 통을 사고 잔돈을 거슬러 받아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갔던 정호 형의 눈에 전화기 위의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비닐 안이 한눈에 딱 봐도 각이 져서 난 처음엔 누가 빌려가던 만화책을 놓고 갔나 했다. 정호 형은 돈을 보고는 세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고 했다. 무조건 현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정호 형은 한동안,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니? 말은 하면서도 기실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은총이도 콩고물이 얼마나 떨어지려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정호 형은 천만 원의 돈 중 은총이에게 오십만 원을 덜어 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송편 밤소처럼 공돈이라면 다 고소할 터였지만 은총이는 화가 났다. 4 대 6도 아니고 100이면 100, 200이면 200이지 50만 원이 뭐야. 잠자리에… 먹여준 공이 있는 나에게. 정호 형은 오래지 않아 집을 나갔다.

    “은총아, 너 그때 일 알지? 만화책 사건. 나 그 돈 얼마 뒤에 채소 배달하다 오토바이 사고를 내서 집에 부쳐준 500 빼고 전부 날렸어, 합의금으로…. 그러고서 나한테 무슨 버릇이 생긴 줄 아냐? 그때부터 술 마신 날은 내가, 무슨 몽유병 환자도 아니고 공중전화박스를 헤매는데, 밤새워 돌아다녀도 힘들지가 않는 거야. 한번은 필름이 끊겼는데, 아침에 눈을 떠 보니까 공중전화박스 안이지 뭐냐.” 오랜만에 만난 정호 형은 꽤 심각하게 말했다. 은총이는 그때 생각했다. 내가 그때 왜 화가 났지? 형이나 나나 그 돈 주인은 둘 다 아니었는데….

     경민이의 견물생심
     경민이는 선배 학원 일을 도와주던 때가 떠올랐다. 학원 전단지의 광고를 보고 선배가 연락을 해왔고 술자리에서 의기투합되어 함께 일하기로 하였다. 주연이는 처음 학원에 들어서는 경민이를 보고 함께 일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선배의 학원은 상가 이층 건물이었다. 일반적으로 학원 건물이 들어서는 곳에는 술집이 세들 수 없었는데, 먼저 들어와 있던 술집은 허용이 되어서 일층은‘백두산’이라는 백두산의 기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호프집이 있었다. 생활 근린시설에 대한 조례가 그렇다는데 할 말 없지. 선배와 경민이는 일층과 이층 복도에 들어서 있던 화장실을 번갈아 청소했다. 술손님들이 토해 놓은 토사물을 고무장갑을 끼고 소변기에서 훑어서 좌변기에 버리기도 했다. 술집 주인은 아구, 진작에 말하시지. 내가 하면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뺀질이처럼 화장실을 들러보는데 게을렀다. 우리는 을이지 갑이 아니야. 선배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올라오다가 혹시 술 냄새라도 맡을까 봐 화장실에 방향제를 수시로 뿌렸다. 방향제는 술 냄새나 지린내와 섞여서 오십 쯤 넘어선 여자들이 거리에서 지나칠 때 나는 향수냄새처럼 역겨웠다.

     경민이는 삼 교시 수업을 마치고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술손님들이 문제를 만들진 않은 것 같았다. 경민이는 세 개였던 화장실 문을 열어 점검하다가 재래식 변기의 물 내리는 스위치 위에 있던 두툼한 지갑을 발견했다. 경민이는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경민이는 지갑을 들고 부리나케 건물을 빠져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경민이에게 사무실만 세 들고 있어 밤에는 복도가 컴컴한 옆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경민이는 그 건물의 이 층으로 올라가서야 지갑을 열었다. 지갑에는 꽤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다. 경민이는 주민등록증을 보았다. 주민등록증에는 실물보다 약간 촌스럽긴 하지만 분명한 선배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경민이가 광고를 내고 있을 때의 대형 학원은 인터넷 강의와 야간 자율 학습의 영향으로 실업계 애들이나 조금 있을 뿐, 기울어 가고 있었다. 경민이는 세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도 자릴 뜨지 못했다. 경민이는 처음 학원 강의를 위해 교탁에 섰을 때처럼 울렁증이 도질 거 같아 지갑을 주웠다고 선배에게 직접 말하지 못해서, 선배가 자릴 비운 사이 선배의 등받이 의자 옆에 지갑을 놓고 나왔다. 경민이가 지갑 속 돈의 유혹에서 벗어난 이유가 있었다. -선배의 지갑 한편에는 뱃속의 태아를 찍은 초음파 사진이 들어 있었다. 가끔 학원에도 데려오는 네 살배기 수아의 첫 사진이었다.


     예전에
     -엄마! 왜 헹굴 때, 쌀뜨물로 하라는겨? 난 다이알 비누로만 시쳐도 향나고 좋기만 한디.
     -그래야 얼굴이 뽀얘져서 난중에 이쁜 각시 만나는겨.
     -엄마가 내 각시가 어디서 크는 지를 아는겨?
     -응, 잘 크고 있어. 이쁘장하게. 
     -햐! 놀랠 노자네. 엄마가 내 각시도 몰래 숨겨 놓고 키우고.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냐?
     -아, 내가 아기는 남자하구 여자하구 씨꽁을 혀야만 생기는 거쥬? 라구 산미테  할무니한테 물었더니, 요놈, 놀랠 노자네. 할무니가 내 눈을 빤히 봄시롱 그리 말하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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