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 관계(11)_조풍호
  •  청춘

     김치에도 일생이 있었다. 김치에 처음 깃드는 것은 일반세균이었다. 일반세균은 번성하다가, 먹잇감이 부족해지고 자신의 이산화탄소 방귀로 죽어가서,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젖산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김치가 시금털털해질 때까지 중기의 둥근 젖산균을 시작으로 말기의 막대 모양의 젖산균으로 김치의 청년기는 젖산 왕국을 이루었고 김치의 일생은 효모라는 저승꽃이 버짐치럼 피면서 끝났다. 청춘도 일생이 있었는데, 경탁이는 청춘이 있던 스물의 언덕쯤을 떠올리면, 잘 삭은 김치 맛이 나지 않고 효모의 ‘군내’가 나서 청춘이 너무 짧았다는 게 냄새로 알아졌다. 

     

     

     여자는 물어 물어서 남자의 연락처와 주소를 찾아냈다. 여자는 열차를 타고 간다고, 전화를 받지 않자 일방적으로 문자를 보냈다. 열차표를 찍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해운대 → 대전 출발:07:50 도착:11:39  소요시간: 03:49. 무궁화호 좌석… 경탁이는 또 다른 무궁화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94년에도 다른 여자가 일방적으로 찾아 온 적이 있었다. 경탁이가 대전에 살 때였다. 경탁이는 대학에 다닐 때, 턴테이블이 있던 지하 호프집 ‘스페이스’에서 디스크자키로 일한 적이 있었다. 음악의 시작은 늘 ‘어둠 속의 벨이 울릴 때’의 사운드 트랙으로 쓰였던 노래 ‘ Set The Night To Music’ 이었다. - 오늘 밤 저 모든 별들을 바라보아요. 저 모든 달빛을 바라보아요. 우리 홀로이 있는 모습을 보아요. 오! 그것은 꿈과 같아요. 마치 어떤 로만적인 환상과 같군요. 그대 이리 와서 나를 안아주어요. 우리는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이 밤 음악을 틀어요. 이 밤 음악을 틀어요.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해요. 이 밤 음악을 트는 일은 나와 당신을 앗아가게 될 거예요. 우리의 모든 리듬을 찾게 될 거예요. 아름답고 느린 리듬 속으로 녹아내리죠. 여기에서 사랑은 떠나가 버리고 당신의 심장은 내 곁에서 두근거리겠지요. 완벽한 시간에 완벽한 사랑. 세상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지켜보아요. 이 순간은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를 앗아갈 수 있어요. 이 밤 음악을 틀어보아요.

     

      여자는 단골이었고 시시였던 남자와 늘 함께였다. 여자의 생일날, 여자는 엘피판을 갈고 있던 경탁에게로 와서 쪽지를 내밀었다. B.S.T라는 그룹의 재즈 락  ‘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였다. 여자는 경탁에게 조금 있다 와서 술 한 잔 받아요, 형. 오징어 냄새와 케이크의 크림 냄새가 뒤섞인 입김을 섞어 말했다. 여자는 악수도 아닌 채로 경탁이의 손에 손가락을 걸어 살짝 잡았다. 멀리서 시시 남자 친구가 손을 흔들었다. 여자와 경탁이는 그 뒤 부쩍 자주 어울렸다. 시시 남자는 경탁이의 동생이 되었다. 여자는 따라다니듯이 하지 않고 남자 둘을 거느리듯이 데리고 다녔다. 여자는 남자들 중간에서 두 팔을 남자 둘의 어깨 위에 걸고 걷거나 양 팔짱을 끼고 걸었다. 여자는 키가 크고 다리가 길었고 가슴은 없는 듯이 헐렁해서 계란프라이를 떠올리게 했다. 여자는 잇바디가 고르고 눈은 까만 단추처럼 박혀서 반짝여서 영특해 보이고 명랑해보였다. 언젠가 한 번 여자가 경탁에게 말했다. 그때 생일 날 노래 제목 고백이었는데. 경탁이는 여자를 멀리했다. 그때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여자는 대전에 있던 경탁에게로 와서 시시 남자와의 이별 이야기를 밥상 위에 찬그릇과 국그릇과 밥그릇을 올려놓듯이 들려주었다. 경탁이는 그날 저녁, 술에 취한 여자를 부축해 대전역까지 배웅하러 갔다가 어쩌다 서울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주말이라 좌석이 없어 둘은 열차의 맨 뒤 칸, 벽과 의자 등받이 사이에 끼어 앉았다.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 여자가, 평택역을 지날 무렵 경탁이에게 키스를 했다. 경탁이는 여자의 퀼트식 체크무늬 미니스커트 허벅지로 손을 집어넣으며 키스를 받았다. 여자와 경탁이는 서울역에서 내려 택시에 올랐다. 너하고 먼저 만나고 걔를 너처럼 늦게 만났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택시기사가 룸미러로 무시로 흘끗대느라 주행 속도가 느려질 만큼 둘은 서로의 몸을 탐했다. 여자의 집은 망원동에 있었다. 여자는 집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형, 가자- 경탁이의 팔에 팔을 두르면서 남자 친구들끼리 말하듯 씩씩하게 여자가 말했다. 경탁이는 중성인 여자의 목소리가 좋았다. 여관은 숙박계를 쓰던 오래 전의 여인숙처럼 허름했고 이불에선 피죤 냄새가 났다. 목 티와 러닝셔츠를 한꺼번에 벗기다 옷이 여자의 목에 걸려 얼굴을 가린 채 잘 벗겨지지 않았다. 여자는 보이지 않는 얼굴로 쿡쿡거렸다. 쥐는 남자가 바지를 내리려고 할 때, 침대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꺄악- 으허- 둘은 옷을 입지도 못하고 복도로 뛰쳐나왔다. 주인은 사과했다. 여기서 잘게요. 여긴 쥐 없겠지요? 경탁이와 여자는 여관을 나와야 했으나 왜 그랬는지 쥐가 나온 방의 옆방을 가리켰다. 여자는 몽롱하게 꺼져가던 경탁이를 흔들어 깨워 다시 품었다. 경탁이는 남자가 여자처럼 여자의 몸에 품어지는 게 신기했다. 아! 신발을 신발장에서 꺼내 놨어야 되는데…아빠가 신발로 집에 있는 지 없는 지 확인한단 말이야. 여자의 아버지는 의붓이었고 경탁이는 여자의 가끔 얼굴에 지는 그늘을 슬프게 추리한 적이 있었다. 나, 집에 가서 신발 꺼내놓고 올게. 여자는 여관의 커튼 사이로 햇살이 몰래 들여다보듯 비치며 들어올 때까지 오지 않았다. 경탁이는 밤을 새워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흔들며 여관을 나섰다. 바람이 차붓차붓했고 밤에 봤던 여자의 집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경탁이는 국밥을 먹으려다 돈이 적어서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열차표를 끊고 받은 우수리를 세어보니 대전역에서 집까지 걸어가야 할 거 같았다. 경탁이의 집으로 돌아오던 열차에서의 잠은 아늑하지 않고 지끈거리며 깊었다. 

     

     

     

     대학

     정우는 헤어진 여자들이 몇 년 뒤 문득 멀리서 찾아오는 메커니즘이 알아지지 않았다. 숙희는 학과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마침 과사무실에서 빈둥대던 정우가 전화를 받았다. 정우는 제대 날짜가 허술해서 복학을 곧바로 하지 못했을 때, 학교 뒷문 밖 밥집 골목에 술집을 차렸다. ‘진달래 산천’이라는 간판은 소나무 껍데기를 밀어내고 새겨 있었다. 정우는 파는 술보다 마시는 술이 많았다. 지방에 있던 정우의 대학은 겨울에는 기숙사의 아이들이 대부분 떠나고 자취방의 아이들도 집으로 향해서 을씨년스러웠다. 눈이 내리면 학교 교정의 눈 위에는 동네의 개 몇 마리의 발자국이 전부일 때도 있었다. 정우는 산업대 건물 앞에 있던 농구대에서 한 남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남자는 가죽 잠바를 입고 있었는데, 농구공을 튕겨 손가락 위에서 돌리더니 가죽 잠바를 벗었다. 남학생은 가죽 잠바 속에 검은고양이가 큼지막하게 인쇄된 하얀 반팔 티셔츠만 걸치고 있었다. 정우는 남자가 남자를 멋있게 느낄 때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남학생은 혼자서 농구 골대 아래의 눈밭에 발자국을 만들며 송글송글 땀을 만들었고 정우는 그곳을,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정우의 카페에는 시시로 보이는 학생 둘이 와서 커피를 마시고 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서 정우도 짐을 챙겨 여행갈 준비를 하였다. 새 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찾은 카페의 문을 열다 정우는 우두망찰했다. 모양으로만 진열해 놓았던 양주병들이 터져서 얼음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기온이 내려가자 빈 양주병에 양주처럼 채워 넣었던 보리차가 팽창해서 터진 것이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주류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전기가 통해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질색하게 만들었다.   

     

     걔는 요즘 안보이더라. 술값 갚는다고 했었는데. 정필이 걔 입대했는데요. 정우는 생일 날 술을 마셨다. 오늘 나 건드리는 놈은 다 죽인다. 정우는 술이 깊어지면 군복 야상의 양주머니에 맥주병을 넣고 다녔다. 그럴 때의 정우의 별명은 쌍권총이었다. 정우는 ‘너랑 나랑’ 밥집 엄마 집에서 저녁을 먹다 시골의 엄마에게 전화했다. 정우는 만취했고 비몽사몽이 되었다. 호프집 ‘암벽’ 술집 주인이 취한 정우를 부축했다고 했다. 정우는 정말 나 건드리면 죽인다는 말을 지키겠다는 걸 지키는 사람처럼 주머니의 맥주병으로 암벽 주인의 머리를 가격했다. 백차가 왔고 정우는 경찰서의 유치장에 갇혔다. 갇혀 있는 동안 단골이었던 일어과 형이 남아 있던 술을 장사해서 팔았다고 정우는 그 이야기를 나중에야 알았다. 레미’ 라는 돈가스 집을 하던 형이 합의를 주선해 주었다. 레미 형은 정우의 뺨을 때리며 암벽 형 앞에서 무릎 꿇게 했다. 합의금은 백만 원이었다. 정우는 돈을 구하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열차는 구미를 넘어서면서 깊어졌다. 숙희와 정우는 좌석이 없어 열차의 칸 사이에서 흔들렸다. 난 출소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숙희는 나중에 말했었다. 출소한 사람 머리가 길다는 게 말이 되니? 정우는 말하지 않았다. 대구에서 내리던 숙희를 정우가 따라 내렸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였다. 잠깐만요! 숙희는 정우에게 대구의 중앙통 어느 밥집으로 데려가 감자볶음밥을 사주었다. 정우가 영화를 보자고 했다. 영화는 파리와 인간의 유전자가 결합된 괴물의 이야기였다. 정우는 자신이 파리의 습성을 닮았나? 궁금했다. 숙희는 처녀였다. 정우는 처녀들이 처음 남자와 자면 우는 것인지 숙희만 그러는 것인지 다가오지 않았다. 숙희는 대구에서 멀지 않은 곳의 방직 공장 공원이었다. 정우는 방직 공장 경비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저녁나절 나타난 숙희가 말했다. 이젠 만나지 마요.

     

     숙희는 한 달 뒤 정우의 학교로 찾아왔다. 정우는 숙희를 친구들에게 사촌 동생이라고 말했다. 술집 일을 거들어 주러 왔어. 숙희는 열여덟이었다. 은영이 언니하고 술 마시고 온 거 다 알아! 숙희는 정우의 방탕을 용서하지 못했다. 정우는 숙희에게 술집을 맡기고 다른 술집을 전전했다. 숙희는 품어주면 견디다가 일하면서 망가졌다. 정우의 술집은 보증금을 달세로 다 까먹어서 여름을 앞두고 가게를 비우고 나와야 했다. 숙희는 시내의 미용실에 취직했다가 미용실로 거처를 옮겼다. 난 이제 오빠 여자 아니야. 미용실에 걔네들이 밤에 놀러 와서 술 마시다가 걔네들 전부하고 잤어. 숙희의 마지막 말이었다. 정우는 ‘죄’라는 말을 처음으로 가슴에서 깊이 떠올렸다. 

     

     숙희와 만난 곳은 신촌이었다. 무주버스터미널에 나가서 오빠 한 달 동안 기다렸어. 숙희는 술이 빨랐고 여관을 먼저 찾았다. 나 결혼해. 경리로 들어간 곳 사장님이 내가 좋대. 정우는 숙희의 나이가 열아홉인 것이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한 번 더 가져.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정우는 아침에 눈을 떴다. 숙희는 떠나고 없었다. 나중에 벌 받겠구나. 정우는 시골의 어른들처럼 자기에게 말했었다.    

     

     

     

    도시의 골목, 시골의 마당

     오욕五慾이라는 막대그래프는 횡축에 나란히 서 있었다. 다섯 개의 그래프들 중 몇 개의 막대그래프를 낮추면 나머지 막대그래프가 낮아진 만큼을 벌충하듯이 높아져서 그래프 높이를 등가치로 만들었다. 세월을 지나면서 경탁이는 어렴풋이 그렇게 느꼈다. 경탁이는 한때 스님이 되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수도를 한다는 것이 성욕과 식욕이나 없는 듯 숨길까, 나머지 욕망을 다 낮출 거 같지 않았고 실제로도 권력욕을 높인 스님들의 볼썽사나운 다툼이 신문에 기사화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서 거둔 적이 있었다. 고매한 스님이 되었다 해도 자신의 마음바탕만 윤택하게 할뿐 차안의 중생들에게 덕이 될 거 같지도 않았다.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시상하부에는 식욕 중추와 성욕 중추가 1.5mm 간격으로 나란히 붙어 있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남녀의 성기가 조개와 가지로 불리고 따먹는다는 말도 생겨났다고 했다. 하와가 따 먹은 생명나무의 열매는 부끄러움을 열었다. 경탁이는 욕망 중에 가장 위험한 게 권력욕 같았다. 권력욕을 높이면 나머지 네 개의 욕망을 동시에 높여서, 한창 자랄 때의 친구 딸내미의 키처럼 막대그래프들의 종축 높이를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경탁이는 부끄러움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이 깊이 알아지지 않아 밀쳐두고 있었다. 

     

     키 낮은 욕망의 그래프들이 들쭉날쭉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골목들도 대중없는 막대그래프처럼 들어가고 나오고 꺾여서 사람들을 품었다. 사람들은 저지대거나 비탈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오불오불 몰려서 살았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이마엔 키 낮은 막대그래프가 찍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바코드를 ‘찌들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근대화 연쇄점이 성호 슈퍼로, 복덕방이 ‘럭키 부동산’으로 바뀔 때쯤의 90년대는 골목에서 사람 냄새가 완전히 가시진 않을 때였다. 여름의 초저녁 슈퍼 앞의 평상에선 연탄 화덕에 석쇠를 올려 굽는 돼지고기에 소주가 돌아, 미장원 아줌마나 식육점 주인, 슈퍼 주인이 발그래진 얼굴로 시시덕거리기도 했고 비가 후두둑거리면 일 나간 집들 빨래들도 거두어드려 주었다. 

      

     경탁이의 시골 생활은 뭐든지 함께인 것처럼 이루어졌다. 학교도, 마을 고샅에 있던 경탁이네 바깥마당에 모여서 산 두 개를 넘어 갔고 밥 훔쳐 먹는 날이었던 정월 보름에도 장독대의 음식들을 함께 걷어 와서 문교네 사랑방에 모여서 함께 먹었다. 마을 잔칫날에는 돼지를 잡았다. 돼지는 멱을 따면 지랄발광을 하듯 소리를 질렀는데, 피는 그릇에 받아져서 물감처럼 번들거렸다. 뜨거운 물을 부으며 털을 긁어내고 목에서 고환까지 칼질을 내면 수퇘지의 분홍색 코는 불쌍해보였다. 다른 것은 부위별로 나누어 졌지만 수퇘지의 똥구멍은 돼지를 잡는 사람이 자신의 몫으로 따로 챙겼다. 아이들도 돼지 똥구멍을 먹으면 그때말로 홍야홍야 하는데 왔따 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거 승재 아재가 돼지 잡는 데는 젤이여! 어른들은 딴전을 피웠다. 어린 경탁이는 돼지의 불알이 탐스럽게 커서 구슬의 일본말이었던 다마 치기할 때 모든 다마를 이길 수 있을 만한 신령스런 구슬이 불알 속에 있는 것 같아 킁킁 거리기도 했다. 창자를 소금과 밀가루로 잡스런 것을 훑어내듯 씻어 낼 때쯤 되면 동네 아이들은 몸이 달았다. 돼지 오줌보는 실로 동여매져서 축구공이 되었다. 새끼줄로 고무신을 묶은 아이들 틈에 철재도 있었다.     

     

     새로 문을 연 비디오방 여자는 키가 작았고 오나라 미인 서시처럼 가슴 병이 있는지 눈을 자주 찡그렸는데, 그러면 꼭 한 번도 본 적 없는 서시의 눈꽁댕이 같아서  경탁이를 설레게 했다. 참 예쁘시다. 호호호, 여기 매일 오는 다른 총각 하나도 나한테 꼭 같이 말한다아임니꺼. 무안스럽게로. 화장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요염해지고 향수 냄새가 짙어지던 여자는 남편과 자주 다투었다. 소문이 날 만도 하다고 생각할 만큼 비디오방은 남자 손님들이 많았다. 비디오방은 반년도 못가서 문을 닫았다. 비디오를 빌리러 간 경탁에게 여자는 이사하는 날짜를 알려주었다. 경탁이는 사직 운동장 건너편 쪽에 있던 포장마차에서 여자와 술을 마시던 날이 가끔 다가왔다. 여자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듯이 불빛 없는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서 경탁이의 몸을, 손으로 침으로 더듬었다. 이별의 인사라예,           

     

     여름의 창문은 열려 있었다. 골목의 집들은 납추가 달린 모기장을 치고 자는 집도 많았으나 모기향을 피워 놓고 자는 집들도 많았다. 벽의 못에 끈을 매어 친 모기장에 들어가 누우면 경탁이는 왜 그런지 아늑해지면서 묘하게 편안했다. 한참 자는데 기분이 이상에서 눈을 떴더니, 시커먼 그림자가 방을 뒤지고 있는 거야. 네 자형이 야간조라서 일 나가고 없어서 혼자 자는데. 그런데 너무 무서우니까 비명도 안 나오더라. 그래서 도둑이 나갈 때까지 그냥 자는 척 했어. 침도 꼴깍 넘기지 못하고. 야, 그런데 도둑들 참 신기하더라. 내가 생활비로 쓰려고 책갈피에 넣어 놓은 돈 15만원을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내서 가져갔어. 다른 책은 안 건드리고 딱 그 책만 뒤져서. 창원에서 막내 매형과 막 동거하기 시작했던 경미 누나가, 놀러간 경탁이에게 도둑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여자들은 옷가게에서 옷을 훔치거나 하는 경우는 있어도 사람이 자는 집에 들어갈 엄두는 내지는 못할 거였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도둑질을 하는 남자 도둑도 있었다. 골목의 도둑은 열려진 창문으로 끝에 낚시 바늘 같은 걸쇠를 단 긴 대나무로 방의 벽 옷걸이에 걸려 있는 웃옷과 바지를 걷어내서 지갑에서 돈만 빼고 옷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걸었다. 이튿날이면 지갑을 도둑 당한 집안에선, 식구들끼리 서로가 지갑의 돈을 빼갔다고 싸우기도 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러나 그런 집들이 살금살금, 한두 집씩 늘어나자 골목 사람들은 찜통더위에도 창문을 닫기 시작했고 방범창을 새로 다는 집들이 늘어갔다.  

     

     경탁이도 도둑을 당한 적이 있었다. 도둑들은 반투명 유리로 된 현관문을 비닐 테이프를 붙여 깨고 문을 따고 들어왔다. 가로등까지 껐어. 여기가 외돌아져 있으니까 저 불만 끄면 왔다다 이거였겠지. 도둑들은 고장이 나서 버려야 하는데, 그냥 장식용처럼 가지고 다니는 전축과 역시 낡아서 비디오테이프도 잘 틀어지지 않는 비디오 겸용 콤비 텔레비전을 훔쳐 갔다. 뒤져도 나올 게 없으니까 그랬는지 도둑들은 경탁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도내 사생실기 대회에서 상으로 받은 금메달을 가져갔는데, 경탁이의 금메달은 당시 일본말로 금메끼라고 부르는 동에다 금을 살짝 도금한 것이었다. 경탁이는 근처에서 자취하는 어린 것들이 그랬을 거라고 추리하였고 그들이 못 쓰는 물건을 끙끙 대면서 어둠을 타서 치워준 것이 고맙고 불쌍하기도 하였지만 추억의 금메달을 잃어버린 것이 오래 남았고 남의 집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 마음은 얼마나 악해야 하는지 알아져서 몸을 떨었다. 어느 법전 공부 책에 있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했다. 절도죄: 가장 오래되고 소박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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