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 관계(10)_조풍호



  • 장편소설 연재(10)



    관 계
                 

     

      조 풍 호






    아담 속의 하와

    하얀 다건과 다포에는 괭이밥이나 제비꽃 같은 꽃들이 수놓아 져서 깨끗한 바람 소리를 품고서 하늘거렸다. 자수는 실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했다. 여자는 시들지 않는 꽃이어야 한다고 상준은 생각했으나 전방의 겨울은 양말 세 켤레는 기본일 정도로 혹독해서, 손등이나 가슴은 터지거나 갈라진 듯 시렸다.

     

    상준이는 아버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여자라고 군복무를 못할 것도 아니었다.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들 중엔 식구들에게 폭행당하고 버림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상준이는 소수자인 그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자신은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처럼 이반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자신은 어딜 봐도 이쁘고 씩씩해서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거울로 들어가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발랄한 여자일 뿐이었다. 상준이의 걸음걸이는 곧고 아름다웠는데, 등하굣길에 상준이가 보도블록의 선에 맞추어 걷는 오랜 훈련 끝에 얻은 걸음걸이였다. 상준이의 예쁘게 눈을 흘기는 연습은 아무도 없는 방의 거울을 보며 이루어졌고 안짱걸음은 교정되어 발바닥의 종궁이 바로 섰다.

     

    단지, 상준이는 성서에서 하느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인을 만들었다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하느님이 자신을 지으실 땐 졸음에 겨워서, 갈빗대인 채로 서둘러 지상으로 보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완성되지 못한 몸으로 깃든 자신의 영혼이 애처로워서 술을 들이켜고 싶을 때가 잦았다.

     

    어미 곁에서 사냥을 훈련받기 시작한 늑대 새끼는 고슴도치를 처음으로 만나면 떠보듯이 공격하다 움찔하며 도망가지만 차츰 대범해져서 갖고 놀다가 몸을 찢었다. 김 상병은 늑대였고 상준이는 고슴도치였다. 늑대의 공격은 루머 속에 은폐되어 있었고 작은 일에서 시작되었다. 상준이에게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은 청결을 위한 단순한 행동일 뿐이었다. 상준이는 이슬람에서는 오줌이 튀면 불경죄로 처벌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좌변기는 앉아서 오줌을 누면 덤으로 홀로 있는 아늑함도 있었다.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에서 소변만 보고 나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 상병은 상준이 소변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쩐지 어깨가 너무 좁고 속눈썹이 길더라니. 김 이병, 너 쌍꺼풀도 여자애들처럼 테이프 붙인 거 아니야?

     

    상준이는 M16 소총에 30발들이 탄창이 장전되었음을 다시 확인하고서는 내무반 건물로 향했다. 상준이는 후번초를 깨우러 가는 것이 아니었고, 암구호를 수령할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이었다. 상준이는 후남이 언니를 떠올렸다. 후남이 언니가 상준이보다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은 공기놀이였다. 누나는 땅바닥의 공기들을 훑어 담는 기술이 뛰어 났다. 상준이는 지난날들의 추억과 햇살 속의 풍경들이 어떻게 훑어 담기며 사라질 지 쉽게 잡혀지지 않았다. 보고 싶어 하겠지? 언니가 나를. 나는 언니를 보고 싶어 할 수 있을까? 언니를 보고 싶어 하는 내가 남아있긴 있을까? 상준이는 잠시 흐릿해진 눈길을 연병장으로 보냈다. 후반야의 끝에서 뻗어 오는 햇살 속에서 부대에서 기르는 진돗개 필승이가 귀를 뒤로 젖히고 웃는 눈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필승이는 장교회관 창고 뒤에 꿩을 사냥해 눈 속에 파묻어 둔 날이면, 눈으로는 웃고, 달리는 건 갈색 탄환 칼 루이스가 되었다. 이번엔 네 선물을 먹어보지 못하겠구나. 필승아, 안녕!

     

     

    성조 아들 대준이

    아부지! 오늘 배운 영어 한븐 들어 보실래유? 왓츠댓? 잇츠버내이너. 왓칼러이즈잇? 잇츠엘로우디어-ㄹ 이게 무슨 뜻이냐하믄유. 저건 뭐예요? 응, 그것은 바나나야. 저것의 색깔은 뭐죠? 얘야-그것의 색깔은 노란색이란다아- 어때유. 지 잘하쥬? 근데 아부지! 오늘 지가 이 영어 공부하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대유. 미국 애들이 애들 때부터 이렇게 배우니께 위 알도 모르는 싸가지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런 거 같은 거애유. 우리나라 같으믄 얘야, 이게 바나나라는 건데, 이거 생겼다구 니 혼자 다 처먹을래, 아니믄 아버지한테 먼저 자시라구 하구 기달렸다 주시믄 나중 처먹을래, 이렇게 가르쳤을 긴데. 그렇지 안남유? 하긴 요즘 애들은 우리나라두 갈수룩 지들밖에 모르는 거 같구먼유.

     

    후남이 딸 희원이

    야, 걔는 맨날 얼굴, 존나 못생긴 애들끼리, 서로 이쁘다고 칭찬하고 가식 쩔지 않냐? 흐흐, 쌍꺼풀 수술할 거라잖아. 쌍꺼풀은 무슨, 양악수술 먼저 해야 되지 않겠드나? 양악 갖고 되겠드나? 견적이 롯데 캐슬일 걸. 야, 이슬이 이 씨발년이 배식판에 밥 조금만 담으라구 그러니까 날 야린다 아이가. 담배냄새 열나 쩌는 년이. 수정이 걔 피임약 먹는다매? 엠창이잖아 걔 엄마. 야, 이번 축제 때 생활관 입구를 콘돔 풍선으로 장식하면 어떻겠노? 야, 경우 힙 업 된 거 보면 꼴려. 내가 미친 거가, 아니면 니도 글라, 암튼 경우는 내가 찜공 했으니까 건드리면 안 된다! 알았제? 참, 왜 오늘은 투명인간이 안보이냐? 제일 먼저 교실에 와서 영단 외우고 있어야 될 년이. 저어기, 애씨발 애바쌤 온다. 아이들은 하루 천 개도 넘어 보이는 욕으로 살고 있었다. 애바는 바퀴벌레라는 뜻이었다. 체육 선생은 여학생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눈으로 핥았다. 희원이가 보기엔 교실의 아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에 접어들면 신분이 정해지는 것 같았다. 특목고 기숙사에 있는 여자애들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밖에 머리를 감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사촌 언니가 그러드라. 자기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 쫌 하는 애들은 머리가 다 떡이었단다. 아버지는 군대식 학교시절 얘기를 가끔 들려주었다. 옆에서 애들 빳따 치면서 내 차례가 가까우면 참 죽을 맛이었다. 기마 자세로 한 시간도 있어 봤다. 아버지, 요즘은 선생이 그런 폭력 쓰면 바로 동영상이야. 희원이는 요즘엔 애들끼리 폭력을 나눈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희원이에겐 가을이가 투명인간이 아니라 교실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다. 앞줄의 아이들은 압박감에 시달렸고 뒷줄의 아이들은 박탈감에 폭력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중간 줄의 아이들은 적의로 차 있었다. 희원이는 가끔 교실의 줄들을 누군가 줄넘기 하듯 돌리는 것 같아 현기증이 일었다. 김홍도의 그림 서당에 나오는 아이는 대님을 풀며 맞을 준비를 하고 눈물을 훔쳤지만 아이 하나는 입을 막고 쿡쿡대었다. 벗의 아픔이 고소해진다는 건 실상 벗이 아닐 것이었다.

     

    인디언 추장이 죽으면 그 부족의 도서관이 불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오빠가 그러는데, 노인네들은 싹 다 죽어야 된다드라. 몰라, 옛날엔 장유유서 그런 거 필요했지만 요즘 노인들은 탐욕만 늘어난 인간들이란다. 그래서 연민의 대상일진 몰라도 존경의 대상은 아니라 안하나. 봐보래이, 삼성 이건희가 봉사 활동하는 거 봤나? 우리 엄마가 중학교 때부터 경향신문 동아일보 받아서 읽게 했잖나. 난 같은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그렇게 다르게 말할 수 있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 돼. 야, 그런 얘기 재미없다. 니도 투명인간 취급당할라 그라나. 희원이는 가을이가 불쌍했다. 그는 그 흔한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문제집을 마음껏 사지도 못했다. 기초생활수급자라고 인식표처럼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가을이네가 못사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을이는 악바리였다. 안 풀리는 문제는 선생들에게 찾아가서 이해될 때까지 질문했다. 아이들은 유별나게 공부에 집착하는 가을이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만약 가을이가 그렇게 노력한 만큼 공부를 정말 잘했다면 아이들도 그렇게 함부로 취급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가을이는 공부를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십 등 언저리에서 좀체 올라서지 못했다. 노는 애였던 보람이가 가을이의 교복에 침을 뱉은 적이 있었다. 가을이는 정말 미친 아이처럼 괴성을 지르며 커트 칼을 들고 보람이에게 대들었다. 보람이도 질렸는지 가을이를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가을이는 그렇게 투명인간이 되어갔다. 희원이는 특별히 아이들에게서 왕따를 당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가끔 숨이 막혀서 교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생리는 이상하게 깊어져서 배를 끊어놓을 듯이 들렀다. 희원이는 야간자율학습만 없어도 살 수 있을 텐데 싶었다. 휴대폰 진동만 울려도 나 죽을 거 같아. 더 살고 싶은데, 이젠 지옥이 되었어. 자살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자신의 가슴으로 알아져서 희원이는 힘들어지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수북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라기 깃들이어 오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희원이는 수능 문제를 풀다 알게 된 서정주 시인의 ‘내리는 눈발 속에서’의 한 구절을 주문처럼 마음으로 읊고 있었다. 생리대 좀 빌려줘. 참 니꺼 한방 맞아? 가을이는 그 날 결석했다. 희원이는 불길한 생각이 떠나지 않아, 이럴 때 담배를 피우고 싶은 건가? 엉뚱한 곳으로 생각을 돌렸다.

     

    희원이는 학교의 담장의 각들이 깎여 나가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담장이 둥그러지자 로마의 원형 경기장 관중석처럼 둥그러진 가장자리엔 교실들이 날아가 둘러섰다. 그리고 텅 빈 원형의 중앙엔 감시탑이 세워져 있었다. 감시탑 속에 선생들이 들어간 것일까? 감시탑은 밝은 조명을 받고 있는 교실과 다르게 캄캄해서 그곳에 선생들이 있는지, 교장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희원이는 그곳에 감시자가 늘 있는 것 같았다. 희원이가 많이 아팠을 때, 신기하게도 그 감시탑의 어둠이 조금 걷히면서 감시자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있었고 희원이도 거기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도 희원이도 조금 달라 보였다. 그곳에 있는 감시자들은 아이들과 희원이의 아바타였다. 희원이와 아이들이 있던 교실은 감옥이나 군부대와 비슷한 건물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규율은 마음속에 있어야 한다. 그 교실이기도 하고 감옥이기도 하고 군부대이기도 한 입구에 쓰여 있던 문구였다. 희원이는 죄수처럼 배식구를 기웃거렸다. 제레미 벤담이 구상했다는 원형감옥은 멀리 있지 않았다. 쇼 생크 탈출이라는 영화에서 평생을 감옥에 있던 노 죄수는 가석방된 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목을 맸다. 교실의 아이들은 정반대의 이유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정교 아들 용득이

    무지개 색깔은 오색이었는데,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일곱 색깔로 바뀌었다. 산미테 할머니 이야기 속에선 삼색 무지개가 자주 등장했다. 산미테 할머니는 가끔 해를 침범한 흰색 무지개를 얘기 한 적이 있었다. 흰색 무지개는 불길함 그 자체였다. 용득이는 공부를 잘했다. 공부에 우등인 학생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정교는 용득이가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이어서 자신도 누군가의 선망인 것 같아 들떴다. 마누라와 나 중에 누구를 닮았을까? 겨울의 마른 논배미를 삽으로 파면 미꾸리들은 흙에 적셔지듯 있던 물에 의지해 겨울을 나고 있었다. 용득이는 개천에서 날 용이 아니라 꽁꽁 언 땅을 뚫고나온 미꾸리가 용이 되듯 될 것 같았다. 용득이는 학교에서 수석이 아니라 도내에서 일등이었다. 정교의 술은 달았고 술값은 턱처럼 사용돼서 정교는 처에게 미안했으나, 당당한 미안함이었다. 용득이는 정말 여의주를 물고 날아오를 것이었다.

     

    난 너희들을 용서하진 않아. 그러나 너희들이 나처럼 죽진 않길 바래. 살아서 사는 것이 얼마나 지옥인진 알고 죽어야지.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라 너희들과 나를 비교하게 한 입시제도 때문일 뿐이었어. 너희들도 각기 재주는 있었을 텐데… 오해 하지 마. 너희들을 관용, 그래 똘레랑스 하는 게 아니니까. 너희들은 적과 싸우지 않고 아군을 죽인 죄만으로도 충분히 처벌 받아야 돼. 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난 죽어서까지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 불쌍하다, 몸 가진 너희들이.

     

    아빠, 엄마. 할 말이 많은데, 할 말이 없는 것처럼 두 시간이 갔어요.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제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길 떠올리면 망설여질 거 같아서, 사랑해요. 이 말은 늘 할 수 있어요. 나중에도 말할 게요. 사랑하고 미안해요.

     

    동생! 내 옷 다 버리지 말고 딱 하나는 입고 다녀라. 자이언트 선수 싸인복. 이젠 니꺼고 너는 내가 보호해줄게. 진짜 투명인간은 기게스야. 형이 죽어서까지 놀림 당하는 투명인간이겠냐. 형은 이제부턴 반지의 제왕이야. 할로우맨! 기죽지마! 형은 기게스야. 왕이 될 거라고ㅎ

     

    그리고 우리끼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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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여자의 젖은 본초 강목에도 기록되었다. 240살을 산 사람은 증손자의 며느리 젖을 먹었다고 했다. 늦둥이였던 경탁이는 젖이 부족한 어머니 때문에 누룽지를 끓여 걸러 낸 밥물에 당원을 타서 젖 대신 먹었다. 경탁이가 잠시 사귄 여자는 연상이었다.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도 젖이 흘러서 흐르는 젖을 닦아냈다. 경탁이는 엄마의 젖이 생각나지 않아 비릿한 잠자리를 버둥대듯 넘겼다. 모든 꽃들은 가을꽃처럼 두툼하게 와서 하늘거리지 않았다. 인생의 겨울은 저기 있는 것처럼 있다가 늘 빨리 다가왔다. 이녁한테 나는 그냥 엔조이하는 대상이지? 늦은 나이의 여자의 젖은 젖이 나오듯이 달게 느껴졌다.

     

    부랑자들은 역에서 근무하듯이 있었다. 노숙인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남의 집 빨랫줄에 걸린 옷들을 걷어와 겹쳐 입었다. 스티로폼은 가장 안락한 침대였고 지붕이 있는 용달차는 최상급 호텔이었다. 비럭질에도 기술이 필요해서 눈은 불쌍해보이게 껌벅였고 다리 하나는 질질 끌었다. 손은 잘 씻어서 여행객들의 얼굴처럼 깨끗한 이도 있었다. 여성 노숙인도 있었다. 계집애 하나를 달고 다니는 여자였다. 여인은 늘 광장의 한편에서 낮은 톤의 횡설수설을 음악처럼 뇌까렸다. 경탁이는 정신을 놓은 여자가 어떻게 혼자 애를 낳고 탯줄을 자르고 강보에 싸서 젖을 먹이는 지 확연히 이해되지 않았다. 정신을 놓아도 서답을 두르는 때를 알고 씨를 받을 때를 아는 건지, 옷은 때에 절었어도 핏물로 적시지는 않는 것 같았다.

     

    경탁이는 춘천역에서 내려 술집에 들어갔었다. 주모는 사십이 조금 넘어 보였으나 볼우물이 깊어서 술을 깊게 들이켜게 했다. 경탁이는 반년을 기둥서방처럼 주모에게 비비고 살았다. 무위도식은 편했고 주모의 몸은 볼우물처럼 조였다. 주모는 얼굴이 검어졌고 간경화가 깊어지면서 경탁에게 집착했다. 나 죽으면 또 다른 년 몸에 깃들 거지? 자다가 주모가 경탁이의 목을 조르던 다음 날, 경탁이는 도망쳤다. 경탁이는 복수가 차오르던 주모의 얼굴을 잊기 위해 경기도의 한 역으로 흘러들었다. 결벽증은 사흘 만에 무너졌다. 보름이 넘어서면서 몸에서 나던 지린내가 맡아지지 않았다. 스티로폼이 깔린 지붕 있는 용달차를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던 날, 기온이 영하의 영하로 떨어져서 경탁이의 턱이 돌아가고 있었다. 랜턴 불빛 너머에서 방범대원이 말했다. 거 괜찮소? 파출소에 딸린 숙소는 뜨듯해서 잠이 길었다. 어서 먹어. 먹고 나서 얘기합시다. 아직 젊은 친구가 왜 그런 생활을 해? 저두… 잘 모르겠어요. 경탁이는 전화 부스의 전화기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여행객에게서 천백 원을 구걸했다. 천 원으로 막도장을 만들었고 백 원을 입금한 통장을 만들었다. 누나는 다행히 돈을 부쳐 주었다. 경탁이는 주모의 볼우물을 지울 수 없을 거 같았다. 삶에서 죽음을 살던 여인의 몸은 어떻게 무너졌을까?

     

     

     

    술집 뒤 테이블

    시장바구니를 친구 집에 감춰 두고 춤을 추러 댕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년이 사람이가. 지 서방은 죽자 사자 공사판 다니느라 허리가 휘는데, 내가 이년을 신축 건물 벽에 집어넣고 감쪽같이 미장질을 해버리고 싶다니까.

     

     

    아비

    정우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것이 멀리 가 있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아버지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산솟골의 홍명희 선생 문하에서 배웠다. 홍명희 선생은 아버지의 문장에 연결사 또 又자가 좀 많다고 느꼈던지 농을 던졌다. “우 자가 왜 이리 많누. 니가 우파로구나.” 아버지 학문은 여물지 못한 채, 전쟁에 휩쓸렸다. 신학문도 들어서지 못한 아버지는 휴전이 되던 해에 입대했고 특수임무수행자로 근무했고 자대는 보급대였다. 정우는 보직이 따로 없는 특수임무가 무엇인지 가늠되지 않았고 부대에서의 아버지의 십 년이 끌어당겨지지 않았다. 보급대의 보급품들은 이리저리 잘려나갔다. 아버지는 쌍안경을 목에 걸고 고동색 미군군복을 입은 사진을 보내왔다. 계급장이 없었고 이름표도 없었다. 돼지고기가 올라오고 술동이가 곁들여진 다음 날 동지들은 떠났고 돌아오는 이는 없었다. 아버지의 별명은 고문관이었지만 보급품에서 돈을 만드는 법은 살뜰히 익혔다. 니 아부지가 전역할 때 돈이 얼마나 많았던지 돈 자루를 지게꾼을 사서 짊어지게 하고 집으로 왔더니라. 오던 길에 지게꾼이 자루 속의 돈 냄새를 맡고 자루째 들고 내빼는 바람에 돈 자루를 니 아부지 말고는 본 사람이 없었지. 외삼촌은 아버지의 탈상 전날 술에 취해 떠들듯이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술이라는 애첩을 들여다 놓았다. 덕분에 엄마는 사내들처럼 일했다. 여자의 농사는 풍년도 흉년이어서 시골집에서의 생활은 엄마의 악다구니와 아버지의 조용히 홀짝이는 소주 넘기는 소리 사이에서 해가 뜨고 날이 저물었다. 기와에서는 유랑하듯 날아온 풀씨들이 자릴 틀고 웃자랐고 마당의 비질은 거칠어서 뒤꼍의 미나리꽝의 미나리들은 맛 오른 때가 훨씬 지난 뒤에야 걷어지곤 했다. 똥개 독구가 병이 들었는지 풀을 뜯어 씹던 날, 엄마는 집문서를 꺼냈다. 정춘이 아버지가 계약서를 들고 와서 마루턱에 걸터앉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엄마에게 아버지의 침묵은 폭력보다 더 폭력 같았을까?

     

     

    山腹道路

    산길은 좁아서 꿈틀거렸다고 했다. 후남이 엄마는 후남이에게 고향의 산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했다. 바지게꾼들은 산의 등뼈와 허리를 가리지 않고 잰걸음으로 오며가서, 흡사 날듯이 나타났다 사라져 갔다고 했다. 산 중에는 가랑이를 찢어 계곡물이 흐르기도 했는데, 계곡의 웅덩이에 사는 물고기들은 물처럼 투명해서 없는 듯이 있다고 했다. 사냥꾼은 보이지 않는 짐승의 길을 산짐승의 똥과 나무의 발톱과 등짝을 비빈 자국으로 따라간다고 했다. 산으로 내리는 비는 숯다리미 다림질의 물 머금은 사가품처럼 흩뿌렸다고 했고 가을의 나뭇잎들은 허방을 품고 있어 서낙한 아이들도 산에서는 조신해진다고 했다. 고향에서는 등산登山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유산遊山이라 해서, 아이들이 걸음을 떼고 나서 가장 먼저 듣는 소리가 올라갈 땐 빨리, 내려갈 땐 천천히 라고 했다. 산은 신령의 집이어서 실제 꽃들은 내려올 때 보이고 오를 때는 마음의 꽃들이나 보이는 곳이라고 했다. 산안개는 새벽동자의 굴뚝 연기처럼 희고 그득했다고 했고 봄의 끝까지 산의 그늘진 곳에는 눈들이 소금버캐처럼 던져져 있듯 남아있었다고 했다. 산밭의 고랑을 낼 땐 새앙뿔의 부룩소는 힘들어 콧김을 무시로 뿜어냈다 했고 해지개의 노을은 선녀의 옷자락 같다고 했다. 북망산은 성주풀이로, 앞남산은 새타령으로 넘었다고 했고 등고登高의 서리가 내려도 산밭의 똥거름에선 개똥참외가 열려 있기도 해서, 송이버섯을 따듯 엄숙하게 땄다고 했고 겨울의 나뭇가지에는 겨우살이가 실이 서리듯 서려 있어 찻물을 내렸다고 했다. 좃바위는 아낙들이 문질러서 반질반질 했고 씹바위는 늘 젖어 있어 남정네들의 눈이 가늘어지게 했다고 했다. 용눈썹의 외증조부는 선산에 묻혔는데, 절개 있게 살아서 갈매빛 도래솔에는 햇살들이 신선 세계의 새떼처럼 놀다 간다고 했다. 한라산처럼 등판이 넓고 허우대가 멀쩡한 산에는 산의 허리를 따라 마을이 깃들기도 하지만 산의 허리는 엄폐하기 좋아서 도적들의 산채나 독립군의 근거지가 세워진다고 했고 인가는 산의 발목까지만 깃드는 게 정상이라고 했다. 후남이는 산복도로를 따라 가끔 걸었다. 어린 시절은 까맣게 잊히어서 엄마의 목소리로만 기억되는 것 같아 후남이는 아득했다. 부산은 피난 시절 만들어지듯 만들어져 판자로 지은 집들은 산의 꼭대기까지 오를 기세로 집들을 얽어 깃들었을 것이었다. 감천동은 산의 배꼽까지 길들이 이어졌고 집들은 더 높은 곳까지 게딱지처럼 눌러 붙어 있었다. 후남이는 고향의 사투리가 남아 있는, 해바라기하는 노인네들의 골목을 걷는 것이 좋았다. 후남이 언니! 언니는 왜 이름이 두 개여? 미선이는 뭐구 후남이는 뭐여. 난 후남이가 좋은데, 을매나 좋어. 마음씨두 비단결 같구 후덕해보이잖여. 그러니까, 언니! 오늘도 날 집까정 업구 갈 거지? 상준이의 일은 방송을 타고 신문에 오르내렸다. 엄마는 울었는데, 죄인처럼 울었고 아버지는 부랴부랴 이사를 했다. 후남이는 엉클어진 듯 이어진 산비알의 전선줄을 보면서 상준이가 실뜨기를 했으면 저렇지는 않았을 텐데, 싶었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어서 상준이의 이름은 악담과 저주 속에 불렸다. 후남이는 아버지에게 미리 상준이에 대해 말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여자의 마음으로 남자의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상준이를 멀어지게 할 거 같아 후남이는 속으로 앓았었다. 가깝게는 몸에서, 멀리서는 천지만물을 취하여 만들었다는 팔괘에 상준이는 깃들지 못했던 거 같아서 후남이는 명치가 끊어질 듯 아플 때가 있었다. 영이라도 태극의 능선을 타게 해주고 싶었으나 감천동에는 이제 한국전란 와중에 고향에서 내려와 반달 고개에 둥지를 틀었었다는 태극교 교인들은 몇 남아 있지 않았다. 후남이는 벽화 속의 흰 구름이 신령하게 푸르러 보여서 구름 속에서 상준이가 평안하길 빌고 싶었다. 감천은 신이 깃든 곳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했다. 상준아! 후남이는 아미산 쪽을 바라보며 얼굴이 오종종하고 눈썹이 반달 같던 동생을 마음으로 불렀다. 산복도로 쪽으로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고 업혀 있던 상준이가 울듯이 블라우스가 비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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