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 관계(9)_조풍호

  • 장편연재  9

                                                    관        계 



    조 풍 호



    정임이와 은자, 6년 전의

    뻐꾸기는 개개비 둥지에 탁란을 했다. 알에서 깨어 나온 뻐꾸기 새끼는 개개비 알들을 똥구멍으로 밀어내고 알에서 깬 개개비 새끼도 궁둥이로 비벼 밀어 둥지 밖으로 밀어 내었다. 개개비 어미는 날로 커 가서 자신의 몸집보다 서너 배는 커진 뻐꾸기 새끼를 금지옥엽처럼 대했다. 개개비 어미 몸집은 너무 작았다.

     

    니를 낳고 널 첨 봤을 때, 나는 기얌을 혔다. 대추씨 쪼옥 빨아놓듯 새까만 게 조막만 해가지고…, 쥐새끼도 처음 놀 땐 맨살이 발그레한 게 이쁘기만 한디, 이게 크믄 우찌 될라나 그렇더니만 … 우리 딸두 많이 늙었구나. 은자가 두 번째 병원을 찾았을 때, 엄마는 은자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은자는 엄마가 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엄마는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미가 자신의 몸으로 낳은 생명을 담아서 가는 저승은 어떤 곳일까? 은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은자가 엄마의 입원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겨우 여비며 돈을 마련해서 병원을 처음 찾았을 땐, 엄마는 환자복을 어색해 했고 팔에 링거 주사기가 꽂혀 있어서 은자의 두 손을 꼭 잡아주지 못해서 아쉬워했다. 엄마는 눈 껌벅하면 지날 만큼 짧은 시간에, 울듯 하던 눈을 꾹 참는 눈으로 바꾸더니 눈과 입가로 살짝 웃었다. 나는 병원이 아무캐두 병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병을 도지게 하구 깊게 하는 곳 같으다. 이 닝겔 주사기만 꽂으믄 바루 환자가 되니, 이거 원 갑갑스러워서 살겄냐. 엄마가 입고 있는 환자복은 흰색 바탕에 병원이름을 이은 살구색 띠무늬가 나염되어 있었다. 옷이 헐거워서 은자는 엄마가 더 애처로워 왈칵 울음을 쏟았다. 엄마는 고칠 수 있을 거예요. 머리에 물이 찬 것일 수도 있다니까 엠알아이 사진 결과 나올 때까지 함 기다려 봐요. 외할머니도 지금 구십 여덟이나 되었는데도 바늘에 실을 꿰는데, 엄마도 외할머니 닮아서 오래 살 거예요. 은자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엄마가 정말 그럴 거라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상준 에미야. 아니다. 니 큰 외삼춘두 내 아부지두 뇌종양으로 죽었다. 병으로두 못 속이는 게 피구 가족인 거니라. 니 청주 외삼춘이 잘났다 해두 큰외삼춘에 비하믄 하찔두 그런 하찔이 읎다. 니 큰외삼춘은 참으로 이마가 시원하구 몸집이 반듯해서 동생인 내가 설렐 정두 아니었냐. 여자들이 줄줄 따랐는데…, 예전엔 의술이 지금보다 까막이어서 뇌종양인 냥반을 배를 갈라 위를 잘랐으니…,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다구 고염 꼭다리두 엄청 달여 드셨다 뇌종양을 두고…. 엄마는 젊어서 돌아가신 큰외삼촌이 보이는 듯 눈을 병실 천장으로 보내고 있었다. 송이 엄마는 월식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바로 짬을 낼 수 없대요. 조만간 식당 봐 줄 사람 구해놓고 시간 내서 바로 올라온다고 했어요. 은자는 엄마가 상준이도 상준이지만 후남이를 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여자의 일생으로 같아서, 같은 삶을 살아낼 여자의 몸을, 죽어가는 살 냄새로 가늠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졌다. 올케는 가까운데 있으면서도 며칠에 한 번씩밖에 안 들른다면서요? 봐봐. 오늘도 내가 올라온다고 했는데, 들른다고 하더니 아직 코빼기도 안보이고. 전화기로만 갈게요오, 갈게요오. 은자는 엄마에게 간병인을 붙여 놓고 돈으로만 수발을 다 한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아 성조 처가 미워져서 미간을 찌푸리며 어릴 적 삐칠 때처럼 입술을 비죽였다. 엄마는 아니다 매일 들른다 번연한 거짓말로 감싸고 있었다. 은자는 성조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 혼자 자수성가하는 동안 부잣집과 혼인했다는 누나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상준 아버지는 엄한 곳에 돈을 가져다 쏟아 부으면서도 처남한테는 박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외면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가정은 끔찍이 생각해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경제권을 쥐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충청도 여자들은 대개가 곳간 열쇠까지 남자에게 뺏기곤 했다. 은자는 시장비까지 타 써야 할 때마다 남편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지만 표를 낼 순 없었다. 그렇게 털어 먹을 줄 알았으면 진작에 내가 나섰어야 하는데, 싶어서 은자는 후회가 되곤 했다. 상준이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손방아를 자주 찧었다. 내가 이번엔 사내답게 한 번 일 낼 테니까 두고 봐. 그것들이 대부분 설레발에 허세였다는 건 성조가 착실히 돈을 모아 고향 근처로 결혼을 해서 떠난 뒤에야 드러났다. 나, 사는 거 괜찮아. 엄마는 왜 자기 몸이나 생각하지, 잘 사는 딸자식 걱정을 해? 벼락부자가 재산 잃기 쉽다고 누가 그래. 상준 아빠 지금 다시 사업 일으켜 세워 가지고 이젠 아무 걱정 없어. 결혼할 때 하고 사정이 비슷해. 은자는 죽어가는 엄마에게 내가 왜 이러나 하면서도 말은 튀어 나오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 이런 못난 모습을 엄마 가슴에 담고 가게 해서.’ 은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한 지난날을 모두 살고 싶었다. 엄마, 텔레비전 소리라두 나야지 저것까지 꺼버리면 엄마 자꾸 다른 생각만 하게 돼. 소리는 조금 줄일 테니까 그냥 켜 놔. 은자는 아버지의 왜가리 같은 다리와 눈이 생각났다. 니 아부지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사셨다. 자신이 적이었으니 전쟁터를 어찌 떠날 수가 있었겠냐. 내가 그 냥반이 흘리는 피를 다 받아주고 닦아주었더니라.

     

    엄마는 두어 달을 넘게, 살아서 레떼의 강을 건넜다. 뇌종양은 폐로 전이되기 전에 엄마의 뇌신경을 망가뜨렸다. 증상은 치매였고 그냥 치매보다 죽음에 휠씬 가까운 치매였다. 은자는 쟁반에 담겨 있는 병원 음식 반찬들 양이 너무 적어서, 꼭 소꿉놀이 장난감 밥상 위에 담겨 있는 음식처럼 느껴졌다. 먹기 위해 사는 건 아니구나. 의식도 없는 엄마는 밥을 먹었고 배변을 보았다. 칫솔질을 해줄 때 엄마의 입에서 저승 냄새가 나서 은자는 화장실로 달려가 토악질을 했다. 엄마, 어떡해 우리 엄마 어떡해-

     

    그년이 참 독한 년이다. 지 에미가 백수白壽가 다 되어가서 언제 숨 놓을지 모르는디, 문안 전화 한 번 없구 전화번호두 바꾸었는지 내 아무리 전화번호를 돋보기 써가며 또 눌러두 눌러두 받지를 않구. 내 뱃속으루 안 낳은 은영이두 엄마 걱정된다구 하루가 멀다 하구 전화를 하는디. 참으루 독하다 … 얘 선식이 엄마야, 혹시 사우가 죽은 걸까? 그러니까 이렇듯 전화를 못 하는 거지. 억장이 무너져서.

     

    통화, 그 때

    어머니께서 계속 그런 말을 하시는디, 어떡허야. 솔직히 말하믄 충격 받아 돌아가실 거 같구. 그려서 딸까지 앞세웠다는 건 비밀루 하기루 선식이 아부지 하구 상의해서 결정했지.

     

     

     

    십 사오년 전

    예의 산미테 할머니의 죽음과 그 전의 텃골 마님의 영면까지 정교가 찰랑찰랑 길어다 주었다. 산미테 할머니는 마당의 평상으로 저녁노을이 고추처럼 널려지던 초저녁에, 저녁 한 상 잘 먹고 트림하고 강아지 촐랑이한테 무슨 이야긴가를 들려주다가, 자는 듯이 죽었다고 했다. 경탁이는 할머니의 유언을 듣지 못했지만 들은 듯이 들려왔다. 상걸아, 이 집은 어떤 일이 있어도 헐거나 팔지 말거라. 마님 제사도 잊지 말구 대대로 지내주구. 산미테 오두막은 돈으루 바꾸어두되 산밭으로 일구는 걸 다짐 받구 팔거라. 내 산소는 아랫말이 잘 보이는 곳에 둬서 마실 사람들이 점점이 들락거리는 거 볼 수 있도룩 해주믄 좋겠구나. … 배 주려서 머리카락 가발루 팔아 쪽을 지르지 못하는 아낙들이 늘어나더니, 배곯아서 키 작은 통일벼를 심어, 이엉을 얹을 수 없었더니라. 빠마가 유행하고 지붕들이 알록달록 해졌으니 오래잖아 우리 것은 설 자리가 없을 거니라… 내 이야기는 먹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읎고 이야기를 좋아하믄 가난해진다니 이야기 하는 것은 좋아하지 말되, 이야기를 간직은 하거라. 내 옷궤에 비단으로 싼 옷은 마님이 성례할 때 지어주신 것이다. 딱 한 번 입구 아깝구 송구해서 입지 못했더니라. 마님은 늙으셔서 죽었지만 몸은 아기인 채루 죽었으니, 능말 박수를 찾아가서 몇 천 리를 수소문혀서라두 영혼이 쉬도룩 혼례를 올려 드리거라. 그래야 내가 가서 마님을 놀려 드릴 거 아니냐. 드디어 젊은 서방을 만났으니 밤마다 기차가 지나가는 오막살이 아낙 기분을 아시겄네유 하구.

     

    아, 니가 경탁이구나. 사는 게 좀체 쉽지가 않쟈? 그렇기 쉽지 않은 기 사람살이라는 거다. 그리구 이 할미가 들려준 야기 중에 영웅들 야기는 모조리 잊구 한 분만 기억혀라. 아기장수 영웅이다. 아기장수는 한 분이 아니구 수없이 많은 분들의 대표 이름이니라. 적벽대전의 영웅이 정욱과 조조가 아닌 것과 매한가지다. 대통령두 왕두 영웅이 아니다. 천리 장성으루 돌 져 나른 영웅들이 읎이 어떻게 역사가 이어졌겠느냐. 나는 아직두 화살을 날리믄서 왜구와 싸우던 갑득이 칠득이를 본 듯 보느니라.

     

    경탁이는 정교 말을 들으며 엄마! 할무니가 저기 저짝에 이렇게 하구 서 있었어. 누나의 말이 떠올랐고 친할머니도 사는 게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는 걸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멀리서 봄은 오고 있었고 나이스 샷! 산천은 양떼가 풀 뜯는 유럽의 어느 언덕처럼 가지런히 밀어져 있을 것이었다.

     

    착한 여자

    왜 나는 너도 못 버리고 걔도 못 버리지?

     

     

    문 조절 이론

    떼까마귀나 부엉이 둥지에는 보석이 있다고 했다. 반짝이는 것에 사족을 못 쓰는 게 여성의 본능인지, 여성으로의 학습에 대한 결과인지 은정이는 나눠지지 않았다. 새들은 나무들의 리본이었으나 새들의 노래는 리본의 물감색처럼 다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둥지를 침범한 뱀에 대한 다급한 경고의 울음도, 영역을 침범한 놈과의 싸움을 위한 울음도, 모두 새들의 즐거운 재잘거림으로 들었다. 경수에게 나는 어떤 새일까?

     

    “뭐해? 집에 놀러가도 될까?” 은정이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현관 앞에 있을 것이었다. “그냥 뉴스보고 있었어. 어딘데?” “호호, 내가 점쟁인 점쟁인가부다. 집에 있을 거 같더라니까. 집 앞이야. 문 열어 줘요오오.” “내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미리 전화 좀 하고 오라고 그렇게 일러도.” 트렁크 차림으로 문을 열면서 경수는 짐짓 꾸짖는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들어오는 은정이를 두 팔로 감싸며 어디 한 번 까먹었던 얼굴 좀 보자라는 표정으로 은정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고갤 돌려가며 보다가 눈을 다정히 맞추었다.

     

    은정이에게 눈은 신기했다. 사랑은, 혓바닥을 나누어 핥거나 배고픈 아이가 손을 빨듯 보채면서 몸을 섞어서 오기 전에, 눈으로부터 오는 것 같았다. 입맞춤보다 눈맞춤은 힘든 것이었다. 눈을 삼십 초 이상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연 몇 사람이나 만날 수 있을까? 은정이는 때때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과 불현듯 시선이 부딪히는 게 어색해져서 미간에 찌르르 전기를 느끼며 어쩔 줄 몰라 할 때가 많았다.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알았죠? 싫어서 그러는 건….’ 경수의 눈동자는 검어서, 바라볼 땐 빨듯이 보았다. 동자부처 속 은정이는 몸이 단 것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은정이에게선 술 냄새와 잡다한 음식들 냄새가 섞여서 났다. 머리에선 샴푸 냄새와 삼겹살 냄새가 섞여 있어, 경수는 은정이가 미디움으로 익힌 소고기 같다고 생각하며 풋, 웃었다. 어느 날 저녁에 급한 일이 있어 탔던 택시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났었다. 기사는 경수에게 부드럽지만 무겁게 말했었다. 제가 환기를 제 때 못한 건 죄송하지만, 냄새로 내리신 손님 분들께 욕하는 건 옳지 않아요. 다들 살려고 먹는 건데.

     

    자기야, 통증을 느끼는 건 통각 신경 때문이야. 응, 근데 그 신경이 피부에 비해서 내장은 분포도가 엄청나게 낮지. 폐와 간에는 아예 없어. 폐암 간암이 늦게 발견되는 이유야. 암세포가 다 잡아먹을 때까지 하나도 아프지 않는 거지. 자기야, 근데 난 내장도 피부도 아닌 곳에서 통증을 느껴. 몰라, 아주 어릴 적엔 조금만 아팠는데, 생리할 나이 지나고부터 너무 아픈데, 그곳이 어딘지 모르는데도 그곳이 있다는 게 가끔 끔찍해.

     

    은정이는 외과 의사답게 자신의 외도를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 합리화하려 들었다. 통증은 촉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했다. 통각보다 빨리 촉각이 뇌로 달려가 결승선의 테이프를 먼저 끊는 방법이라고 했다. 통각이 뇌로 향하는 문을 촉각이 닫는다고 해서 문 조절 이론이라고 했다. 간호사들 침놓을 때 볼기짝 때리는 게 그거야. 이별하기 전에 정나미 떨어뜨리려는 사람처럼 은정이는 침대에 누워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교실 수업 시간 어투 같은 은정이의 어투에 경수는 엉뚱하게도 달았다. 은정이는 때때로 섹스라는 자극이 없으면 죽을 것처럼 아플 때가 있다고 했다. 경수는 은정이의 어디서 오는 지도 모르는 통증은 어떤 통증일까? 멀어서 낭떠러지가 빠르지 않았다.

     

     

     

    엄마 같은 할머니

    누구야? 돌봄 아줌마. 간병인이 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대. 그럼 빨리 가야지. 아냐. 하던 거 마저 해줘. 채찍으로 때리듯이… 욕하면서… 해줘… 해달라면 좀 해주면 안 돼? 은정이는 친구 할머니 부고 소식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담담하다 못해 냉정해 보였다. 아파서 그랬을까? 또 통증이 슈퍼맨처럼 나타나서 지구를 후루룩 돌듯이 가슴이며 머리를 헤집어 놓은 것이었을까? 경수는 은정이의 섹스가 정말 통증 때문이었다는 확신이 들고 있었다.

     

    은정이 엄마 미순이

    경옥이는 아이들이 놀이마다 저희들 끼리만의 규칙을 만들고 승부를 가르는 것이 신기할 때가 많았다. 동그란 딱지는 사내아이들이 퍽 좋아하는 것이었다. 만화 주인공들이 그려진 딱지들을 쌓아놓고 아이들은 파-파- 입 바람을 불어 넘어뜨려 승패를 가르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탁자를 타악 쳐서 넘어지는 것으로 승패를 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집안에서의 놀이였고 집 밖에서 아이들 서넛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면, 양 손에 딱지를 엎어 놓고 딱지의 가생이를 돌아가며 그려진 별의 개수나 숫자의 많고 적음, 등장인물의 수 등으로 승패를 가르고 있을 터였다. 경옥이는 혹시 하느님도 저렇게 아이들처럼 인간과 딱지 따먹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었다. 천국을 약속하면서 하느님은 지옥의 딱지 그림을 먼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악한 신이 하느님만 다스릴 수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자 잠시 이 세상을 그 악한 신이 다스려보도록 허락한 것일 지도 몰랐다. 경옥에겐 지옥은 때때로 저승에 있지 않고 현실에도 있었다.

     

    미순이는 학업을 계속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봉제공장에 들어가 미싱 기술을 열심히 익혔다. 난 디자이너 될 거에유. 미순이는 경옥이나 남동생 앞에서는 왜 ‘유’자가 없어지지 않고 딸려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외삼촌과 엄마에겐 끔찍이도 잘했다. 미순이는 텃골 마님만큼 손재주가 있는 건가?- 경옥이는 깊이 알아지지 않았다. 그래두 난 집에서 다니니까 괜찮은 편이에유. 다른 애들은 배가 고파서 보름달빵 하나 먹어 볼 거라고 빵계도 들고 그래유. 미순이는 한 달에 두 번밖에 없는 휴일이면 방바닥에 앉아서 도화지 위에 옷을 입은 여자들을 스케치하는 것을 좋아했다. 옷들을 펼쳐서 그리기도 했는데, 어깨에 뽕이 들어간 공주 옷 같은 것을 시접을 넣어 그린 뒤에 옷본을 뜨듯 가위로 오려서 이리저리 들여다보기도 했다. 경옥이는 아버지가 없어도 씩씩하게 자라주고 고생스런 일을 하면서도 표내지 않고 지나주는 미순이에게 미안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안 힘들어유. 지가 하나씩 다 배워서 우리 엄마 환갑날엔 봉鳳새 같은 활옷 입혀 드릴게유. 드르륵 드륵 먼지구덩이 봉제공장 한편에서 오바로크를 넣고 있던 미순이 눈에 다른 공장에서 옮겨 왔다는 경철이의 과묵해 보이는 한일자 입술이 천천히 들어왔다.

     

    창신동이 동대문하고 가까우니까, 거기에다 공장을 내볼까 합니다. 가내 공업이니 공장이랄 것도 없지만 은정이 엄마가 우리 꺼 하면서 살자고 하도 닦달을 해서, 제가 은정이 엄마 꿈은 이루어줘야 안 되겠어요. 경옥은 의당 반가울 만한 이야기인데, 왠지 그냥 남의 돈 타먹는 게 몸은 고생시러워도 맘고생 안하고 수월케 세월 지나는 법 아닐까? 안 그려 이서방? 입속에서 엉뚱한 말들이 돌고 있었다.

     

    엄마 지두 오래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유. 은정이 아부지한테두 새장가 들라 했어유. 그냥 안 봐지는 거랑 죽은 거랑 다를 게 뭐 있어유. … 은정이 사진이나 세월대로 보내주고 잘 키워 주세유. 은정이 아부지가 엄마 가끔 들여다봐주구… 나한테도 달달이 생활비는 부쳐주기로 했어유 … 은정이 아부지가 데리구 가서 키우겠다는 걸 지가 그건 죽었다 깨어나두 안된다고 했어유. 내 딸을 계모 밑에서 자라겐 할 수 없다구유… 약속 어기면 엄마하고 의절할거고, 아니지 그 전에 칼 물고 칵 죽을 테니까 그리 알아유… 나는 뭐 좋아서 이러겠어유 흐, 흑 … 안 울어유. 진 이제부턴 절대로 안 울어유. 은정이만 잘 커주면 지는…

     

    미순이네 공장 옆 벌집 방 건물에서 불이 났다. 낡은 건물은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고 곤로가 엎어지듯 미순이네 공장으로 불들을 몰고 쓰러졌다. 사위가 재게 움직인 덕분에 은정이는 화마를 피했다. 미순이도 겨우 피했으나 얼굴에 깊은 화상을 입은 채였다. 수술은 길었고 위험은 넘겼으나 미순이는 식판의 쇠수세미 자국 같던 깨끗한 미소를 잃었다. 은정이 곁을 지키며 이태를 넘기며 진실 되게 간호하던 사위가 결국은 떠났다. 미순이는 일부러 정나미를 떨어뜨렸을 것이었다. 미순이가 오래, 두꺼운 커튼 속 어둠으로 숨을 방을 사위가 구해주었다. 일이 났던 그날, 미순이의 꿈이었던 옷감들은 불쏘시개일 뿐이었다. 경옥이는 그날 미순이가 본 것이 하느님이 손바닥 펼쳐 보여준 것이 건, 악한 신이 손바닥을 열어 보여준 것이 건 신들의 손바닥에나 있는 지옥의 불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은정이 에미야. 나두 이젠 병들어서 오래 못 살 거 같다. 어떡혀. 이젠 은정이한테 나타나도 되지 않겄냐? 은정이두 지 엄마가 살아있다면 참으로 좋아할 건데….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고 했잖아. 이런 몰골 엄마한테 비치는 것도 나 죽을 것만 같은데… 그 애한테는 안 돼. 암, 안 되지. 엄마도 그런 말 또 할 거면 다신 여기 오지마. 딸자식 죽었다고 생각하라구!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