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 관계(7)_조풍호

  • 장편연재 7

    관  계


    조 풍 호






    탐닉

    가을걷이가 끝나면 문에 창호지를 새로 입히는 행사가 있었다. 정우 어머니는 주걱을 휘저어 풀을 쑤었다. 밀가루는 푹푹거리며 구수해졌다. 마른 꽃잎들이 덧발라져 새로 단 문은 냄새가 시원했고 달빛을 밀치듯이 받아내서 밤은 은은했다. 정우는 문짝에 달려있던 수톨쩌귀가 문설주의 암톨쩌귀에 꽂히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사람으로 번성하는 원리가 짐승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겼다. 닭이 언제 교미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리병아리들은 태어나서, 어미의 깃 속으로 누추한 몸뚱이를 들이밀었다. 능말의 기덕이네 아버지는 살인죄를 범하고 잡혀갔다. 아내와 밭일을 끝내고 돌아오던 기덕이 아버지가 기덕이 엄마를 잡아끌었다고 했다. 아마도 외돌아진 솔수펑이의 푸새가 아늑해보였을 것이었다. 망측하다고 핀잔을 주던 기덕이 엄마는 기덕이 아버지의 소두방만한 손에 목이 졸려 숨을 놓았다고 했다.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간 기덕이는 아랫목 이불에 덮인 엄마를 보았다. 밥 때가 다 지났는디두 니 엄마, 아까부텀 저렇기 잠만 자구 영 일어나질 않고 있느니라.

     

    정우는 여자를 돌려 눕히고 여자의 엉덩이에 가슴을 맞대었다. 여자의 엉덩이는 냉장고문을 열어 놓은 것처럼 시원했다. 처음 만나 포장마차까지 술이 이어지던 날, 여자는 기본 안주로 나온 미역국의 미역이 앞니 두 개를 없앤 지도 모르고 이야기에 몰두했었는데, 정우는 그때 그 모습이 우습다는 생각보다, 술을 마시다가 불콰해진 뺨을 연신 양손바닥으로 토닥이는 여자를 볼 때처럼 몸이 달았었다. 우니까 받아주더라. 우니까? 어느 천지에 기사내가 머스마 우는 데 반해서 몸을 열었겠노? 진짜야. 많이 울다 안아만 달라고 하니까, 걔가 옷을 벗더라니까. 눈물 흘린 뺨을 핥으면서. 여자는 다른 여자들의 잠자리를 귀로 훔쳐보길 좋아했다. 정우는 그런 여자를 위하여 여자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정말 그런 여자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착각하곤 했다. 정우와 여자는 삼천 원 하는 여인숙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돈이 궁해진 날은 다가구주택 옥상으로 올라가 빨랫줄의 옷들을 걷어다 깔고 몸을 섞기도 했다. 낭떠러지가 깊지 않아 정우는 무안했다. 쪼매 미안킨 하다, 옷 주인들한테. 여자는 여자 동네의 뒷산 묘지 상석에서 치마를 올리기도 했다. 개사초를 했는지 떼에서 붉은 흙 기운이 돌았다. 여자는 내려오는 길에 산밭가로 흐르는 물길에서 뒷물을 했다. 여자는 정우를 자기 집으로 몰래 끌고 들어가기도 했다. 누런색 페인트가 칠해진 여자의 다가구주택은 ‘무궁화 주택 가동’ ‘무궁화 주택 나동’ ‘무궁화주택 다동’ 이런 식으로 검은색 페인트가 큼지막했을 뿐, 백색단심무궁화의 화사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물이었다. 복도식 건물은 음침해서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현관문에서 왼쪽으로 반투명 유리를 끼운 격자무늬 미닫이가 있었다. 잡동사니 살림들이 한편으로 쌓아올려져 있어 창고 같기도 했고 한 사람 정도 누울 수 있는 공간은 담요에 밍크 이불이 깔려 있어 자투리 방 같기도 했다. 그 쪽방으로 들고 들어간 정우의 신발은 여자의 다리 밑에서 마치 처용처럼 밤새 둘을 들여다보았다. 정우는 다음날 아침나절 여자의 식구들이 모두 출근하고 여자의 엄마까지 외출을 할 때까지 오줌을 참으며 여자의 뒤쪽에 바싹 붙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여자의 목덜미에선 정우의 삭은 침 냄새가 번졌다. 여자는 스물 둘이었고 쉿 쉬잇. 그날의 말없이 허우적거린 자투리 방에서의 여자의 몸이 비벼진 밍크 이불 냄새는 정우와 헤어질 준비를 끝내는 여자의 의식을 위한 향연 같은 것이었다.

     

     

    안개

    안성으로 가는 길의 산자락을 갈아엎고 들어선 교정의 연못은 90년에 들어서도 하늘을 하늘처럼 받아내고 있었다. 음대 건물의 뒷산 배나무 과수원을 넘어가면 건지리는 똥 누는 자세로 들어앉아 있었고 정반대편 예대 건물과 산업대 건물의 가랑이 사이로 뻗어 내려가던 내리는 안개가 깊었다. 청춘들은 늘 허기져서 술과 밥과 울음을 찾으러 내리를 헤매었다. 후배나 선배들은 내리의 끝자락을 돌아 마을마다 깃들었다. 마을을 연결하는 길들은 음기가 강해 진창이었는데, 술에 취한 한 후배가 랜턴이나 동행을 챙기지 않아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길가 풀숲에서 밤새 음냐거리기도 했다. 괴성이라는 별명을 지닌 여자 선배는 사내를 바꿔가며 신음을 길 쪽으로 쏟아내듯 뱉어내서 달빛이 낭랑했고 정섭이는 여전히 내리의 한우리 밥집에서 애기 엉덩이만한 삼계탕을 시켜놓고 낮술을 홀짝였다. 영화 태백산맥은 조정래 태백산맥이 아니든디. 고냥 장편 배달의 기수지, 배달의 기수. 그려도 타이틀은 번지르르혀. 하늘 까마니 덮고 이리저리 몰려 댕기는 철새들 군무가, 따악 해방 후 민중들 모습이시. 한결이는 ‘나팔’ 동아리 회장이었다. 나팔 동아리패들은 늘 예대 앞 잔디밭에 앉아 북과 장구를 쳤다. ‘힘’ 동아리패들은 책상 위에 얹은 깍지 낀 손들이 심각해서, 사상서를 돌려 읽는 동아리 방은 잠시 비친 햇살도 무거워 보였다. 경탁이가 복무 중인 동안, 두 동아리는 세보와 계보를 만들며 학과의 후배와 선배들을 달며 퍼졌다고 경석이가 낮게 말했다. 두 패들의 언어는 이쪽의 술집과 저쪽의 술집에서 천 원 하던 쥐치포나 사백 원하던 막걸리를 씹거나 마시며 밤새 갈아졌다. 신을 끌어내린 자리에 이념이 없을 수가 없었다. 경탁이는 그들의 이념의 갈래와 깊이를 가늠하지 못해 겉돌았다. 그들에게 경탁이는 신의 존재를 알지 못해서, 은혜로 구원받아야 하는 야만인 정도였는지, 개밥그릇 도토리처럼 슬쩍슬쩍 밀치는 정도여서, 경탁이는 겉돌기가 편했다. 적의는 늘 내부에 있었지만, 이단의 화형으로 불길이 몰려다니던 프랑스의 어느 산천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났다. 경탁이는 이념이 우주의 어디까지를 감당할 수 있는지, 선뜻 계산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신이 감당해야 했으나 신들이 너무 많아서 우주는 우주로만 존재하고 인간은 물과 불과 바람으로 흩어지는 것이라는 것도 흐릿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배나 후배들 중엔 이념을 들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스며들어 고행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었고 엿을 바꿔먹기 위해 숟가락을 부러뜨려 달려가던 경탁이의 어린 시절처럼 생활에 찌들어 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었다. 장식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려면 어떠랴, 잔디의 먼지를 털고 일어나다, 장강을 수영으로 건너는 늙은 마오쩌뚱의 칼창이 되어 십 년을 몰려다닌, 홍위병 소년과 소녀들이 경탁이 눈에 잠시 어른거렸다.

     

    꽃들은 애잔했다. 변산바람꽃처럼 추울 때 피는 꽃들은 꽃대를 낮추고 웅크리면서 피어서 무릎을 꿇고 들여다봐야 했고 높은 산악으로 올라간 꽃들은 바람과 추위에 엎드리며 피었다. 설연화는 눈 속에서 반들거리며 피어 봄을 재촉했다. 동백은 춘백이기도 해서 붉은 꽃잎은 저마다 가지 끝에 한 송이씩 봉오리로 피었다. 봄은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동백꽃들은 노란 꽃술을 물고 송이 째 졌다. 그렇더라도 스물 하나의 나이는 웃음조차 살구꽃처럼 흩날렸으므로 툭, 질 수 없었고 그렇게 져서는 안 될 것이었다. 박종철 군은 별꽃이 솜털 속에서 꽃을 만들고 있던 겨울에 숨을 놓았고 철쭉이 진달래로부터 바통을 넘겨받던 봄의 끝자락에서 고문치사가 폭로되었다. 경탁이는 고문을 했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탁자 한 번 내려친 것으로 한 목숨이 목숨의 문을 닫았다는, 경찰이 읽어간 발표문의 치졸함과 뻔뻔한 대본에 분노했다.

     

    수국은 프리즘처럼 색깔을 하양과 보라와 홍색으로 바꿀 준비를 끝내고 몸을 조금 열고 있었다. 경탁이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나이가 들어 입학한 경탁이는 대학 생활 반 년 만에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결정했다. ‘4.13 호헌 조치’에 선배들은 시위를 준비했다. 동아리 방들은 군가풍의 노래와 술병들로 채워졌다. 술병들은 시너와 휘발유를 마시고 탈지면으로 아가리가 막히면서 날라지게 될 것이었다. 정우는 불붙은 술병들이 권력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가슴 한편으로 풀무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권력은 결코 살인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권력은 밭을 개간하는 것과 같아서 큰 돌이든 작은 돌이든 열심히 솎아 내는, ‘일’만 할 것이었다. 경탁이는 자신의 스물둘이 돌처럼 치워져도 괜찮은 것인지 생각하다, 적셔진 수건 속에서 괴로워했을 박종철 군을 떠올렸다. 독재는 깨어진 보도블록으로 무너지진 않을지 몰라도, 권력이라는 배는 백성이라는 물결이 엎을 수 있다는 말은 옳아야 했다.

     

    민주화 자주화, 이 넉넉한 삶의 선언이여! 반독재 민주화 반외세 자주화- 조국 산하에 물결쳐라- 참사람의 함성이여! 부산대 총학생회장은 사람들로 빽빽한 부산역 광장에 만들어진 연단 단상에서 손을 뻗어 올렸다. 경탁이는 그 구호가 어떤 사상의 갈래를 따라 정교하게 수집한 어휘들로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유월에 접어들면서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 이한열 군의 희생으로 시위대는 겨울을 앞둔 부랑자가 옷 위에 옷을 껴입듯 시위대를 불려갔다. 타이 차림의 회사원들이 시위대 속으로 들어와 앉았고 늙은이들이 명아주 지팡이로 항의했다. 연쇄점 주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코 밑에 바를 치약과 눈을 가릴 랩과 빵과 우유를 거저 내주었다. 지랄탄이라고 불렀던 다연발 최루탄이 무리를 갈라 골목으로 내몰았고 불발된 사과탄을 되던졌던 젊은이가 전경 곤봉에 맞아 피를 흘렸다. 우리의 꽃다운 여학우를 전경이 고가도로에서 밀어 떨어뜨려 생명이 위독합니다. 동참해 주세요, 시민 여러분. 독재 정권을 타도합시다. 문방구에서 매직을 얻어 마분지에 쓴 글을 들고 다니며 골목을 휘젓기도 했는데,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사실은 한 소녀가 시위대에 밀려 추락사고가 난 것이었다는 걸 알고 머쓱해한 적도 있었다. 백골단이라고 불렀던 사복경찰관으로 이루어진 특수 기동대는 막다른 골목까지 시위대를 악착같이 쫓아와서, 두려워진 경탁이는 정말 육백만 불의 사나이처럼 높은 담장을 매달려 오르는 괴력이 생겨나기도 했다. 유월 하순으로 넘어가면서, 중앙동에서 남포동으로 서면에서 부산대 쪽으로 사람들은 오징어나 고등어, 전갱이를 몰고 북상하는 난류처럼 몰려가며 더욱 거세어졌다. 위수령이 떨어진다고, 밤에 탱크를 실은 열차가 움직였다는 소문이 돌던 28일, 시위대에 전경들이 갇혀 투구와 방패를 빼앗기고 있었다.

     

    적은 사라지면 안 될 것이었으나 적은 사라질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기획은 정교했고 실행은 다급했다. 적의 반격에 선배들의 구호는 구호가 구호로만 남아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되어 툭툭 부러졌다. ‘대통령 직선제 수용’이라는 6.29 선언은 항복이었으나 권력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경탁이는 고갤 흔들었다. 선배들은 노동자 문제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입대를 앞둔 어느 날, 배롱나무꽃만이, 세상은 살만하다는 듯 긴 화기를 시작했다. 이념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는지 모를 날들 중의 하루였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이승복군 어린이, 책 읽는 소녀

    하느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라는 성서 구절은 밀도가 낮아지며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팽창해가는 우주의 운동에 대한 은유이다. 시간의 집인 ‘우宇’와 공간의 집인 ‘주宙’는 두 마리 뱀이 교미하듯 꿈틀댄다. 그러므로 말머리성운이나 장미성운을 정액처럼 뿌려놓고 꼬리의 방울을 흔들며 뱀들은 사라지기도 한다. 시간은 멈추고 공간은 찌그러든다. 사람의 마지막 숨은 별로 가는가? 갈릴레이가 태양의 울퉁불퉁한 언덕을 발견하면서 모든 별들은 황폐해졌다. 어린 시절 기억하는 ‘어린이’라는 인간들의 미소는, 별의 어느 언덕이 되거나 낭떠러지가 된다. 발자국도 없고 물도 없이, 물이 흘러간 흔적만 남는다. 붉은 먼지.

     

    시 몇 구절을 누구든 욀 때였다. 여고생들의 고바우 모자의 꼭지는 젖꼭지처럼 여물어 있었다. 겨울은 비스듬히 와서 고드름처럼 우뚝 섰다. 정부미 부대자루는 언덕바지 썰매로 제격이어서 아이들의 함성이 허공으로 솟구치다 뒹굴며 깔깔거렸다. 엉덩이를 쭉 빼고 두 팔로 내닫으며 마루는 닦였다. 양초를 발라 반들거리던 교실 복도의 마루에서 들여다보는 교실은, 톱밥 난로 위에 벤또들이 익듯이 달그락거렸다. 나일론 양말은 난로의 열기에 속수무책으로 빵구가 나서, 때 낀 발가락들이 발그란 머리통을 내밀고 쿡쿡거렸다. 선생님의 도시락은 검은콩자반에 이밥이었다. 아이들은 메조로만 지은 밥이 모래알 같아서 가슴도 서걱거렸다. 여름의 입구, 웃자란 풀밭에서 옆 마을 아주머니와 분탕을 치던 오용이 형은 반딧불이를 잡기 위해, 고개가 꺾인 미군용 국방색 랜턴을 들고 풀밭을 헤매던 아이들에게 들켰었다. 얼레리 껄레리에. 오용이 형은 옆 마실… 붙었드래요. 형은 겨울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팽이치기를 하고 있을 때는 이미 서울로 토끼고 없었다. 그랴두 오용이 형이라두 있었으믄 굵은 철사만 갖구 맨드는 썰매보다 칼 박아 넣은 외썰매를 보란 듯이 탈 수 있게 만들어주었을 텐디, 아쉽구나, 그라잖냐? 아이들에게 산수책 표지에 있는 멜빵 반바지의 사내아이는 세련된 서울 아이일 뿐이었다. 탐구생활 책은 도화지처럼 넓어서 아이들은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도시로 오면서 고학년이 되자 방학동안의 하루 일과표는 화살의 과녁처럼 둥그러지다 칸칸이 잘려서 24시간을 촘촘히 꿰매었다. 6시 기상 양치질 조금 공부하기 밥 먹기 산수, 자연 공부 10분 휴식 점심 먹기 특활활동 국어 공부 10분 휴식… 감옥소에 다시 갇히기 위해서 도적질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전과자로 낙인 찍혀서 사느니 맘 핀하게 콩밥 묵고 살겄다는 거란다. 감옥소도 오래 있으믄 정 들고 익숙혀져서 그 생활이 몸에 배는 갑드라. 츰엔 뼁끼통에 똥 싸구 그러는기 욕지기 나오구 그러다가 구수해지는 거지. 시골에서 한 것 같은 엄마의 말은 가끔 만들어져서 들려왔다. 반딧불이는 이슬만 먹구두 산다는디, 우리 인간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살아지는 거래유. 경탁이는 어른처럼 말하길 좋아했으나 실제로 한말이 아니라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면서 뱉어지지 못한 말들이었다.

     

    명함 사진은 시 몇 구절이나 희망 성공 이런 글자들이나 대나무 그림 같은 것으로 장식되었다. 흑백은 가끔 칼라보다 더 칼라 같아서 사진 속의 형이나 누나들은 피부가 맨질맨질하면서 가멸과 귀貴가 붙어 있는 상으로 변해 있었다. 야, 뽀쁘라마치에 있는 가시내들은 목욕탕에 갈 때도 화장을 하고 간다는데 참말일까? 왜 가시내들 분 냄새는 불주사 맞고 집에 오던 길보다 더 어지럽게 하고 산란하게 하는 기고? 니는 꿈이 뭐꼬? 뭣이라고 시인? 니 미칬나? 시인하고오 이야기꾼하고오 철학자는 빌어먹기 딱 좋은 직업이라 말이다. 초장에 맘 바꿔삐라. 그라고오 닌 뱃고래가 왜 그리 헐겁노? 바지가 줄줄 흘러내린다 아이가. 배가 좀 나와야 돈이 붙는다 카는데… 사상역 앞은 무연탄 집하장이어서 역 뒷산이 낳은 애기산처럼 무연탄이 쌓여 있어서 역 앞의 내리막길은 검은 물이 늘 줄줄 흐르고 있었다.

     

    닌 공비가 나타나면 진짜로 이승복군 어린이처럼 난 공산당이 싫어요. 그랄 수 있겠나? 참 나쁘제? 아무리 공비라 캐도 우째 얼라 입을 찢을 수 있노? 이조시대야, 임금을 죽이려 들었으니까 주릴 틀고 곤장을 멕여서 머릴 달은 기지. 나아- 반공 웅변대회 나가야 되는데, 내사 솔직히 공비 앞에 서면 오줌 지릴 거 같고 공산당은 싫어요. 이렇게 못 욀 거 같은데… 공갈로 외치자니 쪼매 마음이 쓰인다 아이가.

    정한이: 말이 어눌하고 퉁방울눈에 궁둥이에 뜨거운 물에 덴 자국이 있었다. 여기서 뛰어내리는 사람 백만 원 주우지! 철재의 말에 진짜아! 벼랑에서 땀매강으로 뛰어내려 죽다 살았다. 철재는 한동안 정한이가 계속 백만 원을 달라고 하는 통에 요즘 말로 노이로제에 걸려, 정한이만 보면 울보가 되었다.

     

    철재: 오줌 멀리 누기와 퇴비 옆에서 똥 많이 싸기 내기를 하였다. 둘 다 경탁이에게 졌다. 얼굴은 갸름해서 지지배 같았고 경탁이가 이사 갈 때 연필하고 공책을 선물로 주었다. 공책 표지에는 마루치 아라치가 그려져 있었다. 마루치는 이단 옆차기를 하고 있었고 아라치는 태권도 고려 품새 엎은손날바깥치기 자세를 하고 있었다. 용달차의 이삿짐은 헐거워서 짐들은 불쌍해보였다.

     

    정미: 경탁이 엄마가 정미하고 결혼시킨다고 하면 경탁이는 징징대며 울었다. 갸는 너무 못 생겼잖어유. 경탁이는 들창코를 벌름대며 정미의 엉덩이가 너무 부실해서 아이를 순풍순풍 낳는 건 글러 보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새 다리에 젖도 클 거 같지 않은 새가슴이었다.

     

    옥순이: 욕을 할무니들처럼 잘했다. 집이 가난했는지 빤스를 입고 다니지 않아 사내아이들에게 아이스께끼를 자주 당했다. 몸은 개개비처럼 애처로워서 고갤 숙이고 타박타박 걷는 뒷모습을 보면 뛰어가서 업어주고 싶었다. 깨금발 뛰는 사방치기를 잘했고 고무줄을 뛸 땐 흰 엉덩이가 불쑥 불쑥 드러나서 화냥년이 될 거라는 쑤근거림을 자주 들었다.

     

    장순이: 집안에 요절하는 여인네들이 많아 이름에 길 장자를 넣은 아이였다. 앞니가 뻐드렁니였고 얼굴이 가무잡잡했다. 곱은 손을 경탁이 배에 문지르며 아! 따스해. 이상한 눈을 하고 바라본 적이 있었다. 경탁이보다 서너 살 많았고 경탁이는 차붓차붓하던 장순이 누나의 손길을 오래 있지 못했다.

     

    갱길이: 본래 이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경길이의 사투리였을 것이다. 아무튼 기억 속엔 갱길이로 남아 있다. 갱길이 엄마하고 경탁이 엄마하고는 동무처럼 가깝게 지냈다. 갱길이 엄마한테 이거 갖다 주거라. 경탁이는 엄마가 봉초로 부르던 잎담배를 신문지에 싸서 주던 때를 오래 기억했다. 신문지나 뜯긴 일력종이들은 같은 크기로 오려져 변소의 철사줄에 달렸다. 똥을 누고 밑을 닦을 때, 치질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신문지나 일력종이를 비벼서 부드럽게 하느라고 똥 누는 게 길어져 일어서면 다리가 져려서 이마에 침을 찍으며 어! 어! 바보가 되기도 했다. 변소 똥파리 엉덩이는 에메랄드빛이었고 살이 포동포동 쪄서 날개 소리가 시원했다. 아이들은 산에서 놀다가 똥이 마려우면 아무 데나 쭈그리고 앉아 누웠고 나뭇잎들이 밑씻개였다. 가을의 나뭇잎은 아이들 손가락에 똥을 묻히기에 좋게 바스락거렸다. 아이들은 똥 묻은 손을 서로의 아가리에 먼저 넣는 놀이를 고안했다. 장난감이 없어 몸이 장난감이던 시절이, 멀리 있었다.

     

    민정이: 경탁이가 이사 가기 전에 얼음이 얼어 있던 땀매강에서 ‘나, 이사가’라는 말을 심각하게 말했던 아이. 만약 어른이었다면 덥석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을 거 같은 여자로 기억하는 걸 보면 얼굴이 예뻤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좁은 어깨로만 기억나는 아이.

     

    경주: 부산으로 경탁이가 이사 와서, 남자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동무가 된 여자. 연쇄점 입구에 있던 삼강 제과 아이스박스 고무뚜껑을 열고 단팥이 들어있던 하드를 꺼내던 손이 잊히지 않는 애. 손이 너무 가늘고 예뻐서, 역시 민정이처럼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고, 가끔 손에 뽀뽀만 해도 섹스보다 더 섹스를 한 느낌이 날 거라고 생각되는 아이.

     

    문국이: 이소룡의 아뵤와 뒤돌려차기를 기가 막히게 잘 하던 머스마. 아버지가 태권도 도장을 했고 경탁이가 성룡의 취권으로 대련을 청했다가 뒤돌려차기에 맞아서 진짜로 기절하는 바람에 문국이 아버지가 깨어난 경탁이에게 자장면을 사주어서 경탁이가 오래 기억하는 동무.

     

    4학년: 경탁이는 국민학교 4학년 때 글짓기반에 들어갔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서 죄송스러운 여선생이 담당이었는데, 시를 써 갔더니 어느 어른이 써주시던. 이런 수려한 한시漢詩 풍의 시를 니가 썼을 리는 없고. 라고 말했지만 경탁이는 제가 쓴 건데요.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四月南風一笑竹 사월에 남쪽에서 바람이 부니, 대나무 이파리 하나가 웃고 있다라는 묵죽화에 쓴 큰스님의 화제는 또렷이 기억하면서 경탁이도 그때의 시가 어떠했는지 기억하진 못했다. 지는 유치원을 안 나오구 집이 서당이라서 한학을 쫌 했구먼유. 마음으로 외쳤나?

     

    다시 4학년: 100억달러 수출 기념탑이 서면 로타리 중앙에 세워졌다. 운전 솜씨가 아주 뛰어나지 않으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로타리에선 카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했는데, 기능 올림픽 선수였는지, 권투 선수였는지, 아니면 텔레비전에서 본 걸 서면 로터리에서 본 것으로 경탁이가 착각하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대한항공 티브이 광고 배면에 깔리던 노래는 경탁이에게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노래의 제목은 웰컴 투 마이 월드였고 가수는 아니타커 싱어즈였다. 원래 노래를 만든 짐 리브스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했고 그 노래가 대한항공 광고에서 사라져 경탁이는 오래 상심 했었다. 죽음의 냄새를 그때 맡기 시작한 건가?

     

    6학년: 아침. 햇살이 유난히 분홍색이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분홍색 교실에서 들었다. 아이들은 울었고 경탁이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말 그대로 줄줄 흘렀다. 그로부터 일주일인가 이주일인가 티브이에선 추모곡만 틀어대서 경탁이는 심심했다. 전두환의 대머리 얘기는 그 해의 세모부터 빈번해졌다.

     

     

    술집 앞 테이블

     

    -우리가 아무리 술집에서 만나 사이라 캐도 진실 돼야 한다 이기라, 내 말은. 그러니까네 김주사 자네가 이라크에 다녀왔다 칸 게 맞제? 아까징에 안그랬나. 낮에는 길 닦으믄서 모래 한 사발 묵고오 밤에는 거 뭣이라 캤노? 아 그래, 야잔강 대춘강 가지고 토끼 붙어먹을 참에 모래에 파묻어 맹근 술 넘기믄서 아리랑 불렀다 안 캤나. 그렇게 청춘 허비하고 한국에 들어와 보니까 마누라가 춤바람이 나서 엉뚱한 놈한테 돈 갖다 바치고 몸 갖다 바치고… 그래서 마누라캉 헤어져 뿔고 택시 몰았다 칸 것도 맞제? 그라고오 만난 여자가 지금 제수씨라 안 캤나. 근데 내 말은 자네가 저번찍에 첫사랑이라고 말한 여자하고 지금 제수씨하고 이름이 같단 말이다. 이건 어느 하나가 공갈이든가 둘 다 공갈이든가, 인데… 아 가만 이쓰봐.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타 아이가. 만약에 자네 말이 진리라믄 콩 심은 데 팥 나는 것도 혹까닥 있다는 말하고 뭐가 다르겠노.

     

    - 박사장 자네가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린 아이다. 하지만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보라 안 하드나. 첫사랑은 이름이 최옥자고 지금 마누라는 성이 옥인기라. 그래 내 편의상 둘 다를 옥자라고 하는 기제. 하나는 토실토실해서 철벅철벅 소리가 나고 하나는 불두덩에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났는데 내가 왜 둘을 헷갈리겠노. 그라고오 가시내 일생이라는 게 어찌보믄 비슷비슷하다 아이가. 역사라는 게 마- 돌고 도는 거 아이겠나. 고려 때도 탑돌이 하면서 거 뭣이냐. 애들 말로 번개팅을 했을 거고 그 엄한 조선시대에도 바람피우는 년 있었으니까 춘화가 그려진 거 아니겠나. 속담도 있다, 뽕도 따고 임도 보고 라고. 그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닌기라. 누에가 맹그는 명주실이 요즘 말로 하이테크 산업 아니었나. 가시내들 손도 필요해서 일 시켜 묵으니까, 집안에 갇혀 있다 나온 애들이 난리도 아니었겠제. 우리 때만 자유부인이 있고 신여성이 있고오 미니스커트가 있었든 게 아이란 말이다, 내 말은… 글타고 내가 내 겪은 일 땜에 가시내를 삐딱하게만 보는 건 아이다. 위안부들 맹키로 불쌍한 여자들이야 세상에 천지빼까리고, 불쌍한 여자 없던 시절이 인간 역사에 언제 한븐 있었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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