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 관계(6)- 조풍호

  • 장편소설 연재 6


                                                 관 계 
              

                                                                                                            조 풍 호



    동무들

    생물이 죽으면 생물이 달려들었다. 몸집 큰 생물이 죽으면 포식자들은 먹이사슬로 달려와 뜯어서, 마지막 남은 부드러운 근육과 조직은 소형 포식자의 몫이었다. 훑어간 포식자들은 배설해서, 배설물로 미생물들이 달려들었고 뼈는 또 다른 미생물들의 아파트가 되었다. 사람의 죽음은 아프리카 초원의 그것처럼 또 다른 삶을 부축할 수 있는 것인지 정우는 가늠되지 않았다. 십 년쯤 뒤엔 친구들의 아버지 부고를 받고, 다시 십 년쯤 흐르면 친구들의 어머니 부고를 받고 다시 이십 몇 년이 흐르면 친구들의 부고를 받거나 정우의 부고를 그 전에 친구들이 먼저 받을 수도 있을 것이었는데, 불 태워져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장례는 초원의 그것과 달라 어느 생명 하나 깃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남자의 일생에서 진정한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만들어진다고 했으나 정우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아, 중학교 친구들은 친구인 채로 머릿속의 친구로 남았다.  


    청와대에서는 밑을 휴지로 닦지 않고 양변기에 달린 물총에서 쏘아대는 물로 닦는다 카더라. 야, 새꺄. 뻥치지 마라. 내는 치질 걸린 사람들이 뜨거운 물에 궁둥이 담가서 밑 씻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똥 닦는 물총 기계가 있다는 말은 몬 들어 봤다. 하, 새끼. 니가 몬 들어 봤으면 다 쌩으로 공갈이단 말이가. 니가 정보가 짧은 기제. 청와대는 임마야, 그 뭐냐, 탱크 캐터필러 같은 기계가 쫙 깔려 있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저절로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기라. 지하에는 쇳덩이로 벽하고 문을 만든 벙커도 있는데 전쟁 나면 전두환 대통령도 이순자 여사도 그곳으로 가서 전쟁을 지휘한다 아이가. 야, 어제 31번 버스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아나? 한국여실 가시내가 멋모르고 명문 고등학교 노는 형들 있는 뒷좌석으로 가서 서 있다가 형들한테 둘러 쌓였는기라. 근데 그 중 한 형이 그 가시내 치마에 좃 꺼내서 막 비비다가 물 쌌다 아이가. 그 가시내 얼굴이 보골보골하니 이쁘든데,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우짜지도 몬하고 쏙 당하고 말드라. 야아, 나도 슬쩍슬쩍 훔쳐봤는데 쪼매 안 꼴리드나. 그건 일도 아이다. 중앙 고등학교에선 그 학교 통이 애들한테 오백 원씩 받고 지 따까리하고 빠구리하는 거 공연했다 카더라. 교실에서, 수업 끝나고 선생들 읎을 때. 임마들은 우찌된 게 이바구를 마지막엔 늘 그런 데로 돌리삐노. 왜? 니는 우리 반 종식이처럼 돌림빵 한 경험이 없으니까 순진하다 그 말이가. 야야, 종식이 온다. 우리 볼펜 따먹기 안 할래? 한판 붙을 사람 읎나? 볼펜 따서 뭐하냐? 우린 이미 공부 잘하는 인간 볼펜들한테 머리 한 방 맞고 책상에서 떨어진 볼펜들인데. 모나미가 밥 먹여 줄 애들은 저 앞줄에 있는 정우 쟈 같은 애들 아이가. 우리사 볼펜 돌리기나 믓지게 해서 한국여실 가시내들 까대기 하든가, 혓바닥으로 담뱃불이나 끄는 연습이나 하믄 딱인기라.


    달걀 후라이는 벤또 밑바닥에 깔렸고 소시지는 밀가루가 섞여 찰지지 않았지만 선망의 대상이었다. 양은으로 된 벤또 안의 찬통은 김칫국물을 담아내지 못해서 가끔 군청색 가방을 물들였다. 가방을 받아주려는 여학생에게 정우는 가방을 맡기지 못했다. 동복 교복은 호크를 채우지 않으면 선도 부원에게 얼차려를 받았다. 모자는 앞대가리를 구부려 멋을 부렸고 노는 형들은 교복 윗옷의 앞단추를 몇 개씩 풀고 다녔다. 교복은 유사시 학생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정우는 국민 학교가 황국신민의 준말이라는 것을 일재 아재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가난뱅이 되려고 작정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누나는 희고 넓은 깃의 남색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괘법동 집 앞길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주절주절거리며 왔다 갔다, 를 반복하던 형이 있었다. 고시공부를 하다 미친 총각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철학은 의문을 품는 것이라고 했다. 정우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에야 우리나라가 의문을 품으면 안 되는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금성 텔레비전이 컬러로 바뀌면서 뉴스의 시작은 늘 전두환 대통령의 시찰로 시작되었다. 짤짤이에서 퉁이라고도 하고 ‘땡전’이라고도 불렀던 노름 배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남학생들의 가방은 버스 운전석 옆의 연료통 위에 쌓였지만 여학생들의 가방은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받아 주었다. 정우는 여학생의 가방을 받아주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 가방을 끌어 앉듯이 쥐고 있으면 여학생들은 손잡이를 잡고 다가섰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만원 버스에서 여학생들은 밀려서 여학생들의 허벅지가 정우의 팔꿈치나 팔죽지에 닿을 때가 많았다. 정우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고 그 조금 닿는 허벅지에 애가 닳았다. 솥단지를 통째로 갖다 놓고 먹는 데도 정우는 키가 크지 않았고 하관이 빨아서 말라보였다.

     

     

    강인규: 콧방울이 두툼해서 부귀할 상이었다. 짤짤이를 잘했고 설까치를 잘 그렸다. 꿈은 만화가였는데,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꿈을 자주 꾸었다.

     

    박은총: 쪽박귀에 장딴지가 딴딴했고 통뼈여서 팔씨름의 왕좌를 내려온 적이 없었다. 외국 권투 선수들의 전적과 출신지, 장점과 단점을 빼곡이 적은 노트가 보물1호였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엄마는 의붓이어서 집에 일찍 들어가는 걸 싫어했다. 권투 선수가 꿈이었는지 권투 해설가가 꿈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서인수: 종아리가 가늘어 새 다리라고 놀림을 당하는 아이였다.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 이기동이 흉내를 잘 내었고 안념하십니까붐빠뿜빠 입술을 붙여서 서영춘을 흉내내기도 했다. 눈은 컸고 꿈은 판사여서 가지나마나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정반석: 옥니박이여서 아이들이 따돌렸다. 엄마는 교회 권사였는데, 교회에서 기도를 하느라 반석이 동생들 식사를 챙겨주지 않아, 동생들이 친구들에게 거지처럼 손을 벌리게 한다고 자기 엄마를 욕했다. 음탕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 했고 여선생이 수업에 들어오면 바지에 손을 넣어 수음을 하곤 했다. 정우하고 무슨 일인가 다툼이 났었는데, 책상을 밟고 달려와 정우의 관자노리 근처를 볼펜으로 찍었다. 정우의 관자놀이 상처는 십여 년을 넘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 녹십자에서 오줌통을 약을 만들기 위해 변소에 두었다. 아이들은 오줌통에 김치 국물을 섞거나 물감을 부으면서 킬킬대었다. 옷들은 단벌이어서 교복의 다림질 자국은 번질거렸고 옆단이 터져서 옷핀으로 질러서 하교하는 애도 있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허벅지와 종아리의 맨살이 비쳐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상업 선생은 서른의 나이에 벌써 머리가 벗겨져서 별명이 요강대가리였다.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귀밑머리를 잡아당겨 진저리치게 했다. 기술 선생은 키가 컸고 미남이었는데, 매일 원 비디와 바카스를 학생들을 지명해서 사가지고 오게 했다. 원 비디는 콜라보다 더 중독성이 강했을까? 아 유 어 걸? 선생님 아무리 외국인이어도 소년지 처년지는 알 건데, 이런 질문 실제로 하면 모욕하는 거 아닌가요? 영어 선생은 정당한 의문일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식으로 오해했는지 질문한 아이를 시계를 벗고 팼고 아이는 이를 어설프게 깨물었는지 앞니가 부러졌다. 수학 선생은 칠판 가득 이 마이너스 삼 엑스는… 이꼬르… 공식을 가득 채울 때까지 칠판만 들여다보았고, 질문도 설명도 없이 지우고 다시 쓰고 종이 치면 나갔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뒤통수의 제비꼬리가 길었다. 국어 선생은 이상이 썼다는 숫자로 된 시를 칠판에 정성들여 썼다. 이런 시도 있단다. 학생 중에 누군가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역사 선생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온다면 경부 고속도로를 최고의 관광지라고 할 것이다. 평지만 죽 이어지다가 커다란 괴물 같은 산이 터억 들어서는 중국의 풍광만 보다 올망졸망 다기한 모양으로 이어지는 산들의 행렬을 보면 금수강산이 무슨 뜻인지 알 거다. 산도 동글고 초가집도 동글고 무덤도 동글다. 일장기는 원래 우리나라 깃발이어야 한다. 주몽도 알에서 태어나고 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나고 알지도 수로왕도 알에서 태어났다. 알은 태양이다. 삼족오三足烏가 해와 달이다 우리는 하늘의 빛나는 해의 자손이다. 눈썹이 짙었고 역사보다 역사 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역사 선생은 몇 년 뒤에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고등고시를 공부하기 위해 절로 들어갔다고 했다. 엄마는 목욕탕에 처음 갔을 때, 탕에 들어가 때를 밀다 무안을 당한 이야기를 갑자기 하였고 막내 누나는 휴무일 목욕탕에 갔다가 탕에서 두어 시간을 넘게 잠들어서 몸이 퉁퉁 불은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가 국민학교만 나온 열세 살짜리를 동명목재에 사환으로 취직시켜 놓고 월급날 돈을 타갔다고 원망하는 소리를 늘어놓다 울었다. 우편을 모으는 게 취미였던 친구는 크리스마스실도 모았고 지폐도 수집했고 껌 종이도 수집했다. 한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가 정우에게 말했다. 나 빨랫줄에 걸린 팬티를 보면 훔치고 싶어, 너는 안 그러나? 미얀마의 아웅산 묘지에서 높은 사람들이 북한의 테러로 숨진 것은 전두환이 이놈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며 아버지가 술을 마시다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쳤는데, 아버지는 열이 많아서 겨울에도 방안에선 난닝구차림이었다. 추리닝의 색깔들은 남색이나 녹색이었고 줄이 도드라지고 무릎이 튀어나와서 닳아있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날, 평화를 상징하는 흰 비둘기 수천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공교롭게도 그 다음 식순이 성화대 점화식이었다.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는 압축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불을 붙였다. 화면에선 잠시 성화대에 내려 앉아 있던 꽤 많은 숫자의 비둘기들이 타는 모습이 보였다. 정우는 그 장면을 보면서 중학교 시절의 아이들이 세상의 성화대로 날아간 것이 아닐까, 떠올린 적이 있었다.

     

    돌부처 부부

    오빠야! 이게 어떻게 부부고. 부부면 한 개는 가시내여야 안 되나? 봐라. 누가 가시내고. 둘 다 머스마지. 가시내면 여기 가슴이 이렇겠나. 가슴만 가지고 우트케 사내 여자를 구분혀. 그러는 너는 여잔 디두 가슴 없잖여. 오빠야! 나는 얼라 아이가, 얼라. 오빠 니느은 최고 학년이고 나는 이제 사학년 얼라다. 우얏든동 이 불상 목을 누가 이렇게 싹둑 잘랐일꼬? 빨갱이짓 아니여? 오빠 니 그런 소리 거창 할매 앞에서 하믄 맞아 죽는다. 왜? 몰라아, 거창 할매는 빨갱이보다 미군이 더 무십다고 늘 안 그라나. 그래서 집안 어른들이 입단속 하느라고 밖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미쳤단다, 그 할매. 얼굴은 고븐데… 다음번에 전쟁 나도 요래 머리 잘리고 그릴까? 몰러어. 미군은 우릴 도와준 은인들인데, 무서워하는 거 보믄 미친 거 맞네. 맞제에? … 오빠 니 나 좋아하나? 가슴 얘기 하믄서 응큼시럽게 쳐다보고. 난 경옥이 누나 좋아혀. 경옥이 언니이?- 치사빤스다, 나도 명년 되믄 경옥이 언니보다 가슴 더 커질끼다. 오빠 닌 눈이 삔기다. 나처럼 곱시런 애를 어떻게 만나겠노? 그고 경옥이 언니하고 혼인하믄 나중에 오빠 어른 되었을 때, 언니는 할매 된다 할매. 오빠 닌 그래도 좋나? 오빠 니 그거 모르제, 복점이라고. 복점이 뭐여? 귀 이리 줘 봐라. ((내 여기에 콩알 만 한 점이 안 있나. 그기 복점이다. 우리 어매가, 그래서 난 신랑한테 사랑받을 끼란다. 흐흐, 딴 사람한테 말하믄 안된데이.)) 아 귀 간지러, 그런 데에 우트케 점이 있어. 그짓말을 참 요상하게두 헌다. 공갈 아이다 오빠야. 우리 어매가 함부로 보여주믄 복 나간다 그래서 보여줄 신 없고… 손 이리 줘 봐. 대신… 내가 고만! 그러믄 고만해야 된다 앗쩨?

     

    어떻노? 으응 거기 그거. 응… 복스럽제에? 아니 거긴 말고… 이자… 불상 머리 찾으러 가야 안 되나…… 고만!

     

     

     

     

    신발, 신어보지 못한

    국제상사 쪽, 똥물이라고 불렀던 폐수가 가득한 학교 운동장만한 폐수처리장이 있던 곳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었다. 구포 둑에는, 잔디가 부산시의 홍보용 글자 모양으로 다듬어진 입구들이 여럿 난 채 단장되어 있었다. 성조는 준설토적치장처럼 붉은 몸을 드러내고 있는 하천을 바라보다 고갤 돌렸다. 성조의 눈으로 오래전의 구포 둑에서 바라보던 강변이 흘러들어왔다.

     

    깊은 산의 억새는 계곡과 여울을 따라 내려와 순해지는 곳에서 갈대가 되었다. 낙동강은 노을이 깔리면, 산수유주와 도라지주를 섞어서 따라놓은 듯 붉고 노랗게 출렁였다. 구포 둑에서 바라본 들마 무렵의 낙동강변은 강보다 강변의 개간된 농경지의 비닐하우스들이 더 강처럼 하얗게 뻗어 있어 두 줄기로 된 강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달에 휴일은 이틀이었는데, 가끔 이편 동시 상영관이던 동보극장을 찾은 적도 있었지만, 성조는 그 이틀을 구포 둑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다. 성조는 언제 불어난 강물에 잠길지 모르는 강변의 노지에 물고랑을 따라 설치한 비닐하우스를 보면서, 청개구리 아들이 만들어 놓은 청개구리 엄마의 비닐 무덤인 것 같아, 청개구리 아들 같은 농민들의 울음이 청개구리 울음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둑은 공일이 되면 가족들의 소풍 장소로 유명했다. 그러나 땅거미가 지면 건달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해서, 데이트를 즐기던 남자가 건달들의 칼을 맞고 여자는 여러 명의 몸을 받아낸 뒤 그곳에 칼이 박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오죽 못살았으면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인 둑에서 데이트를 하고 건달들이 모여들까, 측은하면서도 겁이 나서 성조는 노을의 끝자락을 아쉬워하며 자취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평일은 잔업과 철야가 수시로 이어져 성조는 늦은 밤이나 갓밝이 때의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어묵 국물과 더 뜨거운 잔술을 뱃속으로 밀어 넣고 돌아와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동보극장에선 해 지난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극장 안은 화장실의 지린내와 구린내가 찌들어 깔려, 는개처럼 켜켜이 쌓여 있어서 골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사내들은 들어와 죽쳤다. 일층과 지하로 이어진 구석에 놓여 있던 텔레비전에서는 포르노를 틀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좋은 자리는 험악하게 생긴 건달들 차지여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한 뉴스가 끝나면 화면 광고는, 남녀가 웃으며 식사 하는 레스토랑 내부 전경을 훑으면서 아늑한 고옹간간간 어쩌구 울리는 성우의 목소리를 입힌 뒤에 레스토랑 위치가 그려진 약도로 붉은 화살표가 따라 가서 불처럼 번쩍이며 끝났다. 성조의 처지에선 가 볼 수 없는 곳이었고 막상 간다 해도, 나이프와 포크로 고기를 어떻게 잘라 먹는 것인지 쩔쩔매다 망신살이 뻗치기 딱 좋은 곳에 불과했다. 튀김가루 입힌 괴기하구 제사 산적하구 어느 게 더 맛있을라나? 성조는 자신이 가지 않아도 그런 레스토랑은 장사가 화살표에 맞은 불길처럼 활활 타듯 잘될 것 같았다.

     

    쭈쭈바도 맛있었지만 여름에 길거리 노점상이 팔던 보리 냉차는 당원을 탔는지 달면서 시원했다. 버스 회수권은 점선에서 조금씩 줄여서 잘라 몇 개를 더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주물로 만든 토큰은 그럴 수 없었다. 성조는 토큰 통에 토큰을 채우고 나면 뿌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버스 서너 코스는 당연히 걸어 다녔으므로 토큰은 쉽게 줄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판매대에서는 담배 한 갑을 뜯어서 개비로 파는 까치 담배가 있었다. 성조는 담배 세 대로 정류장 세 개를 걸었다.

     

    성조에게 여자는 멀리 있는 존재였다. 공장의 여자애들이 고주파 기사 옆에서 시중이나 드는 시다에게 관심을 둘 것 같지 않았다. 고주파 기계는 신발 제작 공정상, 나염반 안에 더부살이를 했다. 성조는 여자들이 많아서 외로웠고 그들이 싱그러워서 쓸쓸했다. 여자애들은 성조보다 일찍 들어온 아이도 시급이 오륙십 원씩 더 적었다. 일이 끝나면 여자애들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선화여상이라는 야간학교를 다녔는데, 성조는 야간학교 졸업장이 그녀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성조가 다니는 성화의 신발들은 전량 수출되었다. 간혹 조장이나 반장은 명절 때 친지들 선물용으로 신발들을 빼돌리는 눈치였으나 시다인 성조에게 신발들은 멀리 있는 것이었고 일감일 뿐이었다. 성조는 어릴 적 신었던 흰 고무신을 생각했다. 기차표였는지 왕자표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우등상을 탔다고 대견해 하며 사준 신발이었다. 그해의 통지표는 희망이었으나 성공하기 위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을의 청년들은 도시로 떠났다. 성조도 큰 도시에서 기술을 배워 익히면 한 집안 건사하는 남자가 되리라 확신했다. 초등학교 오학년이던 성조의 흰 고무신은 발에 신겨 있는 것보다 손에 더 많이 들려 있었다.

     

    재단실은 기술자들은 모두 남자였고 여자 시다들이 옆에서 재단되어 나오는 고무들을 정리했다. 재단실 라인 하나에선 천족도 넘는 신발 고무들이 오려져 나왔다. 성조는 그 많은 신발들이 찾아갈 주인들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외국인들은 건강을 위해서 어슴새벽부터 달린다고 했다. 성조는 조깅하는 백인 여자의 엉덩이를 떠올리다가 고무신만으로도 유산遊山하던 고향의 산천 쪽으로 얼른 마음의 눈을 돌렸다. 맨발로 사냥을 하는 아프리카 전사들의 삶과 굳은살 같은 신발이 받아낸 발들의 삶은, 모습은 달라도 죽음 쪽으로 난 길의 길이는 엇비슷할 것이라고, 성조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 성조가 하는 버릇이었다.

     

    라이터나 성냥은 정문 수위실에서 압수했기 때문에 공장 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은 화장실 앞 작은 공간이 유일했다. 맨 벽돌로만 벽을 둘러 시멘트 냄새와 지린내가 섞여 고여 있던 벽에는 스위치를 올리면 열선이 달궈져서 라이터 기능을 했다. 시다들은 담배를 오래 피울 수 없어, 몇 모금 뻐끔대며 피우다 남은 담배는 재를 떨어내고 가슴 주머니에 넣고 돌아왔다.

     

    빽으로 들어왔다고 소문이 돌던 민자 누나는 경리를 보았기 때문에 비교적 한가했다. 민자 누나는 몸통이 회색인 철제책상에 앉아 일을 볼 때나 놀 때나 책상 위의 광이 나는 은색 테를 두른 손거울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성조는 하루도 안 되어 변할 리가 없는 얼굴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여자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몸은 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눈빛으로 어지럽혔고 양손으로 겨드랑이쪽 브래지어 끈을 끌어올릴 때, 살짝 출렁이는 유방으로 흔들었다. 성조는 여자의 몸 안쪽을 몰라 자신의 몸 안쪽이 간지러운 밤들을 지나고 있었다.

     

    고무 밥들 어지러운 재단기 주위가 비좁아 거치적거려서 그랬는지 재단기 옆, 돌아가는 벨트 위에 얹혀 있어야할 철망은 벗겨져 있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기어이 일이 터졌다. 재단실의 시다 중 긴 생머리를 자랑스러워했던 여자애가 쪽가위를 주우려다 그랬는지, 고갤 숙이다 벨트에 머리카락이 딸려 들어갔다고 했다. 성조는 직접 보지 못했으나 벗겨진 머리를 주워서 그 여자애를 따라 응급실까지 갔다는 재단사의 호들갑스런 말을 들으며,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솟구치는 기분에 몸을 떨었다. 주름이 늘어가면서 깊어지던 눈이 더 깊어져 거죽이 사라진 망자들의 어둠 속은 어떨 것인지 다가오지 않았다. 여자애가 다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고 수술에 성공한다고 해도 자신의 얼굴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고 빨랫비누로 감아 고개를 돌릴 때마다 조명에 반들거렸을 그녀의 생머리가 다시 반들거릴 것인지도 알아지지 않았다. 철야할 때 막국수를 먹고 라디오를 틀어 놓고 춤을 추던 여자애들 속에 그녀가 있었을 것인데, 그녀의 깔깔거림이 다시 깔깔거려 질 것 같지 않았고 공장 밖의 남자들에게 보이지 못한 채, 청춘을 넘기고 있는 다른 여자애들의 깔깔거림도 깔깔거림은 아닌 것 같아, 성조는 그해의 가을까지 처연해져서 여자의 몸 안쪽을 더듬던 밤들을 지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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