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관계 (5)-조풍호
  •  <장편소설 연재 5>




    관 계




                                                                                          조풍호




    … 나이는 먹어가지 그러니까, 조금 겁도 나고 그랬는지 같은 기간제 여교사를 신붓감으로 찍어서 교젤 했나 봐요. 그런데 그 학교가, 일 년에 한두 번 이사장이 학교 순시를 온대요. 아이들 사이에선 이사장 오는 날이 학교 잔디 깎는 날로 통한다는데 왜, 그 학교 정원에 보면 회양목 주목 옥향 같은 정원수들 있잖아요? 영화 가위손에서 가위손이 토피어리 하듯 예에- 토피어리라고 전지해서 둥그렇게 예 그렇게 모양내는 날로 통한대요. … 탈이 난 건 이사장이 동석하는 회식이 끝난 이튿날부터였다. 그 다음 날, 학교에 당연히 출근해야 될 예의 사귀던 여교사가 학교를 무단결근한 것이었다. 경민이는 그렇게 한 보름을, 연락을 해도 전화기가 꺼져 있고 집을 찾아가도 불이 꺼져 있고 해서 널을 뛰며 지낸 모양이었다.… 전화가 먼저 걸려 와서 나갔는데, 술집에 미리 와 있던 여교사 눈이 벌겋더래요. 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동생 불길한 생각은 맞아떨어졌죠.


      -고소하고 싶어도 고소할 수가 없어요. 우리 아버지 대령으로… 예편하신 군인이세요.

      -이 사실 알면, 나도 죽이고 그 이사장도 죽이고 우리 엄마도 죽이고 다 끝내실 분이에요.


      경탁이는 중동 지역에서 종종 발생한다는 명예 살인을 떠올렸다. 성폭행이라는 인격 살인을 당한 여인을 다시 다른 이름을 붙여 살인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인지 경탁이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예수는 땅바닥에다가 무얼 쓰고 있었지? 


    (그러고 보면 사랑이 결혼의 전제 조건이었던 적은 얼마 되지 않았군. 경탁이는  자기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사랑이 아니라 가문의 평화와 번영 때문에 결혼을 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면 이혼한 남자도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것은 아닐까?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 경탁이는 아내의 말에 분노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몰랐다고 생각하며 택시비를 지불했다. 동생이 직권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라는 것도 지불한 택시비가 자신의 한 달 생활비라는 것도 택시기사에게 말하지 않았다. 택시기사는 술에 취해 경탁이에게 ‘동생’이란 호칭을 입에 달고 사는가 싶게 떠들다가 돈 앞에서 동공이 커지고 공손해졌다.)



     





    6번

     1번이 달아나자 2번이 자살했다. 2번이 죽자 2번 것을 끌어안고 5번이 자살했다. 5번이 죽자 2번과 5번 것을 끌어안고 4번이 자살했다. 4번이 죽자 2번과 5번과 4번 것을 끌어안고 6번이 자살했다. 3번은 이미 자궁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6번의 나이는 스물여섯, 이름은 이슬빈. 


    수민이는 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이키 조명이 꺼지고 노래방 기기가 침묵하는 룸은 무덤 같았다. 수민이는 뿌연 먼지 속에서 드르륵거리는 직소기의 소음이나 전기 드릴 소리로 분주한 인테리어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일이 마냥 즐거웠고 아크릴 간판이 달리고 나서는 뒷걸음으로 물러서서 손차양을 하고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꿈에 부풀었었다. 엄마의 음식 솜씨를 믿고 시작한 식당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접어야 했던 아픔은 이제 가실 것이었다. 김 사장은 식당에 자주 오는 손님이었다. 식당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김 사장은 수민이를 위로해주겠다고 했다. 수민이는 그와 저녁 식사를 한 횟집에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만 들이키면서 울었고 그날 남편과 처음 잠자리를 가질 때처럼 편안하게 몸을 내주었다. 김 사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을 차려주었다. 술집을 차리고 몇 년 간은, 김 사장이 거래처 사람들을 데려 오고 단골도 조금씩 늘어나서 장사가 그럭저럭 되었다. 수민이는 술이 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행복했다. 김 사장도 본부인이 있어도 수민이를 멀리 하지 않았고 수민이도 아이와 엄마를 건사하게 해주는 김 사장이 고마워서 나쁜 마음으로 더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만 같아라, 했던 수민이의 바람은 삼 년도 못가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김 사장 부인이 남편 몰래 노름을 시작하다가 사채까지 끌어 쓴 게 사달이 났다. 김 사장이 수민이를 좋아하긴 했지만 아내를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늘 맘 좋은 사람은 우유부단했고 매정하지 못했다. 잘못은 했지만 애들 엄마고, 내가 애들 아빤데 어쩌겠어. 그즈음 공교롭게도 연대장이 깐깐한 분으로 바뀌면서 미오리 경기에는 찬바람까지 불어 닥쳤다. 그 와중에 엄마는 병으로 돈을 차곡차곡 까먹다가 돌아가셨고 두 번째 가게 문을 닫았다. 수민이 나이에 취직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가게를 하면서 알게 된 식육점 언니는 소주방을 소개해 주었다. 소주방 명주 언니는 허름한 차림의 늙은이 하나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저래 보여도 알짜 부자에 룸싸롱도 하는데 … 너는 얼굴이 반반하니까 어떻게 잘 해봐… 아니면 내가 중간에 다리를 놔 볼까? 주방으로 불러 들여 낮게 속삭였다. 그러나 와리 마담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정해 놓은 매출액을 맞추고 난 뒤에 프로테이지를 먹는 것이 셈하긴 쉬워도 현실은 빡빡했다. 거기다 박 사장은 김 사장이 아니었다. 돈 앞에서는 얼굴색을 바꿨고 함께 일하는 여자는 가까이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돈푼이라도 만지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했다. 경기가 더 안 좋아지자 술집 업주들이 술값 단가를 높이면서 하루하루는 탈수기의 빨래들처럼 엉키기 시작했다. 수민이가 보기에 그 값에 양주를 먹으러 올 손님은 없어보였고 단골들도 오르기 전의 술값이 아니면 발길을 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수민이는 손님들에게 오르기 전의 술값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부족한 매출액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쌓여갔다. 매출액을 맞추려면 외상술도 종종 팔아야 했다. 그러나 외상은 수금만 잘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삼 개월을 넘어가면 외상값 역시 수민이가 채워 넣어야 될 빚으로 돌아왔고 수민이는 일수를 끌어 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가 수민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채업자들은 돈을 놀리면서, 술집 여자들은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술집 종업원들에겐 맞보증을 요구했다. 수민이는 언니 동생하는 여종업원들을 맞보증 서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여종업원들은 속칭 마이킹이라는 선불금을 받고 일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박 사장은 그 선불금의 이자와 가게세 기타 생활비를 종업원들 월급에서 제했기 때문에 여종업원들도 사채를 빌려 쓰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서 그들은 언니와 동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연대 보증과 낙찰계 계원이라는, 오랏줄 같은 끈으로 단단히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8일 장례식에 와서 넋을 놓고 있던 여자가 그 다음날 사체로 실려 와요. 10일 날 죽은 여자도 그 전에 장례식장에 왔던 여자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장의사 하고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경민이의 휴대폰 문자


    이런 시골까지 와서 선생질 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구 찌라시에 광고까지 하냐.


    누구신진 모르지만, 예전의 제 모습에서 꽤나 실망이 크셨던 분이신가 보군요. 죄송합니다. 생존의 엄중함에 시달리다 보니, 염치가 많이 없어졌나 봅니다. 거듭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업

      범어사 같은 본산이 되는 대형 사찰들과 그에 딸린 암자들을 제외하고도 경상도의 산자락엔 작은 암자들이 깃들었다. 그 암자 중엔 밥 짓고 수행하는 불목하니 한 둘에 신심 깊은 찬모 보살 하나, 작지만 마루 법당을 갖춘, 노스님이나 있을 법한, 고즈넉한 암자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일종의 전문분야가 따로 있는 스님들의 암자였다. 그리고 그 암자들의 기풍은 일주문의 안쪽보다는 일주문의 바깥쪽에 더 가까웠다.   


     스님은 법성계나 무상계 독송하는 솜씨가 남달라서 상여의 꼭두닭이 이승에서 저승을 향해 울듯이 밤의 안개를 걷어내고, 연못물을 순하게 다스리는 연잎 같이 경을 송한다고 했고 강산을 훑어서 세우고 내려서, 물길이 안으며 도는 명당을 찾아내는 재주가 뛰어나다고도 했고 손바닥의 강줄기를 따라가며 명과 수와 복을 점지한다고도 했고 처용보다 더 부리부리한 눈매로 이마와 콧방울과 턱 하관을 나누어 현세의 앞날들을 들여다본다고도 했다.

     

     송이의 남편은 목사였다. 남편은 사상에 있는 낡은 건물의 지하에 세를 얻어 개척교회를 열었다. 대형 교회야 형제들이 많으면 로마 군인들처럼 예수의 겉옷을 찢어 나누듯 교회의 자리를 공평하게 나누어 물려받으면 그만이었고 외아들이라면 예수의 통으로 짠 속옷을 제비뽑듯 물려받는 것으로 만사형통이었지만 송이의 남편은 그런 교회의 아들이 아니었다. 교회를 열 때쯤의 사상이나 감전동 일대는 한때 번성했던 고무공장들이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로 떠난 뒤여서 생활에 찌든 사람들만 무화과나무 아래로 들어오듯 낮게 엎드려 들어와 있었다. 송이의 남편은 깊은 신앙심으로 열심을 다해 기도했고 끈질기게 전도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다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전도에 귀를 기울이는 여인네들의 삶은 위태로웠고 남편들은 완고했으며 서로를 갉아먹듯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래도 남편은 적은 수지만 성도를 모은 것에 감사해하며 손을 휘저으며 찬송했고 긴 울음으로 기도했다. 교회 사정을 아는 성도들도 자신의 삶이 힘든 와중에도 십일조와 헌금을 거르지 않아 한동안은 임대료를 맞추고 살림도 그런대로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해가 다 되도록 열 명 안팎에서 좀처럼 신도수가 늘지 않은데다가 이듬해 여름에 접어들어 일이 닥치자 남편은 좌절했다. 사상은 저지대여서 호우가 나면 침수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돈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예배를 보면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남편이 교회를 지하로 정한 게 탈이 난 것이었다. 그해의 비는 십몇 년만이니 하면서 그동안 남편이 흘린 눈물처럼 철철 내렸다. 신도들은 물을 퍼내고 젖어버린 몸으로 기도하며 함께 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여렸던 남편에겐 그런 신도들에게서 더 심한 절망을 찾아냈다. 여보,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책에서, 양을 치기 위해 농지에 말뚝을 박아 농민들이 도시로 떠나는 상황을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그랬어. 그런데 나는… 양떼를 잡아먹고 사는 목자야. 당신하고 나하고 은총이, 믿음이 먹고 사는 거 다 저 양떼들…뜯어 먹을 풀도 없어… 목마르고 뼈만 남은… 저 양떼 잡아서 사는 거야. 흐흑. 흐흐흑.

     

     남편이 자살하자 지역 신문에서는 비관 자살이니 하면서 개척교회와 대형교회를 비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송이는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우리 목사님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하느냐고, 우리 목사님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거라고,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교회는 팔리지 않아 기한까지의 임대료를 내고 나머지 보증금만을 받고 나왔다. 송이는 조그만 방이 딸린 열 평 남짓한 밥집을 열었다. 밥집은 다른 교회로 옮긴 신도들이 몰고 오는 손님들 덕분에 겨우겨우 위기를 넘겨가며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안하던 일이라 늘 힘에 붙였고 남편의 죽음에 대해 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늘어갔다. 하나님이 뭐야. 도대체 하느님도 아니고, 왜 하나님이냐고. 하나님이 있으면 둘님도 있고 셋님도 있겠네- 가게 문을 닫으면 까닭 없이 슬퍼져서 송이는 한 잔 두 잔 마시는 술 양을 늘려가고 있었다.  

     

     광문이는 보육원에서 불교를 받아드렸다. 불상을 올려다보면 주불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 같고 협시불은 엄마와 은정이일 것이었다. 광문이는 보육원에서 나오자마자 사찰의 행자로 들어갔다. 경상도에 있던 보육원이, 속가라면 속가였기 때문에 이백여 리를 넘어서기 위해 전라도 쪽으로 정했다. 보육원으로 와서 가르침을 주시던 스님이 소개장 삼아 전화를 넣어 준 덕분에 행자 생활을 곧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엔, 새벽부터 공양간에서 밥 공양을 하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광문이는 조왕 공양으로 시작해서 조석예불을 마치는 군대 같은 생활이 스님으로 거듭나는 고행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열심을 다했다. 지금은 불목하니 처지지만 사미계를 받고 승가대학을 나오고 삼베 실을 팔뚝에 얹어 불을 붙이는 날이 오면, 부처님께 아난과 가섭 같은 제자로 받아들여지는 스님이 될 것이었다. 광문이는 그런 생각을 하면 입맛이 돌아 발우의 나물들을 보육원에 있던 강아지 네눈박이보다 더 싹싹 비웠고 찬불가를 저절로 흥얼거렸다. 광문이는 간혹 잠결에 자지를 만지다가도 나가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육원에서는 하늘을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여름 별들이 원석이라면 늦가을 별들은 안경 수리공이었다는 스피노자가 사력을 다해 깎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보육원에서 광문이는 한곳에 오래 있으면, 안보아도 보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보육원 원장은 때때로 은정이를 불렀다. 원장실에 다녀온 은정이는 무표정했지만 광문이는 어린 나이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느꼈다. 원장 아빠가 왜 불러? 무슨 일이야? 은정이는 광문이의 질문을 제일 싫어했다. 아니야, 니가 그걸 왜 물어.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 묻지 말라고. 내가 묻지 말라고 하면, 묻지마!


     광문은 절을 나왔다. 스스로 주지가 되거나 칠직 스님이 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여겼다. 돈은 여러 곳에서 나왔다. 시주함에서도 나왔고 망자의 천도금으로도 나왔고 연등에서도 나왔고 사업 입찰에서도 나왔고 기와의 이름에서도 나왔고 돈을 굴려서 나오기도 했다. 중요한 건 돈이 나올 곳이 많다는 게 아니라, 돈이 많아지면 저절로 쓸 곳이 많아진다는 데 있었고 돈을 쓰기에는 노름이 좋고 노름과 함께 하기에는 술이 좋고 술은 여자를 부른다는 데에 있었다. 광문이는 큰 스님 상좌들이 속옷만 걸치고 앉아 술을 들이켜며 화투짝을 맞부딪히는 소리를 상상하며 몸을 흔들었다. 법랍이 아무리 길어져도 맑은 피부에 눈 깊은 스님은 되지 못할 것이었고 견학을 갔던 곳에서 잠적한 열다섯 살의 은정이를 버릴 수 없을 것이었다.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소승은 가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이 말이 제일 좋아요. 송이는 법운 스님을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올랐다. 가게 문을 닫고 나서도 한 시간여가 더 지나서야 속세의 이야기는 끝났다. 송이는 자신의 삶을 함께 지낸 듯 들여다보는 스님의 말들에 놀랐고 끌어당기는 것 같은 그의 눈길에 흔들렸다. 둘은 술의 양이 비슷했으나 눈물의 양이 달라서 송이는 더 의지가 되었고 아양을 떨기 좋을 만큼, 스님의 가슴은 넓고 탄탄했다. 법운은 정인이 되어서도 송이에겐 스님이었다. 송이는 남편이 죽고 나서는, 하나님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복음서에 귀신들은 많았으므로 귀신을 이기는 이에게 의탁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송이는 교회에서 전도할 때처럼 법운 스님이 운영하는 주택의 작은 절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법운 스님은 그들을 앞날의 극락으로 인도하는 재주가 가시지 않았고 송이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자신의 앞날을 비비는 것 말고도 그는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자신을 깨우는 남자였다.


      광문은 보육원의 동생을 찾아갔다. 이거 경찰이야, 진짜 경찰. 경찰도 몬해 내는 일을 하는 음지의 경찰. 경찰이 되고 싶다던 동생은 흥신소를 열고 있었다. 중생을 인도하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가 가장 슬픈 중생이니, 우리가 우리 힘으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을 몰자. 태혁이는 기뻐했고 광문은 태혁에게 가스총과 수갑과 사진기와 펜 녹음기를 선물로 주었다.


     골프장의 캐디들은 젊고 예뻐서 함께 있어도 기분 나쁘지 않은 축이었으나 너무 젊은 데다 영악하거나 경계심이 강했고 술집 마담은 주인이 아닌 와리 마담이라서 돈이 적었고 운영주인 여자들은 밑에 거느린 애들이 거슬렸다. 송이는 산악회를 선호했는데, 산을 타는 게 고역이긴 했지만 돈 좀 있어 보이는 집행부의 임원들은 산을 타면서 만나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에 연락이 더 잦았고 그들은 스스로는 행복한 황혼을 즐길 준비에 바빴지만 아들들이나 손자들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학업을 걱정하는 나이였다. 

     

     송이는 가끔 본당의 불상들이 구형 텔레비전에 놓여 있던 못난이 삼형제 인형처럼 장식용으로만 느껴졌다. 암자라고는 하나 마루 법당이 없이 구들의 윗목을 장식한 불상들은 등신만큼 컸지만 송이에겐 그만큼 작았다. 그래도 낭군은 신령했고 송이의 운명부터 바꾼 부처였다. 그곳에 오는 아낙들은 조아렸고, 경청했고, 감탄했다. 스님은 역으로 풀어서 꾸짖었고 상象으로 갈라서 경계 했고 땅을 강물처럼 밀어서, 사업장과 집을 골라 주었다. 여사들은  대부분 돈푼깨나 들여 구입했을 것 같은 차들을 몰고 왔다. 그중에는 간혹 귀부인 같은 자태의 고운 여성들도 끼어 있었지만, 저런 여자들이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 싶게 배와 옆구리의 살집이 옷 사이로 삐져나온 치들이 대부분이었다. 송이도 여성들이 중년을 넘어서면 남자들에 비해서 몸에 지방을 축적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고 몸으로 남자를 받아내고 수태를 하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신을 돌보지 못한 것이라고 갸륵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삐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보살들 앞에서 스님은 힌두교 신전 벽에 양각된 비슈누 신처럼 다양한 포즈로 예언했고 지나간 날들을 훑어 울게 했다. 그럴 때마다 저런 것도 처용의 부리부리한 눈매를 닮은 스님의 업보이려니 하는 안쓰러움으로 송이는 속울음이 메었다.



    ‘창의적 인재’의 탄생

     경민이는 학교 로비에 있는 장식장 안에서 무심하게 정렬해 있는 트로피들을 흘끗 보면서 정면의 동문회 기증 글씨 칠이 조금 벗겨진, 대형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옷소매에 음식을 흘렸는지 자국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돈 묶음 백 장짜리가 양복 주머니 5개에 들어가니 마니 하던 신문의 뇌물 사건 기사가 떠올랐다. 경민이 지갑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가벼웠다. 교장실, 학부모상담실, 교무실, 문패들이 꼭 누가 왔나 하는 표정으로 어두운 복도로 몸을 빼고 있었다. 교실이 있는 2층으로 가려다 경민이는 내무반이든 교실이든 병원이든, 밀어 넣을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을 밀어 넣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빼곡한 아이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술기운이 오르고 있었지만 침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일이 있은 뒤, 학교에서도 쉬쉬 하면서도 사태 파악에 분주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경민이는 자신이 결근을 시작할 때쯤 학교에선 어느 정도 숙의가 끝나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당신! 신성한 학교에 술을 먹고 온 거야! 당신이 지금 제 정신이야! 시비라도 붙기 위해, 드라마 대사 같은 교장의 마른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교장은 어, 김 선생 앉어 앉어. 말을 낮게 깔면서 당황한 기색은 감추고 있었지만 곤혹스러움까지 숨기진 못했다. 잠시 후에 연락을 받은 학년부장이 들어섰다. 김 선생. 일단 우리 나가자. 나가서 어디 식사라도 하면서 얘기 하자. 지금 애들 공부하고 있어. 학년부장이 잡아끄는 바람에 경민이는 교장께 꾸벅 절을 올리는 둥 마는 둥 끌려 나왔다. 어서 어서- 학년 부장은 화재 훈련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짬도 주지 않고 팔을 잡고 어깨를 감싸며 재촉했다. 팔을 잡아끌고 싶지만 신경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학년 부장 차에 오르던 경민이 눈에 회양목을 전지해서 만든 무슨 동물 모양의 토피어리가 햇살을 받아 웃고 있는 듯 보였다.


     이사장 데려와요, 이사장. 내가 죽여 버리게. … 함 생각해봐요. 줄 세우기 때문에 애들 어떤 지 아시잖아요. 앞줄 애들은 압박감 때문에 자살하고 뒷줄 애들은 박탈감 때문에 막가구요. 중간 애들은 적의에 차서 괴로워하다 자살 하는 게 교실이잖아요. 제가 과외 할 때 중학교 3학년밖에 안된 여학생이 수업하다가 선생님도 섹스 해본 적 있지요? 그래요. 걔가 미친년이라서 그런 거 같애요? 걘 이미 공부로는 거덜 났는데, 억지로 시키니까 조금씩 미쳐가는 거지요. 그런 애들 심정처럼 사는 선생님에게 이사장이라는 새끼가… 학교가 시장이에요? 인비저블 핸드에요! 경쟁하면 가격이 정해져요! 그래요. 그럼 다품종 소량생산시대에 소품종 대량 생산되는 아이들 가격은 도대체 얼마여야 돼요?  술기운에도 학년 부장이 누가 들을 까봐,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하면서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조금 서글퍼져서 경민이도 목소리는 조금 낮추었지만 분노가 가신 것은 아니었다. 알았어 나도 충분히 이해해. 어쩌겠나. 김 선생처럼 훌륭한 선생마저 참- 우리 학교가 인재를 둘이나 잃는 거야. 내 맘 같으면 김 선생만이라도 학교에 남아 있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만 그렇게 마음먹기가 쉽지 않을 테고.


     흐르는 눈물 사이로 경민이의 눈에 학년 부장이 내미는 봉투가 눈에 들어 왔다. 뿌리치고 일어나야 했으나, 경민이는 봉투를 주머니로 가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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