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장편소설 관계_ 조풍호
  • ▶ <장편소설> 관계(4)- 조풍호
  • <장편소설 연재 4회>  





    관  계



         조 풍 호







    인연은 보편이 아니다

     늙었으면 집에 가만히 있다가 죽으면 되지. 뭐 한다고 새벽부터 폐지를 줍겠다고 나오는지 몰라. 저것들이 돈이 없어서 저러는 게 아니에요. 그냥 할 일 없으니까 더 오래 살아보려고 운동 삼아 저런다니까요. 돈도 많은 것들이… 아무튼 저런 것들 저런 짓 못하게 법조문에 따악 박고 옛날 박통 때처럼 전과자들 모아서 국토 재건단 만들어야 한다니까. 늙은 것들은 집에서 방구들에나 딱 처박혀 욕창이나 나게. 박 기사는 말꼬리에 어금니를 박듯이 손님에게 동의를 구하듯 고개를 돌려 가며 말했다. 손님은 새벽잠을 헐어서 나왔는지 코까지 골고 있었다. 에이 죽일 년. 박 기사는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하는 심사가 뒤틀렸는지 유모차를 밀며 이면도로로 접어드는 꽃무늬 왜 바지 차림의 할머니 뒤에 대고 기어이 호년이었다. 박 기사에겐 이태 전까지만 해도 택시를 교대로 몰던 짝 기사가 있었다. 나이 서른다섯에 상처하고 혼자가 된 김 기사는 선 좀 보라는 지나가는 말에도, 아구 그런 말 말어유. 난중에 저승서 각시 볼 때 미안혀서두 안 되구유. 이젠 남 채려주는 밥은 잘 먹을 자신두 읎구유. 애들한테두 못할 짓 같구 그래유. 기겁을 하듯이 손사래를 쳤다. 혼자 있을 땐 어떤지 몰라도 김 기사는 힘든 기색 없이, 교대를 할 때는 예의 아자! 아자! 영펴는 구호를 거르지 않았다. 내가 키우는 게 아니구 지들이 알아서 크는 거지유. 지덜이 서로 키워유. 그냥 고맙지유 뭐. 세 살 터울이라던 남매. - 그해 겨울이 가고 나면 무사고 십일 년을 넘겨 개인택시 순번이 돌아오게 되어 있던 터라 김 기사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런데 그 사건이 터진 것이다. 


     김 기사는 분명 백호였다고 말했다. 검은색 줄무늬의 범 한 마리가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핸들을 꺾어 범 앞을 막아섰는데, 쿵 소리를 내며 범 발바닥이 전면 유리를 가로 막았다고, 김 기사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박 기사 앞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노인은 즉사였다. 병원으로 몰려온 노인 가족들 중 큰딸이라는 올림머리 여자는 김 기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울부짖었고 회색 체크 슈트 차림의 중년의 아들은 노인의 시신 옆에서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울부짖었다. 며칠 뒤 노인의 동생이라는 노신사가 침착하게 합의를 요구했다. 노신사의 명함에는 무슨 대학 총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죽은 노인은 집이 몇 채네 빌딩이 몇 갭네 하는 그 동네에서 유명한 부자였다고 했다. 하지만 노인은 또 오래전부터 화장지 종이를 두 칸만 쓴다네 전등불이 할아버지만 따라 다닌다네 아니네 불도 없이 볼일을 본다네 식으로 시장통 아줌마들의 쯧쯧 속에서 살았다고도 했다. 처음에 제시했던 돈에 비해서 생각보다 크지 않은 액수에서 합의금이 정해졌다. 노신사가 중간에서 관여한 덕분인 것 같았다. 그러나 김 기사는 며칠 뒤 팔 차선 도로에 뛰어들었다. 밤이어서 차들이 연이어 김 기사를 치며 자나가서 시신이라고 할 만 한 살도 붙어 있지 않았다. 사고무친인 김 기사의 장례는 노조에서 장례위원회를 세워서 치렀다. 그 사람이 맘이 약해서 그래. 개인택시 물 건너 간 게 더 컸을 걸. 그래도 자식들은 생각했어야지. 운전을 하는 직업 성격상 동료들은 몇 몇을 빼고는 잠시잠시 다녀갔다. 초상을 치르는 동안, 몸에 살집이라곤 없어 보이는 상주인 아들은 울지 않고 입만 앙다물고 있었고 가슴이 개똥참외만한 계집애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박 기사는 화장을 끝내고 택시를 몰아 남매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노조회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일간 찾아오마. 공손히 절 하던 차창 밖, 남매의 모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점장 설계

     고주파 기사인 철재는 기계 앞 의자에 앉았다. 철재는 고향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스미치온 같은 농약 때문에 심했던 두통이 없어져서 좋았다. 철재도 한때는 도시에 나가서 돈 벌 생각을 안했던 것은 아니었다. 스물 몇 살 땐가 철재는 옷장 서랍 아래 보자기에 있던 돈을 훔쳐 가출한 적이 있었다. 까짓 취직만 되면 다 효도지 뭐.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었다. 열차 옆자리의 동석한 남정네가 이것저것 말을 건네 왔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길게 나누었는지 아무리 골똘히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취직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했던 말은 분명하게 남아 있었고 충청도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어색하게 말했던 것 같았다. 아재는 부산역에 내리자 일단 국밥집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키고 반주를 권했다. 술기운이 돌았다. 여관은, 외관은 촘촘한 누런색 타일에 때나 빗물자국이 배어 있어 허름했지만 방은 깨끗한 곳이었다. 아재는 술에 취해 요 위로 쓰러지는 철재의 뒤에 대고 내 가서 일하게 될 직장 사장하고 만나고 들어올 테니, 자고 있게. 졸음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 비질하는 시골 출신이어서 그랬는지, 낯선 잠자리에 철재는 악몽에서 벗어나듯 흠칫 눈을 떴다. 시간은 두어 시간 지나있었다. 머리맡에는 남정네가 두고 간 쪽지와 그때 돈으로는 작지 않은 3만원이, 사각형 향로표 성냥갑으로 눌러져 있었다. 일어나면 끼니 해결하고 다시 들어와서 기다리시게. 오후에 돌아옴세. 그때 철재는 쪽지와 돈을 번갈아 보며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은지 몰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었다. 떠난다면 인심 좋게 취직자리까지 알아준다는 남정네를 배신하는 것은 아닌가. 인간은 살면서 복이 세 번은 온다는데, 굴러온 복을 차는 것은 아닌가. 도시에는 인신매매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고향에서 들었던 그 멍텅구리 밴가 엔진도 없고 노도 없어 감옥살이 같다는 새우젓 배를 타는 것은 아닌가. 고민 끝에 철재는 돈은 그대로 두고 쪽지 옆에다 작게 적었었다. 집에 전화 했더니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가야 돼유. 맘 써 줘서 고마웠구먼유.


     철재는 고주파 기술 배운 것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가죽의 나염된 글씨를 태우지 않고 딱 알맞은 지점에서 가다를 눌렀다 떼는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었다. 어때 새색시 젖무덤처럼 뽀얗지 않냐? 난 요거 보는 재미로 산다. 에어를 쏘아 반짝이는 은색 쇳덩이를 들어 보이며 중용이 형은 늘 그렇게 말했지만 철재는 중용이 형이 하는 정밀 공장의 과열된 쇠를 식히기 위해 뿌리는 기름 냄새가 싫었고 덩그렇게 큰 공장의 음산하기까지 한 어둠은 더욱 싫었다. 그러나 지금 철재네 공장에는 이제 정한이 형도 없고 경식이도 없었다. 철재는 몸을 흔들어 정신을 집중하려고 했지만 자꾸 등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고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철재가 정한이 형을 만난 것은 근 반 년 전이었다. 나이 다 들어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이 읍내까지 들어왔다는 형은 수염이 범강장달이 같고 키가 짜리몽땅해서 처음엔 무슨 광대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붙임성이 좋고 사람이 순했다. 철재는 정한이 형과 가끔 화투를 쳤다. 노름을 좋아하는 체질은 아니었지만, 혼자인 형 집에 드나들다 보니, 옆방 김 기사와 심심풀이로 자리가 만들어지곤 했다. 정한이 형은 점 백이어서 따 봤자 오징어에 맥주 두어 병 정도의 돈이었지만 매번 잃으면서도 같이 놀아주니 좋다아- 훈 말마디 잊지 않았다. 그리고 철재도 예의를 차리느라 딴 돈은 대개 그 다음 날 술값으로 뽀찌라고 부르는 개평을 대신했다. 철재는 하루하루를 콧노래로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십 년을 부은 적금 탈 때가 몇 달 안 남아서 이젠 베트남 각시 얻고 자식놈 똥도 갈아볼 수 있다는 꿈이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식이가 오면서 화투는 고돌이에서 섯다로 바뀌었다. 경식이는 나이가 아직 스물 둘밖에 안 된 되다 철재를 잘 따라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의동생을 한 아이였다. 정한이 형도 그 둘이 참 어울리네-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경식이는 화투를 잘 치는 건지 운이 좋은 건지 화투판을 좌지우지 했다. 그래서 어떨 때는 판돈이 기 십 만원을 넘어 있을 때가 있어 철재는 가슴에서 쿵- 소리가 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경식이가 딸 때가 가장 많았는데, 경식이는 대부분 개평으로 돌려주었고 소줏값만 챙기는 편이어서 정한이 형이 위로라도 하면 철재는 아구 괜찮아유. 그까짓 술값 얼마 된다고, 내가 산 턱 치믄 되지유. 하면서 지내 왔다. 그런데 경식이가 판돈을 한참 키운 어느 한날 패를 까면서 내가 아무래도 끝발이 붙는 때인갑다, 하면서 넌지시 이 근처에 속칭 하우스가 있는데 함께 가서 형님들이 바람만 잡아 주면 제가 따겠다고 말했다. 다 잃을 돈을 왜 나누자고 했는지 모르지만 딴 돈의 오 할은 형들에게 주겠노라고 경식이는 일수 메모지에 각서까지 쓰고 있었다.          



    정한이 형: 본명은 아무도 모름. 수염을 깎고 안경을 쓰면 다른 사람처럼 보임. 속칭 ‘기름칠쟁이’ 소위 ‘고객’에게 가랑비에 속옷 젖게 하는 역할 담당. 노동하지 않고 돈 버는 노름꾼들을 가장 경멸함.


    경식이: 몸이 호리호리해서 ‘호리병’이라는 별명으로 불림. ‘고객’에게 의욕을 고취하는 ‘의욕 고취 기간’에 투입. 철재가 신고할 수 없도록 맞고 돌아오는 역할도 담당.


    철재: ‘고객’이 됨. 예치금은 적금. 자신도 자신이지만 정한이 형과 경식이도 돈을 모두 잃어 떠난 것에 가슴아파하고 방황함. 술에 기대어 서서히 망가지게 됨. 반년도 전, 새마을 금고 의자 한편에 앉아 오랫동안 자신을 주시하던 지점장의 얼굴을 전혀 기억 못함. 그 지점장이 ‘범강장달이’인지 ‘호리병’인지 제 3자인지는 더더욱 모름.


    하우스: 읍내의 노름꾼들의 돈을 터는 여러 팀들이 얻은 셋집. 철재가 하우스에서 빌린 돈이 적금을 넘어설 때까지 존재하는 집. 

       



       

    솥단지

     부산이란 곳이 사내대장부가 살기론 따악이여. 육이오 동란 때, 태극교 교주두 교인들 끌구 다른 디루 안 가구 부산으루 간 것 봐봐. 내가 한 번 살았달게 살아볼팅께 나만 믿어. 시아버지가 풍을 맞고 들어 눕자 상준이 아버지는 서둘고 있었다. 은자는 바다가 쉽게 눈에 그려지지 않았다. 기와집 수천 채처럼 물결친다는 파도를 떠올리면 멀미가 났다. 동아줄을 달고 건너는 줄배는 댈 게 아니라고 했다. 목숨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고깃배들의 오색 깃발이 가물치보다 크다는 바닷고기들처럼 펄떡이는 것을 상상하다, 은자는 남편의 설레발이, 설레발이 아니기를 바랐다.


     일! 일반 시민 여러분. 이! 이것보세요. 삼! 삼양라면을. 사! 사 잡수세요. 오! 오 분만 끓이면 됩니다. 육! 육 그람짜리 스프가 들어 있습니다. 칠! 칠칠맞게 끓이면 안 됩니다. 팔! 팔팔 끓여야 됩니다. 구! 구수하게 드세요. 십! 십 원짜리 동전 세 개면 됩니다. 야! 다 외웠다. 후남이는 왜 아부지가 이 산천을 떠나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경옥이네처럼 육성회비두 못 내믄 남우세스러워서 그런다 치고, 도대체 왜 그러는 겨? 후남이는 조율이시 홍동백서에 옥춘당처럼 달달한 사탕까지 산더미처럼 쌓을 수 있는 고향의 집이 좋았고 강산이 좋았다.


     개꽃이 피기 전의 참꽃은 따서 먹고, 민들레 잎사귀는 싸서 먹고 닭의 장 풀꽃은 밥에 비벼 먹고, 버들가지는 껍질을 벗겨서 물기를 빨아 먹고, 옥수수 대궁은 씹어서 즙을 내어 먹고, 국화잎은 전 장식이었다. 만두는 홍두깨로 밀어 만두피를 만들고 동치미물에서 노랗게 삭은 다진 지고추에 으깬 두부에 다진 고기와 씻은 짠지를 버무린 소를 넣어 손으로 말아 올리거나 귀와 뿔을 달아 만들었다. 부침개는 배추를 찢어 가지런히 올린 사이에 대파의 배를 갈라 길게 눕히고 간은 하는 둥 마는 둥 지져냈고 산적은 칼자국에 밴 양념이 고깃살을 오물오물 넘기게 했다. 도시는 둘레 나무겉은 집들만 다닥다닥한다는디, 그럼 논이 읎어서 이삭줍기 숙제는 우뜨케 한디야. 후남이는 아무래도 아부지가 읍내 니나노집 여자와 틀어져서 떠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여자는 여자가 되는 때가 있다는데, 남자도 남자가 되는 때가 따로 있는 건가? 궁금해졌다. 



    하찮은 사람


    -꿀꿀한데 드라이브나 하죠. 여기서 부산 왕복 얼맙니까?

    -따따블로 줄 테니까, 그 시간 동안 시내나 돕시다.


     아구우 이거… 좋지를요. 몇 년 만에 있는 손님아잉교. 아. 자, 그럼 손니임-어데로 모실깝쇼? 말만 하십쇼. 택시에 오르자 잘 오소. 포항의 건조한 사투리로 경탁이를 받던 택시 기사는 목적지를 묻다가, 경탁이의 제안을 듣자 들뜬 말투로 바뀌며 과장되게 상냥해졌다. 경탁이는 포마드를 발라 넘겼는지 머리칼이 번들거리는 올백인데다 돈 앞에서 비굴해지는 택시기사가 맘에 들지 않아 내려버릴까 하다가 눈두덩을 문지르고 나서 이물감을 몰아내려고 눈을 깜박였다. 어차피 택시 앞자리라는 것이 택시기사와 얼굴을 보지 않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자리고 잠시 봤다고 해봤자 기억나지 않을 얼굴일 텐데… 싶기도 했고 수다를 떨기에는, 좀 비굴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땅바닥을 보며 지루한 듯 뉴욕의 거리를 걷는 로버트 드 니로의 정면 모습이 인상적이던 영화 택시 드라이버 포스터 글처럼 ‘뭔가가 되고 싶어 하는 하찮은 사람’처럼 느껴져 더 편할지도 모르겠군, 생각도 들었다. 택시 드라이버라는 영화라고 아십니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는껴? 진짜로 걱정거리를 나누는 사람처럼 은근해진 택시기사의 질문에는 아랑곳 않고 경탁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듯 되받았다. 대답을 못할 것도 아니고 나중에 할 얘기 속에 있는 질문이기도 해서 대답을 한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것도 없었으나 경탁이는 핸들을 잡은 기사의 팔에 덧입은 토시가 신경에 거슬리면서 질문은 내가 한다아-라는, 택시기사는 보지 못하지만 ‘눈으로 하는 말’까지 덧붙였다. 우리 같이 택시나 모는 사람들이 영화 같은 문화생활 누려가매 살 시간이 있겠능교? 근데 그 영화가 손님 안 좋은 일하고 무신 관계라도 있나보지를요? 그 영화 주인공이 트래비스라는 택시 기산데,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출신이지요. 전쟁 아시죠? 여자들에겐 아군도 적군이게 하고 군인들에겐 자신도 적군이게 하는 전쟁. 아무튼… 그 트래비스가 뉴욕의 거리를 택시를 몰고 다니는 모습이 꼭 떠다니는 섬처럼 보이죠. 그래서 한번 물어봤어요, 아저씨도 그렇게 섬처럼 느낀 적이 있는지 해서. 경탁이의 말투가 비틀어지려다 겨우 돌아왔다. 그런 건 잘 몰라도 지금 우리가 섬 사이를 떠돌고 안 있는껴. 포항 여기가 옛날엔 바다라서 죽도 해도 대도 송도 동 이름에 도가 들어가는 데는 다 섬이었지를요. 옛날엔 이 도로들로 섣달받이 명태나 정 통하는 데는 그만인 오징어가 몰려다니고 끌그물로 잡는 10월 도루묵에 통발로 잡는 빵게도 살던 곳 아닌교. 팔을 뻗어 두루 가리키는 제스처까지 얹어 신이 난 기사의 말 도막을 잘라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경탁이는 으,음, 흠. 호흡을 가다듬었다.


    (경탁이는 중간에 잠이 들었다. 밤을 새우고 아침에 탄 택시 안으로, 햇살이 너무 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탓에 기사와 아무 이유 없이 다투거나 여자 기사였다면 허벅지라도 만질 수 있었을 텐데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고 헤어지자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두 시간 만에 달려서 돌아갔는데, 그곳에 그대로 서 있던 스물다섯의 한 여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탁이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해 내린 식당에서 반주로 시작한 술을 두어 병, 비우고 나서였다.)

     

     아저씨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저씨 회사 사주가 자선했다고 쳐요. 그게 존경스러워요? 그 돈 만들어준 사람들은 하루 스물 네 시간 뼈 빠지게 일하는 기사들인데, 안 그래요? 지가 택시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으면 뭐 해요. 택시가 사납금 내줘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번 돈으로 생색은 지가 다 내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 회사 사장님 이꼬르 자본간데 어느 순간부터 사용자랍니다. 좋은 말이지요, 사용자. 아저씨를 상품으로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거죠. 아저씨! 아까 말한 트래비스가 우리나라 택시 기사였다면 권총 네 자루 가지고 사주 찾아가야 돼요. 아저씨도 가끔 총 있으면… 사주… 찾아가고 싶지 않나요?


     경민이는 경탁이보다 네 살이 어렸다. 북방 계열의 옅은 눈썹에 찢어진 눈의 경탁이 하고는 다르게 눈이 크고 깊었고 눈썹이 짙어서 계집애 같아 보이기도 했다. 경민이는 어릴 적부터 선생 놀이 하는 걸 좋아하더니 사범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경민이가 졸업을 하고 임용 고시를 보게 될 때는 이미 교사직은 병목 현상이 심했다. 경쟁률이 형 등단할 때 보다 더 높아. 경탁이는 임용 시험 공고를 보고나서 경민이가 처음 한 말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교사가 되기 위해 죽어라고 공부했는데, 교사들이 찔끔찔끔 정년퇴임하는 자리를 위해서 몇 천 명이 시험장에 몰려간다는 게. 미국에서처럼 학교 총기 난사 사고로 교사들이 수두룩하게 죽었으면 한다니까 형. 교사직이 사명감이 있어야 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중독 증상이 있는 건 분명해보였다. 평소엔 학원 같은 데 취직해서 잘 다니다가도 경민이는 임용 시험 공고가 나면 실수로 사람 죽인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는 절에 처박히거나 고시원으로 달려갔다. … 한번은 응원 차 고시원을 찾아 갔는데, 추리닝에 딸딸이 신고 동생이 담배 연기 죽 뱉어내면서 하늘에 대고 올해는 잘 되겠지? 이래요. 그거 실제 보고 있으면 기분 참 묘하지요. … 경민이는 마지막으로 친 시험에서 3차까지 갔다가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러고는 깨끗이 포기했는지 얼마 뒤엔 선배 소개로 거제리에 있는 무슨 사립학굔가 기간제로 들어갔다. 경민이는 교장이 교재 선정하면서 리베이트를 얼마 받았네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도 얼마간은 잘 버티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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