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이야기 긴 여운_조명숙
  • ▶ <짧은 이야기 긴 여운>야간 산행의 비밀_조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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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 산행의 비밀 

                                                                                                             조  명 숙  

     

    곱게 물든 나뭇잎이 먼 불빛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산길의 밤은 고요하고 깊었다. 넓게 펼쳐진 아파트 단지를 뒤로 하고 문희는 어둠에 잠겨 있는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팔팔한 삼십대 후반, 불행한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문희에게 닥친 불행은 단 한 가지,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가 늘어난다는 것뿐이었다. 아이 둘 낳고 그 날씬하던 문희의 체중은 몇 달 전 70kg에 육박해 있었다.

    신경 좀 써. 창피하지도 않아?

    남편과 함께 아이들도 틈만 나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엄만 운동 안 해? 다혜 진수 명훈이 엄마는 다들 에어로빅 다닌대.

    하지만 살을 빼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은 것은 남편과 아이들의 눈흘김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마다 옷을 새로 사 입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맵시를 낼 수 있는 옷은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니, 식품이니 하는 것에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 돈이면 아이들 학원을 하나 더 보내고도 남을 뿐만 아니라, 살을 빼고 난 뒤 괜찮은 옷을 몇 가지 더 사 입을 수도 있었다.

    궁리 끝에 서점에 가서 책을 훔쳐보고, 인터넷을 뒤져 갖가지 정보를 수집했다. 어느 정도 정보 수집이 완료되자 문희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침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20kg을 못 빼면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했다. 아침저녁은 배변에 좋다는 고구마와 과일로 떼우고 점심은 반 공기의 밥과 된장국을 먹고 단지 내 산책길에서 규칙적으로 조깅을 하며 악착스레 견뎠다. 지금 그녀의 몸무게는 정확하게 52kg. 목표치를 2kg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의 태도도 눈에 뜨이게 달라졌다. 일부러 골라 입지 않아도 몸에 척척 맞는 옷, 한결 다정다감해진 남편, 우리 엄마 처녀 같다고 어깨가 으쓱해진 아이들.

    문제는 방귀였다. 살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밥을 먹다가도 뿡, 텔레비젼을 보다가도 뿡, 함께 숙제를 하다가도 뿡,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수시로 뿡, 뿡 터져나오는 방귀는 염치불구 체면불구였다. 그러다 보니 살이 빠져도 사람들과 자신있게 어울릴 수 없었다. 이웃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도 몇 번 뿡, 백화점에 가거나 드라이브 갔을 때도 몇 번 뿡, 친척 결혼식과 회갑연에 갔을 때도 몇 번 뿡 하고 보니 모두들 킥킥대고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환장할 노릇이었다.

    용무를 볼 때 화장실 문을 꼭 닫는 것처럼 방귀란 것도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처리되어야 하는 생리현상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즉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마음 놓고 방귀를 뀌세요 라든가, 방귀 뀌어가면서 일합시다 등의 인삿말이 통용되지 않고 있었다. 방귀를 뀔 때마다 그것이 체내에 축적된 지방이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가스이고, 속에 눙쳐 있던 숙변이 빠지는 징조라고 설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방귀에 시달린 남편과 아이들은 이제 그녀가 방귀를 뀌지 않으려고 얼굴이 샛노래지도록 참는 걸 보면서도 얼굴을 찌푸리기만 했다.

    이제 제발 그만할 수 없어? 엄마 방귀소리 이젠 지겨워.

    살 안 빼도 좋으니 제발 방귀 뀌지 마.

    한 번은 식사 중에 무심코 뿡, 소리를 냈는데 남편이 수저를 놓고 말없이 나가버렸다. 그날 찬바람이 도는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 하고 그녀는 아파트 뒷산으로 올라갔다. 눈물을 흘리며 방귀를 실컷 뀌었다. 조심스럽게 눌러두었던 방귀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마구 터져 나왔다. 한참을 뀌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그렇게 시작된 야간산행이었다. 문희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쫙 벌리고 야호, 하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뿌웅, 방귀가 터져나 왔다. 방귀가 연달아 터지든지 말든지 내버려두고 맨손체조를 하고 폴짝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아파트 단지로 접어들자 문희는 허리를 곧게 펴고 턱을 빳빳이 치켜세웠다. 날씬해진 몸매를 자신있게 흔들며 상가 슈퍼를 지나던 문희는 문득 아침에 먹을 우유를 사 두지 않은 게 생각났다. 우유 한 봉지를 사고 셈을 치르고 나오자 마침 슈퍼에 들어오던 잘 생긴 젊은 남자가 눈웃음을 보냈다. 젊은 남자의 눈웃음을 눈웃음으로 받아주고 문희는 더욱 턱을 치켜들었다.

    역시 날씬해지고 보니 세상이 달라졌군 싶었다. 이제 서른이나 됐을까 싶은 젊은 남자의 시선을 받을 만큼 눈에 뜨이는 몸매라면 그까짓 방귀 쯤 매일 뒷산에 올라가서 실컷 뀌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저녁 뒷산에 올라가 방귀를 뀌고 오는 비밀은 누가 알겠는가. 사람들은 단지 날씬하고 자신만만한 문희의 모습만을 보고 있을 거였다.

    305동 현관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의 문을 막 닫으려는 찰나, 슈퍼에서 보았던 젊은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젊은 남자는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문희를 향해 또 은근한 눈웃음을 보냈다. 19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출발해도 남자는 단추를 누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지만 문희는 태연을 가장하고 물었다.

    몇 층이세요?

    , . 307동에 살아요.

    그러세요? 여긴 어떻게?

    젊은 남자는 문희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다시 지긋한 눈웃음을 보냈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치한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뒤쫓아오다니, 아무래도 그녀를 마음에 두었음에 분명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문희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점잖게 젊은 남자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저기, 난 말이예요.

    알아요. 이 단지에서 방귀 아줌마 모르면 간첩이죠. 가까이서 한 번 보고 싶어서 오늘은 큰맘 먹고 뒤따라왔어요. ​​

    엘리베이터는 그 사이 19층에 닿았지만 문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젊은 남자는 열림단추를 누른 채 여전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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