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이야기 긴 여운_조명숙
  • ▶ < 짧은 이야기 긴 여운> 눈 뜨면 없어라 _조명숙


  •                                                                                                          눈  뜨면 없어라
     



                                                                                                                                              
                                                                                                                                                                                                   조  명  숙




      윤필수는 오늘도 외롭고 쓸쓸하였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모두들 지난 달에 결혼한 신입사원 김갑득의 신혼집 집들이로 몰려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명색 과장이니 앞장서서 분위기도 잡고 선물도 준비하고 해야겠지만 이런 일을 맞게 되면 모두 윤필수가 슬쩍 빠져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신혼 집들이에 가면 어떤 식으로 놀아주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기혼 직원들은 노총각 과장이 일행에 끼어들면 몹시 불편할 거라고 저희들끼리 한참 수근거렸을 게 뻔하기도 해, 윤필수는 금일봉을 축하금으로 내놓은 뒤 직원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혼자 걸어갔다.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처럼 냉대를 받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이 사는데 까짓 결혼을 하고 안하고가 무슨 상관이냐 싶어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마흔까지 오게 되었지만 사실 그는 꼭 결혼을 기피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선도 보았고 미팅도 해 보았으며, 조금 시시하게 끝나버리기는 했지만 아무튼 연애란 것도 해 본 처지였다.  정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데 모두들 그 어쩌다 보니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직장 내 여직원들이 수근거리듯이 어디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지극히 건강한 남자인데다가,  훤칠한 키에 모나지 않은 성격하며, 과장이라는 적당한 지위 등 어디를 봐도 그가 결혼을 못할 이유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심란해하며 윤필수는 지하철을 탔다.  퇴근 러시아워의 지하철은 말할 수 없이 북적거렸다. 윤필수는 간신히 지하철 속으로 몸을 밀어넣은 뒤 사방에서 죄어드는 사람들 속에 자신을 내맡겼다.

      오늘 신혼 집들이를 한다는 그 부하 직원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사내 커플이라 걸핏하면 남의 입에 오르내리더니 기어코 결혼에 골인을 하기는 했으나 윤필수가 보기에는 일 년도 못 가 비명을 질러댈 게 뻔했다.  남자는 술이나 고스톱이라면 그저 사죽을 못 쓰는 사람이었고,  여자는 짠돌이에 매섭기로 소문난 경리과 직원이었고 보니 두 사람의 결혼을 겉으로 축하는 하면서도 그 결혼이 얼마나 순탄하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모두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형편이었다.

      아직은 신혼이라고 술도 삼가고 밤샘 고스톱도 삼가는 모양이지만 흥, 두고 보라지. 사네 못 사네 소리가 또 파다하게 터져 나올 거야. 저렇게 좋아라 동네방네 난리를 피우다가도 몇 년이 못 가 마누라와 자식이 족쇄라느니 어쩌느니 떠벌이게 될 걸.

      괜히 심술을 부리면서도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는 지하철 속에서 윤필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한바탕 부부싸움을 한 뒤에는 결혼을 않은 윤필수가 부러워죽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온갖 주접을 떨다가도,  다시 화해를 하고 나면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한 윤필수가 정말 가련해 못 견디겠다는 눈길을 던지는 변덕이라니, 참.

      이런 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바람에 돌아보았다.

      “여기 앉아요. 자리가 비었구랴. ”

      퇴근길 지하철에 빈 자리가 생긴 것도 희한한 일인데, 자기더러 앉으라니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우선 엉덩이부터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어지러운 심사를 가라앉히려고 눈을 감았다.

      꿈이었나 보다. 그는 결혼해 있었다. 꿈속에서 윤필수는 중얼거렸다.  모두들 노총각, 노총각 하며 날 구박하지만  나도 결혼했다구. 여길 봐. 내 마누라는 둘이나 되잖아.

      그가 고개를 돌리자 각선미 좋고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두 여자가 윤필수의 곁에 있었다.  두 여자는 사랑이 가득 담긴 그윽한 눈으로 윤필수를 바라보며 지금 당장 그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서로 먼저 알아차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흐흐, 둘이나 된단 말이지.”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윤필수는 자꾸 웃었다. 여자들은 윤필수에게 서로 질세라 교태를 떨었고, 그는 흠흠, 입맛을 다시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좋아. 결혼이란 어쨌든 좋은 거군. 마누라도 하나보단 둘이 좋고 말이지.”

      그는 또 흠흠, 하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두 여자가 곁에 있으니 너무나 행복했다.  예쁘고 상냥한 마누라 둘을 데리고 행복에 도취되어 제 입가에 침이 질질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아이구, 이것 봐. 침까지 흘리네.”

      윤필수는 혀를 쯧쯧 차는 소리와 자신의 입 언저리를 훔치는 손길에 퍼뜩 눈을 떴다.  전동차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크 꿈이었구나. 꿈인 줄은 알았지만 깨어나기가 아쉬워 그냥 눈을 감고 있으려니 다시 손길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으면 쯧쭛.  참한 젊은이구먼.”

      그제야 윤필수는 퍼뜩 눈을 떴다.  꿈이 아니었나?  아니 꿈이었는데?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의  양 옆으로 호호백발 할머니 둘이 앉아 있었다.  그는 두 할머니 가운데 끼어 든 채 달게 한숨을 잔 거였다. 

      “에구,  젊은이.  어났구랴.  헐헐.”

      오른쪽에 앉은 할머니가 말했다.

      “원, 세상에. 젊은 양반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이렇게 잠이 들었을까?  자,  이거 먹을라우?  잠 깨는데는 박하사탕이 제일인데.”

      왼쪽 할머니가 사탕을 내밀며 말했다.  윤필수는 꿈 생각이 났다.  둘이나 되던 마누라. 두 할머니. 이건 실제 상황이 아닌가.

      “어디까지 가슈?”

      “예?  아,  종점까지 갑니다.”

      얼결에 대답하자,  할머니들은 반색을 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우?  우리도 종점까지 가는데.  잘 됐구랴.  친구 삼아.”

      윤필수는 그 순간 벌떡 일어나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빠져나가며 소리쳤다.

      “전 여기서 내려요. . 여기서 내린다구요.”

      전동차가 멎고, 윤필수는 얼른 승강장에 내려섰다.  두 할머니를 태운 전동차가 사라지자 그는 후유, 하 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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